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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숨죽은 도시 속 안개 낀 본능의 공명, 비제로(BASEMENTZEROFLOOR)

인디로운 음악생활 #5

by 임지우 에디터
2026.04.24 13:29



슈게이즈(Shoegaze)는 언제나 ‘수면 아래’에 존재해온 음악이었다. 거대한 음압의 층과 기타 노이즈 속에 감정을 숨겨두는 장르 특유의 문법은 불친절함으로 비춰졌고, 그 진입장벽을 깨고자 한 소수의 이들에게 사랑받는 ‘마이너’ 음악으로 분류돼왔다. 그래서 더 오래 살아남았다. 몇 개월 전 필자는 슈게이즈를 ‘고래의 숨쉬기‘ 같은 음악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고래처럼 거대한 몸집의 생물체가 오랜 잠수 끝에 내뱉는 숨을 상상해 보자. 고래의 날숨으로 발생한 물보라와 파동은 어디까지 갈까. 그렇게 잠잠하다가도 한 번씩, 모습을 드러내 수많은 음악가들에게 파동을 선사하는 음악이 바로 슈게이즈다.


그렇게 마주한 2020년대의 슈게이즈 리바이벌은, 시간의 흐름만큼이나 과거와는 사뭇 다른 사운드를 보여준다. 태동기의 슈게이즈는 ‘보이지 않음’에 가까운 음악이었다. 너무 많은 것들이 겹쳐져 무엇이 중심인지 알 수 없는 까닭이다. 보컬 멜로디가 존재는 하지만, 결코 음악을 끌고 나가는 주인공은 아니다. 지글거리는 기타 노이즈, 혹은 빙빙 도는 공간계 이펙트가 더 치고 나오기도 한다. ‘슈게이즈는 크게 들을수록 좋다’는 속설이 이런 것에서 시작되지 않았나 한다. 글자가 안보이면 돋보기를 쓰는 것처럼, 깜지 쓰듯 쌓인 소리의 층계 속에 파묻혀버리고 마는 것이 가장 직관적인 감상법 아니겠는가.


한편 개인적으로 평가하는 2020년대의 슈게이즈는 ‘선택과 집중‘이 된 듯한 사운드를 들려준다.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My Bloody Valentine) 처럼 기타의 ’트레몰로 암’을 잡고 흔들며 울렁이는 노이즈에 잠식되도록 하거나, 슬로다이브(Slowdive)처럼 촉촉한 공간감을 내세워 청자를 우주로 보내버리거나, 아니면 데프톤즈(Deftones) 그것처럼 그런지나 메탈의 느낌이 섞인 쇠맛나는 음악을 선보이거나 등. 슈게이즈 마니아라면 몇 곡만 들어도 팀의 추구미를 확연히 구분할 수 있는 요즘이다. 그런 의미에서 ’정통파‘를 찾아보기가 쉽지 않은데, 정통 슈게이즈란 무엇이며, 어떤 장르이건 ’정통파’라는 것이 존재할 수는 있는 것인지에 대한 흥미로운 궁금증도 커져만 가는 요즘이다. 물론 이런 사색감들이야 헤비 리스너들의 놀이 중 일부일 뿐, 스스로에게 듣기 좋으면 그만이다.


서론이 길었다. 어쩌다 보니 한국의 슈게이즈 밴드들을 연이어 소개하고 있다. 오늘 소개할 팀 역시, 슈게이즈를 표방하되 스스로 ’사파’라고 말하는 대구의 젊은 밴드다. 로컬 음악 신에서 꾸준히 성장해, 서울과 경상을 오가며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비제로(BASEMENTZEROFLOOR)의 조탁, 서현, 오민(베이스 세션)과의 음악 만담회를 여러분과 공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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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드 비제로(BASEMENTZEROFLOOR) 왼쪽부터 유진(보컬), 폴라(베이스), 녹광(키보드), 서현(드럼), 조탁(기타, 리더)

*베이스 멤버인 폴라는 국방의 의무를 다하고 있다.



밴드 비제로(BASEMENTZEROFLOOR)


텅 비어버린 세상 속 남겨진 우리들, 기억해야 할 것들과 잊혀지는 것들에 대한 고민을 노이지(noisy)하고 몽환적인 사운드로 표현한다.

 

2025년 데뷔, 대구와 서울을 오가며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따끈한 신예 밴드다.

 

*

 

조탁: “안녕하세요, 1집 가수입니다”


서현: 저희는 BASEMENTZEROFLOOR, 줄여서 비제로라고 합니다. 지난 1월 16일에 정규앨범 Laplace를 발매했고, 현재는 EP 발매를 계획 중에 있습니다.



반갑습니다. 팀명 ‘비제로(BASEMENTZEROFLOOR)’, 어떤 의미인가요?


오민(베이스 세션): 저희는 모두 같은 대학 동아리에서 만났어요. 이때 동아리 방이 지하도 아니고, 지상도 아닌 애매한 공간에 있었거든요. 거기서 착안을 해서 ‘지하 0층‘이라는 개념을 만들었어요.


조탁: 지하 0층이라는 말 자체가 성립이 안 되잖아요? 물론 유럽에선 0층이라는 개념이 있지만, 지층인 그라운드(ground)를 뜻하는 말이니 지하가 아니고요. 지하 0층은 어디에도 실체가 없는, 존재하지 않는 공간을 이야기해요.



동아리에서 지금의 멤버들이 어떻게 모이게 되었는지, 결성 비하인드를 더 풀어주신다면요.


조탁: 제가 회장이었을 때 서현이가 동아리 부회장이었어요. 이때 둘이 맞출 기회가 많았죠. 유진이, 녹광, 폴라를 그때 뽑기도 했죠.


서현: 그 전해에 제가 2학년이었고, 경험히 많지 않을 때 회장을 맡았어요. 탁이 형이 그때 군대에 있었는데, 맨날 연락해서 회장 업무를 케물었던 기억이 나요.


조탁: 전역 직전에 만박 휴가, 14박 15일을 나왔었는데 그중 13일을 서현이랑 보냈어요. (웃음)


서현: 막상 지금은 더 자주 봐요. 4주 내내.. 일주일에 하루 정도 빼고 계속…


조탁: 왜냐하면 집도 저희 집이랑 서현이네랑 걸어서 20초 거리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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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탁


 

조탁: 전 음악을 버스커버스커 때문에 만들었어요. 제 음악의 기반은 그분들로부터 시작된 거죠. 버스커버스커가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올 때부터의 발자취들을 다 찾아봤어요. 제가 음악을 만드는 방식이나, 코드 보이싱 등은 장범준에게서 영향을 받은 것들이에요.


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 기타를 잡았어요. 그리고 작곡을 시작한 건 중학교 1학년 말 즈음.. 대충 휴대폰 녹음기를 켜두는 식에서 기타 프로라는 프로그램으로 노래를 만들곤 했죠. 그렇게 시작해서 나중에는 DAW로 밴드 셋 음악까지 만들게 되었고요. ‘큐베이스 5’를 처음 썼는데, 지금 버전 15까지 나왔으니 시간이 꽤나 흘렀네요.


고등학교 3학년 때, 당시 최신 버전이었던 ‘큐베이스 9.5‘를 사서 1년 정도 쓰다 외장하드가 터지는 사건이 있었어요. 여태껏 작업했던 파일들을 모두 날렸죠. 지금까지 말한 과정에서 만들어진 그 모든 곡들을 다요. 덕분에 힘든 시간들을 보냈죠…

 

조탁: 24년 7월 즈음, 저희 유진이에게 대학가요제 섭외가 들어왔어요. 저는 그때 전역을 하고 베티블루(betti blue)라는 팀으로 활동을 하고 있었죠. 대학가요제 오디션을 위해 유진이가 동아리 사람들 가운데 멤버를 모았어요. 그게 비제로의 시작이죠.

 

콜드플레이(Coldplay)의 히트곡 ‘Yellow’를 슈게이즈 버전으로 편곡을 해서 나갔었는데, 나름 마음에 들어서 이런 색깔로 음악을 해볼까 싶었어요. 마침 대구의 제임스레코드에 갈 일이 있어 사장님과 대화를 나누다가, “저 요새 뭐 슈게이즈 밴드 하나 또 새로 하는 거 있어요” 그랬더니 대뜸 데모 하나를 들어보자고 하시더라고요. 그때 만들어둔 데모가 없었는데, “2주만에 만들어서 드릴게요” 했던 것이 이렇게 일이 커지고 말았죠. 일단 저질렀으니 뭐라도 만들어야 했어요.


서현: 그렇게 탄생한 곡들이 HI, 일렁일렁, TEXTURE 이렇게 세 곡이었어요.






각자 좋아하는 음악이나, 존경하는 아티스트가 있다면 알려주세요.


조탁: 전 장르를 안 가리고 많이 듣는 편이에요. 옛날엔 힙합을 정말 많이 들었어요. 로파이 힙합이나, 일렉트로니카 성향이 짙은 힙합 트랙들에서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요즘은 전자 음악도 좋아하고.. 전자 음악 신의 흐름에 대해 관심이 많은 것 같아요. 옛날에는 하이퍼 팝(Hyper Pop)도 좋아했어요. 100 Gecs 많이 듣고.


지금 저희가 하는 슈게이즈나, 드림 팝 같은 것들은 2017년도 쯤부터 듣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만약에 음악을 하게 된다면, 쟁글(jangle)* 스러운 드림 팝 사운드를 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죠.


*쟁글 팝(Jangle Pop): 의성어 표현에 가까운 쟁글(jangle), 우리말로 찰랑거리는 기타 소리가 특징인 록의 하위 장르다. 더 스미스(The Smiths)의 조니 마(Johnny Marr)의 연주가 대표격이며, 그 영향으로 80년대 영국에서 유행처럼 번지기도 했다.


서현: 저는 비교적 대중적인 음악들을 많이 들었어요. 빅뱅으로 시작해서, 에픽하이.. 해외로는 오아시스 등 브릿팝 계열 음악들을 쭉 들었던 시기가 있었죠. 그 뒤론 쏜애플 등 우리나라의 사이키델릭 밴드들을 접해왔던 것 같아요.


생각해보면, 제 음악 취향은 보통 다른 사람으로부터 영향을 받는 편인 것 같아요. 앞서 언급한 아티스트들 중에서도 오아시스를 제외하면, 누군가가 들어봐라, 해서 듣게 된 것들이 많아요. 파란노을이나, 히토히라, 키노코 테이코쿠 등 요즘 듣는 음악들도 그래요. 녹광의 역할도 컸어요.


서현: 녹광은 본래 피아니스트였어요. 지금은 신디스트가 되었지만, 피아니스트 다운 취향을 가지고 있다가 현재 취향이 저 심연(?)으로 가게 된… ‘요즘 어떤 밴드를 제일 좋아하세요?’ 라고 물으면 틀림없이 머더머더(MurderMartyr)라고 할 것입니다.. 유진이는 팝을 많이 듣고요.


조탁: 유진이는 백예린을 진짜 좋아해요.


오민(베이스 세션): 처음으로 음악에 좀 깊이 빠져들게 된 건, 중학교 때 레드 제플린을 처음 듣고 지금까지 인생 밴드인 것 같아요.

 

 

슈게이즈는 보통 기타 사운드가 음악 전체를 이끌어가는 경우가 많죠. 비제로의 멤버 구성은 그런 측면에서 다소 특이한 부분이 있어요.


조탁: 맞아요. 원 기타인데 신스가 있고, 슈게이즈를 한다. 그럼 어떻게 사운드 디자인을 해야할까를 생각했을 때, 신스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봤어요. 밴드 음악에서 신디사이저는 패드, 혹은 리드 사운드를 쓰는 경우가 많아요. 이렇게 보편적인 문법을 따라가면 기타 한 대로 장르 질감을 살리기 어렵겠더라고요. 여기서 저희는 일종의 전략을 짠 거죠.


'신스톤을 기타처럼 만들겠다.'


신스톤을 기타처럼 만들고, 리드 기타는 싱글 노트를 연주하는거죠. 많아봤자 두개 정도. 기타 톤은 엄청 땡땡하게 잡았어요. ’잽잽이’ 할 때의 그 디스코 톤처럼요. 대중적인 기타 톤처럼 마일드해버리면 분명 신스에 묻힐 거였거든요. 그런데, 또 디스코처럼 쳐버리면 장르 색이 죽을테니 여기서 리듬을 쪼개지 않고 탕탕탕탕탕탕탕탕…


이렇게 하니 얼추 다채롭게 간다고 생각이 들었어요. 소리의 ‘레이어’가 있는 느낌을 좋아하거든요.

 

*


필자가 비제로를 처음 알게 된 경로는 HI 덕분이다. 1집 Laplace가 발매되기도 전, 스트리밍 사이트에 덜렁 하나 올라와 있는 이 곡이 특별하게 들려 자주 들었다. 필자 역시 기타를 치기 때문에 듣자마자 알 수 있었다. ‘아, 스트라토캐스터 소리..’


단순하지만 귀에 기분 좋은 타격을 주는 드럼과 기타, 한편으론 부서지듯 강한 디스토션이 걸린 베이스와, 무슨 악기인지 알 수 없도록 층층이 쌓인 트랙들(알고보니 건반이었던)과 키치한 보컬라인까지. 사파의 향기를 물씬 풍기지만 슈게이즈로 들리는 경쾌한 곡이었다. 비제로의 음악이 어떻게 다르냐고 묻는다면, 필자는 어김없이 HI 를 꼽고 싶다.

 

 

 

*


말씀을 나눌수록 비제로는 장르 색깔을 내세우고 간다는 느낌이 들어요.


조탁: 부담이 솔직히 있고요. 애초에 다섯 명 전부가 이 음악을 하기 위해서 만난 것도 아니고, 어쩌다 보니 슈게이즈, 드림 팝을 하게 된 거라서요. 물론 좋지만, 창작이라는 게 그렇지 않나요. 매일 김치찌개만 먹으면 질리잖아요. 중간중간 햄버거도 좀 먹어주고 해야 안 질리고 계속 할 수 있는거죠.


그럼에도 저희가 슈게이즈를 앞에 내세우는 목적 중에 하나는 팀의 방향성을 잡기 위한 비제로만의 방식인 것 같아요. ‘슈게이즈를 써야겠다‘ 하고 곡을 쓰진 않거든요. 곡을 만들고 나서, 과연 팀의 색과 부합하는가를 먼저 생각을 해보는 것 같아요.


서현: 맞아요. 작곡에 있어서는 장르에 제약을 받지 않아요. 물론 제가 곡을 쓸 때는 가끔 제약을 걸어두기도 하는데, 이건 앨범 구성에 맞추어 트랙을 짜는 정도일 뿐이죠. 너무 벗어나버린게 나오면, 팀에 대입하기가 아무래도 힘들어지니까요. 장르 정체성을 대외적으로 내건다기 보다는, 내적인 규정에 가깝다고 보는 것이 더 어울리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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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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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PLACE 앨범 커버

 

 

정규 앨범이 나온지도 시간이 조금 흘렀어요. 반응을 많이 얻고 있는데, 소감이 궁금하네요.


서현: 일단 기분이 좋아요.


조탁: 정규를 낸 것에 대해선 다들 큰 작업이라고 격려를 해주셔서 감사한 마음이죠. 한편 정규 말고는 내본 적이 없어서 칭찬받을 만큼 대단한 일을 한건가 싶기도 하고요.


서현: 이 앨범을 시작으로 어떻게 활동을 이어나가면 좋을지, 그런 것에 대한 고민들도 많은 것 같아요. 어찌됐든 본질은 음악이잖아요. 팀을 알리면서도 음악을 잘해야 되고, 라이브를 잘 해야죠.


조탁: 진심으로 활동한다는 것이 무엇이냐에 대한 자각이 생긴 것 같아요.



본격적으로 Laplace 이야기를 해보죠. 앨범 설명을 해주신다면요.


서현: 미분 방정식이라는 게 있어요. 2차, 3차 방정식 이런 게 아니라 미분이 되어 있는 것을 함수로 쓰는 방정식이 있는데, 해(답)를 구하기 위해 다른 세계로 식을 넘기면, 이 안에서는 쉽게 풀리게 돼요. 가상의 다른 평면에서 방정식을 풀어낸 다음에, 다시 역변환시켜서 현실 세계로 가져온다는 개념인거죠. 이때 쓰이는 라플라스 함수에서 착안해서 앨범 이름을 지었어요.


더 깊이 얘기하자면, 저희는 시간의 축을 살고 있잖아요? 여기서 다른 차원으로 변환을 시키면 주파수의 세계로 바뀌게 돼요. 그럼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우리가 사는 세계를 뜯어볼 수 있겠죠.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저흰 이 앨범에서 현실에서도, 저희가 제시한 가상의 세계에서도 적용이 되는 이야기들을 하고 있어요. 이 앨범이 라플라스 함수처럼, 현실과 가상의 세계를 넘나드는 매개 장치로 구동하도록요.


조탁: 영화 인터스텔라를 떠올리시면 이해가 편하실 겁니다.



그럼 현실 세계와, 가상의 다른 세계가 있는데 이 두 차원은 서로 어떤 차이점이 있나요.


조탁: 딱 하나만 달라요. 사람이 없다는 것. 저희 비제로 다섯 명 말고는 모든 사람들이 없어진 세계관을 만들어봤어요. 비제로만 남은 세계에서, 시간이 지날수록 현실세계와 어떻게 달라지는가를 보는 거죠.


서현: Laplace 는 1인칭 시점으로 전개되는 이야기예요. 다른 차원의 세계 안에 들어가 있는 인물에 대입해서 보는 거죠. 아까 시간에 개의치 않을 수 있다고 했죠? 그래서 이야기의 흐름이 시간 순서대로 흘러가진 않아요. 트랙 하나하나가 상황을 해체해서 보는 장면들인거죠.


조탁: 좋은 예로 타이틀곡 LEMON SLICE 는 이런 내용이에요.


서현: (카페 의자를 가리키며) 당신은 이게 무슨 색으로 보이십니까?


노란색이요.


서현: 노란색이 아닐 수도 있죠.


조탁: 당신이 보고 있는 시상이나, 느끼는 공기들이 모두 거짓말일 수도 있다.. 뭐 이런 거죠. 감각은 익숙해진다고들 하잖아요. 레몬을 지금 먹으면 엄청 시지만, 이걸 매일 먹다보면 레몬이 더 이상 시지 않게 느껴질 수도 있겠죠. 결국 감각은 그냥 대상화된 무언가일 뿐이 아닐까.


 



이런 세계관을 떠올리게 된 이유가 있을까요?


조탁: 그냥 재밌을 것 같았어요. ‘나 말고, 이 세상에서 사람이 다 사라지면 재밌지 않을까’ 하는 N적 사고가 발전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네요. 떠올려놓고 보니까, 이걸로 풀어낼 수 있는 이야기가 너무 많더라고요.


서현: “이 세상에서 갑자기 나를 제외하고 모든 사람이 없어졌어. 당장 넌 뭐부터 할래?” 이렇게 멤버들끼리 이야기를 해보면, 이 상황에 대한 대처 방식이 다들 달라요.


조탁: 서현이는 머리를 엄청 굴리는 스타일, 유진이는 무서워하는 스타일, 그리고 전 엄청난 자유를 느낄 것 같았어요.


서현: 이런 것들을 기반으로 소설 집필도 진행하고 있어요. 멤버들 각자의 이야기. 기대해 주세요.


*


가벼운 공상에서부터 꽤나 심오한 세계관을 구축한 멤버들의 이야기처럼, Laplace 역시 비슷하다. 기분 내킬 때 언제든 꺼내들을 수 있는 음악이면서, 환경을 갖춰놓고 제대로 ‘감상’ 하기에도 빠지지 않는 앨범이다. 40여 분의 러닝타임, 11곡 중 가장 두드러지 곡은 단연 2번 트랙 ‘Laplace’다. 마치 라플라스 함수가 작동하는 과정을 보여주듯, 비제로의 세계관으로 강력히 끌어들이는 후반부가 인상적이다. 무수한 커리어가 쌓일 신인 밴드의 대표곡으로서의 자질을 두루 갖춘 곡이라 평하고 싶다.


힙스터가 ‘되고 싶은’ 에디터의 취향을 저격한 곡이 하나가 더 있다. 8번 트랙 ‘WHITE’는 앨범의 분위기가 전환되는 지점에 위치하는데, 그 배치가 절묘했다. 앨범의 모든 곡들 중 가장 유려하게 흘러간다는 느낌을 받았으며, 이어지는 순서의 곡들로의 몰입을 돕는다. 동시에 앞서 열띤 설명을 펼친 조탁의 찰랑대는 기타 연주가 귀를 매우 시원하게 해준다. 딜레이 이펙트 활용의 청사진을 제시한 U2의 기타리스트 디 에지(The Edge) 풍의 무언가였다.

 

 

 


*


앞으로의 비전이나, 활동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서현: 재정비할 시간을 4~5월 동안 좀 가질까 해요. 재정비 기간 동안에는 EP 준비를 하는 것이 우선순위가 되지 않을까 싶고요. 정규에서 보여드린 것들의 연장선을 이어가려고 노력해야죠. ‘어떤 무대에 서겠다’ 하는 건 저희가 결정할 수 있는게 아니니까요.



정규에 이어서 바로 EP 작업까지… 곡이 정말 빨리 나오는 것 같아요.


조탁: 제 작업 방식 자체가, 스케치를 빨리 하는 스타일인 것 같아요. 그리고 그 스케치가, 최종 편곡 버전과 차이가 거의 없어요.


앞으로 나올 EP 수록곡 중 가제가 ‘How’s it going?‘이라는 노래가 있어요. 가사를 한 달 동안 쓴만큼 신경을 많이 쓴 곡이 있습니다. 지금은 제일 아끼는 곡이네요. 많이 기대해주세요. 그리고 재정비 기간이라도 공연을 아주 쉬는 일은 없을 거예요. 밴드라면 공연장에 있어야죠.



이야기가 나온 김에,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이 있다면 말씀해주셔도 좋겠어요.


조탁: ‘딜레이 릴레이 페스티벌’ 공연으로 할게요. 리허설 때 고생을 조금 했었는데, 공연 당시 밖에 나가는 사운드가 만족스러웠어요.


서현: 저는 첫 공연으로 할게요. 이날부터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 시작됐죠. 제가 긴장을 많이 하는 타입인데, 스스로 긴장했다는 인식을 하면 틀리더라고요. 이때까지 잘해왔던 파트도 한 번 틀리면 그 뒷 공연부터 신경이 쓰이고, 그런 것들을 계속 개선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오민(베이스 세션): 부산의 유기체 공연이 좋았어요. 공연장이 너무 예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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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레이 릴레이 2026', (왼쪽부터) 오민, 서현, 유진, 조탁, 녹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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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녹광, 유진

 

 

조탁: 우리 음악을 사람들이 어떻게 기억했으면 좋겠나, 이런 질문을 받으면 저흰 항상 이럴 거예요. “우리 음악은 알코올이었으면 좋겠다.” 저희가 사람들이 어떻게 메시지를 받아들이고, 어떤 감정을 느끼고. 이런 것들을 의도하면서 음악을 만들지는 않거든요.


자, 술을 왜 마시나요?


서현: 그냥 좋잖아요.


조탁: 그래 그냥 먹자.


서현: 기분 좋을 때도 먹고, 반대일 때도 먹고.. 사람마다, 때마다 술을 먹는 이유는 다르겠지만 먹는 목적은 비슷한 거죠.


조탁: 그런 유흥거리 중에 하나였으면 좋겠어요. 들으면 좋은거. 저희가 구상한 세계관도 굉장히 소설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똑같아요. 곡에 메시지가 없다는 건 아니에요. 그걸 강요하고 싶지 않은 거죠.


서현: 문화 생활의 일종이랄까요. “난 꼭 이 이야기를 청자들에게 들려줘야겠다.” 하는 건 없어요. 가사 내용을 즐기면서 들으시는 분들에겐 더 재밌을 만한 무언가인거죠. 결론은 듣기 좋은 노래. 그런 음악을 만드는 거예요.


*


앨범은 아티스트가 세상에 말을 거는 가장 고결한 수단이다.


수개월 전, 필자가 밴드 스키틀즈(Skittles)와의 인터뷰를 기고하며 이같은 코멘트를 남긴 적이 있다.


“앨범은 통상적으로 최소 8곡 이상, 3~40분 이상의 러닝타임으로 구성된다. 28곡이 수록된 스매싱 펌킨스(Smashing Pumpkins)의 3집 Mellon Collie and the Infinite Sadness(1995)처럼, 한 곡으로 인상을 심어줘야 하는 싱글과는 달리 아티스트가 마음 놓고 음악 세계를 펼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특징이다. 그래서 단순히 곡을 묶어서 낸다기보단 특정 테마나 흐름이 있는 경우가 많다. 앨범 작업에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드는 것도 이 때문이다. 마이 블러디 밸런타인이 Loveless 제작에 지나치게 공을 들여 크리에이션 레코즈를 파산 직전까지 몰고 간 유명한 일화가 있듯이, 뮤지션들에게 앨범이 가지는 의미는 남다르다.”


그런 의미에서 비제로 역시 이제 시작이다. 두어 시간의 대화에서, 이들은 더 멀리 내달릴 준비가 되었음을 느꼈다. 필자가 게으른 원고 작업을 이어오는 동안 비제로는 지난 3월 ‘2026 통영 프린지’ 무대에 올랐고, 5월 경상권을 대표하는 베뉴 ‘꼬뮨’, ‘오방가르드’에서의 공연을 앞두고 있다. 대장정의 걸음을 땐 비제로의 앞날을 응원하며, 이들의 라이브가 궁금하다면 한 번쯤 걸음해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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