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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무신론자가 본 파이 이야기 - 라이브 온 스테이지 ‘라이프 오브 파이’ [공연]

죽음은 삶을 부러워하죠. 삶은 정말 아름다우니까요.

by 이진 에디터
2026.01.23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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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지 않는다는 신념 자체를 맹목적으로 믿으며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 내가 그렇다. 이들은 종교가 없거나,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 무신론자다. 어떤 이들은 ‘당연히’ 신이 있다고 믿는 것처럼, 나를 포함한 믿지 않는 이들 또한 ‘당연히’ 눈에 보이지 않는 신은 없다고 믿는다. 신에 의지하며 사는 건 가족과 성장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모태신앙(母胎信仰 : 어머니의 태 안에서부터 물려받아 믿게 된 신앙)’이 그렇다. 믿지 않는 이들 또한 마찬가지다. 이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믿는 것보다 다시 태어나는 게 더 쉬운 사람들이다.


2025년 11월 29일 서울 GS아트센터에서 개막한 라이브 온 스테이지 <라이프 오브 파이>엔 ‘믿음’이란 관념을 두고 대립하는 이들이 등장한다. 가족·동물원의 동물들과 함께 캐나다로 떠나던 중 폭풍을 만나 227일간 바다에서 표류한 소년 ‘파이’, 파이의 생존에 얽힌 비밀을 치밀하게 파고드는 보험사 담당자 ‘오카모토’다.


파이는 믿는 종교만 세 개인, 열린 마음을 가진 소년이다. 그는 채식주의자이며, 어릴 때부터 함께 성장해 온 동물원의 동물들을 가족처럼 아끼고 사랑한다. 파이는 동물원 경영난을 극복하기 위해 아버지가 데려온 벵골 호랑이 ‘리차드 파커’에게 강한 호기심과 이끌림을 느낀다. 하지만 아버지가 미끼로 집어넣은 염소 ‘버킹엄’을 리차드 파커가 잔인하게 잡아먹는 순간부터 파이는 그를 증오한다.


가족들은 더 나은 삶을 위해 캐나다로 떠나게 되지만 새로운 인생에 대한 희망도, 삶도 폭풍우와 함께 바닷물에 잠겨 버린다. 혼자가 된 파이는 함께 살아남은 리차드 파커와 227일간 표류하다 해안가에 다다른다. 파이는 신들을 믿었고, 증오하던 리차드 파커마저 믿게 되며 그를 사랑하게 됐다. 파이는 차라리 죽는 게 나은 절망과 지독한 고독 속에서도 희망을 믿으며 구원받았다. 파이를 살린 생명줄은 믿음과 사랑이었다.


집요하고, 끈질기고, 계산적인 오카모토는 아무것도 믿지 않는 사람이다. 보험사 담당자란 직업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성격 구조 자체가 불신과 냉소로 가득하다. 그는 신을 믿지 않는다. 죽다 살아난 파이가 이야기를 힘겹게 털어놓으며 괴로워할 때조차 오카모토는 차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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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는 다리 다친 얼룩말 ‘블랙 앤 화이트’, 엄마 오랑우탄 ‘오렌지주스’, 하이에나와 함께 겨우 배에 탔지만, 하이에나가 얼룩말과 오랑우탄을 모두 죽였다고 말한다. 그 후 나타난 호랑이 리차드 파커를 호루라기 하나로 길들이고, 227일간 공존을 이어가다 그와 함께 땅을 밟았단 이야기를 오카모토는 믿지 않는다. 논리, 근거, 개연성, 확증을 종교 대신 믿어온 그에겐 파이의 말들은 터무니없는 거짓일 뿐이다.


그럼에도 오카모토의 불신과 냉소엔 조금씩 균열이 인다. ‘누군가는 복권에 당첨된다’, ‘합리적인 것만 따지다 우주를 놓친다’는 파이의 말들 때문이다. 호랑이 리차드 파커와의 표류기 이후 파이가 털어놓은 충격적인 이야기는 오카모토의 신념을 뿌리째 뽑아버린다.


파이와 배에 함께 올랐던 동물들은 인간을 비유한 것이었다. 인간들은 서로를 공격하고 살해했으며, 타인의 살을 먹기까지 했단 파이의 이야기는 지옥도였다. 소중한 이를 지키지 못한 파이는 손에 피를 묻히고, 복수와 생존을 위해 죄를 지으며 살아남았다. 굶주림과 공포, 생존 본능에 사로잡혀 이성을 잃고 미쳐간 그들의 모습은 인간이 아닌 짐승이었다.


동물이 동물을 잡아먹고, 소년과 호랑이가 공존하며 함께 살아남은 것. 인간이 인간을 살육하고 소년은 끔찍한 고통 속에 겨우 목숨을 부지한 것. 둘 중 어느 이야기를 믿고 싶을까. 아름다움과 희망에 대한 믿음, 상상력이라곤 씨가 말라버린 오카모토조차 전자를 택한다. 파이를 추궁하던 오카모토는 그의 아픔에 유감을 표하며, 보고서에 동물 이야기를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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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을 믿는 것만큼이나 살생을 하지 않는단 신념도 충실히 따랐던 채식주의자 파이. 조난된 그는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물고기와 바다거북을 먹었다. 또한 소중한 이를 지키기 위해 살생을 하며 손에 피를 묻혔다. 그가 택한 건 생을 향한 강렬한 의지와 믿음이었다. 절박한 상황 속에서 몸집을 순식간에 불려버린 목숨 같은 믿음이 본래의 신념을 이긴 것이다.


오카모토 또한 마찬가지다. 숫자, 현실, 논리,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것, 신은 없다는 사상을 믿으며 산 오카모토는 환상적이고 비현실적인 ‘파이 이야기’를 믿기를 선택한다. 그게 힘겹게 삶을 지켜낸 파이에 대한 예의이자 인류애였고, 고통 속에서 떠난 이들을 향한 애도였기 때문이었다. 죽음마저 부러워할 정도로 아름답고 소중한 삶이 두 사람을 바꾼 것이다.


얀 마텔 소설 원작 <라이프 오브 파이>는 리안 감독이 만든 동명 영화에 이어 공연으로도 만들어지며 큰 사랑을 받았다. 2025년 말 한국에도 상륙한 작품은 박정민과 박강현이라는 실력과 인기를 두루 갖춘 배우 캐스팅, 실제 동물 움직임과 유사한 퍼펫 티어들의 섬세한 연기, 예술의 영역에 당당히 자리한 환상적인 무대 연출로 연일 화제다.


이처럼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라이프 오브 파이>는 ‘라이브 온 스테이지’란 이름을 달고 스스로 연극이길 거부한다. 그럼에도 <라이프 오브 파이>는 좋은 연극이 갖춰야 할 덕목을 갖고 있다. 꽉 닫힌 결말을 보여주며 후련하게 극장을 나서게 하는 게 아닌, 찜찜하지만 생각할 거리와 토론 주제를 제공한단 점에서 그렇다. 쏟아지는 텍스트의 향연이 배우들의 입에서 관객의 입으로 전해지며 오래 머무른다면, 그 무대는 성공한 무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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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오브 파이>는 자리에 따라 보이는 광경이 다른 작품이기도 하다. 1층 앞자리에 가면 배우와 퍼펫 티어의 움직임·연기는 잘 볼 수 있지만, 작품의 백미인 바닥 연출은 보이지 않는다. 반대로 2, 3층에 가면 무대 연출은 한눈에 볼 수 있지만, 배우의 디테일한 연기를 보기엔 아쉬울 것이다. 객석 위치에 따라 보이는 것이 다르듯, 우리의 인생도 어떤 길을 걸어왔느냐에 따라 보고 느끼는 게 다를 것이다. <라이프 오브 파이>의 파이와 오카모토가 그렇다.


<라이프 오브 파이>와 더불어, 무신론자들에게 믿는 이들의 마음을 쉽게 헤아릴 수 있도록 쓰인 작품은 뮤지컬 <여신님이 보고 계셔>다. <여신님이 보고 계셔>는 6.25 전쟁 중, 무인도에 함께 갇히게 된 남북 군인들이 고통을 견디려 가상의 ‘여신님’을 만들어내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위기를 넘기기 위해 얼렁뚱땅 만들어낸 여신님은 그들의 마음속에선 진짜 위안이 되고, 어느 순간엔 살아있는 존재가 된다. <라이프 오브 파이> 파이가 자기 자신, 믿음을 상징하는 벵골 호랑이 리차드 파커와 표류하다 생존한 것처럼, <여신님이 보고 계셔> 여신님 또한 아픔과 그리움에 잠식된 이들에겐 피부에 와 닿는 온기가 됐다.


상처를 훈장처럼 달고 살아가게 될지라도 파이는 생존했다. 터무니없을지라도 희망을 끝까지 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파이에게도, <여신님이 보고 계셔> 군인들에게도 상상, 환상, 강력한 스토리텔링의 힘은 진통제이자 환각이 됐다. 그 환각은 적어도 그들에겐 ‘진짜’다. 그들이 그렇다면 그게 맞는 것이다. 삶이란 고통을 견디기 위해선 누구에게나 각자만의 진통제와 환각이 필요하다. 그 진통제의 이름은 희망, 그리고 믿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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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8
제리
파이이야기를 처음 소설로 읽고 받은 충격이 너무 커서 영상화되는 작품들은 손 댈 생각을 못했는데 연출이나 무대 장치로 조금의 시선을 돌릴 수 있는 뮤지컬은 오히려 좋은 시작이 될 수도 있겠네요 자리 위치에 따라서 볼 수 있는 시선의 반경이 제한된다는 걸 재치있게 활용했다니 기대감이 더 높아집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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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5.17 16:14:55 1
블랙치즈
저는 아직 소설은 못 읽고, 예전에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올해 초에 이 연극을 몇 차례 관람했었어요. 근데 소설로만 읽어도 충격이 크셨을 정도라니ㅠㅠ 원작도 얼른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기회가 되신다면 영화도 추천드려요!

연극은 올해 초에 막을 내렸지만 흥행도 너무 잘 됐고ㅎㅎㅎ 작품성도 인정받은 화제작이라 아마 또 오지 않을까 싶어요~ 영화도 무대극도 둘 다 좋은 작품이라 한 번은 보실 수 있길 바라며:) 말씀하신 대로 무대 연출을 너무 잘한 작품이라 감탄하며 봤던 기억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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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5.20 19:15:52 0
소현
진님, 적어주신 글 잘 읽었어요. 특히 객석의 위치에 따라 보이는 광경이 달라지듯, 삶 또한 각자가 걸어온 길에 따라 보고 느끼는 것이 달라진다는 부분이 유독 기억에 남네요.
저는 늘, 내가 더 좋은 자리에 앉지 못했다는 사실에만 집중해서 지금 제 자리를 불평하기 바빴거든요. 그런데 진님의 글을 읽으면서 어쩌면 지금 제 자리에서만 보이는 풍경도 분명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글을 읽으면서 그게 무엇일지 찬찬히 들여다보고 싶어졌습니다. 설령 아직 선명히 보이지 않더라도, 그런 믿음이 제게 주어진 하루를 조금 더 풍요롭게 만들어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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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5.18 16:56:55 1
블랙치즈
자리에 대한 소현님의 사유에 감탄하게 됩니다ㅠㅠ 전 정말 문맥 그대로 자리에 따라 시야가 달라진다는 뜻을 쓴 건데 소현님의 댓글을 보며 제 자신도 돌아보게 되네요ㅜㅜ 삶을 살아가며 우리가 앉는 '자리'는 직업, 재산, 사는 곳, 어떤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가는지 등등 여러 가지가 있는 것 같아요~ 저도 말씀하신 것처럼 원하는 걸 못 얻거나 일이 잘 안 풀릴 때 불평 많이 했었구요ㅠㅠ

근데 마냥 장점만 있는 자리도 없고, 반대로 나쁘기만 한 자리도 없더라구요. 뭘 얻고 뭘 포기할지는 개인의 가치관에 따라 다 다른 거고, 스스로가 가장 행복할 수 있는 자리를 찾아가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저도 아직 완벽한 답을 찾진 못했지만요ㅠㅠ 소현님의 자리에서 볼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찾으시길 바라며, 저를 되돌아보게 되는 좋은 말씀도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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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5.20 19:23:48 1
스누피횬이
인생에서 처한 위치에 따라 믿음과 신념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다룬 뮤지컬(혹은 공연)에 대한 진이님의 글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물이 반밖에 없다” 혹은 “물이 반이나 있다”라는 표현처럼, 우리의 태도와 신념 역시 주변 환경과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게 됩니다.

공연 <라이프 오브 파이>는 현재 종료되었지만, 혹시 비슷한 공연이 있다면 좌석 위치를 달리해 두 번 관람해 보고, 그에 따라 어떤 차이를 느끼게 되는지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고 싶네요. (윤재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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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5.19 22:58:12 1
블랙치즈
물이 반밖에 없다/물이 반이나 있다는 재현님의 말씀이 인생을 어떤 태도로 살 것인가에 가장 적합한 예시라는 생각이 들어요:) 연극 라이프 오브 파이에선 종교적인 두 신념을 중심에 두고 극을 풀어갔지만, 실제 우리 삶에선 훨씬 더 다양한 종류의 믿음이 충돌할 때가 많은 것 같아요. 타인과의 대립보다 자기 안에서의 두 믿음이 부딪칠 때가 더 괴로울 때도 많구요ㅠㅠ 덕분에 저도 오랜만에 라이프 오브 파이를 봤던 기억을 떠올리며 생각을 곱씹어 보게 되네요~

라이프 오브 파이 무대 연출과는 다르지만, 지금 하고 있는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도 자리에 따라 보이는 게 다르단 생각이 들어요. 발레리노가 되고 싶은 소년의 꿈을 다룬 극이기도 하지만 가족, 마을 사람들, 공동체에 대한 이야기도 깊게 풀어가고 있기 때문에 단체 군무 장면은 멀리서 보는 게 훨씬 좋더라구요. 명작이라 기회 되시면 한번은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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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5.20 19:46:08 0
루루
안녕하세요, 진님. 진님의 글을 읽다 보니, 〈라이프 오브 파이〉를 영화로 처음 접했을 때가 생각이 납니다. 너무나도 환상적인 모험이었던 파이의 이야기가 결국 살아남기 위해, 혹은 또다시 살아가기 위해 처절히 지어낸 믿음임을 알았을 때의 충격이란. 당시 주인공의 이야기가 너무 압도적이어서 그와는 반대 성향인 오카모토 씨는 잘 기억이 나지 않았는데, 진님 말대로 항시 논리적이고 냉철했던 무신론자인 그의 마음을 끝내 뒤흔든 것은 같은 인간으로서 드는 애처로움과 애도의 마음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저는 인간이 '신'이라는 존재를 믿건 믿지 않건 간에, '종교심'은 모두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이 글의 마지막 부분에서 말씀하셨던, '삶이란 고통을 견디기 위해선 누구에게나 각자만의 진통제와 환각이 필요하다. 그 진통제의 이름은 희망, 그리고 믿음이다.'라는 부분이 그러한 종교심의 뿌리를 설명해 주고 있는 것 같아, 사뭇 흥미로웠습니다.

연극 버전인 〈라이프 오브 파이〉도 꼭 한번 보고 싶어지는 밤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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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5.20 00:26:34 1
블랙치즈
저는 영화를 본지 오래돼서 자세하겐 떠오르진 않지만, 이야기와 영상미에 압도당했던 느낌만큼은 또렷하게 기억나요:) 내용을 전혀 모르고 봤었어서 드러나는 진실에 너무 마음이 아팠구요ㅠㅠ 연극 라이프 오브 파이는 파이와 오카모토의 사상 대립 장면을 연출적/연기적으로 모두 강조했었어서 후반부 여운이 엄청 컸던 기억이에요.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처럼 차갑게 연기하시던 오카모토 배우님이 진실을 안 후엔 신념을 굽히곤 파이에게 유감을 표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구요ㅠㅠ

종교심에 대한 말씀도 인상적이에요~:) 저는 무신론자라 라이프 오브 파이를 보며 믿음은 고통을 견디는 수단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저 또한 신을 믿진 않아도 저만의 믿음을 갖고 살고 있구요~ 믿는 대상이 신이든 아니든 일말의 기대와 믿음, 희망 없는 인생은 정신이 죽은 거나 다름없단 생각도 듭니다ㅠㅠ 라이프 오브 파이는 올해 초에 끝났지만 흥행도 잘 됐고 작품성도 좋아서 언젠간 또 오지 않을까 싶어요~ 꼭 보실 수 있길 바라며:) 부족한 글 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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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5.20 20:06:54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