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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리뷰에는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담겨있습니다.
나의 이름을 말해야 하는 상황은 나를 다른 사람에게 증명하거나 소개해야 할 때이다.
대부분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에 대해서 아무런 이유 없이 부여받게 된다.
하지만 어느 날, 각자 사람들은 어떠한 계기로 나의 의미, 즉 나의 이름을 사람들에게 소개했을 때 설명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에 대해서 의문을 갖기도 혼란을 얻기도 한다.
어쩌면 우리는 자신의 이름이 가진 의미를 증명하며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그런 사람들 중, 이 영화는 1972년작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로 명성을 얻었던 배우 마리아 슈나이더의 실화를 바탕으로 전개된다.
'딸'로서의 마리아

마리아가 배우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아주 불안하다. 언젠가부터 같이 살지 않는 파리 유명 배우인 아버지의 촬영장을 따라다니게 되며 배우를 꿈꾸게 된다. 이 사실을 안 어머니는 크게 분노해 '이름의 성'에 대해 묻는다. "너는 어머니의 성인 '슈나이더'를 쓰는데 왜 아버지의 길을 가려고 하는지"
한없이 타들어가는 담배가 마음을 대변하는 듯 어머니 '마리 크리스틴 슈나이더'는 이제 더 이상 딸을 보고 싶지 않다며 구타를 하고 쫓아낸다.
삶을 시작하면서 생기게 된 나의 울타리이자 나의 이름을 지어준 엄마가 날 버린 순간, 마리아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어렸을 때부터 부재의 존재였던 아버지를 만나 새로운 '나'로서의 의미를 찾아가려는 순간, 처음 '나로서의 의미'를 부여해준 존재가 나를 버린 순간이 동시간에 존재하게 되었다.
그렇게 마리아는 새로운 '배우'라는 의미로 자신의 이름의 의미를 부여하기로 한다.
'배우'로서의 마리아

신예 배우였던 마리아 슈나이더는 당시 유명한 영화 감독이었던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와 유명 남자 배우 말론 브란도의 영화 주연으로 들어가게 된다. 이미 외설적으로 부적절한 영화로 소문이 자자했지만 신예이지만 자신을 믿었던 감독과 서툰 연기를 같이 공감하고 이끌어주는 주연 배우를 믿으면서 촬영해 나가게 된다.
그러나 하나의 장면이 이 영화를 마리아에게 인생의 가장 큰 상처를 준 작품으로 남게 되었다. 영화 촬영 도중 대본에 나와있지 않은 장면을 마리아와 사전 협의 없이 성관계 장면을 촬영한 것이었다.
감독은 이 장면을 즉흥적이고 사실적으로 표현하고자 의도적으로 마리아에게 말하지 않았다고 하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영화는 대중들에게 큰 흥행을 일으키며 동시에 마리아 또한 큰 주목을 받게 된다.
유명 영화배우인 아버지는 말한다. '배우'에게 주목이란 좋은 의미라고. 아무런 유명세도 없는 '배우'는 의미가 없는 것이라고.
하지만 '마리아'에게 주목은 배우로서의 의미와는 전혀 반대 방향으로 다가왔다. 이러한 장면을 같이 작업했던 감독과 배우 그리고 여러 스태프들의 시선들과 나아가 대중들이 던지는 차가운 시선들은 '배우'로서 보여주려고 했던 '마리아'의 의지와 이름을 잃게 만들었다.

해당 포스터는 영화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 포스터 앞에서 감독과 배우가 기자들 앞에서 사진 찍히는 장면이었는데,
사진에서 보이는 것처럼 화려한 옷처럼 배우로서의 유명세가 높아졌지만 마리아는 허공을 바라보는 듯한 느낌을 보여준다.
실제 마리아 슈나이더는 이 장면에 대해 "두 사람에게 강간당한 기분이었다"라고 심경을 토로했다.
높아진 유명세와 달리 마리아는 끝없이 추락해간다. 클럽에서 터질 듯한 소음과 인파들로 둘러싸인 곳에서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춤을 추기도 하고, 마약에 손을 대며 끝없이 공허한 마음을 채워 나갔다.
'진정한 나'로서의 마리아

어느 날, 마리아는 노아라는 인터뷰어를 만난다. 배우로서의 마리아를 과거 논란이 아닌 배우로서 바라봐주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서 사랑에 빠지고 만다. 노아는 마리아를 스캔들의 주인공이 아닌 한 명의 인간으로, 그리고 재능 있는 배우로 대한다. 처음으로 마리아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는 존재를 만난 것이다.
이 관계를 통해 마리아는 조금씩 자신을 지켜줄 힘을 얻는다.
조금씩 단단해진 마리아는 배우생활을 하면서 한 인터뷰에 들어가게 된다. 배우 생활에 있어서도 사전에 협의되지 않았던 장면이 있다면 감독에게 강경하게 자신의 의지를 이야기하기도 한다. 이전보다는 더 당당하게 배우로서의 인터뷰를 하다가 옆방에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과거 그녀를 무너뜨렸던 사람. 하지만 이제 마리아에게 그는 더 이상 자신을 정의하는 존재가 아니다. 이전에는 너무 혼란스럽기만 한 그의 존재가 이제는 자신과 상관없는 일이며, 이제 마리아의 삶으로서 당당히 나아가는 듯한 아래의 대사를 하며, 영화는 마무리된다.
"모르는 사람이에요, 시작하죠."
'Being Maria'의 의미
나는 이 영화를 영화 원제인 'Being Maria'로서의 의미를 일차원적으로 접근하고 싶었다. 또한 영화를 보게 될 관객들 또한 영화 속 마리아가 아닌 나를 대입해서 보면서 내가 정체성을 찾아갈 때, 혼란스러울 때의 나를 마리아와 공감하면서 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크기변환]MV5BYjIyNTAxN2EtYzExNC00NDZiLWEyMzctZjFkMmE4YWE5MDI3XkEyXkFqcGdeQXVyMTAwMzgzNjIz._V1_.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511/20251125211056_xzhckbti.jpg)
또한, 이 영화를 보면서 1998년 TV 영화이며 안젤리나 졸리가 주연으로 등장했던 'Gia'를 떠올릴 수 있었다. 이 영화의 제목이자 주인공 지아 또한 가정의 불안과 자신의 정체성을 찾던 중 모델로서 유명세를 얻었지만 정작 '지아' 본인의 공허함을 채울 수 없어 비극적인 죽음을 하게 된 이야기다.
'마리아'와 '지아'의 공통점은 명확하다. 두 사람 모두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아래에서도 자신의 이름이 가진 진정한 의미를 찾지 못했다. 불안정한 가정환경, 업계의 착취, 그리고 공허함을 채우기 위한 자기 파괴적 선택들.
지아는 시간이 그녀를 기다려주지 않았지만, 마리아는 자신의 이름을 스스로 되찾게 된다. 노아라는 사람을 통해, 그리고 스스로를 지켜내는 용기를 통해, 마리아는 다시 '마리아 슈나이더'가 될 수 있었다. "모르는 사람이에요"라는 그 한 마디 속에는 과거의 상처로부터 조금씩 자유로워진 한 인간의 당당함이 담겨 있다.
나로서의 의미를 찾아가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아름다워 보이는 배우나 모델이라는 직업이 자신을 채워주지 않는다. 또한 언제 찾을 수 있다는 기한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를 채워가나게 해주는 사람들, 그리고 단단한 나를 만들면서 끝없이 헤쳐나가야 한다고 그녀들의 이름이 알려주고 있다.

그중 우리는 이 영화를 통해 '마리아 슈나이더'라는 이름을 기억할 수 있었다. 11월 26일 개봉하니 이름을 가진 모든 사람들이 관람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