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만심과 열등감은 종이의 양면과 같다. 둘은 종이처럼 분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콤플렉스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사람을 보면 기저엔 묘한 우월감이 깔린 걸 알 수 있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누군가의 오만함과 편협함, 자기방어를 따라가다 보면 그 사람이 감추고 싶어 하는 열등감의 뿌리를 발견하게 된다.
호모포비아(Homophobia : 동성애를 병적으로 싫어하고 미워하는 생각이나 증세) 사상을 가진 이들 중 몇몇 사례가 이를 증명한다. 나와 다르단 이유로 동성애를 혐오하는 이들이 대다수지만, 그들 중 일부는 자신도 동성에게 끌려본 적이 있기에 호모포비아가 됐다. 나 자신을 용서할 수 없기에 나 같은 이들을 더 공격하는 것이다.
연극 <보이즈 인 더 밴드>에선 동성에게 끌리는 자신을 혐오하는 남자들이 등장한다. 주인공 마이클과 그의 대학 동기 앨런이 그렇다. 마이클은 성당에 다니는 신자이며, 주변인에게 성 정체성을 이해받지 못했다. 그는 남자들과 감정을 주고받았으며, 함께 밤을 보냈던 이와 아무렇지 않게 친구로 지내기도 한다. 앨런은 겉으론 주류의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인다. 변호사이며, 겉모습도 멀끔하고, 아내와 아이들도 있다. 하지만 그는 손에 쥔 것들을 잃을 수 없으며, 자신의 진짜 얼굴을 볼 용기가 없었기에 벽장에서 못 나왔다. 그들은 누구도 제대로 사랑해 본 적이 없거나, 혹은 과거에 사랑했던 이에게 마음을 꺼내놓지 못했다.
연극 <보이즈 인 더 밴드>는 마이클과 그의 친구들이 해롤드의 생일파티를 해주며 벌어지는 몇 시간 동안의 일들을 다룬 연극이다. 등장하는 아홉 명은 모두 동성애자거나 양성애자다. 해롤드 생일파티를 앞장서서 준비하던 마이클은 별안간 ‘전화 게임’을 제안한다. 가장 사랑했던 한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사랑한다고 말해야 하는 게임이다.
이들이 이성애자고, 나이가 어렸다면 금방 잊힐 유치한 장난일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같은 남자를 사랑했으며, 극 중 나이도 30대에서 40대다. 전화 게임으로 많은 걸 잃을 수 있단 뜻이다. 또한 극작가 마트 크롤리(Mart Crowley)가 뉴욕에서 <보이즈 인 더 밴드>를 처음 선보인 해는 1968년이었다. 당시 동성애자는 정신병자 취급을 받았으며, 그들은 경찰의 억압을 피해 몰래 만나야 했다. 이는 정신과 치료를 받는 도날드, 현관문을 두드리며 경찰이라고 장난치는 에머리의 농담에도 경직되는 모두를 보면 알 수 있다.
마이클이 시작한 전화 게임은 아웃팅(Outing : 동성애자라는 사실이 타인에 의해 강제로 밝혀지는 일)의 가능성도 품고 있다. 마이클은 게임 점수까지 매기며 친구들의 부끄러움을 즐긴다. 모두를 위험에 빠트리면서도 자기 패는 내놓지 않는 비겁한 모순의 실체는 후반부에 드러난다. 그가 친구들을 몰아붙이고, 혐오했던 모든 언행은 스스로를 향한 것이었다. 지난 행동을 후회하며 괴로워하는 그는 자신이 낸 상처의 고통에 괴로워한다.
9월 28일 오후 6시 공연에서 마이클로 무대에 오른 박정복은, 뛰어난 연기력과 몰입력·무대 장악력으로 모순적인 마이클을 관객에게 이해시키며 극을 이끌어 갔다.
해롤드는 마이클과 각별했지만, 완전히 가까워질 수는 없는 맞수다. 해롤드는 마이클의 모순과 자기혐오, 공허함까지 전부 꿰뚫어 본다. 그들은 서로를 잘 알기에 상대방을 애증한다. 파티 주인공인데도 가장 늦게 온 해롤드는 피부 및 외모 콤플렉스로 약에 의지해야만 집을 나설 수 있다. 마이클과는 다른 결로 자신을 싫어하는 그가 ‘퀸’처럼 당당한 건 약과 얼굴을 가린 선글라스, 과장된 헤어스타일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해롤드는 자신을 혐오하는 마이클의 발악은 소용없단 걸 진작 깨달았을 것이다.
초연에 이어 재연에도 해롤드를 연기한 박은석은 나른한 말투와 섬세한 감정, 독보적인 존재감으로 객석을 해롤드의 매력에 빠트렸다.
사랑이 누군지도 모르거나, 사랑 앞에서 비겁한 마이클·앨런과 차원이 다른 정반대의 인물들은 에머리·버나드다. 그들은 전화 게임이 시작되자 한 사람을 떠올리곤 첫사랑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그들의 첫사랑은 여자와 데이트 중이거나, 혹은 그들을 기억조차 못 한다.
밴드 안에서 성 정체성을 당당하게 드러내던 그들은 수화기를 들자마자 위축된다. 버나드는 첫사랑에게 연락한 걸 후회하고, 소위 전형적인 게이 말투였던 에머리의 전화 말투는 더없이 소심하다. 버나드는 흑인이며, 그가 못 잊는 첫사랑은 어머니가 전에 일했던 집 아들이었다. 버나드는 당시 억압받던 동성애자인 것에 더해, 인종과 사회적 계급까지 비주류다. 하지만 두려움 앞에서도 한 사람을 떠올린 마음만큼은 용감하고 순수했다.
자신감 있는 겉모습과 반대로 속 깊고 여린 내면의 에머리를 연기한 홍순기, 첫사랑의 순정을 간직한 버나드를 연기한 김준호는 전화 게임 장면으로 관객의 마음을 울렸다.
래리와 행크는 동거 중인 커플이다. 수학 교사인 행크는 결혼 후 성 정체성을 깨닫고 가정을 버렸다. 상업 예술가 래리는 폴리아모리(Polyamorie : 비독점적 다자 연애, 한 사람이 여러 명의 파트너와 관여하는 것. 모든 당사자의 동의하에 이뤄짐)다. 행크는 겉으로 ‘티 안 나는’ 동성애자, 혹은 양성애자다. 그래서 스스로를 부정하는 호모포비아이자 클로짓게이 앨런은 행크가 자신과 비슷한 부류라 착각하며 친해지고 싶어 한다. 행크도 앨런처럼 아내와 아이들이 있지만, 행크는 가정을 떠났다. 래리는 행크의 가정을 깬 죄책감에 짓눌리면서도, 행크와 앨런이 친해지자 질투한다. 이처럼 행크와 래리는 모순덩어리다.
래리와 행크는 전화 게임으로 마음을 확인하고 다시 사랑에 빠진다. 서로를 이해 못 해 위태로웠던 그들이 극적으로 연결되는 장면은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이 과정에서 행크는 커밍아웃까지 하며 래리에게 구애한다. 그는 나쁜 남편이자 아버지지만, 뒤늦게 찾은 사랑인 래리에겐 순정을 바친다.
행크 역의 허영손, 래리 역의 강은빈은 위태로운 커플의 권태와 관계 회복을 드라마틱한 감정선으로 그려냈다. 클로짓게이인 자신을 끝내 용서하지 못하는 앨런을 연기한 정상윤 또한 이중적인 앨런의 복잡한 내면을 설득력 있게 그려냈다.
이처럼 <보이즈 인 더 밴드>의 모든 인물은 긍정적·부정적 특성이 섞인 다면적이고 입체적인 사람들이다. 이들을 관통하는 정서는 ‘모순’이다. 이러한 모순을 이해하기 힘들고, 때론 화가 치밀지라도 마냥 덮어놓고 비난만 할 수는 없다. 2025년인 지금도 성 정체성을 드러내기 힘든데, 경찰들이 동성애자를 탄압했던 1960년대를 살아가려면 모순이란 갑옷을 입어야 했을 것이다. 그들은 동성에게 끌리면서도 상대방과 나를 혐오하고, 진짜 사랑 앞에선 작아지며, 자신은 숨어 살면서 타인에겐 커밍아웃을 강요한다.
오늘날을 살아가는 성소수자들도 모순이란 껍질을 완전히 벗진 못했을 것이다. 그들은 진짜 얼굴을 숨기고 평범한 척 세상에 섞여 있다. 그래야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전화 게임 장면을 보면 오래된 작품인 게 느껴지지만, 성소수자들이 여전히 숨어 살아야 하는 건 오늘날과 다를 바 없단 게 씁쓸한 점이다. 극에서 드러나는 시대를 초월하는 보편적인 감각과 메시지 또한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I love every scars, I am not perfect but I am who I am I rise and fall.’ (‘난 모든 흉터들을 사랑해, 난 완벽하지 않지만 난 나야, 난 오르고 또 넘어져.’)
<보이즈 인 더 밴드> 한국 프로덕션이 제작한 극 중 삽입곡 ‘Who I am’ 가사 일부다. 성종완 연출이 노랫말을 쓰고 이나경이 곡을 만들었다. 블루스 버전과 댄스 버전 두 가지로 만들어진 곡은 극 분위기와도 잘 맞으며, 작품 메시지도 가사로 뚜렷하게 드러난다.
사랑에는 준비물이 필요하단 것이다. 그건 외모, 사회적 위치, 상대방을 재보는 것이 아니다. 나를 먼저 사랑하는 게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기 전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다. 간단해 보이지만 어려운 일이다. 그걸 못 해 타인을 진심으로 사랑하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
자기혐오는 자신뿐 아니라 타인까지 겨누며 서로를 상처 입힌다. <보이즈 인 더 밴드> 인물들처럼 성 정체성과 연관된 자기혐오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조금씩은 스스로를 괴롭히며 모질게 군다. 남들과는 다르거나 부족한 부분이 많더라도 그게 죄는 아니다. 진짜 잘못은 나 자신을 사랑해 주지 않는 것이다.
<보이즈 인 더 밴드> 인물들은 세상뿐 아니라 관객에게도 과거와 사연을 온전히 드러내지 않아 그들을 제대로 알긴 어렵다. 하지만 마이클을 향한 해롤드의 대사에서 작품을 이해할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넌 누구도 제대로 사랑해 본 적이 없으니, 전화를 걸 데도 없는 거라고. 마이클이 해야 할 일은 자신에게 먼저 전화를 걸어 사랑한다고 말해주는 거였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