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자두야》 본 사람이면 다들 기억하는 장면이 하나 있을 거다. 평소엔 존재감 제로에 가깝던 민지가, 록 음악만 나오면 완전 딴사람이 되는 그 순간. 데스 메탈에 빠져서 방에만 틀어박혀 있어 동네에서 거의 유령 취급을 받던 애였는데, 음악이 나오는 순간만큼은 헤드뱅잉하고 목 놓아 소리를 지르고 완전 자기 세계에 빠져버렸다.
실제로 밴드 라이브 현장에 서 보니까, 그거 과장이 하나도 아니었다. 평소엔 그렇게 얌전하던 사람들이 곡 하나에 완전히 무너지고, 무대랑 객석 경계가 그냥 사라지는 순간이 진짜 있었다.
겉으론 다들 평범한 관객처럼 서 있어도, 사실 마음 한켠에 숨겨둔 취향 하나씩은 있는 법이다. 평소엔 대중가요나 잔잔한 플레이리스트만 듣던 사람도 록 라이브 앞에 서면서 그리고 2026 사운드플래닛에서 그 숨겨둔 취향이 그냥 터져 나온다.
공연장을 둘러보면서 "에바뛰"라고 적힌 깃발이나 부채를 들고 다니는 사람들이 유독 많이 보였는데, 처음엔 그게 뭔가 싶었다가 공연이 진행될수록 자연스럽게 감이 왔다. 그 숨겨둔 취향, 사운드플래닛에서 제대로 확인했다.
'에.바.뛰'라는 깃발모양의 부채를 들고 다니는 사람들을 계속 보다 보니 그 정체를 자연스럽게 알아챘다. 에.바.뛰. 에브리바디 뛰어. 줄임말치고 너무 직설적이라 웃겼다.
"에바뛰"가 정확히 뭔지는 씨엔블루 무대를 보면서 몸으로 알게 됐다. 노래랑 노래 사이, 함성이 잦아들 틈도 없이 바로 다음 곡으로 넘어가는 구성. 무대 위 멤버들이랑 객석이 그냥 하나의 덩어리처럼 움직이는 광경. 여기선 관객이 '보는 사람'이 아니라 공연을 같이 완성하는 사람이었다. 그 감각을 부르는 이름이 바로 에바뛰였다.
씨엔블루 무대는 격렬하게 부딪히는 느낌보단, 오래 알던 노래를 다시 만나는 반가움이 먼저 차오르는 자리에 가까웠다. 익숙한 멜로디가 나올 때마다 여기저기서 자연스럽게 따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고, 그 목소리들이 겹치니까 분위기가 좀 뭉클해졌다. 탄탄한 팬덤이랑 오래 쌓아온 밴드답게, 무대 자체가 추억을 다시 꺼내 보는 시간처럼 흘러갔다.
근데 신기한 게, 그 분위기 속에서도 에바뛰는 끊이지 않았다. 잔잔한 곡에선 다 같이 몸을 좌우로 흔들면서 떼창을 하다가, 텐션이 오르는 구간이 되면 어느새 손이 올라가고 함성이 터졌다. 폭발적이진 않아도 계속 이어지던 에바뛰. 그게 씨엔블루 무대가 준 인상이었다.
씨엔블루가 그리움 쪽으로 흐르는 에바뛰였다면, YB는 완전히 다른 얼굴이었다. 곡이 중반을 넘어가니까 객석 한쪽에서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흩어지더니 커다란 원이 만들어졌다. 서클핏이었다. 누가 신호를 준 것도 아닌데 다들 그 타이밍을 아는 것처럼, 순식간에 원을 그리면서 한 방향으로 뛰기 시작했다. 브레이크 파트가 지나가고 사운드가 다시 치고 올라오는 순간, 그 원은 마치 폭발하듯 안쪽으로 무너지면서 서로 부딪히는 소용돌이가 됐다.
그 소용돌이 한가운데서도 다들 머리를 앞뒤로, 좌우로 세차게 흔들고 있었다. 헤드뱅잉은 서클핏이랑 항상 붙어 다니는 짝 같았다. 뛰다가도 리듬이 바뀌면 자연스럽게 고개가 따라 흔들리고, 곡이 절정으로 갈수록 그 흔들림이 객석 전체로 파도처럼 번져 나갔다. 후렴이 터지는 순간마다 손끝에서는 약속이라도 한 듯 메탈사인이 올라왔다. 검지랑 새끼손가락을 펴고 나머지를 접은 그 손 모양이 하나둘 늘어나다가, 어느 순간 객석 전체를 뒤덮었다. 말이 필요 없었다. 그 손 모양 하나로 지금 다들 같은 감정이라는 게 그냥 통했다.
그 한가운데서 윤도현이 이런 말을 남겼다. 서클핏이든 크라우드 서핑이든 자유롭게 즐기되, 곡과 곡 사이 함성만큼은 절대 멈추지 말라고. 그 말 한마디가 YB 무대 분위기를 정확히 요약하는 문장이었다. 격렬하게 움직이는 것보다 중요한 건, 그 에너지가 끊기지 않고 계속 이어지는 것이었다.
돌이켜보면 이 모든 순간을 가능하게 한 건 사운드플래닛이라는 자리 전체의 구성이었다. 이번 라인업은 전부 밴드 라이브로만 채워져 있었고, 가수랑 가수 사이엔 매번 20분이라는 텀이 있었다. 처음엔 그게 좀 답답했다. 그 시간이면 한 팀 더 세울 수 있을 텐데, 왜 굳이 이 간격을 지키는 걸까 싶었다.
근데 씨엔블루의 잔잔하지만 끊이지 않는 에바뛰랑 YB의 서클핏 한가운데서 터지던 폭발적인 에너지를 연달아 겪고 나니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짧게 스쳐 지나가는 무대가 아니라, 한 팀 한 팀한테 충분한 시간을 주는 대신 그 시간을 온전히 채울 자신이 있는 밴드들만 세운 거였다. 실제로 콘서트장을 자주 다니다 보면 이후로는 음원만 들어선 성에 안 찰 정도로 라이브에 매료되는 사람들이 많다는데, 이날 무대들이 딱 그랬다. 20분을 손해 보더라도, 그 손해를 상쇄하고도 남을 밀도를 관객한테 쏟아부었다.
그래서인지 다른 데서 흔히 보이는 돗자리 풍경이 여기선 별로 없었다. 사람들은 대부분 서서, 뛰면서, 깃발을 흔들면서 공연을 즐겼다. 격렬함의 결은 무대마다 달랐지만, 그 밑에 깔린 진심만큼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았다.
어릴 때 봤던 민지가 록 음악 앞에서만큼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됐던 것처럼, 그 자리에 있던 다들 무대마다 조금씩 다른 얼굴로, 그러나 같은 진심으로 서 있었다. 다음에 또 이런 공연장에 갈 일이 있으면, 이번엔 구경만 하지 않고 처음부터 그 안에 섞여 들어가야겠다. 에바뛰라는 거, 결국 보는 게 아니라 같이 뛰어야 아는 거였다.
김정현 에디터의 인기글
많이 읽힌 글 3편<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