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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봄 한 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니가 뽑히고 있다. [사람]

사랑니로 경험하는 성숙의 과정

by 김한비 에디터
2026.10.23 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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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 한 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이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할 때.

       

      - 이형기의 낙화(落花) 중에서

        

       

      며칠 전, 사랑니로 잇몸에 염증이 생겨 고생하다가 결국 발치를 했다. 나에게도 사랑니를 뽑을 때가 온 것이다. 마취가 풀리자 밀려오는 통증에 식은땀이 났고, 사흘 동안은 입안에 남은 피맛을 감수해야 했다. 일주일이 넘게 지난 지금도 발치한 자리의 반대편으로 조심스레 음식을 씹는다. 식사 시간은 평소보다 두 배쯤 길어졌고, 혀로 치아를 쓸어 보면 커다랗게 뚫린 공간이 느껴진다. 익숙했던 자리에 생긴 빈자리가 아직은 낯설다.

       

      사랑니는 사랑을 알게 되는 시기에 자란다고 해서 '사랑니'라 불린다. 영어로는 지혜가 자라는 시기의 치아라는 뜻에서 'wisdom teeth'라고 한다. 하나의 치아에 사랑과 지혜라는 서로 다른 이름이 붙어 있다. 그렇지만 두 이름은 모두 삶의 어느 시점, 무언가를 새롭게 깨닫고 성장하는 순간을 가리킨다.

       

      사랑니는 다른 치아들이 자리를 잡은 뒤에야 늦게 자라난다. 입안 깊숙한 곳에서 자라기 때문에 관리하기 어렵고, 때로는 자랄 공간이 부족해 비스듬히 누워 자라기도 한다. 주변의 잇몸이나 치아에 문제를 일으키면 발치를 고려해야 한다. 이때 눈에 보이는 사랑니는 치아의 작은 일부뿐이며, 그 아래에는 오랜 시간 자리를 잡아 온 뿌리가 있다. 뿌리가 깊을수록 그것을 뽑아내는 일은 쉽지 않다.

       

      하지만 깊이 뿌리내렸다는 사실이 반드시 그 자리에 계속 머물러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한때는 성장의 징표였던 사랑니도 주변에 해를 끼치기 시작하면 제거를 고려해야 한다. 자라났다는 사실만으로 그 존재가 언제까지나 필요한 것은 아니다. 지난 성장의 상징이 어느 순간 떠나보내야 할 대상이 되기도 한다.

       

      사람의 삶에도 그런 순간이 있을 것이다. 오래된 관계가 더 이상 서로를 지탱해 주지 못할 때, 익숙한 습관이 오히려 앞으로 나아가는 일을 가로막을 때, 한때 나를 지켜 주었던 생각이 지금의 나를 제한할 때가 있다. 그때 떠나보내는 것은 그것이 잘못된 것이었다고 선언하는 일이 아니다. 다만 그것과 나의 관계가 더는 이전과 같을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그러나 오랫동안 나의 일부였던 것이 사라졌다는 사실이 어색하다. 치아는 이미 사라졌지만, 그곳에는 이전에 사랑니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구멍이 생겼다. 사랑니는 몸에서 분리되었지만, 그것이 존재했다는 사실은 몸 안에 남아있다.


      사랑니가 알려주듯 성숙이란 무언가를 더 깊이 뿌리내리게 하는 능력만이 아닐 것이다. 한때 나의 일부였던 것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그것이 더 이상 머물 자리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또한 그곳에 남은 흔적이 이후에 자연스레 메워지도록 기다린다.

       

      우리는 무언가를 붙들 때가 있듯, 무언가를 떠나보내야 할 때가 있음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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