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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바야흐로 숏폼의 시대다. 1분 안에 자신의 일상을 축약하는 사람, 자극적인 콘텐츠를 퍼뜨리는 데에 30초도 걸리지 않는 사람, 궁금함을 자극하는 실마리를 제공하는 사람도 모두 유튜브 쇼츠나 인스타그램의 릴스, 틱톡과 같은 숏폼 플랫폼에 모여있다. 엄지로 화면을 아래위로 슥슥 넘기는 모습은 낯설지 않은 우리네 일상의 것이다.

   

그런 콘텐츠가 홍수처럼 밀려오는 시대에 혜성과 같이 등장한 이들이 있다. 자극적인 콘텐츠 요소는 물론이거니와, 인위적인 리액션과 대본에 따른 진행, 술잔을 앞에 두고 벌이는 허심탄회하고 아슬아슬한 이야기 따윈 없다. 그저 1시간에 육박하는 긴 시간 내내 카메라 앞에 앉아 토크를 나눈다. 아침은 먹는 편인지, 집에서 요리는 하는 편인지 따위의 일상적인 것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그들을 보고 있자면 주말 아침 브런치 가게에 앉아 옆 테이블의 대화를 훔쳐 듣는 것만 같다. 바로 유재석을 호스트-‘계주’라고 칭한다-로 둔 웹 예능 <핑계고>에 대한 설명이다.

 

 

핑계고 시상식.jpg

 

 

안테나 기획사의 자회사인 안테나 플러스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인 '뜬뜬'에서 제작하는 <핑계고>는 호스트 유재석이 여러 가지 이유를 ‘핑계 삼아’ 한 자리에 모여 수다를 떠는 토크쇼형 웹 예능이다. 게스트인 출연자는 시기와 때에 맞게 섭외한 이들이 다양하게 모인다. 호스트와 가까운 친분을 가진 여러 예능인과 연예인, 혹은 홍보나 토크가 필요한 이들이 가리지 않고 출연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펼쳐준다.


1시간 분량으로, 게다가 그 긴 시간 내내 큰 움직임 없이 수다 떨기만을 진행하는 영상이 주 에피소드임에도 매번 3~4백만 조회수는 빠지지 않고 기록하는 등 화려한 성과를 보이고 있다. 채널 뜬뜬의 구독자이자 <핑계고>를 시청하는 애청자를 뜻하는 ‘계원’들은 댓글을 통해 입을 모아 말한다. “이런 콘텐츠를 원했다”고 말이다.

 

 

 

‘각자 할 일을 할 수 있는’ 콘텐츠


 

‘각할모’라는 신조어가 있다. ‘각자 할 일 하는 모임’의 줄임말로, 온오프라인 상에서 모여 각자의 할 일을 하며 함께 시간을 보내는 시간을 칭하는 말이다. 홀로 조용한 공간에 앉아 집중하는 것도 좋지만, 이들이 순간을 공유하며 약간의 소음과 시선을 감내하는 이유는 ‘함께 한다는 감각’이 집중력에 기여하기 때문이다. 이 ‘각할모’ 대상은 단순히 친구나 가까운 사람에게 국한되지 않는다. 사람들은 틀어두고 할 일 하기 좋은 콘텐츠를 찾아 나선다.


이때 <핑계고>는 좋은 ‘할 일 메이트’가 되어준다. 때로는 ‘밥친구’가 되었다가, 집안일이나 해야 하는 일을 할 때 틀어두기 좋은 적당한 소음과 이야깃거리가 되어주기도 한다. 한정된 공간 안에서 카메라 앞에 앉아 이것저것 수다를 떤다는 굴곡 없는 플롯이 만들어낸 결과물인 셈이다. 보이는 라디오를 한편에 틀어둔 것처럼, 잠시 방치했다가 집중하기를 반복하며 오래 곁에 둘 수 있는 콘텐츠의 특징이이 충성적인 구독자를 만들어내었다.

 

호스트인 유재석이 30년가량을 갈고닦은 실력을 발휘하고, 재빠른 트렌드 파악과 꼼꼼한 센스가 빛나는 제작팀의 플레이가 더해진다. 그 덕에 <핑계고>는 매번 ‘정해진 것은 하나 없는’ B급 감성 웹 예능 그 자체를 표상하다가도, 시청자들이 각종 이야깃거리와 웃음 포인트에 귀를 기울이고 집중하게 만든다. 마치 맛이 심심하기 짝이 없지만, 최고급 한우를 최고급 식재료를 활용해 만든 곰탕을 퍼먹는 것만 같다.


마음 편히 수다를 듣는다는 마음으로 옆에 두었다가, 잠시 집중을 빼앗기기도 하고 다시 필요한 소음을 채우기도 하며 ‘계원’들은 니즈를 충족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마음 놓고 할 일을 할 수 있을 만큼 매끄러운 진행이 보장될 테고, 게스트로 출연한 출연진들의 몰랐던 사소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테니 적당히 흥미와 재미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 기대와 수요에 걸맞은 콘텐츠라는 공급이 지금의 <핑계고> 열풍을 만들어낸 셈이다.


 

 

바람따라 가는 <풍향고>, 시골로 떠난 <깡촌캉스>까지


 

제작팀이 일하는 현장을 스튜디오 삼아 촬영하는 <핑계고>는 그 장소를 벗어나 여러 스핀오프를 두고 있다. <핑계고> 에피소드 속 실수와 즉흥적인 판단이 만들어낸 <풍향고>와 <깡촌캉스>가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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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계고>에 출연한 배우 황정민의 말실수로 만들어진 무계획 즉흥 여행 프로그램 <풍향고>는 백상예술대상 예능작품상을 받는는 쾌거를 이루는 등 수많은 시청자의 호응을 얻어냈다. 시즌 2로 현재 방영 중인 <풍향고>는 유재석 최초의 여행 프로그램이자 <핑계고> 특유의 무해함과 공감 포인트를 여행 과정에서 잘 녹여내었다. No-계획, No-예약, No-어플을 내건 <풍향고>는 말 그대로 ‘바람따라 떠나는’ 여행이다. 무계획이라는 혼돈과 함께 여행지에 던져진 출연자들은 다투기도 하고 짜증을 내기도 하지만, 함께 발견한 사소한 여행의 행복에 함께 웃기도 한다.


그리고 그 솔직한 모습은 시청자들에게 공감을 자아낸다. 꾸며낸 듯이 멋진 삶을 사는 사람, 행복이 가득하기만 한 모습도 좋지만 우리 삶의 모습은 그것과는 거리가 조금 멀지 않은가. <풍향고>는 과장없이 좋음과 싫음에 흠뻑 빠진 출연진들의 모습을 그대로 포착해 담아냈다.

 

‘힐링보단 헐렁’을 내세운 <깡촌캉스>도 마찬가지다. 시골집에서 느슨하고 정겨운 모습으로 휴가를 즐기는 새로운 트렌드인 ‘촌캉스’를 찾아 떠난 출연진들은 기차를 타고 도착한 소박한 마을에서 시간을 보낸다. 그 속엔 자극을 쫓아 만들어낸 장면이나 규칙 따위는 없다. 혹은 각 잡고 명물과 명소를 소개하는 홍보 영상도 아니다. 그저 ‘이 멤버로 촌캉스나 가면 어떨까?’하는 실없는 농담에서 시작된 여행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깡촌캉스.jpg



두 프로그램을 시청하고 있으면 어느새 다음을 약속하고 기다리고 싶어진다. 매주 방영하는 요일을 쫓아 TV 앞에 앉던 어린 날의 우리처럼 말이다. 엄지로 끌어내리면 볼 수 있는, 타자 몇 번으로 도달할 수 있는 자극과는 또 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시청자는 이번 콘텐츠 시청이 끝나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준비를 하는 셈이다. 이다음의 에피소드를 기다리면서.


짧은 시간에 파악할 수 있는 숏폼 콘텐츠들이 나쁘다고 할 수 있을까? 숏폼의 흥행은 그저 ‘함께 긴 시간을 보내줄’ 여타 콘텐츠의 부재를 부각하고 있었을 뿐이다. 그 무엇도 나쁘다고 할 수 없다. 그저 시청자들이 필요했던 ‘또 다른’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입증한 게 <핑계고>의 흥행 아니었을까. 그러니 도파민 디톡스는 핑계고, 시청자들은 또 다른 아침에 둘러앉아 시답잖은 수다를 지켜보며 웃음 짓는다.

 

 

이미지 출처: 유튜브 채널 '뜬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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