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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조가 어린 조카인 단종의 왕위를 계유정난(癸酉靖難, 1453)을 통해 탈취해 국왕의 자리에 오른 조선의 비운의 역사를 모르는 한국인은 없을 것이다. 많은 영화와 드라마를 통해 이들의 역사와 정치적 반란이 드라마틱하게 연출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그 비운의 중심인 단종에 대해서 깊게 다룬 이야기는 없었다.

    

그래서 오랜만에 조조로 영화관을 발걸음 하게 되었다. 오는 2월 4일 개봉된 영화 <왕과 사는 남자>는 영화는 역사를 기반으로 가미된 창작 이야기로, 비운의 역사를 어린 나이 17세에 감당한 단종(박지훈)과 그의 곁을 마지막까지 지켰던 엄흥도(유해진)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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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의 내용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어

영화를 즐기신 후 함께 감상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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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과 사는 남자, 엄흥도


 

"선한 일을 하다가 화를 당하더라도 내가 달게 받겠노라"

 

위는 실제 엄흥도가 했던 말 "위선피화(僞善被禍) 오소감심(吾所甘心)"이다. 하지만 영화 속 그는 이기적인 인물로 등장한다. 강원도 광천골의 촌장인 그는 사회적 체면을 중시하고, 아버지로서 아들에게 권위적으로 구는 모습으로 사람들을 대한다.

 

그렇게 옆 마을로부터 유배 온 고관대작, 즉 지위가 높은 관직에 있던 사람을 마을에 모시게 되면 마을 전체가 큰 혜택을 얻게 된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작은 아이부터 큰 어른까지 있는 마을은 언제 쌀밥을 먹어봤을지 기억도 안 날 정도로 가난했고, 지형이 삼엄해 식재료를 구하기도 마땅치 않았다. 금맥과 같은 이야기를 들은 엄흥도는 관아에 가 유배지를 지키는 보수주인을 자처한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유배를 온 것은 수염도 나지 않은 어린 나으리였으며, 아무런 희망을 가지지 않은 얼굴의 소년이었다. 매번 끼니를 가져가지만 이를 거절한다.

 

어느 날, 마을 사람들을 통해 그 인물이 바로 최근 세조에 의해 왕위에서 물러난 단종이었다는 것을 알고, 금맥은커녕 나중에 화를 입을지 모르는 화근이라는 것을 깨닫고 깊이 실망한다. 하지만 단종이 마을 사람을 호랑이로부터 구하고, 마을 사람들을 소중히 생각하는 모습을 보고 그의 용맹함과 함께 정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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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적 역사의 주인공 ‘단종’이 아닌 인간, 이홍위(李弘暐) 


 

어머니는 자신을 낳자마자 사망하고, 선왕이었던 아버지마저 보위에 오른 지 2년 만에 사망하여, 어린 나이부터 지독하게 외롭게 자라 1452년 12세의 나이에 재위한 왕의 자리에 올라가게 된다. 어느 날 아버지의 아우였던 수양대군이 본인의 자리를 탈취하고, 자신을 지키던 신하(생육신)들을 처형함으로써 더 처절히 그는 혼자가 되었다. 지켜주는 이 하나 없는 그는 청령포로 유배가게 된다.

 

삶의 의미를 잃은 채 먹지도 않고 잠들지도 못하고, 계속해서 처형된 신하들의 꿈을 꾸는 악몽 같은 나날들을 보내게 된다. 어느 날, 광천골 마을 사람들을 호랑이로부터 구해주게 된다. 또한, 이들에게 글도 가르쳐주고 사람들 곁에서 정을 느끼게 되며 다시 살아가게 된다. 어쩌면 그의 이름처럼 큰 햇빛이 되었을 그의 왕으로서의 면모가 보이게 된다. 궁궐에 있었을 때는 자신을 지켜주던 신하들이 생살을 찢겨 나가는 비명에도 아무 말도 못하고, 목이 잘린 모습을 봐도 아무런 소리를 못 냈을 때와 달리 그의 눈은 이미 범의 눈이 되어 있었다.

 

아마 이 영화의 시작은 다음과 같은 기록에서 출발하지 않았을까.

 

 

단종(端宗) 대왕(大王)이 영월(寧越)에 피하여 계실 적에 금부도사(禁府都事) 왕방연(王邦衍)이 고을에 도착하여 머뭇거리면서 감히 들어가지 못하였고, 정(庭)중(中)에 입시(入侍)하였을 대에 단종 대왕께서 관복(冠服)을 갖추고 마루로 나아오시어 온 이유를 하문하셨으나, 왕방연이 대답하지 못하였었다.

 

그가 봉명신(奉命臣)으로서도 오히려 그러했는데, 그때 앞에서 늘 모시던 공생(貢生) 하나가 차마 하지 못할 일을 스스로 하겠다고 자청하고 나섰다가, 즉시 아홉 구멍으로 피를 쏟고 죽었다.

 

[숙종실록] 권33, 숙종 25년 1월 2일

 

 

가장 영화적이라고 생각했던 단종의 마지막이 실제 기록에도 존재하는 사실이라는 현실에 한참 이 기록을 쳐다봤다. 어째서 공생, 즉 엄흥도가 마지막을 자청했을까. 이 이야기 속 그들은 어떤 심정이었을까.

 

이후 기록에 따르면 시신은 영월의 동강에 버려졌고, 조정의 명으로 인해 시신을 거두는 자는 삼족을 멸한다는 세조의 어명으로 누구도 공개적으로 시신을 수습하거나 장례를 치를 수 없었다. 하지만 영월군의 호장인 엄흥도는 몰래 단종의 시신을 거두어 매장했다고 한다. 그리고 엄흥도는 단종 장례 이후 숨어 살다가 생애를 마쳤으나, 중종 때 조정에서 충절이 논의되어 1876년 충의공(忠毅公)이라는 시호를 받게 된다.

 

영화가 끝난 지금도 엄흥도가 동강에 떠내려가던 이홍위의 시신을 붙잡고 "춥지 않냐"고 말한 장면이 이 리뷰를 쓰는 내내 가슴을 아리게 한다. 왕, 산골 마을 촌장이라는 신분을 넘어 그저 사람으로서 감정을 나눈 그들의 서사가 관객들 마음속에 촉촉하게 적셨다.

 

이처럼 결말은 모두가 알고 있는 역사적 이야기에 도달하지만, 영화는 그저 새드엔딩으로 남게 하고 싶지 않은 듯하다. 마지막이 비록 낭떠러지일지라도 역사 속에 기록되지 않은 그들이 위로되고 찬란하길 바라며.

 

이에 있어 단종 및 이홍위 역의 박지훈 배우와 엄흥도 역의 유해진이 캐릭터가 가지고 있는 감정을 스크린 밖까지 끌어내고 우리가 마치 그 역사 속에 있는 사람처럼 느끼게 해주는 몰입감은 상당했다. 비극적인 이야기라도 그 안에서 사람 냄새 날 수 있게 위트 있지만 해학이 담겨 있는 유해진의 연기와 어리고 나약했던 단종이 내재하고 있었던 강인함을 묵직하게 보여준 박지훈의 눈을 보며, 이 역사를 함께 건너가 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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