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더 나은 당신을 꿈꿔본 적이 있는가?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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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의 끝자락을 뜨겁게 달군 영화가 있다. '올해 최고의 미친 영화'를 자부하며 이곳저곳에 소문난 영화 <서브스턴스>이다.
누군가 "더 나은 당신을 꿈꿔본 적이 있는가?"라고 묻는다면, 부정하는 사람을 찾기가 더 어려울 것이라 생각한다. 이 영화는 정확히 그 지점을 주삿바늘처럼 아주 날카롭게 찔렀다.
꽤 고어한 바디 호러 연출을 통해 코랄리 파르쟈 감독이 전달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무엇이었을까? 오늘은 영화 <서브스턴스>의 몇 가지 포인트를 짚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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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영화 <서브스턴스>의 줄거리 및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Substance : 본질
"The substance." '서브스턴스'는 영화의 제목이자 영화 속에서 매우 중요한 약물 서비스의 형태로 등장한다. 'substance'는 물질, 실체, 본질, 핵심, 요지와 같은 뜻을 담고 있는 단어이다.
활성제(Activator), 안정제(Stabilizer other self), 교체(Switch), 식량(Food matrix, Food other self)의 네 가지 품목으로 구성된 서브스턴스는 몇 가지 규칙만 잘 지키면 큰 문제 없이 사용할 수 있는 약물이다.
1. You activate only once.
2. You stabilize every day.
3. You switch every seven days without exception.
4. REMEMBER. YOU ARE ONE.
활성제는 일회용이고 안정제를 매일 투여해야 하며, 예외 없이 7일 주기로 교체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더 나은 나를 만날 수 있게 해준다는 서브스턴스는 정말로 또 다른 나를 한 명 더 탄생시키는 약물인 것이고, 새로운 나와 본래의 나의 교체(활동) 주기를 반드시 7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영화는 초중반까지만 해도 나름 우리가 예상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전개된다. 서브스턴스를 통해 제2의 전성기를 맞은 '수'는 본체인 '엘리자베스'의 몸에서 안정제인 척수액을 할당량 이상으로 뽑아 교체 주기인 7일을 어긴 채 하루하루 연명하게 되고, 그로 인해 엘리자베스에게는 돌이킬 수 없는 급속한 노화가 찾아온다. 일반적인 늙어감이 아닌 기괴하고 비정상적인 변화로 인해 엘리자베스의 자존감은 바닥을 내려치게 되고, 이로 인해 엘리자베스는 수를 증오하며 그녀에 대한 복수로 폭식을 일삼고 집을 더럽히는 행위를 반복한다. 결국 수 역시 엘리자베스에게 앙심을 품고 엄청난 양의 척수액을 뽑아내며 파국으로 향하는 것이다.
인상적인 지점은 엘리자베스가 수와 본인을 같은 자아로 인지하지 못한다는 것, 그리고 관객인 우리 역시 마찬가지로 자꾸만 그 둘을 분리해서 바라보게 된다는 것이다.
엘리자베스는 급속한 노화로 인해, 수는 엘리자베스의 과도한 폭식으로 인해 서브스턴스로 두 번의 전화를 걸었는데, 그때마다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는 오직 "Remember. You are one."이라는 말만 들려준다. 정체불명의 묵직한 목소리가 들려주는 "You are one."이라는 말은 둘을 다른 인물인 양 보고 있던 관객에게도 주의를 주는 듯해 흠칫 놀라게 만든다.
여기서 우리는 이 영화의 제목인 "The substance"가 진정으로 가리키는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해 볼 수 있다. 내가 어떤 모습이든 나를 하나의 나로 인지할 수 있는 것, 겉모습을 뚫고 들어가 그 속의 진정한 나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강렬한 방식으로 강조한 이 영화의 의미상 여러 뜻 중에서도 특히 '본질'을 뜻하는 것이 아닐까. 관객인 우리 또한 엘리자베스의 본질을 더욱 집중해서 봤어야 한다는 것을 지적하고자 한 것이 감독의 의도는 아닐까.
끊임없이 대상화되는 여성
엘리자베스는 최고의 스타로 활동하다 TV 에어로빅 쇼의 진행자로 활동하고 있었다. 촬영이 끝난 후 화장실에 들르려던 그녀는 여자 화장실이 수리 중이라는 안내문을 보고 아무도 몰래 남자 화장실에 잠깐 들어가기로 한다. 그때 남자 화장실에 프로듀서 '하비'가 들어오는데, 스태프와 통화하는 듯한 그는 "더 어리고 예쁜 쇼 출연자가 필요하다"며 엘리자베스에 대해 모욕적인 뒷담화를 한다.
화장실 한 칸에서 이 모든 말을 다 듣고 있던 엘리자베스는 자존심에 크나큰 상처를 입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광고판에 붙은 자신의 사진이 처참히 찢겨 나가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렇게 박살 난 자존감은 엘리자베스를 서브스턴스로 몰아넣었고, 엘리자베스의 등가죽을 찢으며 탄생한 수는 하비의 입맛에 딱 맞는 여성으로 등장했다. (실제로 영화 내내 수는 하비의 면전에서 밝게 미소를 짓지 않은 적이 없었다.)
영화에서 하비라는 캐릭터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역겹다"고 말할 수 있겠다. 영화 내내 카메라가 하비를 비추는 방식 자체가 그를 그렇게 보이도록 만들고 있었다.
화장실에서 엘리자베스의 뒷담화를 하는 장면, 새우를 까먹으며 더러워진 입으로 침을 튀기면서 엘리자베스와 대화를 하는 장면, 수를 보고 "예쁜 여자는 이를 드러내며 웃어야 해"라고 말하는 장면 등.... 수많은 장면에서 하비는 굳이 보고 싶지 않은 부분(예를 들면 이 사이에 낀 새우, 입가에 고인 침)까지 보일 정도로 클로즈업되곤 했다. 너무 클로즈업이 되니 마치 관객이 일인칭 시점에서 하비를 마주하는 것 같은 느낌 들었는데, 엘리자베스와 수가 마주해왔을 (역겨운) 하비를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었다.
하비는 여성을 대상화, 객체화하는 대표적인 인물로 묘사되었다. 하비의 시선 끝에서 엘리자베스, 그리고 수는 끊임없이 평가되었다. 그는 분명 본인이 추잡하게 까먹은 새우들처럼 계속해서 새롭고 아리따운 여성만을 찾아왔을 것이다.
영화에서 수를 둘러싼 대부분의 인물들은 수많은 남성이었다. 수의 에어로빅 쇼 촬영 도중 카메라에 이상 현상이 찍힌 듯하니 온 스태프들이 모여 모니터링하는 장면이 있었다. 수의 노골적인 움직임에 슬로우를 걸며 프레임 단위로 집중해 살펴보는 스태프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비춰 주었는데, 총 열 명이 조금 안 되는 모든 스태프가 남성이었다. 수는 그 모습을 보며 불안한 표정으로 그 자리를 떠난다.
엘리자베스의 몸일 때도 그런 시선은 존재했다. 서브스턴스를 권유했던 남자 간호사는 그녀의 척추를 만지며 흥미롭다는 듯 바라보았고, 수와 함께 놀았던 젊은 남성은 경멸 어린 시선으로 그녀를 보았다.
엘리자베스는 늙고 추레해진 대로, 수는 젊고 아름다운 대로 남성들의 눈에 상품처럼 비치며 평가되었다. 겉모습이 어떻든 시선의 객체가 되었다. 극장에서 나오며 친구와 나는 넋을 놓은 채 "수가 너무 예뻐서 놀랐다"고 이야기해 버렸다. 아차 싶었다. 우리마저 그들을 대상화하면 안 되는 것이었는데 말이다.
데미 무어에게 엘리자베스란
데미 무어는 외모에 대한 강박이 심해 전신 성형을 강행했었다고 한다. 그런 그녀가 이 영화에 출연한 것만으로도 많은 사람들이 큰 의의를 발견하고 있는 듯하다. 크게 동의한다. 이 사실을 알고 영화를 보다 보면 그녀가 엘리자베스를 연기하게 된 것이 너무나 대단하게 느껴진다.
앞서 이야기했던 영화의 흐름을 보면 알겠지만, 영화의 후반부는 혼돈 그 자체다.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져 이목구비를 제외하고는 동일 인물이라고 생각되지 않는 수준의 엘리자베스가 등장하는데, 그 장면에서의 분장과 특수효과가 데미 무어에게 굉장히 곤혹스러웠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외모를 중시하며 성형을 마다하지 않았던 여성 배우가 갖은 망가짐을 감수해야 하는 영화에 출연했다. 심지어 그 영화는 외모지상주의에 대한 통렬한 비판을 담고 있다. 데미 무어라는 한 사람이 배우로서, 여성으로서 그간 어떤 고민을 얼마나 해왔을지 궁금해지는 지점이다.
데미 무어가 <서브스턴스>에서 보여준 연기는 극찬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그녀가 겉모습에 대한 틀에서 벗어나 '본질'을 중요시하게 되었기 때문에 이번 영화에서 본인의 한계를 뛰어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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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의 마지막 영화를 <서브스턴스>로 장식했다. 도대체 서브스턴스라는 약물은 누가 만들었는지, 어떻게 작용하는 건지에 관한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꽤 있는 것 같은데, 이 작품에서는 굳이 그런 부분까지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애초에 현실적으로 말이 안 되는 장면들이 많기 때문에 나는 약간 판타지, SF 장르를 보듯 관람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런 것까지 세세하게 파고 들어가면 러닝타임이 4시간을 훌쩍 넘길 것 같다.)
중요한 것은 서브스턴스의 작용 원리가 아니다. 우리가 떠올려야 할 것은 무엇이 엘리자베스를 서브스턴스로 몰아넣었는지, 그녀가 서브스턴스를 통해 결국 어떤 결말에 이르렀는지, 그리고 우리는 이 영화를 통해 어떤 메시지를 새겨두어야 하는지에 관한 것이다.
엘리자베스는 엘리자베스로, 그리고 수로, 그리고 '몬스트로 엘리자 수'로 세 번 죽는 결말을 맞았다. 흉측하고 괴상한 모습이 되어가는 모습을 보면서는 인상이 찌푸려지기도 했지만, 동시에 안타깝기도 했다. 분명 엘리자베스의 손에는 스스로 파국을 멈출 기회가 있었는데 말이다.
청소년 관람 불가 영화인 만큼 잔혹함의 정도가 꽤 강해 보기 어려웠던 몇몇 장면들도 있었지만, 여운이 정말 길게 남은 영화여서 기회가 된다면 다시 한번 영화를 보며 내가 놓쳤던 부분이 있는지 살펴보고 싶다. 그리고 생각보다 영화에 유명한 공포 장르의 영화들(<더 씽>, <캐리>, <샤이닝>)을 오마주한 장면들이 많이 나와서 그런 부분을 찾는 재미도 있었다.
이 영화는 우리나라에서 '미친 영화'로 마케팅되고 있다. 정말 틀린 말이 아니니 궁금한 사람들은 직접 보아도 좋을 것 같다.
[김지현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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