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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아빠와 딸, 도쿄에 가다! [여행]

백일몽이 진실이 될 때까지

by 전주현 에디터
2026.05.16 14:15

 

 

* 세카이노 오와리 '백일몽'을 들으며 글을 읽어주세요!

 

 

2N살, 잠 못 드는 새벽. 평소보다 작아진 방에 누워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다는 생각에 잠겼다.

 

'여기만 아니면 돼, 여기만 아니면.'


나는 서울에서 태어나 수도권을 벗어나 본 적이 없다. 타지에서 일주일 이상 머문 적이 없었기에 이방인의 심정이 궁금했다. 아무도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곳에서 숨 쉬고 싶다는 갈망. 여권도 없던 나는 충동적으로 여행 계획을 세우고, 호텔을 알아보았다. 그러는 새 아침이 밝았다.


"아빠, 나 혼자 일본 갈 거야. 계획 다 짰어."

"혼자? 언제?"

"5월 말에 가려고. 그때 학원 휴가라서."

"여행을 왜 혼자 가. 위험하게."

"아, 왜.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단 말이야."


아빠는 잠시 말이 없었다. 나도 다 큰 성인인데, 내가 모아둔 돈으로 가겠다는데 왜 안 된다는 거냐고! 라는 (철이 없는) 말이 목구멍 끝까지 차오르던 때, 아빠가 입을 열었다.

 

"나도 같이 가자."

 

아빠는 무표정으로 '함께하자'는 말을 건넸다. 순간 당혹감이 일었다. 아무리 평소 사이가 좋았다지만, 해외여행을 단둘이 떠난다는 건 조금 걱정되는 일이었다.


우리는 그렇게 항공권과 호텔을 예약했다. 여권 사진도 안 찍었는데! 출국까지 대략 3주가 남았기 때문에, 준비를 서둘러야 했다. 사진 찍기, 여권 발급, 트레블 월렛, 로밍 신청…. 그뿐이랴? 도쿄 지하철 패스, 스카이 타워 입장권 등 미리 사둬야 할 게 많았다. 책임지고 계획을 짜겠다고 큰소리를 뻥뻥 쳐뒀기 때문에 머리를 싸매고 이것저것 빠르게 준비했다.

 

 

비행기안에서.jpg

 

 

이른 새벽, 군청 빛 하늘을 등에 업고 차에 올랐다. 공항에서 간단한 식사를 마친 우리는 여행에 관한 이야기보단 시시콜콜한 대화에 더욱더 집중했다. 공항 꼬마 김밥이 맛있다, 에어팟 노이즈 캔슬링 기능이 대단하다…. 그렇게 떠들다가 비행기에 올랐다. 10여 년 만에 탑승한 비행기, 이륙할 때 심장이 덜컹였는데, 마침내 새로 태어나는 기분이었다.


비행기에서 내리기만 하면 끝인 줄 알았는데, 상상과는 다르게 공항 입국 심사에서부터 헤맸다. 어느 호텔에서 묵을 건지 적어서 내야 했는데,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한 내가 몇 번이고 고개를 갸우뚱거린 탓이었다. 줄줄이 이어진 사람들이 모두 나를 쳐다보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부끄럽지가 않았다. 어차피 아무도 나를 모를 테니까!


"아빠는 나만 따라와!"

 

공항에서 헤맨 건 뒤로 하고, 또 다시 큰소리를 쳤다.

 

 

냉면.jpg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신주쿠 산초메역. 숙소는 역에서 20분 거리였다. 하늘은 눈부시게 파랬고, 높았다. 나는 구글맵을 켜곤 길을 찾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20분 넘게 걸었는데도 숙소가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1시간 가까이 걸었고, 흔한 괴담처럼 같은 자리를 빙글빙글 돌았다. 굶주린 아빠가 밥부터 먹자 해서 들어간 곳은 한국 프랜차이즈 식당이었다. 우리는 그곳에서 한국식 냉면과 고기를 먹었다. 그렇다, 일본에서의 첫 식사는 백종원 표 프랜차이즈 냉면이었다! 그때 내 마음은 뭐랄까, 식초와 겨자처럼 시큼했다.


가방이 어깨를 콱, 물고 안 놔주는 것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슬슬 이거 큰일인데, 싶어질 무렵 아빠가 나에 대한 믿음을 철거했다. 본인의 구글맵을 켠 것이다! 자존심이 상했지만, 아빠에게 기대 가기로 했다. 마치 인간 T맵과도 같은 아빠 덕에 숙소에 빠르게 다다랐을 무렵, 어디선가 웅성거리는 소리가 났다. 애니메이션에서나 보던 마을 축제 현장이 눈앞에 펼쳐졌다. 아빠는 재미있다며 사진을 찍었고, 나는 사진 찍는 아빠를 찍었다.

 

 

현지밥.jpg

 

 

숙소에 도착하고 나니 해가 거의 다 질 무렵이었고, 발바닥이 저렸다. 우리는 숙소에서 벗어나 눈앞에 보이는 현지 밥집에 들어가, 날계란이 날계란인지 모르고 주문했다가 비린 맛을 한껏 들이켰다. 그러곤 일본 편의점 푸딩의 싼값에 놀라며, 작고 모난 의자에 앉아 우유푸딩의 달콤함을 욱여넣었다. 살갗에 말라붙은 땀, 약간 더운 공기. 자전거를 탄 사람들. 깨끗하고 작은 거리. 모든 게 비현실 같았다. 우리는 숱하게 봐왔던 서울과 도쿄의 풍경이 어떻게 다른지. 또한 이곳의 공기가 얼마큼 맑은지 이야기를 나누다가 숙소로 돌아갔다.

 

 

자전거.jpg

 

 

나는 그때만 해도 밖에서 자는 걸 끔찍이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대학 MT도 가본 적 없고, 고등학교 수련회도 생기부만 아니었다면 안 갔을 거다. 첫 해외여행의 설렘과 비현실성, 그리고 약간의 불안함과 두려움이 뒤섞여 어김없이 몇 시간밖에 자지 못했다. 일찍 눈을 뜬 나는 비몽사몽인 채로 동네를 돌아다녔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그냥 쭉 걸었다. 놀이터, 유리창에 비치는 나, 철쭉, 자전거, 귀여운 치과 간판이 등장하는 꿈을 꾼 것 같았다.


다음날, 키요스미 시라카와로 이동하기 위해 전철에 올랐다. 여기도 광고, 저기도 광고 다 광고였다. 정장과 교복을 갖춰 입은 사람들 사이에 캐리어를 들고 서 있었는데, 어째서인지 내가 이방인이 아니라 그들 전부가 이방인인 것처럼 느껴졌다.

 


정원 티켓.jpg

 

 

티폰드에서 차를 사고, (키요스미 시라카와에 방문한다면, 꼭 들러야 하는 곳) 일본식 정원에 들러서 간식을 먹었다. 그리고 또 동네를 돌아다녔다. 사실, 아빠가 조금 지친 게 눈에 보였다. 먹구름도 가득해, 놀러 다니기에 썩 좋은 날씨는 아니었다. 나는 아빠가 숙소에 누워 자는 동안 다시 밖에 나와 충동적으로 전철에 올라탔다. 목적지는 없었다. 그냥 전철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타고, 내리고 그런 걸 구경했다. 참 이상했다. 사람들에게 퉁겨지고 싶어서, 무리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떠나온 여행이었는데. 자리에 앉아 태연하게 현지인인척 했다. 퇴근한 직장인인 척, 대학생인 척….

 

 

비빔밥.jpg

 

 

그러다가 익숙한 이름이 들려와 내렸다. '미쓰코시 백화점'. 한참을 돌아다니다 해가 질 무렵, 다시 아빠를 만났다. 우리는 저녁으로 한국식 돌솥비빔밥을 먹었다. 숙소에 들어갈 땐, 편의점에서 하겐다즈와 바나나를 샀다.

 

 

시부야 타워.jpg

 

 

다음날은 시부야 스카이 타워에 갔다. 아주 높은 곳에서 내려다본 세상은 정교한 가짜 같았다. 세상에 이런 일이 같은 프로그램에 나오는 장인이 한 땀 한 땀 손수 빚은 미니어처 같달까. 방 한 칸의 근심 걱정들이 정말 부질없었다는 걸 깨달았다. 돌아다니는 사람들, 움직이는 전철, 자동차, 깜빡이는 전광판. 제자리에서 각자의 자리를 지키는 것들.

 

 
세상은 넓고, 자리는 많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날, 내내 흐리던 하늘이 거짓말처럼 맑아졌다. 키요스미 시라카와의 다리를 건너며, 꼭 다시 돌아오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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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개인 도쿄의 하늘은 맑게 고인 눈물 같아서, 나도 덩달아 뜨거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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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에서 파는 만화책, 신문, 생화를 보며 이곳에선 주어진 시간을 '가쁘게'가 아니라 '기쁘게' 쓰는 사람들이 많을 거라는 혼자만의 생각을 했다.


아빠와 떠난 3박 4일 간의 여정. 우리는 스펙터클한 무언가를 하지 않았다. 출국할 때 비행기를 놓칠 뻔했던 거 빼고는 큰 사건·사고도 없었다. 그저 길을 걸었고, 밥을 먹었고. 일식이 입에 맞지 않는다는 말만 여러 번 늘어놓다가 한식집을 찾아다녔고. 그게 전부였다.


그전까지 내게 해외여행은 백일몽 같은 거였다. 환한 대낮에 꾸는 꿈만큼이나 헛된 공상 같은 것. 이루기 힘든 소망 같은 것. 백일몽이 진실이 되는 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내 안에 용기를 외면하지만 않는다면,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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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또다시 키요스미 시라카와에 가는 날이 있을 거다. 있을까? 가 아니라 있을 거다, 단정 지어 말해 본다. 다시 돌아가겠다고 약속한 용기가 여전히 유효하니까.

 

아빠는 세월이 흐르면 흐를수록 했던 말을 또 한다거나 이것저것 깜빡한다. 노안이 와서 가까이 있는 걸 볼 땐 안경을 벗는다. 짜증이 조금 더 늘었고, 약간 감성에 젖고. 피곤함에 절여지는 하루가 더 많아 보인다. 언젠가 내가 아빠와 같은 50대가 되었을 때. 그때도 같이 도쿄를 거닐 수 있을까? 또 한국식 냉면과 비빔밥을 먹고, 하겐다즈를 퍼먹고, 아무것도 알아들을 수 없는 일본 예능을 틀어두는 밤을 보낼 수 있을까?


쉰 살이 된 나와 여든 살이 된 아빠 둘 다 쌩쌩하진 못할 거다. 그렇지만 함께했던 여행은 언제까지고 추억으로 남아, 좁은 방을 벗어나고 싶을 때마다 우리의 영혼에 날개를 달아줄 거다. 우리에겐 먼 훗날, 서로가 그리워질 때면 꺼내 볼 수 있는 진한 여정이 있다.

 

 
지금까지도, 내 삶의 무기는 아빠와의 도쿄 여행이다. 삶에 주저하게 되고, 미래가 겁이 나고. 화가 나고 속상한 일이 있을 때마다 갤러리에 들어간다. 수백 장의 사진과 영상, 주름이 조금 더 적고 머리가 지금보단 까만 아빠. 젖살이 덜 빠진 내 얼굴을 본다. 낯선 곳에서 익숙한 걸 찾아 돌아다니던 부녀의 모습은 어쩐지 웃기고 귀엽고 사랑스러워,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진다.
 

 

신주쿠 산초메, 키요스미 시라카와, 꼭 다시 돌아오겠다는 다짐.

 

도쿄, 모든 것이 각자의 자리를 지키며 움직이던 광경.

 

장인이 한 땀 한 땀 빚은 정교한 가짜 같은 세상을 기꺼이 살아내겠다고.


세상은 넓고, 자리는 많으니까. 더 이상 나를 좁은 곳에 가두지 않겠다고. 또 한 번,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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