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아이를 다시 만난다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다는 건 어떤 감정일까.
누구나 언젠가는 이별을 겪지만, 그 슬픔을 온전히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상자 속의 양’은 사고로 아이를 잃은 부부가 죽은 아이와 똑같은 외모와 목소리를 가진 휴머노이드를 가족으로 받아들이면서 시작된다. 근미래 SF라는 설정을 빌렸지만, 책이 끝내 들여다보는 것은 기술이 아니라 인간의 상실이다.
책을 읽는 내내 머릿속에는 하나의 질문이 맴돌았다.
‘죽은 사람을 다시 만난다면 우리는 정말 행복해질까.’
휴머노이드는 살아 있는 아이가 아니다. 기억 데이터를 기반으로 재현된 존재다. 과거를 품고 있지만 현재를 살아가는 생명은 아니다. 그럼에도 부모는 아이를 떠나보내지 못한 채 그 존재를 품는다. 그 절박한 마음이 너무나 인간적이어서 쉽게 페이지를 넘길 수 없었다.
휴머노이드는 인간이 아니라 과거였다
가장 오래 머물렀던 문장은 휴머노이드가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는 설명이었다.
P.91
- "괴로움이나 슬픔 같은 건 없나요?"
- "마음이 없으니까요. 만약 그렇게 보였다면 그건 당신의 감정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 "나의 감정..."
- "어차피 이 애는 당신 과거의 산물에 지나지 않으니까요."
이 대목을 읽으며 문득 깨달았다. 휴머노이드가 슬퍼 보였던 것이 아니라, 슬픔을 견디지 못한 인간이 자신의 감정을 그 위에 덧씌우고 있었다.
결국 휴머노이드는 인간의 미래가 아니라 과거였다.
남겨진 기억을 붙잡아 두는 존재이자, 떠나보내지 못한 마음이 만들어 낸 형상이었다. 그렇다면 휴머노이드는 인간과 동등한 존재일까, 아니면 자신의 필요에 따라 만들어졌다가 버려지는 대상일 뿐일까. 살아있는 인간을 위로하기 위해 탄생했지만, 시간이 흐르자 사람들은 다시 그 존재를 두려워하고 밀어낸다. 휴머노이드가 버려지는 장면은 결국 인간이 자신의 슬픔을 감당하지 못하는 모습을 비추는 거울처럼 느껴졌다.
책에서 가장 오래 기억에 남은 장면은 오토네가 휴머노이드에게 건네는 한마디였다.
P.131
- "고마웠어. 이제는... 가도 돼."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 한마디에는 잃어버린 아이를 대신해 준 존재를 향한 감사와, 이제야 비로소 아이를 보내줄 수 있게 된 부모의 결심이 함께 담겨 있었다. 오죽했으면 죽은 아이와 똑같은 모습을 한 존재를 곁에 두고 싶었을까. 자식을 잃은 부모의 상실은 감히 헤아릴 수도 없겠지만, 그 문장 하나만으로도 그 깊이를 조금은 짐작할 수 있었다.
책에서 말하는 애도(Grief Work)는 단순히 슬퍼하는 과정이 아니었다. 사랑했던 사람과 한 번 더 이별하는 일이었다. 붙잡고 있던 손을 스스로 놓는 일이었다. 휴머노이드는 아이를 되돌려 준 존재가 아니라, 부모가 아이를 떠나보낼 수 있도록 도와준 존재였는지도 모른다.
죽음을 재현할 수 있는 시대, 우리는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가
책을 덮고 나서는 작품 밖의 질문들이 이어졌다.
‘죽은 사람을 디지털로 되살리는 것은 정말 남겨진 사람을 위한 일일까?’
‘계속 그 존재와 연결된 채 살아가는 것은 치유일까, 아니면 과거에 머무는 일일까?’
기술은 점점 발전하고 있다. 언젠가는 이 작품이 상상이 아닌 현실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기술이 가능하다는 이유만으로 그것이 반드시 인간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닐 것이다.
가족은 결국 놓아주는 사람들이다
작가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늘 가족을 이야기해 왔다. 이번에도 다르지 않았다. 다만 이번에는 혈연과 기억, 휴머노이드라는 새로운 존재를 통해 가족의 의미를 다시 묻는다. 가족은 서로를 붙잡는 관계가 아니라, 언젠가는 놓아줄 줄도 아는 관계라는 것을.
도서 ‘상자 속의 양’은 휴머노이드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도 살아가야 하는 인간의 이야기이며, 상실을 받아들이는 데 필요한 시간을 담아낸 애도의 기록이다.
책을 덮고도 한동안 그 문장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고마웠어. 이제는... 가도 돼.”
어쩌면 가장 어려운 사랑은, 끝내 놓아주는 일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