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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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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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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데리러 와주세요."

 

"아무것도 없어요."

 

 

2024년 1월 29일, 고작 여섯 살 아이인 '힌드 라잡'의 애절한 구호 요청이 총성을 뚫고 들려온다. 이스라엘군의 총알 세례로 차가 난파되고 힌드를 제외한 가족들이 전부 사망한다. 힌드는 피 흘리는 가족들 새에 꼼짝없이 갇혀있다. 적신월사의 직원들은 5시간 동안 천당과 지옥을 오가며 아이를 구하기 위해 분투한다. 하지만 그들에게 닿는 것은 한없이 여린 목소리일 뿐이다.


카우타르 벤 하니야 감독은 "영화는 폭탄 테러를 막지 못한다. 하지만 진실이 지워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라고 이야기한다. 실제 사건을 스크린으로 옮긴 다큐멘터리 영화 '힌드의 목소리'는 시대가 조명하지 않는 약자의 피해를 비추고 있다. 힌드가 구조 요청을 보내왔을 당시 적신월사 직원들과 통화한 음성이 작품에 삽입되어 현장감을 고조시킨다.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이래에 팔레스타인들 다수가 삶의 터전을 잃고, 1967년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점령하며 전쟁이 벌어진다. 그 후 수십 년간 크고 작은 분쟁이 지속되었다. 2023년, 하마스가 이스라엘에 로켓을 날리며 전쟁이 발발한다. 70여 년간 응축되어 온 증오와 갈등의 뿌리는 어린 생명을 집어삼키기에 이른다.


위험에 노출된 민간인을 구출하는 적신월사. 주인공 오마르는 그곳에서 피해자들에게 걸려 오는 전화를 받고 구조 요청을 보내는 상담사로 일하고 있다. 비교적 한가로운 어느 날, 독일 남성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온다. 친척이 이스라엘군의 공격을 받아 차에 갇혀있으니 도와달라는 구조 요청이었다. 오마르는 그가 남긴 번호로 전화를 걸고, 곧이어 젊은 여성이 다급한 목소리로 상황을 설명한다. 하지만 머지않아 총성이 울리고 신호가 끊긴다.


당황한 오마르는 몇 차례 전화를 걸어보지만, 연결이 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그녀를 살리지 못했다는 사실에 고통스러워한다. 그러다, 차에 아직 살아있는 사람이 있다는 연락을 받고 다시 통화를 이어간다. 어린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저한테 총을 쏘고 있어요."

 

목소리의 주인공은 힌드 라잡으로 아직 초등학교에도 가지 못한 유치원생이다. 힌드는 가족들과 차를 타고 이동하던 중 이스라엘군의 폭격을 받게 되었고, 차게 식은 가족들에 둘러싸여 살려달라고 외친다.

 

"아무것도 없어요. 저 좀 데리러 와주세요."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은 힌드. 함께 웃고 떠들었을 이들은 더 이상 눈을 뜨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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힌드와 구조센터는 8분 거리이다. 8분이면 힌드를 구할 수 있다. 하지만 구조 작전이 안전하게 이루어지기 위해 이스라엘 국방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승인을 받기까지의 과정은 복잡하다. 구조팀을 총괄하는 상사 마흐디는 쉽사리 구조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오마르는 끓어오르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다. 그의 동료 라나는 퇴근을 포기하고 오마르와 번갈아 가며 힌드와 통화를 이어 나간다.


영화는 힌드의 음성에 집중할 뿐,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다. 차 안은 얼마나 난장판일지, 도와달라고 사정하는 아이의 얼굴이 어떻게 무너졌는지. 모든 장면은 독자의 머릿속에서 구성될 뿐이다. 보이지 않기에 찾아드는 섬찟한 공포 속에서, 전쟁의 참혹함은 오래도록 진동한다. 피비린내가 스크린을 뚫고 전해지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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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흐디는 왜 당장 구조 요청을 가지 못하냐며 흥분하는 오마르를 향해 죽은 동료의 사진을 보여준다. 지금껏 구조에 나갔다가 목숨을 잃은 대원들의 사진이 유리 벽에 붙어있다. 결혼을 앞둔 사람, 아이가 있는 사람, 한 가정의 가장. 돕고자 하는 마음이 그들을 죽음으로 내몰았고, 마흐디는 죄책감과 두려움에 휩싸여서 더는 그들을 잃고 싶지 않다고 이야기한다.


"언제 와요? 곧 어두워질 것 같아요. 어두워지면 무서워요."

 

구조 요청 1시간, 2시간….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간다. 수화기 너머로 총성이 울리고, 신호가 끊기기를 반복한다. 라나는 눈물에 잠긴 호흡을 겨우 가다듬으며 힌드를 진정시킨다. 그녀가 힌드에게 해줄 수 있는 건 기도문을 읊어주는 것뿐이다. 함께 기도하자, 힌드. 내가 기도문을 읊을 테니까 따라 해봐, 하고.


신에게 기도하는 장면은 그들의 무력함을 최대한으로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더 이상 손 쓸 방도가 없으니까, 신에게라도 도와달라 빌어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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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몇 시간째 구조를 하지 못하다가, 겨우 이스라엘 국방부의 구조 허가를 받는다. 모두들 환희에 가득 차 힌드에게 너를 구하러 갈 수 있게 되었다고 이야기한다. GPS 상 구조대원들이 거의 다 와 갔을 무렵, 갑자기 무전이 끊긴다. 힌드와의 연결도 끊어진다. 그로부터 12일 후, 구조대원들과 힌드는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된다. 구급차와 힌드가 타고 있던 차는 형태를 앓아볼 수 없을 만큼 뭉개져 있다. 힌드를 구하고 싶어했던 그들의 간절함도 짓뭉개져 버렸다.


힌드의 엄마는 힌드가 납치되어 전쟁 포로가 되었다고 믿었다. 그렇게라도 힌드가 죽지 않았을 거로 생각하고 싶었던 거다. 하지만 힌드의 싸늘한 주검을 실제로 보는 순간, 어린 딸의 죽음을 받아들이며 그 무게에 휘청여 주저앉게 된다. 힌드는 얼른 전쟁이 끝나서 바닷가에 놀러 가는 미래를 꿈꾸었다. 하지만 힌드는 끝내 바다를 보지 못하고 숨을 거두었다. 무엇이 힌드를 휩쓸어간 것일까. 왜 한없이 작고 여린 아이가 어른들의 증오를 한 몸에 떠안을 수밖에 없었는가.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며 파도 소리가 들린다. 무언가를 쓸어가듯이. 깊은 바다를 떠돌던 무언가가 파도에 쓸리고 쓸려 해변까지 떠밀려온 것만 같다. 마치 24년 1월 29일 힌드의 목소리가 지금 여기에 닿았듯이.
 

 

아이를 구하기 위해서 아이의 가족을 죽인 적군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 아이러니했다. 그들은 대체 무슨 권리로 아이의 목숨을 위협하고 앗아간 걸까? 무슨 권한으로 아이의 삶을 허락하는 것일까?


전쟁은 힌드를 한 생명으로 대하지 않았다. 오만한 권력자들에게 힌드는 인간이 아니었다. 전쟁은 사람을 비인간화하고, 이 세상에서 없애야 마땅한 존재로 전락하게 만든다. 그들에게 힌드는 통제해야 할 대상이었지, 존중하고 지켜줘야 할 어린 인간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힌드는


바다를 좋아하는 아이였다.

어둠을 무서워하는 아이였다.

엄마가 있었고, 남동생이 있었다. 그리고 유치원 선생님, 친구들이 있었다.

활짝 웃을 수도 있는 아이였다.


그리하여 힌드는

평범한 여자아이였다.


공부하고 꿈을 키우고 세계를 누빌 수 있는 아이였다. 힌드에게는 그런 삶과 권리가 있었고, 그것을 보장받아 마땅했다.


전쟁은 여섯 살 힌드만을 죽인 것이 아니다. 전쟁은 힌드의 16살을, 26살을, 36살, 46살….끝없이 이어졌을 한 세기를 통째로 앗아가 버렸다.

 

 
한 세기는 약 '5200만 분' 정도가 된다. 8분이면 힌드를 구할 수 있었다. 8분이면 5,200만 분의 새로운 삶을 써 내려갈 수 있었다.
 

 

전쟁이 벌어져도 우리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면 관심이 빠르게 식는다. 미디어는 살려달라고 부르짖는 현장의 목소리보다도 전쟁으로 인해 변화할 물가와 주식시장, 그리고 피를 묻히지 않고 버젓이 살아있는, 목소리 큰 정치인들의 퍼포먼스를 실어대기 바쁘다.


말할 자유 이전에 '들을 자유'가 있다. 진정한 표현의 자유는 들을 자유가 보장될 때야 성립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어떤 진실도 가려지지 않고, 소외되지 않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사람들에게 닿았으면 좋겠다. 힌드의 목소리는 그런 영화이다. 우리에게 들을 자유를 주는 영화. 그리하여 우리가 무엇을 생각하고 말할지 선택할 자유를 주는 영화.


 
그리하여 나는 말한다. 제발 전쟁을 멈추자고. 있는지 없는 지도 명확하지 않은 신에게 기도하기 이전에, 서로서로 구원자가 되어보자고.

'제발 와달라'는 절박함을 무시하지 말자고, 기꺼이 나서보자고.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유명한 종교 경전의 말씀을 빌려 리뷰 글을 마무리해 보려 한다. 모두를 사랑할 순 없겠지만, 적어도 내 주변에 있는 이들만큼은 챙기고 배려할 수 있지 않을까? 나를 스쳐 지나가는 이들에게 최대한의 호의를 베풀어 보는 것이다. 내가 사랑한 나의 이웃은 또 그들의 이웃에게 사랑을 건네고. 그 이웃들은 또 그들의 이웃에게 사랑을 건넬 거다. 그렇게 내 이웃을 사랑하는 실현 가능한 노력이 전 세계를 사랑으로 물들일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아무것도 없다는 말이 아이의 입에서 나오는 일이 없도록 말이다.


나는 이 사랑의 실천을 글로 써 내려가려 한다. 내 글을 모두가 읽진 않겠지만, 힌드의 목소리라는 영화를 모두가 보진 않겠지만. 적어도 이 글을 읽는 사람들만큼은. 영화를 보는 사람들만큼은 지금 이곳에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진실이 무엇인지. 그리고 말해야 할 진실이 무엇인지. 우리가 듣지 못하고 있는 진실이 무엇인지 고민해 보길 바란다.


소라고둥이 바닷소리를 품었듯, 어딘가에 봉인된 그 목소리에 귀를 가져다 댔으면 좋겠다. 우리가 우리에게 들을 자유를 주고, 들을 용기를 가지는 세상이 오기를, 간절히 기도해 본다.


영화 힌드의 목소리는 4월 15일 정식 개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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