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모두 각자가 욕망하는 것들이 있다. 그것이 물질적이든, 정신적이든 가리지 않고 우리들은 늘 무언가를 원하곤 한다. 자연 그 자체를 소유하고자 잘 꾸민 정원으로 자연의 축소판을 가진다든가, 나의 정체성을 한눈에 보여주기 위해 옷을 구매하기도 한다. 특히 무언가를 가지고 싶어 하는 마음은 좋아하는 분야에서 더욱 커진다. 그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한 분야에서 놀라울 정도로 방대한 양의 물건을 수집하기도 하고, 희귀한 컬렉션을 모으기도 한다. 그리 거창하지 않아도 소소하게 수집을 하는 행위는 취미에 있어서 꽤나 필수적인 요소이기도 하다.
나 또한 대단한 컬렉션은 없지만, 소소하게 수집을 이어가는 분야들이 있다. 향수를 워낙 좋아해 조금씩 모은 향수는 벌써 20여개가 되어가고, 만년필과 글라스 펜 등 필기구도 5-6개 정도 모았다. 쥬얼리도 좋아해서 생일 때 선물로 조금씩 받아 모은 것들이 벌써 몇개 되어가고 있다. 비록 원하는 대로 다 구매하고 가질 수는 없지만, 조금씩 조금씩 모아가는 것이 더 뿌듯하고 재미있게 느껴지곤 했다. 한정된 재화 안에서 고민하고 또 고민해 진짜 원하는 물건 들로만 모아놓은 컬렉션은 오히려 값지게 느껴졌다.
조금씩 모아가는 수집에 큰 재미를 느끼는 나이기에, 좋아하는 분야에서는 늘 작은 무언가 라도 가지고 있던 것 같다. 그러나 그런 나도 좋아하면서도 가지지 못한 분야가 있었다. 바로 예술 작품들이다. 아마 그림을 보거나 전시회를 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모두 공감할 것이다. 작품들을 보다 보면 나도 소유하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는 것을 말이다. 그럼에도 선뜻 작품을 소장하지 못하는 것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 첫번째로, 필수품이 아니다. 물론 취미로 모으는 것들에 생활 필수품이 얼마나 되겠냐마는, 예술 작품은 말 그대로 ‘작품’으로써의 기능만 한다. 따로 일상에서 지니고 다니면서 활용하기는 힘들다. 두번째는, 어렵다. 예술에 대해 잘 알아야만 살 수 있을 것 같은 느낌도 들고 갤러리 등을 방문하면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에 선뜻 물어보기 어렵다고 느껴진다. 세번째는, 가격이다. 예술작품만큼 가격이 천차만별인 경우도 드물 것이다. 물론 신진 작가의 작은 작품은 꽤나 합리적인 가격이지만, 현실적으로 앞서 말했듯 필수품이 아닌 것에 돈을 선뜻 쓰기 어려운 것 또한 사실이다.
나도 이런 여러 이유로 늘 작품을 구매하고 싶었음에도 선뜻 나서지 못했다. 그럼에도 늘 구매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아트 페어인 키아프와 프리즈 서울을 몇 년째 매년 다녀오고 있었다. 줄기차게 다니는 동안 수없이 많은 작품들을 직접 만나며 너무나 즐거웠지만, 결국 구매하지는 못했다. 누군가에게는 아닐 수 있지만, 나에게는 몇백만원이어도 너무나 큰 돈이었기에 선뜻 결제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 올해, 감사하게도 나에게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돈이 생겼다. 정말 의미 있게 쓰고 싶었던 돈이기에, 어떻게 써야할까 많은 고민을 했다.
처음에는 오래동안 들 수 있게 명품 가방을 사볼까 했다. 아직 명품가방이 없어서, 앞으로 결혼하면 중요한 자리에 들고 다니기 위해 사볼까 하는 마음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다지 그 선택에 끌리지 않는 나를 발견했다. 애초에 명품 가방에 그리 욕심이 크지 않기도 하고, 아무리 애지중지 들어도 언젠가는 해지고 유행이 지날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아직까지 나에게 그 돈만큼의 가치로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러다 생각난 것이 며칠 뒤 가기로 한 키아프였다. 그 순간 내가 왜 이걸 잊고 있었지? 하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그리도 사고 싶었지만 선뜻 구매하지 못했던 나날들이 떠올랐다. 이번 키아프에서는 무조건 구매하리라 다짐을 했다. 그렇게 키아프의 첫날, 바로 방문했다. 물론 예산이 정해져 있었지만, 실제로 살 수 있다는 마음을 먹으니 그림을 보는 느낌도 다르게 느껴졌다. 가격도 꼼꼼히 보고, 가격이 예산 안에 들어와도 내 마음에 쏙 드는지, 내 마음을 울리는지 또한 느끼며 열심히 돌아다녔다.
그러다 한 부스에서 모든게 정말 마음에 쏙 들어오는 그림을 만났다. 예산과 그림 자체 모두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 바로 황예랑 작가님의 <새 보는 법>이라는 작품이었다. 처음엔 오묘한 색채와 느낌에 눈길이 갔다. 그러고 두번째에는 그림의 내용이 눈에 들어왔다. 저 멀리 날아가고 있는 새들과 그를 조용히 관찰하고 있는 한 사람. 탐조를 좋아하는 나의 마음에 안들 수가 없는 그림이었다. 또 그림의 재료 또한 마음에 들었다. 아크릴이나 유화도 물론 좋아하지만, 동양화 재료로 그려졌기에 특유의 오묘한 느낌이 나는 듯 했다. 작가님의 다른 그림들도 모두 나의 마음에 쏙 들었다. 왜인지 동화적이면서도 조용하고 기묘한 에너지를 주는 그림들은 다양한 상상을 하게 만들어주었다.
우선 생각을 조금 정리하기 위해 갤러리의 명함만 받아 나와 카페로 향했다. 그렇게 잠시간 앉아서 작가님에 대해 찾아보기도 하고 다른 그림들을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결정을 내리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그 사이 누군가가 먼저 채 갈까 급한 마음으로 부스로 달려갔다. 그렇게 나의 첫 그림 구매가 이어졌다. 그 동안 늘 꿈꾸던 순간은 생각보다 별 것 없이 빠르게 끝났다. 그러나 내 마음의 떨림은 꽤나 오래간 이어졌다. 몇년동안 줄기차게 페어에 다니다 보니 이런 날도 오는구나! 감격스러웠던 마음이 가장 컸던 것 같다. 무엇보다 정말 원하는 것에 의미 있게 돈을 쓴 것 같아서, 뿌듯했다.
그리고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뿌듯한 마음은 여전하다. 변한 건 없지만, 왜인지 내 세상이 한번 더 넓어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누군가는 물을 수 있다. 들고 다니며 자랑하지도, 쓸 수도 없는 것 도대체 왜 샀냐고 말이다. 그러나 그림이 주는 힘을 늘 집에서 느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그림의 쓸모가 아닐까? 또 작품을 구매함으로써 그 작가의 세계의 일부분을 내가 소유하고 있는 기분도 들고 말이다. 사실 다른 이유는 필요치 않고, 그냥 아름다운 것을 가지고 싶은 마음이 가장 솔직할 것이다.
구구절절 글을 썼지만 결국 그림을 사서 기분 좋은 마음을 자랑하고자 하는 글이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예술작품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선뜻 작품을 구매하라고 권하긴 쉽지 않겠지만, 기회가 된다면 꼭 구매해보라는 점이다. 그 동안과는 또 다른 시각과 재미로 작품을 즐길 수 있어지니 말이다. 또 더 많은 이들이 작품을 구매하여 그 허들이 낮아지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언젠가는 가방을 쇼핑하듯 그림을 쇼핑할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라며 글을 마무리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