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칼럼·에세이

 

 

주문해볼까? 

   

유리잔에는 우유 한 잔.

머그컵 안에는 낙엽 그려진 카페라떼.

 

접시 위엔 바나나 얹은 핫케이크.

빛 한 겹 누그러진 홍차 한 잔.

 

그 옆에는 보늬밤 두어 개.

 

 

 

무소르그스키, ‘민둥산에서의 하룻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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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비상 상황이나 광경을 떠올리기보다, 유달리 노란 조명 아래 까만 복장을 한 연주자들과 관객석을 등진 채 소리로 공을 던지는 지휘자가 눈 안에 가득 들어왔다.


토요일 공연이고, 유달리 뜨겁고 바람이 시원했던 탓에 방금까지 아, 꽤 활기찬 토요일이구나- 싶었는데, 이 안에 들어오니 내가 뭔가를 제대로 보러 왔구나. 그 사실이 시야 안으로 훅 들어왔다.


거침없이 합을 맞춰가며 하나의 형상이 되어가는 광경을 보았다. 그 안에서 나타나는 인간의 몸짓—활을 든 손, 북을 치는 손, 숨을 불어넣는 입—을 보며 눈을 껌뻑-껌뻑했다.


지나치게 커진다는 느낌이나 이야기를 전개시켜 보겠다는 욕심보다, ‘내가 이곳에 와버렸구나’, ‘이곳에 오기로 택해버렸구나’ 하는 사실이 머릿속을 뱅뱅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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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공연 자체를 하루의 메인, 최우선 기대로 삼았다기보다는 하루의 절반 이상을 보내고 나서, 오후 5시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 속에 가만히 놓인 기분이었다. 그러면 연약한 에어컨 바람이, 이름 모를 섬유유연제 향기가 스친다.


어딘가로 풍덩- 빠져들기보다, 여름으로 향해가는 이 봄 한복판의 17시 무렵이 얼마나 한낮인지가 더 또렷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관악기 하나가 거의 홀로 노래를 부를 적에는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의 천장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참으로 높고- 둥글고- 사방이 트여 있다. 그날은 적어도 그게 내 하늘이었다.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제4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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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일상에 가까웠다. 그냥- 있던 대로 시작했다. 무조건적인 확신보다는 덜 무겁고, 절대적인 안심보다는 조금 더 진중하다.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평화라는 말이 괜히 커다래지지 않도록, 피아노 앞에 앉은 사람이 그렇게 노래했다.


지휘자와 협연자가 모두 김선욱이라는 하나의 이름 안에 놓여 있었기 때문에, 일반적인 협연 무대와는 피아노의 방향부터 달랐다. 객석에서 보이는 것은 피아노의 옆모습이 아니라, 관객 쪽으로 돌아선 건반이었다. 지휘자의 포디움도, 지휘봉도 없다.


오케스트라 단원들 사이에 피아노 한 대가 쏙 들어가 있고, 피아노의 돛 같은 뚜껑도 사라진 듯 제 속을 다 드러내고 있다. 무대의 수위가 낮아져 있었다. 눈높이가 맞았다.


지휘자의 앞에는 악보가 아니라 건반이, 건반을 누르지 않는 순간에는 허공을 가르는 손과 합을 맞춰가는 고갯짓이 함께했다. 지휘와 연주가 동시에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었나? 그런 의문이 애초에 떠오르지 않게, 이렇게 진행되기도 합니다, 라고 은근히 카드 한 장을 내 앞에 놓아주는 것이다.


눈앞에 프로그램북 한 장을 들고는 생각했다. 클래식을 좋아해 보기로 한 뒤로, 그러니까 실내악이나 오케스트라 공연을 통해 나에게 바이올린은 재미, 피아노는 위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완전히 깨닫고 난 뒤로는 무엇이 달라졌더라.


바이올린에서는 보다 많은 즐거움과 개성을 기대하게 되었다. 이전과는 살짝 멀어진 피아노 앞에서는? 그 앞에 앉은 사람에게 완전히 열쇠를 맡겨버리는 습관이 생겼다.


몇 년 전만 해도 건반 옆이라면 그토록 몸을 파들파들 떨었으면서 어찌 이리 무던해졌나 싶었지만, 아무래도 건반이 현악기의 현보다는 두껍지 않은가? 더 예민하고 까다롭게 소리 낼 수 있는 악기가 있다는 것을 알아버렸으니, 나도 모르게 시선이 어깨 위쪽으로 향하게 되어버렸다.


그렇다고 건반에 눈이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애초에 외면할 수가 없었다. 피아노 앞의 사람들은 나를 그리 두지 않았다. 어찌나 다들 그리 개성이 강한지. 택하는 곡도, 향하는 길도, 멀어지는 모습도 각양각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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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보였다. 베토벤 1악장은 이상하게 김선욱이라는 연주자 개인이 잘 안 보였다. 그가 특징 없이 연주했다는 것이 아니라, 그가 내려놓는 연주가 너무 편안했다.


복잡한 생각도 안 들고, 어떤 연주자인지 궁금해지지도 않고, 어떤 개성이 있는지 판단해보겠다는 욕심도 들지 않았다. 내가 저 곡을 듣고 있는 게 아니라, 피아노가 노래하는 이 시점에 우연히 내가 근처를 지나게 되었구나 싶었다.


시간이 많이 남았는데 들어보고 가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어 발걸음을 멈추고, 회색 계단 하나에 자리 잡고 앉은 것이겠다.


대단히 기교적이라기보다, 듣는 이를 작게 만들기보다, 딱- 남은 주말 하루를 온전히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의 단단함이 곳곳에 머물고 있었다. 걱정할 거리도, 얼마나 사로잡히게 될 것인가에 대한 기다란 염려도 없었다. 그래서 까만 뒷모습을 보고 또 봤다.


오케스트라의 사운드가 한 덩어리로 맞으면 무대 전체가 상체를 들어 올리는데, 그 무게가 유달리 가볍게 다가왔다. 피아노가 다 지나간 이후에 오케스트라가 혼자 걸을 적에도 빈자리가 느껴지지 않았다. 이때쯤부터였던가. 이 생략된 긴장감이 어디서부터 나타나고 있는지 추적하기 시작했다.


잠이 오는 것도 아니고, 체온이 높았던 것도 아닌데, 왜 자꾸 몸의 힘이 빠지는 걸까? 건반 소리가 땡글거릴 때에도 그랬다. 이렇게 혼자 잘 서 있을 수 있구나.


분명 홀연히 서 있는데 경직되어 꼿꼿해 보이지도 않고, 과장하여 뭘 전달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럴 거면 이곳에 왜 왔나 싶겠지만, 그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애초부터 그곳에 있던 것이었다.


아- 김선욱이라는 피아노는 이렇게 안정감이 있구나. 그렇다면 지휘만 할 때면 어떤 모습일까? 그 장면도 문득 보고 싶어졌다. 연주와 지휘를 동시에 하는 순간에도 이 정도의 평온함이라면, 포디움 위에서는 어떤 눈맞춤을 할까.


가만 무대 안을 들여다보니, 큰 공연장에 있으면서도 작은 규모의 실내악 공연을 보러 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지휘자가 더 낮은 자리에 머문 탓도 있겠지만, 미리 합의한 것 이상으로 서로가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알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니 누구를 설득할 필요도 없었다. 애시당초 음악 안에서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게 이상하기도 하지만.


바흐도 그렇고 브람스도 그렇고, 어떤 특정 작곡가의 곡 안에서 그날의 연주를 너무나 자연스럽게 해내는 사람들을 눈앞에 두고 있으면, 선율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보다도 자꾸 사람이 궁금해진다. 보통 그 궁금증은 연주를 수행하고 있는 사람에게 향하지만, 이날의 화살표는 내게로 되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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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리 어깨가 가볍지? 잠깐의 뜀박질로 차올랐던 조그마한 열기는 어디로 갔더라. 내 앞에 앉은, 망원경으로 뚫어져라 앞을 응시하는 당신은 어디를 보고 있을까?


대각선에 앉은 당신은 서울시향의 이불솜 공격을 이겨내지 못하고 작은 잠에 빠져들었구나. 피아노를 가장 근방에 두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오늘의 연주가 어떻게 들릴까? 내가 이 곡과 작별한 뒤에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앙코르 - 브람스, 인터메조 Op.118, No.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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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이 인터메조를 실연으로 들어보고 싶다고 막연히 바랐는데, 앙코르가 연주되고 있을 적에는 그 바람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왜 이리 듣기 좋을까. 어디선가 들어봤는데. 그 생각만을 반복하다가, 오늘 처음 만난 피아노는 웜톤인가 봐- 하는 문장만 뱅글-뱅글 맴돌았다.


내게는 이 곡이 라벨의 피아노 협주곡 2악장만 같다. 첫인상이 참 좋은 곡들이지 않은가. 모난 구석이 없다. 만나면 만날수록 다른 면이 보이고, 끝이 보일수록 얇은 아쉬움이 발끝에 담긴다.


그렇다고 막 슬프지도 않다. 복슬복슬한 털 슬리퍼 안에 맨발을 쏙 끼워 넣을 때의 기분만큼, 꾹꾹- 언제든 함께면 좋을 것만 같은 포근함이 남기 때문이겠다. 다시 만날 걸 알기에 작별도 처음처럼 해낼 수 있다.

 

 

 

브람스, 교향곡 제2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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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부터 인정하기로 했다. 난 좋아하는 교향곡이 없다. 다른 협주곡이나 실내악 형태에 비해 대단히 좋아하진 않는구나. 그 사실을 인정하니 뭔가 가벼워졌다.


내 주변에는 클래식을 좋아하는 사람보다, 클래식을 고급진 예술이라 생각해 절로 뒤로 물러나는 사람이 대부분인데, 때때로 우연히 만나게 되는 클래식 마니아들에게서 내 세상에선 만나지 못한 교향곡 이야기를 들으면 나도 모르게 멈칫하게 된다. 아직 클래식은 어려운 게 맞나 봐, 하는 생각이 들고 만다.


한편으로는 궁극적으로 내가 이 세계관 속에 빠져들려면 오케스트라의 선율만으로 심장을 빼앗겨야 하는 때가 있어야 하는 건가 생각도 들었다. 그러려면 오랜 시간을 들여야 할 텐데.


그만한 가치가 있는가 싶어 공연 전 프로그램 노트를 찾아보면, 막상 그 유명한 작곡가들이 자신의 곡을 써 내려가는 데에는 대단히 숭고한 이유만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먹고살아야 하니까, 연인을 위해서, 휴가를 갔다가, 잘 보이려고. 에게게? 뭔가 신성하고 창조적인 영감이 머릿속에 번개처럼 박혀서, 어떤 숭고한 이유를 위해 만들어낸 게 아니었어? 의뢰받아서 한 거였어?


이런 걸 보면 나도 모르게 맥이 빠지기도 하지만, 애초에 겁부터 먹을 필요가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굳이 받아들일 필요도 없고, 그들에게 내 받아들임이 필요하지도 않다. 그냥- 각자 할 일을 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들이 브람스를 탁월하게 노래할 동안에 나는 이 곡이 얼마나 압박감을 내려놓은 채 자신의 음악적 역량을 펼쳐내고 있는지 태연하게 지켜봤다. 무리하지도 않았고, 깊은 생각을 하지도 않았다.


현악이 넓게 숨을 들이마시고, 관악이 그 위에 둥근 빛을 얹을 때마다 음악은 조금씩 몸집을 키웠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겁을 주지 않았다. 커다란 덩어리가 되어 다가오면서도, 이쪽을 밀어붙이기보다 제 속도를 알고 움직이는 것 같았다.


그들은 어느 순간 절대 등반할 수 없는 암벽만큼 커다랗게 몸집을 키웠는데, 놀랍도록 위협적이지 않다. 이쪽을 잡아먹지도 않는다. 그동안 지나왔던 길만큼이나 유순하고, 그야말로 자연스럽다.


오늘의 곡들은 정말 이대로 간다.

잠깐, 그게 어떤 느낌이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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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한 물 한 잔 말고, 우유 한 잔.

아메리카노 말고, 낙엽 그려진 카페라떼.


새초롬한 딸기 말고, 바나나 얹은 핫케이크.

맑은 찻물 말고, 빛 한 겹 누그러진 홍차 한 잔.


그 옆에는 보늬밤 두어 개.


그제야 이 공연을 위해 썼던 프리뷰 제목이 떠올랐다. 그래, 케이크 악보집이었다. 올여름엔 보늬밤 케이크를 먹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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