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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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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자기소개라면 취업 준비를 하면서 백 번도 더 쓰고 고쳐 와 진절머리가 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덥석 또다시 자기소개를 해 보겠다 호기롭게 외침은 아마 보여주고 싶은 좋은 모습만 고르고 골라 써 왔던 지난 글들에 스스로 느꼈던 회의감 때문인 것 같다. 무릇, 나는 스스로 내 잘난 점 세 개를 말하면 꼭 부족한 점 하나는 들릴 듯 말 듯 덧붙여 줘야 마음이 편해지는 이상한 겸손을 가진 사람이기도 했으니까.


얼마 전 마음이 괜스레 답답해 할머니께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고, 요새 취업이 안 된다, 우리 손주들 중에 대체 결혼은 누가 먼저 가는 거냐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 나의 어릴 적 이야기가 나왔다.


“혜인이는 참 어렸을 때부터 똑똑했지. 아주 똑똑하고 샘이 많았어”


그 말을 듣자마자 배시시 웃음이 새어 나왔다. 왠지 숨기고 싶은 모습을 들킨 것 같아 뜨끔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간지러운 부분을 긁개로 확 쓸어버린 것처럼 시원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샘이 많은’ 당사자가 듣기에 너무나 정확하면서도 많은 나의 모습을 포괄하고 있는 말이었다. 맞아 할머니. 나는 참 샘이 많은 애였지. 그 뒤로는 할머니의 간증 아닌 간증이 펼쳐졌다.


‘너는 막 어렸을 때두 숙제가 어려워서 못 하면 울면서도 엄마 붙잡고서 어떻게든 하겠다고 앉아 있던 애잖어’


나도 기억 못 하는 나의 모습을, 할머니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마치 바로 어제 눈물을 뚝뚝 흘리며 앉아 있던 나를 보기라도 한 듯이 생경하게. 덕분에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어리고 샘 많던 나의 모습이 그려지는 것도 같았다. 그리고 그때 내가 어떤 마음이었을지 느낄 수 있었다. 그때와 지금의 나는 그리 달라지지 않았으니까.


나는 참 여러모로 샘이 많았다. 학교 선생님들이 수업을 하며 눈을 맞춰줄 때, 그 관심이 좋아서 관심 없던 과목도, 흔히 중요하다 말하는 ‘국영수’가 아니어도 눈을 반짝거리며 열심히 들었다. 다른 애들보다 공부도 더 잘하고 싶어 했고, 학교에서 내주는 숙제 하나도 허투루 하고 싶지 않아 했다. 아마 그때 수학 문제를 풀 때 울면서 엄마를 붙잡았던 이유도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리 숙제라고 해도 그냥 답지를 베끼고 자도 될 텐데. 이해하지 못하고 푸는 건 아무런 의미도 없다고 고집을 부렸던 거겠지. 이미 잘 시간은 한참 넘기고, 눈꺼풀은 감기는데 숙제를 마무리하지 못한 채로 학교에 가면 나만 못 해왔다는 창피를 당하고 싶지 않았던 거겠지.


그렇게 제 고집에 못 이겨 울고 짜증을 내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고 나니, ‘그 샘 많던 애가 정말 고대로 컸구나’ 싶었다. 나는 샘 많은 어른으로 컸다. 지금도 다른 사람들에게 언제나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고, 뭘 하든. 뭐 하나 허투루 하고 싶지 않아 스스로를 괴롭힌다. 그런데 누군가 이런 나의 모습을 정확히 일러주고 나니, 왠지 씁쓸한 마음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샘 많은 나 때문에 지새운 밤이 며칠이나 되며, 또 운 날은 얼마나 많은지.


지금 와 생각해 보면. 그렇게 못하면 큰일 날 것 같은 숙제는 사실 별 거 아니었는데. 애초에 조금 덜 완벽하다고, 다 못 해간다고 큰일 나는 ‘숙제’라는 건 없는 건데. 비단 숙제뿐만이 아니라 내가 샘내던 모든 것들이 다 그렇다. 사실 그것들도 인생에서 기한이 정해진 작은 숙제들에 불과했던 건 아닐까 싶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김에 다시 한번 다른 곳에 샘을 내보기로 한다. 이제는 나를 ‘힘들게 하는’ 욕심은 차차 줄여 가기로. 태생적으로 샘이 많지만, 또 나라는 사람을 이보다도 더 잘 설명할 수 있는 특성은 없지만, 훗날의 내가 나를 돌아봤을 때 짠하지 않을 만큼만 욕심내기로.


그래서 오늘의 자기소개는 이렇게 마무리하고 싶다.

 

저는 샘이 참 많은 사람입니다.

그 덕에 저답게도 살았습니다.

근데 이제는 좀 줄여보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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