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SNS를 중심으로 심상치 않은 반응을 얻고 있는 공연이 있다. 이머시브 스튜디오 홍대점에서 상연 중인 Without You(당신 없이는)이다. 이하 ‘위드아웃유’로 표기하겠다.
평소 방탈출과 연극, 뮤지컬을 모두 즐겨온 나에게 ‘이머시브 연극’이라는 장르는 그 자체로 흥미로운 대상이었다. 좋아하는 요소들이 한데 섞여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었지만, 무엇보다 관객이 객석에 머무는 대신 극 안으로 진입하게 되는 구조가 궁금했다. 게다가 공포 장르를 선호하는 입장에서 ‘<위드아웃유>가 정말 무섭다’는 후기들을 연이어 접하니 기대감이 자연스럽게 커질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위드아웃유>는 단순히 자극적인 공포 체험으로 소비되기에는 아까운 작품이었다. 물론 이 공연은 충분히 무섭다. 그러나 내가 이 작품을 높이 평가하게 된 이유는 공포의 강도에 있지 않다. 이 작품은 관객을 극 안으로 끌어들이는 방식, 배우들이 캐릭터를 구현하는 밀도, 그리고 공간과 음향, 조명과 장치를 활용하는 연출 면에서 인상적인 완성도를 보여준다. SNS에서의 바이럴 포인트는 공포에 집중되어 있을지 몰라도 내게 <위드아웃유>는 정말 잘 만들어진 공연으로서 더 가까이 와닿았다.
<시놉시스>'그날, 집에 초대받은 순간부터 모든 것이 달라졌다.'1980년대 태국 치앙마이의 한인 타운.최근 마을에서 전염병 및 실종 사건 등으로 흉흉한 소문이 돌고 있는 가운데,한인 교민 '쿤타이'와 그의 아내 '베라', 딸 '포포'가 살고 있는 집에각자 다른 이유로 방문하게 된 사람들.겉보기엔 평온한 이 집에선 이해할 수 없는 일과 말할 수 없는 비밀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데...이 집에 초대받은 사람들과 초대받지 않은 사람들과의 돌아갈 수 없는 저녁 식사가 시작됩니다.
관전 포인트 1. 관객 참여형 연극이 만들어내는 묘한 소속감
<위드아웃유>에서 가장 인상적인 지점은 역시 이머시브 연극만이 구현할 수 있는 특유의 소속감이었다. 이 공연은 최대 8인까지 참여할 수 있는 관객 참여형으로, 관객 각자에게 저마다의 역할이 주어진다. 우리는 객석에 앉아 무대를 바라보는 관객이 아니고, 공연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이미 이야기 안으로 편입된 존재가 된다. 실제로 이 작품은 정해진 좌석 없이 관객이 배우들과 함께 공간을 이동하며 서사를 따라가도록 구성되어 있다.
개인차가 있을 수 있지만, 이 점이 나에게는 더 큰 몰입감을 주었다. 멀찍이서 대사를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상황 속에 함께 있는 감각을 얻게 된다. 방탈출이 공간 안에서의 체험을, 연극이 서사와 감정의 흐름을 강점으로 가진다면, <위드아웃유>는 그 둘의 결을 효과적으로 겹쳐놓는다. 덕분에 관객은 단지 놀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공간의 공기와 인물들 사이의 긴장, 그리고 설명되지 않는 불안 속에 조금씩 스며들게 되는 것이다.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이 참여가 절대 부담스럽지 않다는 점이었다. 관객 참여형 공연이라고 하면 자칫 ‘내가 관객으로서 무언가를 해야 하나’하는 압박을 떠올릴 수 있는데, 이 공연은 관객을 자연스럽게 리드하며 극 안으로 데려간다. 그래서 누군가는 조금 더 적극적으로 반응하고, 누군가는 조심스레 상황을 따라가더라도 모두가 각자의 방식으로 극의 일부가 될 수 있다. 그리고 배우들이 그것을 유연하게 돕는다. 그 균형감이 좋았다.
관전 포인트 2. 캐스트마다 달라지는 결
![[크기변환]캐스트 (1).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603/20260314023217_drsecvyg.jpg)
나는 지금까지 이 공연을 딱 두 번 관람했다. 회차마다 세 명의 배우를 만날 수 있었고, 두 번의 공연 동안 캐스트가 겹치지 않아 총 여섯 분의 배우를 만나게 됐다. 연극인지라 배우마다 해석과 결이 모두 다르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이런 공연은 배우가 관객과 매우 가까운 거리에서 호흡해야 하기 때문에 작은 어색함도 쉽게 드러난다. 그러나 <위드아웃유>의 배우들은 그 가까운 거리마저 연기의 일부로 흡수한다. 정해진 대사를 전달하는 것을 넘어, 관객의 반응에 맞춰 순간적으로 분위기를 조율하며 캐릭터의 감정을 만들어간다. 애드리브의 방식도 조금씩 달라서, 같은 장면이어도 다른 회차에서는 전혀 다른 인상을 남기곤 했다. 그래서 이 작품은 한 번 보고 끝내기보다, 캐스트가 바뀌었을 때 다시 보고 싶은 공연이 된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베라’ 역을 맡은 배우들이었다. 이 역할의 배우들은 자신의 신체를 예술적으로 활용했다. 단순히 무서운 표정이나 날카로운 톤으로 공포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몸의 각도와 움직임, 유연함 자체를 연기의 언어로 활용했다. 섬뜩함보다 감탄이 먼저 치고 들어올 정도로 아크로바틱한 퍼포먼스를 볼 수 있었다.
![[크기변환]캐스트 (2).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603/20260314023252_rvqymgev.jpg)
그리고 무엇보다, 배우들이 온 힘을 다해 연기한다는 사실이 전달됐다. 이 공연은 정적인 대사극이 아니라 배우의 체력과 집중력, 현장 대응력이 모두 필요한데, 그 에너지가 매 순간 전해졌다. 관객을 몰입시키는 가장 큰 힘은 결국 배우에게서 나온다는 사실을 이 공연이 설득력 있게 보여준 셈이다.
관전 포인트 3. 다양한 연출이 함께 만들어낸 공포의 밀도
<위드아웃유>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강점은 연출이다. 특히 공간과 음향, 장치와 조명을 활용하는 방식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입장 전 대기 공간이 꽤 협소한 편이다. 그래서 공연장 내부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을지 예측이 되지 않았고, 공간에 대한 큰 기대는 안 하고 들어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공연이 시작되면 내부 공간이 예상보다 훨씬 입체적으로 활용된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두운 복도는 시야를 거의 차단해 버리고, 이는 원초적인 불안을 자극한다. 공간 사이를 이동하는 동선이 꽤 많은 편인데 어색하지 않았던 점이 인상적이었다.
음향도 좋았다. 태국이라는 배경을 단지 설정으로만 두는 것이 아니라 배경 음악과 효과음에까지 적극적으로 녹여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어딘가 눅눅하고 음산한 동남아시아 공포 장르 특유의 정서가 소리에서부터 뚜렷하게 느껴졌다.
작품 바깥에서 남는 아쉬움
전체적으로 나는 이 공연이 정말 좋았다. 작품성도, 연출도, 배우들의 연기력도 인상적이었는데, 작품 외적인 차원에서 다소 아쉬운 점이 남아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홍보의 방향성이다. 최근 공포 장르 방탈출과 테마가 유행하고, 이에 대한 후기를 담아내는 숏폼 콘텐츠가 트렌드로 떠오르면서 <위드아웃유> 역시 SNS를 통해 빠르게 바이럴 되었다. 이 과정에서 “현재 한국에서 가장 무서운 공연” 같은 방식으로 이 작품이 소비되고 있는데, 물론 그런 바이럴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홍보에서 ‘공포’라는 장르 자체가 너무 강조되다 보니 공연적인 성격이 상대적으로 덜 드러나는 듯했다. 단순 ‘테마’라는 키워드로 홍보되기엔 작품성이 뛰어나 개인적으로 갖고 있는 아쉬움이 있다.
또 한 가지는 인원 구성에 대한 부분이다. 최대 8인까지 참여 가능한 형식이라는 점은 분명 관객에게 많은 기회를 열어준다는 장점이고, 연출 과정에서 더 많은 관객에게 색다른 경험을 선사하고자 하는 연출진의 고민이 녹아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실제로 보면 관객에게 부여하는 몇몇 역할은 존재감이 다소 옅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각 역할에 따라 관객이 체감하는 만족도의 편차가 발생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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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드아웃유>는 ‘무서운 공연’이 맞다. 그러나 내가 이 작품을 떠올릴 때 가장 먼저 기억하는 것은 ‘몰입’이고, 그래서 여타 공연 작품들처럼 ‘회전문’을 돌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극의 일부가 된다는 감각은 단순한 체험을 넘어 하나의 공연적 경험으로 남는다.
어쩌면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은 여기에 있을지도 모른다. 무서워도 끝까지 함께 하고 싶게 만든다는 것, 공포를 동력으로 삼되 결국에는 연극이라는 작품의 힘으로 관객을 붙잡아두는 공연이라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