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섯 이야기만으로 볼로냐 라가치상 논픽션 부문 대상을 받은 책이 있다. 65개국 3,355종이 경합한 자리였다. <미코, 버섯의 모든 것>이다.
<미코, 버섯의 모든 것>은 체코의 독립 출판사에서 발행한 얇은 그림책이다. 식물학자이자 저널리스트인 이르지 드보르자크가 글을 쓰고, 슬로바키아 일러스트레이터 다니엘라 올레이니코바가 그림을 그렸다. 14가지 특별한 색깔로 인쇄되었으며, 2024년 볼로냐 라가치상 논픽션 부문 대상을 비롯해 여러 국제적인 상을 받았다. 한국어판은 2025년 12월 이루리북스에서 출간되었다.
이 책은 독특한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버섯들이 직접 만든 월간 잡지 10권을 한 권으로 묶었다는 설정이다. 편집장은 버섯이다. 사람이 버섯을 관찰하고 설명하는 대신, 버섯이 직접 자기 이야기를 한다. 독립 선언문을 쓰고, 시를 짓고, 인터뷰를 하고, 미인대회를 연다. 사람은 그저 이 잡지를 읽는 독자일 뿐이다.

# 인간의 분류가 가린 것들
책은 버섯의 독립 선언으로 시작한다. 1969년까지 버섯은 식물로 분류되었다. 과학자 로버트 휘태커가 버섯을 식물에서 분리해 독립된 생물로 인정한 사건을 선언문 형식으로 극적으로 표현한다. 이 선언은 단순히 버섯이 무엇인지만 말하지 않는다. 분류는 세계를 정해진 틀에 넣는 행위다. 식물과 동물로 나누면 세계가 정리되지만, 동시에 그 틀에 맞지 않는 것들은 보이지 않게 된다. 버섯은 바로 그 틀을 거부하는 생물이다.
이제 질문이 "버섯이 무엇인가"에서 "인간의 분류가 무엇을 숨겼는가"로 바뀐다. 책은 그 답을 관계에서 찾는다. 버섯은 혼자 존재하지 않는다. 균근은 나무 뿌리와 연결되어 영양분을 주고받는다. 효모는 빵을 부풀린다. 곰팡이는 항생제를 만든다. 중요한 것은 버섯이 "무엇"인가가 아니라 "무엇을 하는가"다. 균근이 나무를 연결할 때, 숯만가닥버섯이 산불 후 잿더미에서 자라 숲을 되살릴 때, 버섯은 고정된 존재가 아니라 연결을 만드는 역할을 한다.
존재를 이해하는 방법은 그것이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보는 것이다. 이 책이 보여주는 버섯의 관계망도 마찬가지다. 버섯과 나무는 서로 얽혀 있고, 그 얽힘 속에서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을 함께 해낸다. 관계는 부가적인 특징이 아니라 존재의 핵심이다.
그렇다면 지식은 어떤 형태여야 할까. 이 책은 형식으로 답한다. 10호로 구성된 잡지 형식은 지식을 배열하는 방식을 바꾼다. 독립선언문, 인터뷰, 미인대회, 신화, 실험, 시—이들은 하나의 결론을 향하지 않는다. 처음부터 끝까지 순서대로 읽을 필요가 없다. 각 코너는 독립적이면서도 어느 코너에서든 다른 코너로 건너뛸 수 있다. 지식이 중심 없이 퍼져나간다. 하나의 줄기에서 가지가 뻗는 나무 구조가 아니라 어디서든 연결할 수 있는 그물망 구조다.
이때, 가장 핵심적인 장치가 있다. 버섯이 직접 말한다는 것. 버섯은 편집장이 되고, 시인이 되고, 기자가 된다. 선언문을 쓰고, 인터뷰를 하고, 미인대회를 심사한다. 인간의 관찰자 시점은 없다. 독자는 버섯의 세계 안으로 들어간다.
이 책의 버섯은 인간의 방식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자기 세계의 논리로 이야기한다. 독자가 경험하는 것은 버섯에 '대한' 정보가 아니라 버섯의 세계를 '직접' 느끼는 것이다. 인간이 버섯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가 흐려지는 경험을 한다. 독서는 정보를 얻는 것이 아니라 인식이 바뀌는 것이다. 버섯을 '아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나누던 자신의 시선이 흔들리는 것. 이 책이 일으키는 것은 지식의 축적이 아니라 감각의 변화다.
여기까지가 이 책의 작동 방식이다. 분류를 깨면 본질 대신 관계가 보인다. 관계 중심의 존재를 담으려면 지식의 형태도 달라져야 한다. 바뀐 형태 안에서 독자는 관찰자가 아니라 참여자가 되며, 세계를 나누던 방식 자체가 흔들리는 경험을 한다.
# 설명하는 자에서 응답하는 자로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틀을 깬 뒤에도 질문은 남는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답은 '버섯'을 더 깊이 들여다보는 데 있다.
이 책에서 버섯은 아무렇게나 말하지 않는다. 8억 년을 살아온 존재로서 말한다. 1969년까지 식물로 잘못 분류되었던 존재로서 말한다. 나무 뿌리와 연결되고, 곤충과 포자를 나누고, 인간의 빵과 술과 약에 이미 깊이 관여하는 존재로서 말한다. 버섯의 말에는 구체적인 자리가 있다. 특정한 땅, 특정한 관계, 특정한 역사. 숲 전체를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선이 아니라, 균사체로 연결된 네트워크 속 어딘가에 실제로 서 있는 시선이다.
자기 자리를 분명히 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가 있다. 경계를 흐리고 모든 것을 연결로 이해하는 방식은 강력하지만, 위험도 있다. "어디서든 말할 수 있다"는 식으로 흐르면, 그것도 또 다른 일방적 시각이 된다. 겉으로는 중립인 척하면서 실제로는 자기 위치를 숨기는 것이다. 제한적이고 부분적인 자리에서 말하는 것이 오히려 더 정직하다.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지를 숨기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은 자신이 어떤 관계 속에 있는지를 드러내는 일이기도 하다. 관계 속에 있다는 것은 단순한 사실이 아니라 책임이다. 인간은 이미 오래전부터 균류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왔다. 이것은 새로 발견한 게 아니라 계속 있었던 일이다. 어떤 존재도 혼자서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스스로 완전한 독립적 개체라는 생각은 착각이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은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제대로 아는 것의 기본이다. "관계가 존재의 조건"이라는 사실을 보았다면, 이 책은 그 사실을 행동의 요청으로 바꾼다.
결국 이 책이 전하는 메시지는 단순하다. 인간이 아닌 다른 생물들도 존중하고 배려하자는 것. 모든 것이 아름답게 연결되어 있다는 그림 속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멸종과 착취와 고통은 흐릿하게 사라진다. 이 책은 그런 회피를 허락하지 않는다. '존중하라'는 요청은 기술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낙관도 아니고, 이미 늦었다는 절망도 아니다. 지금 여기, 이미 망가진 세계 안에서 이미 얽혀 있는 관계에 관심을 기울이라는 것이다. 망가진 것을 외면하지 말고, 망가진 것 안에 함께 머물면서 그 안에서 함께 살아갈 방법을 찾으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