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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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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리뷰는

연극의 내용 및 결말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튤립은 초등학생 시절 가장 좋아하던 꽃이었다. 어느 책에서 튤립에 얽힌 설화를 읽다가, 튤립의 꽃잎은 왕관을 잎사귀는 칼을 닮았다는 서술이 마음에 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린 나이다운 낭만이었다. 조금 더 지나서는 튤립을 보면 네덜란드의 버블이 먼저 떠오르게 되었고, 가끔 글을 쓸 때 꽃말을 찾아보는 정도의 감흥이 남았다.

 

그래서 <튤립>이라는 제목을 처음 마주했을 때는 선뜻 내용이 유추되지 않았다. “전쟁은 인간의 얼굴을 어떻게 바꾸는가?”라는 질문, “어쩌면 한 번도 존재했던 적이 없는”이라는 글귀와 튤립이 무슨 관계가 있는지 쉽게 연결되지 않아서 흥미롭게 시놉시스를 훑어보았다. 식민지 조선인 주인공과 일본인 가정의 이야기. 이들의 관계에서 튤립은 어떤 역할을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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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까마귀와 일본인 도련님


 

나카무라 쿠로-조선 까마귀라고도 불리는 주인공은 도쿄 대학 한구석에서 튤립 정원을 가꾸는 일을 한다. 그의 친구인 쥬리프는 도쿄대 학생이자 일본인 가정의 도련님이다. 동양척식주식회사를 다니는 퇴역 군인 아버지를 둔 엘리트 집안 출신이지만, 얼굴에 검은 페인트 자국을 가진 쿠로를 진심으로 좋아하며 따른다. 졸업을 앞둔 쥬리프의 초대를 받아 그의 집에 방문한 쿠로는, 쥬리프의 아버지인 야마토와 어머니 에리코를 마주하게 된다.

 

이 초대는 쿠로와 쥬리프의 부모님이 만나는 계기에 그치지 않는다. 이들의 대면은 갈등과 진실을 마주하는 도화선이다. 야마토와 에리코는 초라하고 나이많은 조선인이 일본인 엘리트인 자신의 아들과 어울리는 것을 싫어하는 듯 보인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리라는 불편한 직감이 관객들에게 전해져온다. 에리코는 쿠로에게 ‘내 아들에게서 떨어져’라며 경고하고, 야마토는 그를 마주치자마자 얼굴을 일그러뜨린 채 멱살을 잡는다. 특히 야마토의 히스테리적인 반응과 구면인 듯한 쿠로와의 대화는 그들 간의 무언가 숨겨진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대학 구석에서 튤립을 심는 조선 까마귀와 일본인 엘리트 집안 사이에서는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튤립, 쥬리프


 

사실 이 집안의 도련님인 쥬리프는 야마토가 밖에서 데려온 아이였다. 1904년 러일전쟁 당시 군인이었던 그는 연추의 튤립밭에서 아기 울음 소리를 들었고, 끝내 아이를 훔쳤다. 이제 막 출산을 마친 아기의 어미가 아이를 돌려달라며 붙들었지만 야마토는 오히려 산부를 살해하고 아이를 집으로 데려왔다.

 

연해주의 튤립밭에서 조선인 노비의 자식으로 태어났던 아기는 그렇게 일본군의 아들이 되었다. 자신의 친어머니를 살해한 일본군을 아버지라 부르며 그렇게 일본인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아이의 이름에는 잃어버린 정체성이 화인처럼 새겨져 있다.

 

쥬리프(チューリップ). 튤립을 뜻하는 일본어다. 태어난 그곳, 연해주의 연추, 어쩌면 조선을 상징하는 듯한 흐드러진 튤립밭이 '쥬리프'라는 이름에 남아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에게 쥬리프라는 이름을 지어준 사람은 튤립밭에서 아이를 앗아온 일본군 야마토였다.

 

 

 

야마토와 에리코, 그들의 두 얼굴


 

2년 전, 야마토는 아들을 빼앗아간 원수를 찾아온 조선인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나카무라 쿠로'라는 신분과 함께 쥬리프가 재학 중인 학교에서 정원사로 일할 수 있도록 협조한 것이다. 쿠로를 다시 마주한 그는 쥬리프를 데리고 연추에 가겠다는 것도, 심지어 도야마에서 일하며 매년 봄 쥬리프를 만나겠다는 것도 허락한다. 왜 자신을 내버려두느냐는 쿠로의 질문에 야마토는 외려 반문한다. 너 역시 원수의 집에 칼 한 자루 들고 온 적 없지 않느냐면서.

 

 
"그건 너 스스로에게 물어야지. 2년 전에도, 지금도, 넌 칼 한 자루 들고 오질 않잖아."
 

<튤립> 희곡 101쪽

 

 

야마토는 분명 전쟁범죄를 저지른 인물이다. 이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며, 퇴역 후에도 그는 동양척식주식회사에서 일하며 식민지 수탈에 가담하고 있다. 야마토는 스스로를 ‘다시 돌아가도 똑같은 짓을 할 놈’이라 말한다. 하지만 그 내면에는 일말의 죄책감을 숨기고 있는 듯하다. 쿠로에게 용서를 구하지는 않지만 그를 해치지도 못하고, 조선을 억압하는 일을 하면서도 내선일체에 의문을 품는다. 모순적이게도.

 

 

"조선인은 일본인이 될 수 있나? 내선일체는 과연 가능한가?"

 

"20년을 일본인으로 키웠는데, 고작 2년 만에 애가 어떻게 변했는지 봐. (중략) 내 집에서도 실패하는 게 내선일체야. 흥미롭지 않아?"

 

<튤립> 희곡 107-108쪽

 

 

한편 에리코는 쥬리프를 자신의 아이로 받아들이고 진심으로 사랑하며 키운다. 그녀는 이 관계에서 남편의 독단에 의한 피해자이며 그럼에도 아들을 사랑하고 가정부에게 상냥한 인물로 보인다. 하지만 쥬리프의 출신을 알게 된 에리코는 쿠로를 찾아가 독을 탄 차를 건넨다. 그 후 결말부에서 그녀는 야마토에게 이렇게 말한다.

 

 

"하여간, 당신은 그 얼굴만 험상궂었지, 겁쟁이야."

 

"내선일체. 안 되는 게 어딨어."

 

<튤립> 희곡 124쪽

 

 

쥬리프의 친부인 쿠로는 쥬리프의 뿌리다. 구근이다. 이미 일본인으로 장성한 그를 조선과 연결하는 유일한 핏줄이다. 에리코는 쿠로를 제거하며 쥬리프의 뿌리 또한 같이 도려내어 버린다. 이들의 관계에서 에리코는 더는 상처받은 피해자에 그치지 않는다. 결국 그녀 또한 야마토와 다르지 않다. 어쩌면, 죄책감조차 느끼지 않는다는 점에서 더욱 잔인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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튤립은 구근을 키우는 식물이다


 

연극은 열린 결말로 끝을 맺는다. 쥬리프는 과연 진실을 알게 될까, 혹은 영영 알지 못한 채 살아가게 될까. 만약 모든 것을 알게 된다면, 이라는 상상을 해보았다. 쥬리프는 연추에 갈 것 같다. 그곳에서 쿠로가, 아니, 아버지 막산이 말한 고향의 튤립들을 눈에 담지 않을까. 다만 그 이후는 잘 모르겠다. 다시 일본으로 돌아오게 될지. 연추에서 살게 될지. 조선의 독립을 위해 싸우게 될지.

 

그러나 튤립은 구근을 키우는 식물이다. 막산은 “복잡한 건 그 밑에 다 묻어두고, 그 위로 떠오른 꽃에 관해서만 아는” 것이라고도 말했지만, 쥬리프에게 선택권이 온다면 결국 꽃이 아니라 구근을 택할 것이다.

 

쥬리프는 극 초반부터 조선인 독립운동가(조명하 의사를 모티브로 한 것으로 추정된다)를 사형하라는 교내 행진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었다. 미호를 통해 자신의 출생에 대해 알아본 것에서도 드러나듯, 그는 현실에 질문하고 스스로를 알아가고자 하는 인물이다. 막산의 죽음은 “어쩌면 한 번도 존재했던 적이 없는” 듯이 묻히고 사라졌지만 만약 쥬리프가 진실과 마주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갈 수 있다면, 막산의 존재는 쥬리프의 뿌리, 튤립의 구근으로 남을 수 있을 것이다.

 

 
"땅속에서 구근이 다른 구근을 만들어내거든요. 그래서 튤립은 꽃을 키우는 게 아니라, 구근을 키우는 식물이라고 봐야죠."

 

<튤립> 희곡 5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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