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예고편만으로도 어떤 내용일지 짐작할 수 있는 영화들이 있다. 이 영화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영화를 보러 갔다가 우연히 마주친 예고편을 보며 대강의 줄거리를 예상했다. 아마도 주인공은 어떤 고난을 맞이하고, 힘이 되어준 밴드 멤버들과 함께 '탱고'로 삶의 고난을 잊고, 지금 자신이 가진 것들을 돌아보는 교훈적인 성장을 맞이하겠지. 여느 음악 드라마적 요소를 가진 영화들처럼.
영화의 배경은 2001년 아르헨티나다. 경기침체와 실업, 경제위기로 어려움을 겪던 아르헨티나는 뱅크런을 막기 위해 은행 예금 인출을 제한하는 '코랄리토' 조치를 시행한다. 사실상 자국민의 재산을 은행에 묶어버린 것이나 다름없는 이 조치에 분노한 사람들은 거리로 쏟아져 나온다.
주인공인 반도네온 연주자 훌리오 역시 독일 이민을 결정하고 가지고 있던 가게와 집을 차례로 팔아 새로운 시작을 준비한다. 그의 건조한 얼굴에서 큰 기대감을 발견하기는 어렵다. 그래도 희망이 없는 곳을 떠날 수 있다는 안도감과 밴드를 버리고 간다는 죄책감이 뒤섞인 복잡미묘한 표정이 아무런 변화도 없는 얼굴보다는 나아 보인다.
남은 사람이 되는 것은 구슬프다.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키는 것보다는 차라리 빨리 사람들에게 휩쓸려 떠나는 게 낫지. 가진 돈을 탈탈 털어 은행에 안전하게 묶어뒀더니 글쎄, 은행이 이제 네 돈을 마음대로 빼기는 어려울 거라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빨간불에 들어오던 택시와 접촉사고까지 난다.
훌리오는 인생의 사랑을 찾았다는 딸과 늙어서 뿌리를 다른 곳으로 옮기기 어렵다는 어머니를 두고서라도 독일로 이민을 가려고 한다. 이쯤 되면 나는 이민을 가면 무슨 일이라도 생길 것 같아 그만두고 말 텐데 그는 좀처럼 흔들리지 않는다.
이민을 가기로 한 것보다, 자신의 돈이 전부 묶인 것보다 훌리오를 더 답답하게 한 것은 밴드 친구와의 갈등이다. 밴드 멤버들의 경제 사정 역시 좋지 않다. 하루 벌어 먹고사는 것도 어려운데 공연 제의를 마다할 리가. 그러나 뱅크런이 일어나기 전 정부 고위 간부들이 이미 그 모든 상황을 알고 돈을 빼돌렸다는 사실을 알고서도 그들을 위한 공연에 설 것인가. 답답히다 못해 꽉 막혀 보인다. 먹고 살아야 노래도 할 것 아닌가.
자신의 '원칙'을 깨지 않겠다던 바이올린 연주자는 결국 양복과 모자를 두고 고민하다 모자를 쓰고 거리로 향한다. 남은 밴드 멤버들은 'Cambalache'를 연주한다. 부패한 정치와 무너진 도덕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담은 곡이다. 부패한 권력자들은 그 노래가 자신들을 비웃고 멸시하는 줄도 모르고 웃으며 술잔을 부딪친다. 그들이 그렇게라도 목소리를 내는 동안 바이올린 연주자는 거리를 헤매다 시위대 진압에 휘말려 목숨을 잃고 만다. 그리고 우리는 그 불행의 화살표가 가리키는 곳이 높은 확률로 체제를 거부하고 옳은 소리를 내려던 사람에게로 향할 것임을 미리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생존을 위해 원칙을 저버리고, 누군가는 원칙을 지키기 위해 생존의 기회를 포기한다. 어느 쪽이 옳다고 쉽게 말할 수 있을까. 당장 먹고사는 일이 막막한 사람에게 신념을 지키라고 요구하는 것도, 신념을 지키려는 사람에게 현실을 모른다고 타박하는 것도 잔인한 일이다. 결국 그들 모두가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는 사실만이 남는다.
훌리오에게 이 사건이 떠남을 가속화하는 요인이 됐을까. 아님 남아야만 하는 이유가 됐을까. 떠나야만 하는 이유는 차고 넘치는데 발에 걸리는 일들이 너무 많다. 자꾸 뒤돌아보게 하는 일들 속에서 훌리오는 결국 이민행 배에서 내린다. 더 하지 못한 노래와, 사랑을 위하여.
나는 탱고를 잘 모르고 반도네온과 아코디언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지만, 이 음악이 어떤 말을 걸고 싶어 하는지는 알 것 같다. 경제 붕괴와 수많은 사람의 희생이 얽힌 무거운 이야기도 음악 위에 두둥실 띄워 보내자. 각자의 이야기, 각자의 리듬, 각자의 사정. 인생은 언제나 설계한 대로 움직여주지 않지만 탱고는 느긋하게 흘러간다. 누군가 떠나도, 누군가 돌아와도 연주는 끼어든 곳에서부터 다시 시작하면 되니까.
시사회에는 주한 아르헨티나 대사가 참석해 이런 말을 남기고 갔다. "영화가 없는 국가는 거울이 없는 집과 같다."
영화는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얼굴을 비추는 거울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거울 속에 비친 모습이 언제나 아름다울 수는 없다. 때로는 외면하고 싶은 현실과 감추고 싶은 부끄러움까지 고스란히 드러낸다. 이 영화가 비추는 2001년의 아르헨티나 역시 그렇다. 무너진 경제와 부패한 권력, 생존 앞에서 흔들리는 신념, 그리고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
영화가 보여주는 것은 위기를 극복하고 성장한 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위기를 극복하지 못한 채로도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보인다. 거울은 답을 알려주지 않는다. 그저 지금 우리가 어떤 얼굴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보여줄 뿐이다. 그리고 그 얼굴을 마주한 다음 무엇을 할지는 결국 우리 각자의 몫이다.
영화가 끝나고도 탱고는 계속된다. 누군가는 떠나고 누군가는 남는다. 그렇게 저마다의 박자로, 저마다의 삶을 연주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