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나의 취준일지 1편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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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을 한 달 남겨두고 올해를 돌아본다.
사실 올해 나의 가장 큰 목표는 ‘취업’이었다. 22년도 초에 첫 인턴으로 시작했던 취업준비 기간으로부터 3년. 올해에는 기필코 취업에 성공하리라는 목표가 있었다. 어쩌면 이만큼이나 고생했으니 이제 될 때도 되었다! 하는 근거 없는 믿음일지도.
목표는 아직 이루지 못했지만 이 살얼음판 같은 취업난에서도 얼음낚시를 시도하는 유쾌한 조난자로서, 그리고 뉴스에 심심찮게 등장하는 ‘청년실업’의 당사자로서 자체 심층 인터뷰를 진행해보고자 한다.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또 다른 누군가에게 이 글이 그가 간절히 기다리는 구조선이 될 순 없겠지만, 유리병에 담긴 조난 편지처럼 안부를 묻는 노크로 닿길 바란다.
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
98년생 호랑이띠. 사실 유독 나와 같은 세대에 태어난 친구들에게 취업이 어려운 이유는, 유독 직업에 더 큰 의미 부여를 하기 때문일 것이다. 돈을 버는 것을 넘어 직업을 통해 재능을 발휘하고 충분한 보람을 느끼고 싶어 한다. 그런데 그 완벽한 직업을 찾기 위한 여정의 가장 큰 걸림돌은 ‘나는 무엇을 잘하며, 어떨 때 가장 보람을 느끼는지’, 나에 대한 억울한 무지 때문이다.
억울한 무지라 함은, 내가 취업준비를 하면서 가장 많이 느낀 일종의 억울함과 답답함을 표현한 심정이다. 삶의 주인으로서 2n년을 살아왔는데 내가 나에 대해 이토록 모르다니. 지난 시간 끊임없이 무언갈 공부하고 시험받아왔는데 정작 중요한 걸 놓치다니. ‘억울하다’.
그렇게 ‘근본적인’ 회의감에 시달리면서 취업의 기본 단계인 지원서 제출부터 망설이게 된다. 하고 싶은 일을 정해야 전력투구 할 텐데, 그걸 잘 모르겠다. 어쩌다 정하려 해도 누군가 말을 얹기만 하면 자꾸 불안해서 뒤돌아보게 된다. 옆집 누구는 공무원 준비를 한다더라, 친구 중 누구는 무슨 시험을 준비한다더라 하는 소식을 건너 건너 들으면 ‘그럼 나는 뭘 하면 좋을까’ 하는 불안함이 가중되는 건 덤이다.
이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해 나는 참 여러 방법을 시도했다. 고등학교 선생님들이 적어주신 생활기록부를 완독 하고, 워크넷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직업심리검사도 여러 차례 받았다. 그리고 일단 나의 적성인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내가 대학에서 그동안 심혈을 기울였던 동아리 활동 기록이 가장 유용하게 쓰일 수 있을 것 같은 인턴십에 지원했다.
3번의 인턴십
그렇게 ‘무언가’를 찾기 위한 여정이 시작되었다. 그동안 나는 총 3번의 인턴으로 근무하게 되었다. 회사생활과 출근의 고단함을 느끼게 해 줬던 10개월간의 첫 인턴십, 정규직에 도전하기엔 자신도, 경력도 부족하다 생각하여 회피하듯 지원했던 6개월간의 두 번째 인턴십. 관심 분야의 경험, 생계유지, 불안함 해소 등 여러 이유로 정말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지원하였던 3개월의 마지막 인턴십까지.
도합 1년 7개월간 나는 세상에서 가장 긴 인턴십을 체험하였고, 그토록 내가 찾던 보석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내가 일을 하며 중요시하는 가치와 나의 장점, 그리고 반대로 기피하는 일과 다양한 상황, 단점까지도. 다양한 사람들과 업무를 만나며 나의 모양에 대해 점차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인턴 경험이 있으면 스펙 면에서 정규 취업은 훨씬 더 빨리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히려 그 반대였다. 인턴십으로 그토록 원하던 ‘나’에 대한 기밀 정보들을 많이 얻었지만 하루 8시간을 꼬박, 회사에 할애하는 게 보통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적지 않은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면 내게 가장 가치 있는 일을 맡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첫 번째, 두 번째 인턴십이 끝난 후에도 신입 정규직 채용에는 여전히 지원을 망설였다.
그러다 두 번째 인턴십 이후 명확한 직무와 지원 방향을 정하게 되었다. 드디어 내게도 전력으로 달릴 수 있는 트랙이 생긴 기분이었다.
말로만 듣던 취업시장에 뛰어들다
직무 방향을 정하고 나서는 정규직 채용에 지원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공고가 가뭄에 콩 나듯 하는 문제가 있었다. 오죽하면 신입이 아닌 경력직 공고가 나도 지원했다. ‘1년 계약직 근무 후 평가에 따라 정규직 전환’ 같은 굉장히 야속한 조건에도 그저 내가 원하는 직무라면 지원을 망설이지 않았다.
그렇게 어렵사리 지원서를 제출했지만, 눈에 띄는 성과는 없었다. 지원서를 넣기 시작하면서 부푼 마음으로 가졌던 혹여나 하는 기대는 한 통의 이메일로 와르르 무너져 내리기 일쑤였다.
어쩌다 서류합격 연락을 받아도 40분이라는 제한시간 안에 60문제를 풀어야 하는 적성시험과, 보여주기용 나를 만들어야 했던 AI 역량검사를 마주할 때면 막막함이 밀려왔다. 그렇게 트랙에서 마주하기도 힘든, 몇 없는 장애물조차 시원하게 뛰어넘지 못하는 날에는 배가 된 초조함과 불안을 안고 잠에 들었다.
불안한 상태로 잠에 들 때면 악몽을 꾸거나 땀에 젖어 깨기를 자주 했다. 분명 잠에 들고 다음날 일어나도 전날의 불안함은 리셋되지 않고 그대로 남아있는 기분이었다. 매일 8시에 일어나 6시까지 출근하는 다른 사람들처럼 끊임없이 무언가를 하며 하루를 의미 있게 보내야만 한다는 강박도 생겼다. 주말과 휴일은 나에게 사치라고 느껴 평일과 주말 관계없이 늘 마음의 여유란 없었다.
친구들과 취업의 고단함을 나누는 일은 일상이 되었다. 수업이 끝나면 새로 생긴 백반집에 가보자며, 이번 시험을 망쳤으니 인생이 망했다며 진담 반 장난 반으로 웃고 떠들던 친구들과 전에 없던 우울감과 실패의 경험담을 나누게 된 게 슬프게 느껴졌다. 그러면서도 수중에 여유가 없어 서로 만나 이야기하자고, 오랜만에 맛있는 거라도 먹으면서 기분전환을 하자는 약속도 선뜻 잡지 못했다.
아직 집도 없지만 마련해주고픈 집들이 선물. 넉넉히 드려보고 싶은 할머니 용돈. 추운 겨울날, 성냥으로 찰나의 환영을 만들어 위로받는 성냥팔이 소녀처럼 우리는 그렇게 수많은 미래의 약속과 바람이라는 성냥을 태우면서 함께 이 위기를 견뎠다.
말로만 듣던 취업시장에 뛰어들자 생각보다 더 고단한 현실이 있었다. 이렇게 계속 달리기만 하다가는 금방 포기할 것 같아 다른 해결책이 필요하다 느꼈다.
취업일지 1편은 어쩌면 ‘절망 편’이라고도 할 수 있는 어두운 이야기가 많았다. 다음 이야기는 지금까지 업데이트 되고 있는, 취업난에서도 행복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변화한 과정이 담긴 ‘희망 편’이다.
이번 글을 쓰면서 힘들었던 나날을 생생하게 복기하는 계기가 되었다. 한 가지 기쁜 점은 이제 그것조차 올해가 지나고 나면 애써 기억해야 하는 조금씩 더 먼 과거의 일이 된다는 점일 것이다. 아직 절망 편의 한복판에서 고군분투하는 다른 누군가 있다면 말해주고 싶다. 그게 지금 당신이 겪는 고난의 마지막 페이지일 거라고. 지금은 근거없는 긍정과 희망이 꼭 필요할 때라고.
[채혜인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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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zrrew
- 2024.12.04 15:0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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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곧 취업 시장으로 뛰어들어야 하는 입장으로서 너무 공감되는 글입니다! 같이 희망으로 길을 밝혀보아요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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