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N번째 만남은 도쿄에서 [여행]

일본에서 만나는 새로운 너의 모습
글 입력 2024.03.30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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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너와 나의 이야기

 
작년 가을, 나는 동생과 함께 3박 4일의 짧은 여행을 다녀왔다. 행선지는 일본 도쿄였다. 나는 지금껏 일본에 도합 4차례 방문했다. 해외임을 고려하면 4라는 횟수는 제법 많은 것으로 들린다.

그렇지만 나는 일본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길어야 겨우 나흘인 단편적인 여행에서 괄목할 정도로 의미 있는 배움이 얼마나 쌓였겠는가. 여행을 다니며 느낀 점이라곤 길거리의 이질적인 생김새, 한국어가 기본이 아닌 세상에서 이방인으로 지내는 두려움, 일본 사람들에게 느끼는 대강의 인상 정도에 불과했다.

다만 지난 여행에서 인상깊었던 점이 있다면, 나와 함께 여행을 다녀온 동생의 새로운 모습을 알게 된 것이었다. 동생과 단둘이서만 거닐던 도쿄의 거리에서 나는 근 20년을 함께한 동생을 고쳐 바라보게 되었다. 이야기는 여행을 떠나기 몇 개월 전에서부터 시작된다.

 

 

 

여행 전의 네 모습은 일종의 스포일러


 

여행을 떠나자고 제안한 것은 동생이었다. 동생은 부모님 없이 떠나는 해외여행을 오래도록 기다려왔고 준비 단계서부터 의욕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러니 이번 여행으로 그간의 기대가 모두 충족될 수 있도록 나는 동생 마음대로 여행 일정을 세우게끔 했다. 동생이 보고 싶은 것을 실컷 구경하고, 먹고 싶은 음식을 마음껏 누릴 수 있도록 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여행의 일정을 온전히 동생에게 맡긴 것이 우려되기도 했다. 으레 손위 형제자매들이 그러하듯 동생들은 다 큰 것 같으면서도 때론 어린애처럼 보이기도 해서 늘 걱정스럽기 때문이다. 이제는 혼자 여행 일정을 세울 수 있을 정도로 자랐구나 싶어 뿌듯하면서도, 제대로 된 계획을 세울 수나 있을지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그렇기에 동생이 일정을 알려줄 때까지 기다리면서 마음이 편치 않았다. 이제라도 어른 없이 떠나는 여행의 의미를 되새겨주고 일정에 대한 중간 점검을 실시해야하나 고민했다. 그럼에도 그리 하지 않은 것은 "나 이제 다 컸거든? 내가 알아서 할게"라며 응수할 동생이 뻔하니 괜한 감정 다툼을 벌이고 싶지 않았던 것이었다. 


몇 주 뒤, 여행 일정을 관리하는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동생이 세운 계획을 공유받았다. 처음 봤을 때는 깜짝 놀랐다. 동생은 본인이 가고 싶던 곳과 내가 요청한 몇 곳을 적절히 엮어 계획을 마련했는데, 그 계획이 꽤나 그럴싸해 보였기 때문이다. 도쿄 내부의 지리적 특성을 고려하여 시부야와 하라주쿠 등 서로 가까이 위치하는 곳은 하루에 몰아서 구경하자고 제안할 정도로 동생의 사전 조사는 철저했다. 또한 지역별 특색까지 파악하여 매일 방문하는 곳에 따라 ‘전통문화 탐방’, ‘카페 탐방’, ‘산리오 샵 탐방’ 등 그날의 테마를 설정하고 식사 메뉴까지도 함께 연관될 수 있도록 계획을 짰다. 

 

설명까지 듣고 나니 동생이 기대 이상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동생은 보호자도 없이 떠나는 여행을 이미 충분히 각오하였고, 그에 걸맞도록 철저한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심지어 환전이나 여행자보험에 관해서도 미리 알아 와서는 어떤 은행을 통하거나, 어떤 제품을 구매하는 것이 좋다는 것까지도 일러주었다. 


그날을 계기로, 나는 동생에게서 ‘내가 챙겨주어야 할 어린애’라는 이름표를 떼어내고 이번 여행을 즐겨보자고 다짐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훌쩍 자라있는 동생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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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에서의 너는 더 이상 어린애가 아니었어 


 

시간은 바쁘게 흘러서 드디어 여행 날이 다가왔다. 우리는 아침 비행기를 타고 한국을 떠났다. 비행기 특유의 진동에 몸이 떨리고 해외로 떠난다는 긴장감이 차올랐다. 그것은 비행기가 나리타 공항에 도착한 직후 최고치에 달했다. 기내 방송이 나오고 승객들이 분주히 하차를 준비하기 시작하자, 어른도 없이 단둘이서만 이곳에서 나흘의 여정을 헤쳐 나가야 한다는 두려움이 나를 압도해왔다. 바짝 얼어있는 나를 현실로 불러낸 것은 동생이었다. 동생은 총기가 가득한 눈망울로 고개를 휙 돌려 이쪽을 보더니 ‘이제 넥스(NARITA EXPRESS, 일본의 주요 도시를 연결하는 고속철도) 승차권을 구매해야 하니 이곳으로 가자’면서 나를 이끌었다. 심지어 내가 글자를 잘못 읽고 정체를 알 수 없는 표를 구매하여 계획했던 시간대의 차편을 놓치자, ‘괜찮아, OO시 OO분에 오는 다음 기차를 타면 돼’라며 나를 안심시키기까지 했다.


이후의 여정은 동생의 발걸음이 향하는 대로 펼쳐졌다. 동생은 본인이 정해둔 계획을 완벽하게 실현할 요량으로 탑승할 교통수단과 예상 소요시간을 사전에 숙지하고 구글 지도를 보며 목적지까지 앞장섰다. 마침내 그곳에 당도해서는 ‘여기선 무엇을 보아야 한다’, ‘여기선 무엇이 맛있다’는 등의 팁까지 알려주었다. 동생의 뒤를 뒤쫓아가는 걸음의 연속이었다.


나는 어미의 뒤를 따르는 병아리처럼 동생을 따라가며 ‘여기는 뭐 하는 데야?’, ‘이 식당은 뭐가 맛있어?’라며 짹짹 묻곤 했다. 나의 질문에 즉각 대답을 내어놓고 마저 발걸음을 옮기는 동생의 뒷모습이 낯설었다. 마치 우리의 역할이 뒤바뀐 것만 같았다. 지금껏 우리는 내가 무언가 가르치면 동생이 따라 배우는 식의 관계를 맺고 있었다. 살면서 내가 동생을 온전히 믿고 따라간 적은 처음이었다.


몰랐던 동생의 모습을 발견하는 매일이었다. 나의 기억 속에서는 여전히 초등학생 시절 어린애의 모습인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언제 이렇게 믿음직한 어른으로 자란 건지. 그동안 내가 동생을 너무도 몰랐다는 사실에 얼떨떨했지만, 마치 자식을 키워낸 부모의 마음처럼 뿌듯하고 자랑스러웠다. 너무나 기특하고 애틋해서 어릴 적 그랬던 것처럼 둥개둥개 안아주고 싶었지만, 이제는 동생이 진저리를 치며 싫어할 것이 눈에 선하니 그저 진심을 담은 인사말로 대신했다.

 

 

 

여행은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을까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 도쿄에서의 여정이 마무리되고 우리는 한국으로 돌아왔다. 일상으로 복귀함과 동시에 여행에서 동생에 대해 느낀 감상은 마음 한구석으로 밀려났다. 우리는 이전과 바뀐 것 없이 서로를 대하는 듯했다.


한편 여행을 돌아온 후, 나는 허탈감과 아쉬움에 여행의 흔적을 붙잡아두고 싶어졌다. 기억은 언젠가 휘발되고 말 테니 그때를 떠올리게 만드는 물건이라도 오래 간직하려던 것이다. 그래서 지하철 승차권, 가게에서 받은 영수증과 더불어 수많은 기념품을 포장도 뜯지 않고 한참 내버려두었다. 

 

그 가운데서 여행 중간중간 적었던 일기를 발견하였다. 내가 지하철 승차권이나 영수증을 한가득 모아둔 것과는 달리, 일기장에는 보고 먹은 것에 대한 기록보다 여행 중에 느낀 감정에 대한 것이 많았다. 특히나 상세하게 적어둔 것은 동생에 대한 감상이었다.


여행 마지막 날, 잠든 동생을 옆에 두고 나는 이렇게 썼다.

 

도쿄에서의 너는 어엿한 어른 같다. 더는 내 마음대로 간섭할 수 없는 나이대에 진입한 너는 아기만 같던 예전의 동생이 아니구나. 이제는 너의 삶을 네가 원하는 방식대로 자유로이 꾸려 나가겠지. 사흘 동안 훌쩍 자란 너의 모습을 보았으니, 이제는 너를 믿고 지지해줄 사람이 되어야겠다.’ 


여행 마지막 날의 내게 무엇보다 인상깊었던 점은 도쿄에서 보고 들은 것보다도, 함께 여행한 동생에게서 발견한 새로운 모습이었던 것이다. 호텔 방에 앉아 일기장을 무릎에 올려둔 채로 눈을 감고 지난 사흘을 되돌아보면, 화려한 관광지의 풍경보다도 앞장서서 길을 걸어 나가던 동생의 뒷모습이 눈에 선했다. 그 순간마다 느꼈던 감정이 떠올랐다. 나는 이런 마음에서 일기를 썼었다.


그제야 내가 지금껏 잘못된 것에 집착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승차권과 영수증은 분명 우리의 여정을 상기시키는 데 도움이 되겠지만, 진정한 것은 이미 내 마음속에 각인되어 있었다. 그것은 내가 여행에서 발견한, 나의 상상 이상으로 어른스러워진 동생의 모습이었다. 지난 몇 년 동안 함께 살면서도 나는 동생의 성장을 인식하지 못했다. 대신 나흘간의 여행에서 그 변화된 모습을 잔뜩 마주했다. 그 결과로 동생을 대하는 나의 태도도 어느새 바뀌어 있었다. 


돌이켜보니 나는 여행을 다녀온 후로 동생을 독립적인 인간으로 바라보고 그 애의 자율성을 존중하기 시작했었다. 예전에는 온갖 조언을 퍼부어 내가 생각하는 방식대로 고쳐 행동하도록 강요했다면, 요즘은 동생의 의견을 우선적으로 존중하고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왔다. 충분히 고심하여 내놓은 결정이라면 나로서는 믿고 응원하겠다는 마음이었다. 


바로 여기서 내가 여행을 통해 얻은 산물이 드러났다. 내가 붙잡고 싶었던 것은 영수증이나 기념품에 있지 않았다. 여행의 진정한 흔적은 나의 안에 새겨져 있었다. 정확히는 동생을 대하는 나의 자세에 녹아들어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지금 우리의 모습을 여실히 반영하고 있다. 

 

나의 편견으로 얼룩진 상대의 형상이 아니라, 온전하고 진정한 상대의 모습을 깨닫는 것. 그것을 통해 우리의 관계를 한층 의미 있는 것으로 만든 것. 이것이 여행에서 얻은 가장 큰 수확이었다.


 

 

여행은 우리의 관계에 흔적을 남긴다


 

영어로 된 격언 중 기억나는 문장이 있다.

 

‘In life, it’s not where you go, but it’s who you travel with.’


삶에서는 내가 어디로 가느냐의 문제보다 누구와 함께하고 있냐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의미다. 나는 이 문구가 삶뿐만 아니라 여행에도 적용된다고 생각한다. 서로의 진정한 모습을 알게 된다는 점에서 여행은 관계의 전환점이 된다. 

 

여행 이후로 동생을 마주하는 나의 태도가 변화하며 우리의 관계가 더욱 돈독해지고 동등해졌듯, 여행은 함께하는 이와의 관계를 조금이나마 바꾸어 놓는다. 인간이 시간에 따라 변화하듯, 우리의 관계도 이를 계기로 하여 업데이트되는 것이다.


그러니 여행의 기억은 기념품의 유무 따위에 휘발되지 않을 것이다. 도쿄에서의 추억은 내가 동생을 바라보는 눈동자에 망막처럼 서려 있을 테니까. 매일 그것을 느끼며 새로워진 동생을 마주한다. 이렇게, 도쿄에서의 추억은 나의 안에 아로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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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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