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에세이] 분홍은 없는 색

분홍과 무지개

by 김유라 에디터
2026.08.02 14:54

[크기변환]alistair-macrobert-UI4lA6hZlQE-unsplash.jpg

 

 

빨주노초파남보.


이 일곱 빛깔이 하늘에 보이는 순간 우리들은 환호한다. 카메라를 하늘에 향하기도, 가던 길을 멈추어 멍하니 바라보기도, 일행을 툭툭 치며 손 끝으로 가리키기도 한다. 비단 흔치 않은 일이라 그런 것은 아닐 테다. 누가 보아도 그 일곱 색깔은 누군가가 하늘에 물감을 칠하고 거짓말을 하듯, 비현실적으로 아름답기 때문이다. 그 덕에 우리들은 무지개를 아직 보지 못한 순간부터 무지개의 존재를 알고, 그를 통해 색을 배운다. 이렇게 배운 색은 때로 우리의 성격이나 심리를 대변하는 존재로 탈바꿈되기도 한다.

 

그런데 무언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빨주노초파남보, 색의 정렬을 다시 한번 읊조려본다. 빨주노초파남보, 빨주노초파남보…… 원래부터 분홍이 없었던가.


분홍은 많은 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색으로 꼽는 색이다. 과거에는 남성적인 색으로 여겨지다 현대에 와서는 그 어떤 색보다 여성적이고 로맨틱한 힘을 가진 색으로 뽑힌다. 그렇다면 이렇게 강력한 힘을 가진 색이 왜 무지개의 빛깔에는 포함되지 못한 걸까. 그 이유는 파장에 있다. 무지개의 일곱 색깔은 가시광선의 스펙트럼에 따른 분류이다. 각각의 색깔은 각기 다른 파장을 가진다. 물론 인간에 의해 인위적으로 일곱 가지로 분류되었지만 말이다. 그러나 분홍은 하나의 파장이 아니다. 다른 색상처럼 개별 파장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분홍색을 보고 인지할 수 있으며 타인과 공유할 수도 있다.


이는 분홍색이 우리의 지각에 의해 만들어진 색이기 때문이다. 빨강과 보라 사이에는 끊어진 간극이 존재한다. 빨강과 보라를 동시에 받아들인 뇌는 어떻게든 이 틈을 메꾸려 하다 결국 분홍이라는 새로운 색을 만들어낸다. 빨강의 긴 파장과 보라의 짧은 파장이 섞여, 분홍이라는 뇌의 착각이 태어난 것이다. 분홍은 빛의 어느 지점에서 태어난 색이 아니라, 그 끝과 끝을 이어 붙이려는 뇌의 습관에서 태어난 색이다.

 

 

kym-mackinnon-2NnS34YfJAQ-unsplash.jpg

 

 

이상하게도 나는 이 이야기를 알게 된 후로 분홍을 마주할 때마다 묘한 기분이 들었다. 인지하지만 실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색을 우리는 너무 쉽게, 그리고 많이 사랑하고 있다. 머릿속에서 만들어진 색을 그것이 실재하는 것처럼 이름 지어주고, 믿고, 사랑한다. 그런데 곰곰히 생각해보니, 분홍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분홍은 뇌가 끊어진 빛을 잇기 위해 만든 색이었다. 우리는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수 없이 많은 빈칸을 메우며 살아간다. 밤하늘을 올려다보면 자잘한 별들이 불규칙하고 무의미하게 산재되어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사이에서 익숙한 모양을 발견하고, 별자리를 만들어 냈다. 매일 밤 펼쳐지는 광활한 어둠 위에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를 얹는다. 별자리만 그런 것은 아니다. 우리는 낯선 이의 몇 마디 말로 성격을 짐작하고, 오래된 사진 몇 장으로 추억이라는 시절을 만든다. 수 많은 우연을 운명이라고 이름 붙이고, 셀 수 없는 순간들을 사랑이라 부른다.


살아가면서 사랑이라는 단어는 수도 없이 입에 올려진다. 철 지난 유행가의 가사부터 연인 사이의 달콤한 속삭임까지 사랑이라는 단어가 없다면 세상이 돌아갈 수가 없을 정도이다. 하지만 사랑은 하나의 사건이 아니다. 어느 한 순간을 사랑이라고 정의 내릴 수 있을까. 분홍이 하나의 파장이 아닌 것처럼, 사랑도 하나의 순간이 아니다. 여러 파장을 하나의 색으로 인식하듯이 수 많은 경험의 중첩이 우리에게 사랑이라는 하나의 이름을 떠오르게 하는 것이다. 뒤돌아서자마자 밀려온 아쉬움, 함께 걷던 저녁의 노을, 몇 번이고 지웠다 쓴 편지, 세상에 단 하나의 선택지만 남은 듯 놓지 못하던 손.


분홍은 무지개에 들어가지 못했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 색을 가장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끊어진 빛을 이어 분홍을 만들고, 흩어진 별을 이어 이야기를 만들고, 셀 수 없는 순간을 이어 사랑을 만든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는 발견된 세계라기보다, 수 많은 빈틈을 메우며 완성해 온 세계에 가깝다. 어쩌면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존재의 여부보다, 존재한다고 함께 믿을 수 있는 빈틈의 여부 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빈틈을 불완전 함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의미는 언제나 그 빈틈을 잇는 순간에 생겨난다.


삶의 어느 순간, 또 다시 하늘 위 무지개를 만날 것이다. 그때가 오면 나는 무지개의 끝과 끝을 동시에 바라보고 싶다. 그 간극에서만 태어날 수 있는 것들이 있다는 사실을 이제는 알게 되었으니까 말이다.

 

 

pietro-dona-BWppZA4AraM-unsplash.jpg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