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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오늘날 소비와 폐기의 주기가 대폭 짧아지고 있다. 물건은 빠르게 생산되고 소비되며, 기능이 약해지거나 목적을 다했다고 판단되는 순간 쉽게 버려진다. 이러한 소비 방식은 사물을 바라보는 우리의 태도를 변화시킨다. 자연물도, 오랜 시간을 함께한 생활용품도 사용 이후 목적에 달하면 처리해야 하는 대상으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우리를 둘러싼 '물(物)'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가. 사물을 존중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모노하(もの派)


 

이 질문에 대한 하나의 답은 1960년대 말 일본에서 등장한 전위적 미술운동 '모노하(もの派)'에서 찾아볼 수 있다. '모노(もの, 物)'는 사물과 물질을 의미한다.

 

모노하는 산업화와 서양 모더니즘 미술에 대해 반발하는 성격을 지닌다. 흙, 돌, 나무, 유리 등을 최소한의 가공을 통해 공간에 배치함으로써 물질 자체의 존재를 드러내고자 했다. 이전 미술이 작가의 창조성과 표현을 강조했다면, 모노하는 인간의 개입을 최소화하여 사물이 본래 지닌 성질과 주변 환경, 그리고 관람자와 맺는 관계에 주목했다.

 

즉, 물질은 작가가 의미를 부여하는 대상이 아니라 물질과 공간, 시간, 인간이 만나며 스스로 의미를 생성하는 것이다.

 

이러한 모노하의 철학은 호암미술관에서 상설 전시 중인 이우환의 <실렌티움(묵시암)>을 통해서도 살펴볼 수 있다. 이우환은 한국 단색화의 대표적 작가일 뿐만 아니라 일본 모노하의 이론적 토대를 마련했던 창시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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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환, 실렌티움(묵시암), 2025, 호암미술관 / 사진: 호암미술관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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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환, 실렌티움(묵시암), 2025, 호암미술관 / 사진: 본인제공 (2026)

 

 

야외에 있는 이우환의 설치 작품은 거대한 자연석과 철판만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관람자가 마주하는 풍경은 결코 동일하지 않다.

 

호암미술관에서 공개한 위의 작품 사진에는 바랜 잔디와 붉게 물든 단풍이 황량한 가을의 계절감을 드러낸다. 반면 내가 방문했을 당시 촬영한 아래의 사진에서는 흐린 하늘 아래 빗물을 머금은 돌과 나뭇잎, 연한 주황빛 능소화의 풍경이 어우러져 약동하는 생명력이 뿜어져 나온다. 같은 작품이라도 시간과 계절, 날씨에 따라 전혀 다른 장면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우연히 지나가는 새 한 마리, 떨어지는 꽃잎, 함께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과의 대화 등의 요소가 더해지면 작품은 또 다른 의미를 생성한다. 누군가에게는 적막함으로, 누군가에게는 자연의 생명력으로,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산업화와 환경에 대한 성찰로 다가온다.

 

이처럼 모노하는 물질과 물질, 물질과 사람 간의 관계 사이에서 변동하는 대상의 특성을 사유하게 만든다. 사물을 지배하거나 소비의 대상으로 바라보기보다, 그 자체의 존재를 존중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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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모노하 작가: 키시오 스가, <공간의 기원>, 2020, 조현화랑

 

 

 

사시코(刺し子) 


 

사물의 의미가 관계 속에서 생성된다는 모노하의 시선은, 사시코에서도 이어진다. 사시코는 낡은 물건을 버리는 대신 손으로 고쳐 쓰는 과정을 통해 사람과 사물이 맺는 관계를 시간 속에서 이어간다.

 

에도 시대부터 이어져 온 사시코(刺し子)는 해진 옷에 천을 덧대고 촘촘한 바느질을 반복하여 옷을 오래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드는 자수 기법이다. 특히 면직물이 귀했던 농촌 지역에서는 옷 한 벌을 여러 세대에 걸쳐 고쳐 입으며 사용했다.

 

사시코에는 불완전함과 시간의 흔적 속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일본의 전통 미의식 ‘와비사비(侘び寂び)’의 정신이 스며 있다. 와비사비는 새것이나 완전함을 추구하기 보다, 마모와 균열마저 미적인 가치로 받아들인다.

 

따라서 사시코의 바느질은 단순히 옷의 수명을 연장하는 기능적인 행위가 아니라, 시간이 쌓인 흔적을 새로운 무늬와 아름다움으로 변화시키는 과정이었다. 낡음은 폐기의 이유가 아니라 새로운 가치가 생성되는 출발점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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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시코 재킷, 19세기 후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며칠 전, 베갯잇을 구매하였는데 몇 장의 천 자투리가 함께 도착했다. 서툰 솜씨였지만, 남은 천이 생긴 김에 그 위에 무늬를 수놓아 보았다. 사시코의 가장 기초적인 십자 무늬였다.

 

실을 꿴 바늘이 천을 통과하며 잠들어있던 손의 감각을 일깨웠다. 버려질 수도 있었던 자투리는 몇 땀의 바느질이 더해지며 더 이상 남은 천 조각이 아니게 되었다. 시간과 손길이 쌓여가 나와 관계를 맺은 하나의 존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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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시코가 낡은 물건에 새로운 시간을 더하는 방식은, 오래된 사물에 생명과 존재성을 부여해 온 일본의 '츠쿠모가미(付喪神)'를 떠올리게 한다. 츠쿠모가미는 100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면 물건에 정령이 깃든다고 믿는 민간 신앙이다. 대표적인 츠쿠모가미로는 낡은 우산에 영혼이 깃든 '카라카사'과 짚신 형태를 한 '바케조리'가 있다.

 

일본인들은 인간이 만든 생활용품도 시간이 지나면 하나의 독립적 존재가 된다고 믿어온 것이다. 이러한 시선은 우리가 사물을 대하는 태도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어쩌면 물체를 존중한다는 것은 그것이 지나온 시간을 인정하는 동시에, 우리와 맺는 관계를 하나의 의미로 받아들이는 데서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마주하는 자연과 오래된 물건에는 새롭게 생산된 공산품에서는 쉽게 발견하기 어려운 시간의 흔적뿐만 아니라 사람의 손을 거치며 형성된 관계의 기억이 스며 있다.

 

오늘도 우리 곁에 묵묵히 놓여 있는 사물들을 조금 더 오래 바라보고, 조금 더 오래 함께하는 일.

 

그것이 빠른 소비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존중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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