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분홍색의 책. 그 위에 적힌 문장. ‘나는 이렇게 엉망인데 너는 나를 사랑하는구나.’ 주인공 ‘낌지’가 첫 남자친구와 여행을 갔던 밤 떠올린 생각이다. 튀어나온 배를 감추기 위해 레몬 디톡스 다이어트를 하고, 내내 굶다가 먹은 조개구이에 탈이 나서 모든 것을 쏟아내버리면서도 낌지는 그 여행의 목적을 달성했다. 자신을 죽도록 따라다니는 콤플렉스, 튀어나온 배에 대한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 남자친구가 자신을 ‘사랑’한다고 믿으며.
자신의 인생 전부를 뒤덮을만큼 거슬리게 하는 콤플렉스, 낌지에게 그것은 다른 신체 부위에 비해 유달리 부풀어오른 배다. 콤플렉스는 개인적이고 정도에 따라서 그것이 머릿속을 지배한다. 그렇게 큰 치부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을 낌지는 그만큼 자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눈감아줄 수 있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다음 문장은 이렇다. ‘레몬 디톡스를 하느라 눈앞이 노랗게 뜬 와중에도 상대방이 실망할까봐 겨드랑이와 사타구니 털을 깔끔하게 정리한 나와 달리 남자친구는 까맣고 깡마른 팔다리와 그 사이에 무성하게 난 털에 전혀 손도 대지 않은 게 너무너무 신경쓰였지만.’ 자신의 콤플렉스에 대해 아무런 코멘트도 남기지 않은 남자친구에 대해 고맙게 느끼고, 좋은 아이라는 판단을 하고, 오래 만나야겠다는 다짐이 무색하게 둘은 금세 헤어졌다. 그리고 둘 중 어느 쪽도 헤어짐에 대해 아쉬움을 느끼지 않는다.
같은 일을 앞두고 외모에 대한 강력한 공포, 그에 따른 걱정과 집착이 드러나는 낌지의 모습과는 달리 전 남자친구는 상대는 물론 자신의 몸에 대해 별다른 걱정이나 준비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몸에 대한 미움, 두려움, 그리고 강박. 눈에 띄게 한쪽으로 치우쳐져 있다.
소설은 낌지가 지방흡입수술을 받고 난 이후의 시점에서 시작된다. 몸에 수술 상처를 갖고 있는 사람의 조심스러운 샤워, 그리고 물에 녹아버릴 수 있게 모든 살들이 거품이면 좋겠다는 생각. 낌지는 짱유에게 비밀 유지를 부탁하고 지방흡입 사실을 말한 적 있다. 짱유는 착하고, 믿을만한 친구니까 그리고 수술을 앞두고 초조함을 달랠 대화상대가 필요했으니까. 그러나 짱유는 친구들과의 단체채팅방에서 노골적으로 그 사실을 밝힌다.
이 단체채팅방의 이름은 ‘개년들’이다. ‘개 잘 먹고 개 잘 놀고 남자 개 밝히고 존나 웃긴는 년들’이라는 뜻이 내포되어있다. 이들은 고등학생 때부터 가장 절친하게 지내온 친구들이다. 그러나 그들의 관계에서는 진실성이 누락되었다. 진솔하지 못한 채 저렴한 욕설들로 서로를 지칭하며 웃음으로 소비한다. 친구들은 낌지에게 왜 자신들에게는 수술 사실을 숨기냐 묻고 낌지는 하려한 말을 애써 지운다. 고등학교 1학년 때 티나게 쌍꺼풀수술을 하고 온 아이를 전교생이 한 학기 내내 따돌렸다는 사실을 결코 친구들에게 말할 수 없다. 그 사실은 시간이 흐른 후에도 낌지가 속한 친구 집단에서 불안감을 조성한다. 살에 대한 의식, 남과의 비교, 그리고 그 마음을 꽁꽁 감춰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는다.
그러므로 비교의식이 만들어내는 의미 없는 서열이 낌지의 행동을 부추긴다. 팔 다리는 말랐지만 배가 가슴보다 튀어나온 낌지와, 살집이 있고 가슴이 발달한 체형의 짱유. 성인이 된 이후 가장 먼저 이성과 첫 경험을 한 짱유를 보며 느꼈던 낌지의 마음은 조급함과 열등감일지 모른다. 은연 중에 자신이 더 낫다고 생각했지만 이성에게는 자신이 더 떨어질지 모른다는 생각에 불쾌해진다.
두 사람은 자신의 몸을 사랑하지 않는다. 몸을 바라보는 기준이 철저히 타인, 이성에게 초점이 맞춰져있다. 그러므로 오직 나 자신만의 몸으로서 두 발 딛고 서 있지 못한다.
고등학생 때 짱유는 착한 아이로 유명했다. 그러나 마냥 순진한 아이였던 것은 아니다. ‘나는 내가 생각해도 착한 편은 아니야. 나도 보면 알지. 철저하게 나 이용만 하려는 사람하고 언젠가 내가 해준 만큼 갚을 사람 정도는 나도 구분할 줄 알아.’ 결국 이 말에서도 이들은 서로에게 진실하지 못한 채 평소 자신의 속마음을 절대 들키지 않기 위해 애쓰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짱유의 착함은 철저한 계산 속에서 행해졌다.
그래서 짱유는 도대체 왜 낌지의 수술 사실을 친구들에게 밝혔는가. 진실하지 못한 이들이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못해 생기는 오해, 그리고 개인의 콤플렉스가 빚어낸 말의 가시 때문이다. 말의 본질을 따져보면 큰 의미는 담겨있지 않을 수 있다. 혹은 의도한 바가 그것이 아닐 수 있다. 그러나 어린 시절부터 몸집을 불려온 콤플렉스가 세상의 시야를 덮게 되면 자격지심이 발동된다. 낌지가 짱유에게 지방흡입 사실을 말했을 때 짱유는 말한다. ‘누가 봐도 네가 훨씬 날씬하고 나는 뚱뚱한데 네 몸매 관리하는 얘기를 왜 뚱뚱한 나한테 하냐고. 나는 너야말로 나 견제하는 것처럼 느껴져 (…) 너 내가 너보다 뚱뚱하다고 생각하지? 솔직히 나보다는 네가 낫다고 생각하지?’ 같은 말일지라도, 자신과 분리시킬 수 없는 컴플랙스가 말의 의미를 만들고 상상을 넓힌다. 그리고 그것을 사실이라고 믿는다.
‘개년들’은 처음부터 친구가 아니었다. 같이 술을 먹고 남자를 만나러 다니는 합이 잘 맞는 것을 우정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소설의 마지막에서 낌지는 나 빼고 ‘개년들’이 단톡방을 만든 것은 아닌지 불길해한다. 진심이 없는 관계에 신뢰가 있을 리 만무하다. 개인의 콤플렉스가 만들어낸 말의 해석들이 현실의 갈등과 오해를 꼬집는 장면이다.
하여 내 몸은 내가 아니지만 나는 몸이다. 내가 아는 대부분의 곤란은 여기에서 비롯되었으며, 모든 곤란은 저마다의 이야기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믿는다.
- p.67 작가의 말 '몸은 가장 오래된 마음의 병' 中
제목에서처럼 이 이야기는 몸에 대한 이야기다. 그리고 제목에서 ‘몸’은 한 번 더 쓰여 ‘몸몸’이다. 미디어와 sns의 발달, 자신의 얼굴이 찍히고 전시되는 것이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은만큼 다른 사람들의 (완벽히 꾸며진) 얼굴을 보는 것이 쉬워졌다. 다시 말해 얼굴이 드러날 일도, 그로 인해 비교될 위험에 쉽게 노출될 수 있다. 소설에서는 학창시절, 자신의 몸에서 불만족스러운 부분을 인지하고, 또 부각된 신체부위에 대한 성희롱적 장난들, 그리고 지나친 외모강박으로까지 이어지는 우리의 몸에 대해서 말한다. 지방흡입을 결심하게 된 배경부터 병원에서 상담을 받는 모습, 수술 이후의 몸의 고통을 감각하는 장면들은 지나치게 사실적이고 기이한 감각을 준다.
인터넷에서도, 주변 사람들에게서도 흔히 ‘외모 정병’이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자신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아 정신병이 온다는 뜻으로 쉽게 쓰인다. 소설은 그 부분을 꼬집는다. 현실에서는 결과로서만 전시된다. 이야기는 결과의 안을 파헤친다. 침묵되어오는 그 내막의 공포를 드러내고, 그 현장을 함께 따라가게 만든다. 쉬쉬되어오는 진실과 문제를 한 번쯤 진지하게 떠올려보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