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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둘 다 나야 [영화]

몇 번째 성장기를 지나고 있는 모든 아기 거미들에게

by 정현승 에디터
2026.08.07 14:37

*

이 글은

영화 <스파이더맨: 브랜드 뉴 데이>의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슈퍼히어로의 이야기에 열광하게 된 건 어떤 이유에서 시작되었을까. 시원시원하고 거대한 규모의 액션 씬이나, 돌아보면 헉 소리가 날 정도의 꼼꼼한 스토리라인 설정도 큰 몫을 했겠지만, 아무래도 이건 결국 ‘지구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한 이야기이기 때문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인간’이라는 라벨링과 구분이 무색해질 만큼 인외의 존재가 당연시된 게 MCU*뿐만 아니라 요즘의 SF 세계관의 기본이긴 하지만, 그 모든 이야기의 시작과 끝을 단순하게 생각해 보면 그렇단 말이다. 히어로 세계관 속 모든 일은 왜 일어나는가? 아주 납작하게 보자면 이것이다. 사·람·을·살·리·기·위·해·서.


*Marble Cinematic Universe의 준말.


톰 홀랜드 주연의 스파이더맨이 등장하는, MCU의 네 번째 스파이더맨 영화 <스파이더맨: 브랜드 뉴 데이>가 개봉했다. 더군다나 스파이더맨은 ‘친절한 이웃’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을 정도로 시민들의 삶 속 -대게 작중에서는 뉴욕으로 그려진다- 가까운 곳에서 도움을 주는 히어로다. 사람들의 삶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히어로, 그런 히어로를 마음 깊이 응원하는 사람들. 어쩌면 가장 이상적인 관계일지도 모르겠다.

 

<스파이더맨: 브랜드 뉴 데이>는 여기서 시작되는 스파이더맨, 즉 피터 파커 본인의 심적 갈등을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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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이야기인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에서 연인 MJ와 가장 친한 친구 네드를 포함한 모든 인류의 기억 속에서 잊히게 된 피터 파커는 그 이후 ‘스파이더맨으로서의 자신’에만 집중한 4년을 보냈다. 뉴욕의 크고 작은 사건을 해결하고, 큰엄마 메이의 묘지에 찾아가고, 네드의 인스타그램을 찾아보며 자신 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 친구들의 삶을 휴대폰 속으로만 바라보는 것만을 쳇바퀴처럼 반복할 뿐이다.


한편, 데미지 컨트롤(DODC)은 영적 빙의 능력을 사용하는 새로운 빌런과 마주하게 된다. DODC가 숨겨 놓은 것을 찾고 있다고 말하는 빌런 진 그레이는 사실 DODC가 위험 관리를 목적으로 납치해 간, 같은 능력을 갖춘 언니를 찾고 있다. 그녀는 사람들에게 빙의해 텔레파시를 쓰듯 움직일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목표로 하는 사람의 기억까지 헤집을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


우연히 MJ의 새로운 남자 친구를 보게 된 피터는 그동안의 생활이 주었던 고립감과 외로움, 그리고 정신적 충격에 휩싸여 체내의 거미 수치가 올라가 더 이상 웹슈터를 사용하지 않고도 거미줄을 사용하게 된다. 극한의 상황에 몰리게 되면 이성을 잃고 공격하게 되는 것도 덤이다. 이전만큼 능숙하고 자유로운 능력 사용을 못 하는 데에 반해, 이러한 신체의 변화가 말해주는 건 거미의 생애주기 속 탈피 과정으로 비유되는 피터의 ‘성장기’다. 거미, 즉 히어로라는 익명성으로부터 괴로워하는 한 개인을 주목한 셈이다. 

 

영화의 클라이맥스라고 볼 수 있는, 피터와 진이 대립하는 장면에서 결국 피터는 결론을 내린다. 스파이더맨과 피터 파커, 두 사람은 “둘 다 나”라고. DODC의 실험에 의해 언니를 잃었다는 걸 알게 되고, 배신감과 DODC의 잔혹함에 분노한 진은 조금 특별한 사람은 결국 “다른” 사람이 되고, 통제해야 할 위험이 되고 만다고 말한다. 하지만 피터가 진을 설득하는 과정에서 피터의 기억을 들여다보게 된 진은, 큰 엄마 메이가 피터에게 남겼던 말을 듣게 된다.

 

 

넌 정말 특별하고 아름다운 사람이야. 그리고 너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네가 특별해서 사랑하는 게 아냐. 그저 ‘너’라는 존재 자체를 사랑하는 거지. 세상에 덩그러니 혼자 남겨진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도 그 사실만큼은 꼭 기억해 줘. 그게 네가 가져야 할 가장 깊은 책임감이야. 앞으로 아무리 강해지더라도 그 마음만은 절대 잊으면 안 돼.

 

 

사실 마음속 아픔을 견뎌낼 수 있게 될 만큼의 힘을 기른 사람이 다시 앞으로 나아가게 되는 이야기는 꽤 뻔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마블 유니버스의 <스파이더맨: 브랜드 뉴 데이>가 보여준 특별한(special) 두 사람의 이야기는 또 다른 평범한 ‘사람들’을 떠올리게 했다. 세상에서 가장 많고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다고 볼 수 있는 거대한 샐러드 볼의 뉴욕에서, 나의 특별함이 다른 사람을 해칠 수도 있다고 믿는 사람들 사이에서 겪는 고통. 그리고 한 쪽의 정체성에 짓눌려 정작 나로서의 삶을 포기해야 했던 사람의 이야기. 그건 사실 히어로만 겪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니 <스파이더맨: 브랜드 뉴 데이>의 사람들 이야기는 특별하다.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움직이는 히어로의 영화는 사실 사람들을 담고 있다. 내가 나인 게 손가락질 받아야 하는 이유가 됐던 사람들의 서사를 히어로에 옮겨왔을 뿐이다. 사실 사람들이 원하는 건 ‘납작하다’고 말할 수 있는 일상을 지키고 싶을 뿐인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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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가 친구들과의 추억을, 진이 언니와의 사랑을 되찾고 싶어 했듯 그들은 내가 나이기 때문에 잃어버렸던 것들을 찾고 싶었다. 과거는 과거이기에 돌아올 수 없다는 걸 알지만,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빼앗겨버린 것들에 대한 분노와 후회, 설움이 캐릭터에 담겨있다. 그런 게 어디 영화에만 있을까.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배제되는 삶들이 있다. 영화는 메이의 입을 빌려 피터에게, 진에게, 그리고 그 모두에게 말한다. 너를 사랑하는 것은 네가 “특별”하기 때문이 아닌, 그저 너이기 때문이라고. 그건 아마 너의 특별함이 너의 가장 큰 특징이 되질 않길 바란다는 말이 아니었을까.


이 영화가 성장기를 겪는 수많은 거미들-사람들-에게 이렇게 닿을 수 있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겠다. 메이의 말이 피터에게 그러하고 진에게 그러했듯, 빼앗긴 것을 돌려줄 수 있는 아주 큰 제도와 역할을 대신해 줄 수는 없을 테다. 하지만 제대로 뿜어져 나오지 못한 거미줄을, 무언가를 숨겨야 할지 무언가를 내세워야 할지 조차도 모르겠는 시간을 통과하는 우리에겐 꼭 필요한 한 마디 정도의 말이 되어줄 영화가 아닐까. 그 모든 나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용기를 심어주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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