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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어떻게 '상자 속의 양'을 완성했을까 [도서]

영화 <상자 속의 양> 시나리오북

by 윤선주 에디터
2026.08.08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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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자 그림을 보고 그 속에 들어가 있는 양을 상상하는 어린 왕자처럼, 감독은 상자 속의 양을 상상하는 사람이다.

 

작가이자 감독인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다양한 책을 읽고 사람들을 만나 질문을 던지며 이야기를 구체화한다. 그렇게 이야기가 선명해졌을 때, 그는 시나리오를 쓰고 영화를 만든다. 그의 시나리오북을 읽으면 고레에다 히로카즈라는 거장이 어떻게 자신이 상상한 상자 속의 양을 세상에 꺼내 보였는지를 알 수 있다.


영화 <상자 속의 양>은 사고로 아이를 잃은 부부가 아이의 모습과 추억을 바탕으로 만든 ‘휴머노이드 로봇’을 데려와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이다. 시나리오북에 수록된 작업기를 읽어보면 영화를 만들기 위해 준비한 2년간의 작업 과정을 엿볼 수 있다.


고인을 AI로 되살리는 비즈니스가 중국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는 기사를 읽은 고레에다는 ‘생성형 AI로 죽은 사람을 되살리는 이야기’라고 아이디어를 기록해 둔다. 이 아이디어는 ‘AI로 부활시킨 아들을 데리고, 아버지는 진짜 아들을 죽인 범인을 찾아 나서려 한다’라는 에피소드로 확장된다.


고레에다는 AI에 관한 다양한 자료를 읽고, AI로 고인을 재현하는 중국 기업의 설립자와 만나 대화를 나누며 이야기를 구체화한다. 그는 로봇과 인간의 관계를 고민하고, 더 나아가 인간이라는 존재를 깊이 들여다본다. 작품 하나를 쓰기 위해 그가 던졌던 질문들을 읽어보면, ‘고인을 닮은 로봇을 만들어 상실을 마주한다’는 익숙한 이야기에 어떻게 새로운 시각과 깊이를 더하게 되었는지 짐작하게 된다.


작품 속 인물을 이해하기 위해 작가는 ‘전사(Backstory)’를 적어보곤 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자신이 쓴 영화 속 부부의 전사를 촬영 전, 배우와 제작진에게 나누어주었다고 한다. 이 책에는 그 전사가 수록돼 있다. 영화에는 나오지 않는 부부의 학창 시절과 연애사, 가족 관계, 아들이 행방불명된 날 엄마인 오토네가 아들에게 어떤 말을 했는지가 적혀있다. 배우에게는 꼭 필요하지만 영화를 보는 관객은 알 수 없는 두 사람의 과거다.



화면 캡처 2026-08-07 193814.jpg

 

 

모든 죽음이 감당하기 힘들지만, 어느 날 갑자기 사고로 가족이 죽거나 어린아이를 먼저 보내게 되면 남겨진 사람들의 삶이 멈춘다.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이라는 게 없었기에 상실감을 감당하는 게 버겁다. 하고픈 말도 전하지 못하고 이별하게 되었을 때 AI로 고인을 다시 볼 수 있게 해 준다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2020년 MBC 다큐멘터리 <너를 만났다>는 혈액암으로 세상을 떠난 아이를 VR 기술로 구현해 엄마와 다시 만나게 하는 과정을 방영했다. 엄마는 항암 치료를 시작한 지 하루 만에 갑작스레 사망한 딸을 쉽게 떠나보내지 못한다. 돌아온 딸과 손을 맞대어보고, 딸의 생일 케이크에 초를 꽂아 함께 소원을 빈 뒤, 엄마는 또 한 번의 작별을 한다. 아이는 엄마에게 사랑한다고, 지금은 아프지 않다고 말한다. 가상의 딸이 건넨 말이지만 엄마는 더는 아프지 않다는 그 말에 위안을 얻는다.


영화 <상자 속의 양>에서 부부는 행방불명되었다가 시신으로 돌아온 아이를 차마 떠나보내지 못했다. 하필이면 그날 친정엄마가 집에 오는 바람에 아이에게 갈 수 없었던 엄마. 파친코에 정신이 팔려 아이를 늦게 데리러 간 아빠. 부부가 아이를 붙잡고 있었던 건 그리움만큼 큰 죄책감 때문이었다.


“나는 그 녀석에게, 카케루에게 사과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 생각해”


떠나간 이에게 미안하다고 사랑한다고 말할 시간이 부족했기에, 우리는 다시 만나고 싶어 한다. 떠나보낼 때가 되었음을 알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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