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적으로 나와 다른 점이 많은 사람을 보면 두 눈이 반짝거린다. 뭐라도 뽑아 먹을 생각에 말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은 욕망이 강한 INFJ라서 배우고, 닮고 싶어 한다. 그리고 나와 비슷한 점이 많은 사람을 보면 눈빛이 깊어진다. 마음속 깊이 들여다보고 싶고, 보호본능이 일어난다. 더 시선이 가고, 마음이 향하는 쪽은 후자 쪽이다.
이런 나의 특징은 대인관계보다는 문화예술을 만날 때 많이 드러난다. 나와 비슷한 캐릭터를 좋아하고, 비슷한 이야기에 끌리고, 공감이 가는 가사와 그림에 시선이 간다. 미술과의 거리가 훅, 가까워진 것도 닮은꼴 덕분이었다.

닮은 꼴 하나, 빈센트 반 고흐.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은 오래도록 인정받고 있지만, 생전에는 알아주는 이 하나 없었다. 그의 작품은 물론, 진심까지 이해받지 못하고 평생을 소외당하며 외롭게 살았다. 동생 테오의 지지를 받았지만, 아버지에게는 사랑받지 못했다. 초기에는 농민들의 삶을 그리며 농민을 향한 자신의 마음을 표현했으나, 사람들은 고흐의 열정을 부담스러워했다. 파리로 이주하여 다른 화가들을 알게 되고, 작품활동을 이어갔지만 나아지지 않는 정신질환에 힘들어했다. 남프랑스 아를에서 동경하던 일본의 매력을 발견하고 그곳에 동료 화가들과 생활할 집을 마련했다. 초대 편지를 보내고 집을 예쁘게 꾸미며 동료들을 기다렸으나, 고흐를 찾는 이는 하나도 없었다. 테오의 간절한 부탁에 고갱이 찾아가 함께 지내지만, 비극으로 끝났다.
어릴 때부터 생각이 깊고, 따스한 성품을 지녔지만, 정신적으로 불안정했다. 세월이 갈수록 우울, 불안, 망상은 심해졌지만 그의 작품은 늘 밝았다. 사람들에게 외면받아도 끝까지 인간을 사랑했다. 그의 인류애는 작품에 그대로 비쳤다. 그래서 고흐의 작품을 보면, 따스함이 느껴진다. 고흐는 정신적으로 점점 더 힘들어질 때도, 외로울 때도 늘 그림을 그렸다.
고흐가 겪었던 만큼은 아니겠지만, 나도 소외감을 느끼며 자랐다. 가족과 많이 달랐던 나는 유별난 아이였다. 내 생각과 감정은 수용 받지 못했다. 항상 예민하다,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는 말로 부정당했다. 누구보다 인정받고, 이해받고 싶었던 대상에게 지속적으로 부정당하며 자란 환경은 성인이 되고 나서도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다. 보는 세상이 달라지고 다른 이에게 수용받는 경험이 쌓여도 내면에 깊이 자리 잡은 소외감과 결핍은 사라지지 않았다. 나는 사람을 두려워하면서도 좋아했다. 고흐처럼 누군가의 작은 친절에도 마음이 움직였고, 미소를 지었다. 다시 상처받을 걸 알면서도 용서하고, 기대하며 (정신적으로) 가족을 떠나지 못했다.
닮은꼴 둘, 에드바르 뭉크.
어릴 적에 교과서에서 에드바르 뭉크의 절규를 봤을 때, 매우 신기했다. 절규라는 감정을 그림으로 찰떡같이 표현한 게 놀라웠다. 얼굴을 감싼 손, 그 손의 모양대로 찌그러진 얼굴, 살아있는 듯한 표정. 배경은 어땠는지 기억하진 못해도 절규의 얼굴은 오래도록 잔상으로 남았다.
세월이 흘러, 책을 통해 그의 생애를 알게 되었을 때 그 작품을 다시 봤다. 이번에는 배경이 눈에 들어왔다. 절규하는 감정이 소용돌이치고, 온 세상이 비명을 지르는 것 같았다. 화폭에 담긴 모든 게 ‘절규’라는 감정을 표현하고 있었다. 이 작품뿐만 아니라 뭉크는 부정적인 감정들을 그림으로 형상화하고 제목을 지으면서 자신의 감정에 이름을 붙였다. 그 과정은 뭉크에게 치유였을 테다. 나 또한 비슷한 경험이 있기에 안다.
외면했던 상처들을 제대로 직면하던 시기가 있었다. 그 과정을 글로 정리하고 기록하면서 내가 느끼는 감정이 무엇인지 제대로 아는 훈련을 할 수 있었다. 가족이 하는 말에 흔들려도 다시 중심을 잡고 분노, 실망, 슬픔, 아픔 등의 이름을 붙였다. 그러다 보니 감정보다 눈치가 앞섰던 게 고쳐졌고, 자책하던 횟수도 전보다는 줄었다.
도서 ‘치유의 미술관’ 에 의하면, 뭉크가 선택한 방식은 불안을 정면으로 마주하여 안정적으로 대처하는 방식이라고 한다. 따라서 뭉크와 내가 했던 것은 자신을 치유하는 행위였다고 본다.
닮은 꼴 셋, 마르크 샤갈.
마르크 샤갈의 작품을 보면 환상적인 동화 같다. 하지만 알고 보면 작품마다 그리움이 깃들어있다. 샤갈은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나 행복한 나날을 보내다 고향을 떠나 미술을 공부하고 그림을 그렸다. 어린 시절의 추억과 고향을 잊지 않았던 샤갈은 작품마다 고향의 풍경, 염소,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사람을 그렸다. 이 밖에도 샤갈의 추억 중 하나인 파리를 상징하는 것들, 사랑의 추억이 담긴 연인도 자주 등장한다. 샤갈은 인간, 동물, 사물, 풍경을 거꾸로 그리거나 공중에 떠 있는 형태로 표현했으며, 여러 대상을 겹쳐 그리기도 했다. 색채까지 화려해서 지금까지 꿈같다는 호평으로 사랑받고 있다.
전쟁으로 인해 고향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었을 때도 판타지적인 화풍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추억이었다. 그리움의 대상을 그림으로 표현하며 상실감을 직면했고, 추억을 떠올리며 하루를 버텼다.
처음에는 뭐라 표현할 수 없는 압도감과 끌림에 샤갈을 좋아했지만, 지금은 좋아하는 이유가 확실해졌다. 아름다웠던 순간들을 기억해 내며 그 힘으로 앞으로 나아가던 샤갈의 방식이 내가 삶을 대하는 방식과 닮았기 때문이다. 나의 어린 시절은 어두웠지만, 추억도 존재한다는 걸 잊지 않았다. 추억은 가족을 향해 희망을 품을 수 있도록 도와줬다. 추억으로 하루를 버티고, 속는 셈 치고 하루를 버텼다.
샤갈은 원래 있던 추억만 생각하지 않았다. 일상에 특별함을 부여하고, 새로운 추억을 만들었다. 계속 쌓아 올린 추억들은 샤갈에게 자양분이 되고, 그림의 소재가 되었다. 이 또한 나와 비슷했다.
밤이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시절에도 1%의 빛을 발견했다. 한 줄기의 빛이라도 차곡차곡 모으다 보니, 조금씩 밝아져 낮이 됐다. 나의 내면적 재산이자 장점은 1%의 빛을 발견하고 저장하는 힘이었다.
그늘이 있어야 더 빛난다.
위의 거장들의 공통점은 그늘이 그들을 더 빛나게 했다는 거다. 자신의 그늘진 면을 회피하지 않고 직면했으며, 예술로 승화했다. 화폭에 옮겨진 그늘은 대중에게 쉼터가 되어줬고,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줬다. 그늘 덕에 그들은 자신만의 고유한 빛으로 반짝였다.
거장들의 그늘진 면만 닮은 게 아니라, 그런 빛나는 면도 닮고 싶다. 나의 그늘이 결국엔 나를 반짝이게 해주며, 빛나는 글을 생산하고, 독자를 감동시켰으면 한다. 이것이 나의 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