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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ject 당신] 본인을 한 단어로 표현해 보세요 [자기소개]

아직 답하지 못한 질문에 대한 조금 긴 대답

by 박지영 에디터
2026.07.20 19:42

 

 

본인을 한 단어로 표현해 보세요


   

자기소개서 특강을 들었다. 국가에서 쉬었음 청년을 위한 취업 지원 프로그램이었고, 강의실에는 나를 포함해 스무 명 남짓한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강사가 화면에 질문 목록을 띄웠을 때, 나는 오랜만에 시험지를 받아 든 사람처럼 조금 긴장했다. 지원 직무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가장 성취감을 느꼈던 경험을 말씀해 주세요. 실패했던 경험이 있습니까. 본인을 한 단어로 표현해 보세요. 몇 년 만에 다시 마주하는 질문들이었다. 처음 취업을 준비하던 시절에는 이것들이 그저 통과해야 할 관문으로 보였는데, 한 번 일을 하고 그만두고 다시 이 자리에 돌아와 앉으니, 질문들이 다르게 읽혔다. 사실 이것은 꽤 근본적인 질문들이다. 너는 무엇을 해 왔고, 무엇을 잘하고, 어떤 사람이냐는 물음. 다만 답할 수 있는 방식이 정해져 있을 뿐이다.


강사는 요령을 일러 주었다. 결론부터 말할 것. 근거는 구체적인 숫자로 들 것. 답을 만들기 전에 질문의 의도부터 파악할 것. 그리고 무엇보다 긍정적인 느낌을 줄 것. 받아 적으면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 맞는 말이었다. 회사는 나의 인생이 궁금한 것이 아니라 내가 그 자리의 일을 잘할 사람인지가 궁금한 것이고, 자기소개서는 그 궁금증에 답하는 문서다. 요령이 있다는 것은 이 장르에 문법이 있다는 뜻이고, 문법을 익히는 것은 글 쓰는 사람의 기본이기도 하다. 그런데 필기한 노트를 내려다보다가 문득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지금 나를 소개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서른 해 가까이 나로 살아 놓고, 나를 소개하는 일을 남에게 배우고 앉아 있는 것이다.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열심히 받아 적었다. 그 두 마음이 같이 있는 것이 지금의 나인 것 같았다.


쉬는 시간에 강의실을 둘러보았다. 나보다 한참 어려 보이는 사람도 있었고, 한참 위로 보이는 사람도 있었다. 앞자리의 졸업반 학생은 유인물의 질문 목록에 거침없이 답변을 적고 있었고, 건너편에 앉은 사람은 노트북에 무언가를 길게 쓰다가 지우기를 반복했다. 저 사람들에게도 각자의 이십 년, 삼십 년이 있을 것이다. 그 시간이 지금 A4 두 장 분량으로 줄여지는 중이라고 생각하니 기분이 묘했다. 우리는 모두 한 강의실에 모여 앉아 자신의 인생을 요약하고 있었다. 요약에는 반드시 버려지는 문장이 생긴다.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버릴지 고르는 기준을, 우리는 지금 배우는 중이었다.


집에 돌아와 책상 앞에 앉아 과거에 했던 일들을 톺아보기 시작했다. 특강의 숙제이기도 했다. 정말 모든 것을 솔직하게 적기보단 조금 돌려돌려 적으라며 선생님이 당부했다. 대학생을 지나 첫 회사에서 했던 일들을 시간순으로 적어 내려갔다. 대학교 시절 조금 무식하게 열심히 한 동아리와 학생회, 여러 대외 활동, 인턴 생활을 하며 아무도 손대지 않던 자료들을 정리해 공유 문서로 만들었던 일, 처음으로 인수인계 문서라는 것을 만들어 본 일. 적다 보니 목록은 금방 한 페이지를 넘겼고, 나는 그 목록 앞에서 채점자가 되었다. 이건 성과라고 부를 수 있나. 이건 숫자로 표현되나. 이건 주도적으로 일을 추진한 경험에 들어가나. 회사의 눈을 빌려 내 지난 시간을 심사하는 일은 생각보다 이상한 작업이었다. 어떤 일은 분명 힘들고 대단했는데 자기소개서의 언어로는 번역되지 않았고, 어떤 일은 별것 아니었는데 문장으로 만들면 그럴듯해졌다. 번역이 잘되는 경험과 잘 안되는 경험이 따로 있었다. 그리고 그 구분은 그 일이 나에게 중요했는지와는 거의 무관했다.


강사의 말대로라면 질문에는 의도가 있다. 맞다. 모든 질문에는 의도가 있다. 성취 경험을 묻는 것은 성과를 내는 사람인지 보려는 것이고, 실패 경험을 묻는 것은 실패를 다루는 태도를 보려는 것이다. 의도를 알고 나면 답은 한결 쓰기 쉬워진다. 그런데 목록을 들여다보고 있자니 거꾸로 된 질문이 하나 떠올랐다. 그 시절의 나는 무슨 의도로 그 일들을 했었나. 돌아보면 대부분은 의도가 없었다. 그냥 해야 해서 했고, 하다 보니 늘었고, 어떤 날은 버티는 것이 일의 전부였다. 의도 없이 한 일들에 사후적으로 의도를 입히는 것. 어쩌면 자기소개서 쓰기의 절반은 그 작업인지도 모른다. 거짓말이라고까지는 못 하겠다. 다만 과거의 나는 모르던 이야기를, 지금의 내가 과거의 나 대신 지어 주고 있는 것은 분명했다.


그런데 나는 쉬었음 청년이다. 회사를 그만두고 일 년 남짓, 나는 세상의 기준으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 걷고, 밀린 책을 읽고, 꾸준히 글을 썼다. 이것저것 배우러 다녔고 이제야 뭘 해봐야겠다는 의욕들이 막 생겼다. 하지만 자기소개서의 문법 안에서 이 시간은 설명해야 할 공백이고, 면접관이 물으면 방어해야 하는 약점이다. 강사도 말했다. 공백기는 짧게, 배운 점 중심으로, 긍정적으로 정리하라고. 그런데 사실을 말하자면 그 일 년은 내 삶에서 가장 밀도 높은 시간에 가까웠다. 일하는 동안 한 번도 묻지 않았던 것들을 그때 처음 물었다. 나는 왜 그 일을 했나. 무엇이 그렇게 힘들었나. 다시 일한다면 무엇이 달라야 하나. 이 질문들을 붙들고 보낸 시간이 있었기에 지금 다시 취업시장 앞에 설 수 있는 것인데, 정작 그 시간 자체는 이력에서 한 줄로 압축되거나 지워져야 한다. 나를 여기까지 데려온 시간이, 나를 소개하는 자리에서는 변명거리가 된다는 것. 그 뒤틀림이 한동안 마음에 걸렸다.


특강 마지막에 강사가 한 말이 있다. 결국 나의 경험으로 설득한다는 것. 그 말이 며칠째 남아 있다. 맞는 말인데, 나는 그 문장을 조금 다르게 완성하고 싶다. 회사를 설득하는 데 쓰이는 경험은 내 경험의 일부다. 설득에 쓰이지 못하는 경험들도 나는 버릴 생각이 없다. 화장실에서 고르던 숨, 지하철역까지의 침묵, 공백기의 아침 산책 같은 것들. 그것들은 자기소개서에는 못 들어가지만, 자기소개서를 쓰는 사람을 만들었다. 어쩌면 자기소개란 두 겹의 작업인지도 모른다. 한 겹은 회사에 내는 번역본을 만드는 일이고, 다른 한 겹은 번역되지 않는 원문을 내가 잃어버리지 않는 일. 번역본만 남고 원문이 사라지면, 나는 면접장에서 유창하지만 어딘가 텅 빈 사람이 될 것이다. 잘 보이려고 애쓰는 문장과 잘 아는 것을 옮기는 문장은, 읽는 쪽에서도 티가 나기 마련이니 말이다.


그래서 요즘 나는 자기소개서를 두 번 쓴다. 한 번은 회사에 낼 것으로. 두괄식으로, 숫자를 붙여서, 긍정적인 느낌으로. 그리고 한 번은 아무에게도 내지 않을 것으로, 지금 이 글처럼. 제출 버튼을 누르기 전에 나만 아는 원문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해 두는 일이다. 본인을 한 단어로 표현해 보라는 질문에는 아직 답을 정하지 못했다. 면접장에서는 아마 성실이든 꾸준함이든 그럴듯한 단어를 골라 말하게 될 것이다. 다만 그 단어를 말하는 순간에도, 한 단어로 줄여지지 않는 내가 그 뒤에 서 있다는 것을 나는 안다. 자기소개는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해도 늦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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