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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언제부터인가 슴슴한 게 그렇게도 좋아졌다. 가끔은 도파민에 절어진 채로 살기도 하고, 맵고 짠 거나 달콤한 것들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간이 세지 않아 심심하게 느껴지는 것들은 건강에도 좋아서 오래오래 옆에 끼고 살 수 있을 것만 같으니까. 콘텐츠를 접할 때도 다르지 않다. 기승전결이 몰아치는 작품을 맨몸으로 감당하며 흠뻑 좋아해 버린 다음에, 마음속 명예의 전당에 올려다 두고 힐끔힐끔 훔쳐보는 것도 좋지만. 재밌나? 아닌가?를 백 번이고 반복하며 심심한 매력을 선보이다가 한 방의 킥을 꽂아버리는 작품들에 마음을 줘버리게 된다.


그런 점에서는 일본의 배우이자 MC 겸 드라마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바카리즈무가 각본을 맡은 최신작 두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피할 수 없다. <브러쉬 업 라이프>(2023)와 <핫스팟: 우주인 출몰 주의!>(2025)로 이어지는 바카리즈무의 소프트 SF 시리즈는 우리 삶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흔한 일상의 소재에, 한 방울의 SF 소재가 가미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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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브러쉬 업 라이프>(2023), <핫스팟>(2025).

 

 

다음 생에 인간으로 태어나기 위해 덕을 쌓는 환생을 거듭하는 주인공(브러쉬 업 라이프)이 등장하고, 함께 근무하고 있는 직장 동료가 사실은 외계인이었다는 설정(핫스팟)은 언뜻 보면 커다란 서사의 첫 장처럼 웅장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바카리즈무와 그의 연출진이 그려내는 이야기는 그런 거대함과는 사뭇 멀리 떨어져 있다. 아주 일상적이고 흔한 것에서 서사가 시작된다.


두 작품이 SF 소재(환생과 비-지구인의 존재)를 일상에서 다루는 태도는, 대체로 ‘아무렇지 않다.’ 드라마는 그들이 어떻게 다르고 특이한지를 비추지 않고, 누구에게나 있을 법해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일상의 장면들을 조명하는 데에 집중한다. 환생을 거듭하며 그제야 인생의 여러가지를 깨달아가는 <브러쉬 업 라이프>의 콘도도, 직장 선배인 타카하시가 외계인임을 알고도 뻔뻔하다고 할 수 있을 만큼 무심한 태도로 일상을 지속하는 <핫스팟> 속 엔도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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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작품에서 무게를 두고 있는 건 주인공이 환생을 거듭하는 장면이나 직장 선배가 외계인인 것에 집중한 연출이 아닌, 주인공들이 가진 ‘우정’이다. <브러쉬 업 라이프> 엔도의 친구들인 나치, 미퐁 그리고 마리링의 사소하지만 수다스러운 우정은, <핫스팟> 속 콘도와 미나푸, 핫치 사이의 우정으로 이어진다. 거대한 SF물을 기대하고 드라마를 본 시청자들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두 드라마 속에서 중요한 건 이 별거 없는 우정의 연속성이다.


 

 

I LOVE YOU가 세상을 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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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통하는 사람이 둘만 있어도 성공한 삶이라고 말하는 이 각박하고 슬픈 현실 세계에서, 바카리즈무가 드라마를 통해 그려내는 우정의 모습은 무척이나 평범하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질투가 날 정도로 완벽하다. 쓸모없다 싶을 만큼 별거 아닌 것들에 대해 떠드느라 시간을 보내고, 굳이 짚어가며 말하지 않아도 똑같은 것을 생각해 낸다. 그건 정말 사소하지만, 동시에 보기보다 쉬운 일은 아니니까.


두 드라마가 굴러가게 만드는 중심의 힘도 마찬가지다. 몇 번의 환생을 거듭하는 인간과, 인간보다 인간적인 외계인을 움직이게 만드는 건 다름 아닌 ‘우리’가 ‘우리’이길 소망하는 주인공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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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러쉬 업 라이프>의 콘도는 몇 번의 환생을 거듭한 끝에,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자 해야 하는 일이 우정을 지키는 일이라는 걸 깨닫는다. <핫스팟> 속 외게인 타카하시는 무심할 만큼 평범하게 자신을 대해주는 엔도 무리를 통해, 살아가는 내내 갖고 있던 정체성에 관한 고독감을 극복한다. 두 작품이 후반부로 달려갈수록 여러 복선이 회수되고 이야기가 탄탄해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결말부가 인물들에게 내어주는 건 다름 아닌 일상으로의 귀환이다. 그 일상은 마냥 아름답지 않으며 사소하고 거슬리는 것 투성이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삶을 지탱하게 해주는 소소한 우정을 지켜냈으니까.

 

 


바카리즈무가 그리는 ‘동네’의 로컬리티


 

<브러쉬 업 라이프>와 <핫스팟>에 연달아 등장하며 그 진가가 빛나는 것은 주인공들의 고향인 일본 지방 지역의 로컬리티다. 두 작품 속 우정은 등장인물들이 어렸을 때부터 함께 학창 시절을 보내고 작은 동네에 함께 살아가며 키워간 것이기에 그들의 삶과 우정 곳곳에 그 로컬리티가 스며들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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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러쉬 업 라이프>의 배경이 되는 가상의 도시 키타쿠마가야시도, <핫스팟> 속 후지산이 보이는 동네인 후지아사다시도 모두 실제 일본의 지방 도시를 모티브로 한다. 두 드라마의 주인공은 본인이 나고 자란 고향과 그곳에서 만들어진 인연에 애착을 가진다. 모든 일을 끝마치고 결국 1회차 삶과 같이 키타쿠마가야시의 삶을 택한 콘도와, 불평불만이 가득하지만 직장인 레이크 호텔을 진심으로 아끼며 그걸 지키고자 하는 엔도가 그렇다. 그들에게 고향은 도시 그 이상이다. 친구들과의 우정, 그들과 자주 가는 카페나 식당, 직장과 동료들, 딸을 키우는 일상적인 공간이 모두 합쳐진 사랑스러운 복합체다.


두 주인공이 보여주는 애정의 모습은 다를지 몰라도, 분명한 사실은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과 ‘고향을 지키고 싶은 마음’은 비슷한 모양의 사랑이라는 것이다. 일본 사회, 나아가 우리의 사회가 그렇듯,  지방이 아닌 수도를 향해 각기 각층의 사람들이 고군분투하는 시대다. 그런 시대의 사람들이 놓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주듯, 고향에서 머무르며 그곳을 지키고자 하는 인물들의 등장이라니. 번지르르하게 예쁜 모습 하나 없지만, 영겁의 시간에 걸쳐 내가 사랑하게 된 것들이 차곡차곡 쌓여있는 동네를 지키고자 하는 인물들은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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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이 동네에 뿌리내린 우정을 지키기 위해, 바카리즈무의 주인공들은 전쟁 같은 일상을 하루하루 '쳐낸다.' 실소가 나올 만큼 어이없는 날도, 기분이 나빠져 인상을 쓰게 될 날도 늘 있지만. 그것조차 일상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바카리즈무는 그 지점을 예리하게 관찰해 아주 세심한 완급조절을 통해 이야기를 그려냈다.


순간의 선택이 우리의 삶을 아주 다르게 만들 수 있다는 것. 세상에서 쉬이 속단하고 취급할 수 있는 정체성은 절대 없다는 것. 그걸 우리가 모르고 있던 건 결코 아닐테다. 마음 속에 늘 들어와 있지만, 짠맛신맛단맛처럼 톡 쏘는 명제가 아니기에 마음 어딘가에 담아두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 심심하고 사소한 명제가, 우리의 별거 아닌 일상을 지탱하는 중요한 가치가 되어준다는 것을 말이다.

 

 

사진 출처: NTV 공식 웹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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