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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초원을 베고 누워 은하수에 눈을 씻고

초원과 하늘과 말과 노랫소리, 그리고 쏟아질 것만 같은 밤하늘

by 김그린 에디터
2026.09.22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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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 이번 주 목요일에 뭐 해? 나랑 몽골 안 갈래?


      그 연락을 받은 순간은 월요일이었다. 목요일을 사흘 앞둔. 예상치 못한 휴가가 생겨 찰나의 도피를 하고 싶었다는 언니와 마찬가지로 어디가 되었든 좋으니 도피를 하고 싶었던 나의 의지는 기가 막히게 일치했다. 그렇게 목요일이 되기 이틀 전 여행사를 알아보고, 하루 전 비행기를 끊었다.

       

      *

       

      우리는 모두 몽골에 초행이 아니었다. 광활한 초원과 하늘과 밤이 되면 찾아오는 뼛속까지 시린 추위 같은 것들은 이미 익숙했다. 낯선 여행지로 향한다는 기대감보다는 익히 알고 있는 자연과 적막 속에 몸을 묻어 숨고 싶다는 마음으로 비행기에 올랐고, 늦은 밤 공항에 내려 새까맣고 울퉁불퉁한 새벽의 초원을 달렸다. 게르 캠프에 도착해 차에서 내리자마자 무심코 하늘을 보았는데 머리 위로 쏟아져 내릴 것만 같은 밤하늘이 드리우고 있었다. 전혀 기대조차 않고 있던 선물 같은 밤하늘을 보았으니 이미 여행은 성공적인 것이라 생각했다.


      말들이 여름에는 더위 탓에 예민하지만 가을이 되면 너그러워지고 조금은 나태해진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안장에 올랐다. 과연 그 이야기는 사실인지 말들은 여름과는 달리 자갈밭을 밟고 싶지 않아 하는 기색이 엿보였고 물에 발을 담그고 싶어하지도 않는 눈치였다. 다함께 말을 몰아 강을 건너 단풍이 절정인 숲 너머로 향했다. 한여름에는 온통 선명한 초록빛으로 가득하던 풍경은 가을이 되자 채도 낮은 녹색과 빨간색과 노란색으로 변해 있었다. 여름보다 한결 낮게 내리쬐는 햇빛을 받아 물결은 반짝이며 부서졌다. 지나가는 사람을 빤히 바라보는 소에게 손을 흔들어 주면 소의 귀가 덩달아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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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바나가 조금 더 응집되고 작아지고 고요해지면 이런 느낌일까 떠올려 보았다. 오래된 고전 판타지에서 흔히 그러하듯, 이 숲에 발을 들이면 오직 휘파람 소리와 앞서 가는 마부의 노랫소리와 몽골어로 된 선율만이 남고 그 이전에 내가 바깥에서 알고 있었던 모든 노래와 소리와 선율은 깡그리 지워지는 것만 같다는 생각을 했다.


      아주 오래전 물이 흘렀을 것만 같은 메마른 계곡의 흔적, 주변에 나무는커녕 오래된 고목의 흔적조차 없어 정말이지 그간 홀로 서 있었을 것이 분명한 영문 모를 나무 한 그루. 브이 자 산등성이를 따라 저만치 그림처럼 펼쳐져 있던 새파란 강물과 샛노란 나무들의 장관을 마치 오르페우스처럼 자꾸만 돌아보게 되었다. 보아도 보아도 미련이 남는 풍경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비가 왔던 날에는 마부님의 게르에서 요리를 했다. 흙이 잔뜩 묻은 당근과 감자와 양파를 썰고 반죽을 화덕에 살짝 구워 고기국수를 만들어 먹었다. 게르 안에서 집안일을 하시던 할머니는 우리에게 빵이며 치즈며 이것저것 꺼내어 주시곤 맛있는지 물어보셨다.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분명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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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날에는 말을 몰아 더 멀리까지 나갔다. 강을 건너 예의 채도 낮은 너른 들판을 지나 끝이 보이지 않는 언덕을 내달렸다. 말들 중 가장 나이가 많은 큰형이라던 내 말은 타는 사람의 실력과 성향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에 맞게 달려 준다는 베테랑이었다. 꼭 옛 사원 같은 외관을 하고 있는 버려진 게르 캠프의 잔해가 있는 산등성이에 자리를 잡고 피크닉을 했다. 함께 말을 탄 다른 일행 분들과 함께 돗자리를 깔고 누워 블루투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따라 불렀다. 좋아하는 노래가 흘러나왔고 모두가 함께 그 노래를 흥얼거리는데, 익숙하다 못해 한때 서글프게 느꼈던 멜로디가 고요한 산골짜기 사이에 울려 퍼지는 순간이 마음을 오래도록 두드렸다.

       

      *

       

      지난 두 번의 몽골행에서는 물론 별이 가득한 밤하늘을 마주하기야 했지만 은하수는 구경할 수 없었다. 이번 여행에서는 처음부터 은하수를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 애당초 은하수를 보기 힘든 지역이기도 했고, 도피가 목적인 여행이었으니 밤하늘 같은 거야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번에야말로 은하수를 보았다. 한 번도 아니고 무려 두 번이나 볼 수 있었다. 한밤중 언니가 아무 이유 없이 무심코 게르 바깥으로 고개를 내민 덕에 발견한 행운이었다. 나중에야 알게 되었지만 달이 진 직후 은하수 중심축이 지평선 아래로 내려가기 전까지의 찰나를 잘 맞추어야 은하수를 육안으로 볼 수 있는 것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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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간 경이를 보겠다고 지구상의 곳곳을 큰 마음 먹고 쏘다닐 때마다 나는 내 삶이 5보다는 많고 10보다는 적은 7 언저리의 운을 지니고 있음을 여실히, 번번이, 어김없이 실감했었다. 예를 들자면 눈보라가 몰아쳐 제대로 볼 수 없었고 오직 핸드폰으로 촬영한 사진 한구석에서만 엿보였던 한 조각 오로라. 몇십 년만의 태풍경보가 내렸던 잿빛 LA와 비바람 몰아치는 산타모니카. 두 번의 몽골 여행에서도 볼 수 없었던 은하수와 다만 은하수인지 아닌지 긴가민가하게 만들 뿐이었던 희뿌연 별들의 잔상.

       

      애매한 운 또는 애매한 불운의 감각이란 삶의 크고 작은 관문들에서 받아든 계량 가능한 결과로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지만, 동시에 훌쩍 떠난 여행지에서 마주한 풍경 같은 비정형적이고 낭만적인 방식으로도 그 모습을 드러내는 법이었다. 이번 몽골행에서 은하수를 일절 기대하지 않았던 것 역시 그래서였다. 나는 은하수를 못 볼 게 뻔하니까. 그야 자명하지 않은가?


      그런데 거짓말처럼 보게 된 것이었다. 은하수를. 나를 긴가민가하게 만들지 않는, 선명하고 분명한 틀림없는 은하수였다. 뒷산에 돗자리를 깔고 누워 은하수를 올려다보는데 곁에 누운 언니가 눈물이 날 것 같다고 말했다. 실은 나도 눈물이 조금 났다. 어쩌면 이 애매한 불운의 감각이 영원히 지속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러니까, 나도 은하수를 볼 수 있긴 한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평소에는 은하수가 그리 잘 보이지도 않는 지역에서, 오전 내내 쏟아진 비와 흐렸던 구름이 무색하게 말끔히 개인 밤하늘을, 정확한 순간에 맞추어 우연히 내다본 덕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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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별들이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만 같다는 표현은 모르고 들으면 진부하지만 그런 밤하늘을 한 번 목도하고 나면 정말이지 그 외의 표현이란 달리 없다는 사실을 체감하게 되는 것이었다. 하늘은 똑바로 올려다보면 꿈 같고 - 또는 거짓말 같고 - 옆으로 고개를 기울여 올려다보면 저만치 희미하게 들리는 강물 소리와 겹쳐 마치 반짝이는 밤바다 같았다. 별을 보는 우리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으면 세상에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고 오직 적막만이 가득했다.


      언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생의 마지막을 고를 수 있다면 이런 순간이었으면 좋겠어. 실은 지금 이 순간 죽는대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그냥 지금 이렇게 은하수 아래에 몸을 묻고 언제 죽는지도 모르게 천천히 얼어붙어 눈을 감아도 괜찮을 것 같아.


      그 어떤 장막 하나 없이 우주를 그대로 펼쳐 놓은 것 같은 밤하늘 위에선 수시로 별똥별이 긴 궤적을 남기며 떨어졌다. 떨어져 내리는 별똥별의 꼬리를 보며 얼른 무언가 소원을 빌자고 했다. 여느 때 같았으면, 마치 북미의 성당이란 성당에 발을 들일 때마다 그리고 아시아의 사찰이란 사찰에 발을 들일 때마다 으레 빌었던 내용을 똑같이 빌었을 것이다. 제가 사랑하는 것들, 제가 사랑할 만한 것들로 제 세상을 가득 채워 주세요. 제가 사랑하지 못하는 것들, 제가 백 년이 지나도 도무지 사랑할 수 없을 것들은 제 세상에서 거두어 주세요. 제가 사랑하는 것들이 영영 제 곁을 떠나 버리는 일이 없게끔 해 주세요.

       

      그러나 이번에는 별똥별을 보면서 짧고 간결하게 한 문장을 빌었다. 제가 제 삶을 사랑하게 해 주세요. 아무튼 그것이 핵심인 셈이니까.


      오래도록 그 밤하늘을 잊지 않으려 한다. 내가 언젠가 한 번은 분명히 은하수를 보았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 노력할 것이다. 채도 낮은 녹색 붉은색 노란색 들판과, 산골짜기 사이에 울려 퍼지던 노랫소리와, 비 오는 날 게르 안에서 끓던 고기국수를 잊지 않으려 노력할 것이다. 그리고 덧붙여 내 삶을 사랑해 보려고도 노력할 것이다. 아무튼 그것이 핵심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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