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PRESS] 바이올린은 몇 살에 어른이 될까요? - 헤르만아트홀 기획연주 '임동민 바이올린 리사이틀' [공연]

오래된 악기가 여전히 장난치는 법

by 장유진 에디터
2026.09.04 17:04
이 브라우저에서 최근 읽은 글입니다.
      이전에 읽던 글입니다.

      임동민.jpg

       

       

      뚝섬역 근방에도 공연장이 있구나. 지도 앱을 통해 우리 집과 가까운 역을 출발지로, 도착지를 ‘헤르만아트홀’로 설정하니 초록한 2호선을 타고 뚝섬역에서 내려 4번 출구로 나가면 된다고 일러주더라. 화면을 조금 축소해보니 지도가 넓어지면서 노란 수인분당선의 서울숲역이 눈에 들어왔다.


      맞다, 내가 이 근방을 마지막으로 왔던 때가 저 ‘서울숲’ 때문이었지. 아마 7월보다도 더 전의 일이었던 것 같은데, 그때도 꽤 무더웠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크게 움직이지만 않는다면 숲에 돗자리를 깔고, 사 들고 온 간식 정도는 야외에서 먹을 수 있을 만한 날씨였지.


      친구나 가족들과 나들이 겸 오던 이곳에 이번에는 또 다른 목적으로 발을 들이게 될 날을 앞두고 있다. 그래서인지 지금은 ‘9월 6일에는 재미난 일이 생기겠는걸.’ 하고 생각하게 된다. 무슨 일이냐고? 별건 아니고, 이날 만나게 될 이름부터 한 번 꺼내보겠다.

       

      가장 먼저 모차르트고 그다음이 베토벤이며, 쉬는 시간을 지난 뒤에는 프로코피예프다. 프로코피예프? 갑자기 누군지 모르겠다고? 괜찮다. 지금부터 조금씩 알아가면 된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비에니아프스키가 기다리고 있다.


      처음 두 사람은 친숙한 편인데, 뒤의 아주 기다란 이름들은 어떻게 외웠냐고 물으신다면…. 나도 모르게 외워버렸다. 클래식을 좋아하기 시작한 초기에는 이런 걸 하나하나 다 외우고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무척 신기해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이제는 뭐 무서운 줄도 모르고 두 글자나 세 글자짜리 이름보다 프로코피예프나 쇼스타코비치를 밥 먹듯이 찾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시간이 이렇게 빨리 간다!


      바이올린은 꽤 오래된 악기인데도 연주하는 순간만큼은 좀처럼 얌전히 나이를 먹지 않는 것 같다. 한껏 노래하다가 갑자기 뛰쳐나가고, 쏘아붙이다가도 금세 장난을 친다. 네 곡을 차례대로 만나게 될 이날에는 그래서 한 가지를 지켜보고 싶다. 바이올린은 대체 몇 살에 어른이 될까?


      임동민 바이올리니스트의 연주를 몇 차례 들어오면서 비슷한 생각을 했다. 같은 바이올린인데도 그날의 곡과 순간에 따라 조금씩 다른 얼굴을 보여주는 일이 꽤 재미있었다. 이번에는 또 어떤 모습을 만나게 될지, 슬쩍 기대해봐도 좋겠다.


      사실 나는 흔히 떠올리는 순서대로 클래식에 첫발을 들인 게 아니었다. 맨 처음 건반 연주가들을 따라다녔을 적에는 그래도 클래식에 조금만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알 법한 곡들을 접했는데, 현악기로 넘어오고 나서는 협주곡보다 오히려 피아노 3중주나 반주도 없는 바이올린 독주곡부터 듣게 되었다. 거기다 현대음악 작곡가의 곡이라면? 이거, 바흐부터 시작했어야 할 일을 역순으로 타고 내려가고 있는 것이다.


      현재와 가까운 시대의 음악을 듣다가 확! 바로크 시대로 건너가면 당황스러울 때도 있었다. ‘어, 왜 이렇게 정형화된 것처럼 느껴지지? 왜 이렇게 갑갑하지? 이 알 수 없는 귀족적인 느낌이나 성스러움은 뭐지?’ 하고 주변 객석을 둘러보면 다들 잘만 듣고 있다. 오히려 현대음악 레퍼토리를 들을 때보다 객석의 집중도가 조금 더 높은 것 같기도 했다.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한 시대만 편식하지 않고 돌아다니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지금은 바흐보다 하이든이 조금 더 괜찮게 느껴지고, 교과서에 나오는 이름으로만 익숙했던 모차르트와 베토벤도 소나타나 교향곡을 통해 슬쩍슬쩍 알아가는 중이다. 그런데도 아직 현대음악 쪽으로 괜히 시선이 가는, 어딘가 부유하듯 떠 있는 상태랄까.


      별생각 없이 연주가들의 선택지를 주욱- 따라가다 보니 어느 한 군데를 깊-게 파기보다 넓게 넓게- 이곳저곳을 순방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9월 6일의 레퍼토리처럼 이미 알고 있는 곡과 이제 막 알아가고 싶은 곡이 한데 섞인 절묘한 조합도 만나게 되는 것이 아닌가?


      더군다나 나는 살짝, 지난 하우스콘서트에서 임동민 바이올리니스트에게 ‘예습하면 좋을 곡’을 미리 알아봐두었다. 그는 네 곡 중 베토벤과 프로코피예프에 ‘예습해보고 오면 좋을 곡’이라는 의미로 V자를 딱 체크해줬다. 그러면 우리는 당연히! 미리! 들어! 봐야지! 처음부터 차근차근.

       

       

       

      모차르트 바이올린 소나타 제22번 A장조, K.305



       

       

      아마 처음에는, 특히 1악장에서는 ‘시동’을 거는 모습에 집중하게 될 것 같다. 물론 모차르트의 음악 자체도 봐야겠지만, 이제 앞으로 한동안 바이올린과 긴밀한 대화를 나눠야 하지 않은가? 공연의 첫머리인 만큼 연주가도 관객도 아직 ‘산뜻’한 상태일 테고, 비교적 가벼운 마음으로 음악에 들어갈 수 있게 도와주는 모차르트와 함께 ‘준비운동’을 해보면 좋겠다.


      연주자도 천천히 시동을 걸고, 우리도 자세를 편하게, 릴랙스한 채로 앉아 음악 안에서 무엇을 보고 들으면 좋을지 생각해보는 것이다. 처음에는 헤르만아트홀이 소리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가만히 들어보면서 천장이나 벽면을 슬쩍 살펴봐도 좋다! 임동민이라는 바이올린은 어떤 성미를 가졌는지, 그날은 무슨 얼굴을 보여줄지 흥미롭게 기다려봐도 좋겠다.


      마음 안에서 외쳐볼 문구는 별것 없다. ‘저 사람은 누구냐~ 누굴까~.’ 그것만 하다 보면 첫 악장은 금세 사라진다!


      이어지는 2악장에서는 우리가 어떤 시간을 보내고 왔느냐에 따라 서로 다른 길을 가게 되겠다. 하나의 주제가 여섯 번 모습을 바꾸는 변주곡이니, 조금 전 붕붕 손을 풀던 그가 이번에는 어떤 ‘나비’가 되어 자유롭게 누빌지를 바라보고 싶다.


      이 곡을 들을 때면 팔을 탁자에 괴거나 몸을 벽에 기대고 싶어진다. 그렇게 자장가처럼 편안하고 부드럽게 들렸냐고? 아니, 그런 건 아니고 그냥-. 바이올린 선율은 때때로 삐죽삐죽 솟아 있는데, 곁을 걷는 피아노 소리는 몸의 긴장도를 낮춰주고, 바이올린도 어느 순간 꽤 다정한 모양새로 간지러운 곳을 살살 풀어준다. 내가 딱 좋아하는 정도의 편안함이 여기 있는 것 같다.


      ‘그는 누구일까?’ 바로 다음에는 자연스럽게 ‘저 소리는 뭘까?’로 넘어가보자. 감미로우면서도 쨍한 바이올린 소리를, 그것도 자기만의 스타일이 확실한 연주자의 손으로 만나보는 일은 꽤 흥미롭다. 그러다 편안함 사이로 예상보다 서늘한 결 하나가 슬쩍 지나갈지도 모르겠다. 그 정도의 작은 변화까지 귀에 담아보고 싶다.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제7번 C단조, Op.30 No.2



       


      이제 두 번째 곡부터는 슬슬 본 게임에 들어가는 기분이 들 것 같다. 무려 악장이 네 개다! 거기다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이니, 또박또박 걷는 길을 눈과 귀로 다 담아내려면 은근히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


      특히 1악장을 듣다 보면 대놓고 ‘이게 뭔 노랜가’ 싶은 곡보다도, 오히려 그냥 들어도 좋아버리는 곡에서 무엇을 봐야 할지 모르겠다는 느낌을 받곤 한다. 생소한 작곡가의 곡이라면 그날 연주가의 해석에 몸을 맡겨버리면 되는데, 이미 선율의 재미를 조금 아는 음악에서는 자꾸 귀가 눈보다 먼저 달려나간다.


      공연장에서 기다리게 되는 건 예상하지 못한 순간이다. 분명 연주자가 의도했지만 관객인 나는 미처 준비하지 못했던 무언가가 갑자기 탁! 튀어나오면 ‘어!’ 하고 머릿속에 잠깐 일시정지 버튼이 눌린다. 연주는 그대로 흘러가는데, 방금 튀어나온 불꽃에 북마크 하나를 딱 꽂은 채 그다음을 쫓아간다. 특히 임동민 바이올리니스트의 연주를 들을 때는 그런 순간들이 심심치 않게 생긴다.


      이번 베토벤에서는 ‘속도감’과 ‘일시정지’가 어떤 모양으로 나타날지 궁금하다. 그가 베토벤을 노래할 때 스스로에게 얼마나 많은 자유도를 부여할지, 온순하기보다는 격렬한 쪽에 가까운 이 음악과 캐러멜빛 소리를 내는 바이올린이 만나 어떤 ‘질감’을 만들어낼지도 눈여겨보고 싶다.


      아예 베토벤이 누군지도 모른다면? 그냥 즐겨라. 적어도 그날의 바이올린 소나타 7번이라면 뭔가 지체되고 졸리다는 느낌을 받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들이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지는 도무지 추측하지 못하더라도,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 같기는 하다’는 느낌만 가진 채 따라가도 충분하다. 그래, 그 소리를 따라가는 것이다! 가만히 의자에 앉아 듣기보다 ‘저 바이올린이 나한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대.’ 하는 마음을 품고 있다 보면 어느새 2악장이 소리도 없이 나타나 내 옆에 꼭- 앉아 있을 것이다.


      여기서는 기다리려고 한다. 뭘 받아 적기보다 딱 그날 연주자의 칸타빌레, 곧 ‘노래하듯이’를 가만히 듣겠다. 오늘 어떤 기분으로 왔든, 이 장소에서는 가지고 온 가방이나 옷가지 같은 건 한편에 다 내려놓고, 손가락만 무릎 위에 올려둔 채 가만히…. 말하는 이에게 자리를 넘겨주겠다.


      괄호만 열어두자. 괄호 안에는 무슨 호흡이 담길까? 아무래도 길-다랗지 않을까? 나는 어떨 때는 조급할 정도로 성미가 급하고, 또 어떨 때는 무척이나 게으른 편인데, 이 악장에서만큼은 조금 기다리는 법을 배워봐도 좋겠다. 그러니 뭘 느끼려고 ‘애’쓰지 말고 잠자코 있자. 기다리면 다 때가 온다!


      한동안 말을 듣고 나면 3악장에서는 가장 가벼우면서도 성격 있는 ‘자유로움’이 나타날 것 같다. 피아노랑 바이올린이 짧게 짧게, 상대적으로 재빠르고 날쌔게 둥둥! 걷고 또 날아다니는 시간. 정신 차리고 따라가다 보면 얼마 지나지 않아 휙- 사라져버리는 악장이니 여기에서는 생각을 너무 오래 붙잡아둘 필요도 없겠다.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움직임을 놓치지 않고 따라가면 된다.


      마지막 4악장이다. 방금까지 동동-! 가볍게 움직이다가도 한순간 다시 긴장감 속으로 흘러 들어가는, 이 알다가도 모를 속마음 같은 전개에는 이제 웃음이 난다. 이를테면 도입부만 봐도 그렇다. 갑자기 피아노와 바이올린이 경고를 두어 번 주고받듯 시작하지 않는가? 정신 차리라고 이마에 딱밤을 딱! 하고 내려꽂은 느낌이랄까.


      이 경고를 아주 세게 날릴지, 생각보다 한 발 뒤로 물러나 있을지 궁금하다. 헤르만아트홀을 단숨에 크게 울려놓을 수도 있고, 뜻밖에도 내가 예상하지 못한 모양으로 지나갈 수도 있겠다. 어느 쪽이든 첫 몇 음에서부터 정신이 번쩍 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프로코피예프 바이올린 소나타 제1번 F단조, Op.80



       


      이 곡은 기쁘게도 임동민 바이올리니스트의 버전으로 음원이 남아 있어 그것으로 다시 예습할 수 있었다. 사실 어느새 머릿속에 제법 익어버린 곡이라 딱히- 처음부터 공부해야 할 필요는 없었다.


      9월 3일의 나는 토각토각- 키보드 소리를 내며 글을 적다가 고개를 들어 하얀 천장을 바라봤다. 왜 프로코피예프였을까. 그중에서도 왜 이 1번이었을까. 다른 곡을 말할 수도 있었을 텐데. 음원으로도 남겨둔 작품인 만큼 그에게 특별히 익숙한 곡일 수도 있겠지. 그래도 ‘왜 하필 이 곡일까?’ 조금이라도 파헤쳐보면 좋겠다는 생각에 이리저리 서칭해보기 시작했다.


      프로코피예프의 바이올린 소나타 1번은 이름과 달리 2번보다 늦게 완성되었다고 한다. 1938년에 쓰기 시작했지만 완성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사이 바이올린 소나타 2번이 앞서 완성됐고, 1번이 끝을 본 것은 1946년이었다. 먼저 쓰기 시작한 곡을 나중에야 완성한 셈이다.


      1악장을 들어볼까? 꽤 느리다. 프로코피예프는 다비드 오이스트라흐에게 이 악장 끝부분에서 스쳐 지나가는 바이올린의 음형을 ‘묘지를 스치는 바람’처럼 연주해달라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그 말을 알고 다시 들어보면 또 기가 막히다. 귀신만 안 나왔지, 은근히 감도는 오싹한 기운은 진짜 이 곡만 한 게 없다. 어디선가 바람이 슥- 지나가는 것 같기도 하고, 분명 소리는 나고 있는데 그 소리가 손에 잡힐 것 같지는 않은 기분이 든다.


      한참 서늘해져 있다가 2악장으로 넘어가면 갑자기 또 빨라진다. 뭐야. 이완되라는 거야, 고조되라는 거야. 방금까지 어딘가를 스르륵 지나가던 사람이 갑자기 정신을 차리고 냅다 달려나가는 것 같다. 알 수가 없다. 그런데 그 알 수 없음 때문에 또 웃기고, 그만큼 재미있어진다.


      3악장은 꼭 한 번 들어보셔야 한다. 진짜- 몽유병에 걸린 아이가 어딘가를 천천히 걸어 다니는 것 같고, 슬퍼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알 수 없는 채로 자꾸 기분을 가라앉게 만드는 악장이 세 번째에 자리하고 있다. 그렇게 정신이 몽롱해질 즈음이면 내가 어디에 있는지도 잠깐 헷갈린다. 깨어 있는 것 같기는 한데, 온전히 깨어 있지는 않은 상태. 그런 기묘한 시간이 한동안 이어진다.


      마지막 4악장에서는 또 달린다. 뒤도 안 돌아보는 사람마냥 빨라졌다가, 이대로 끝까지 가버리나 싶을 무렵 처음의 그 서늘한 기운이 슬쩍 모습을 드러낸다. ‘어라. 너 아직 여기 있었어?’ 1악장에서 스쳤던 음형이 마지막에도 다시 들려온다. 처음부터 이 곡 어딘가를 돌아다니고 있었던 것처럼.


      결국 이 곡은 느리고, 빨라지고! 다시 느려지고, 또 빨라진다. 뭐야. 정말. 분위기는 전반적으로 청록색이고, 스산하고, 어둡고, 날뛴다!


      이 혼란스러워 보이는 곡을 굳이 우리가 들어야 하나 싶을 수도 있지만, 저 확실한 ‘캐릭터’를 청각적 이미지로 접하면 이것만큼 매력적인 게 없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프로코피예프가 어떤 음악을 쓰는 사람인지 조금은 알 것 같고, 저 고고해 보이는 바이올린이 연주가의 손을 빌려 대체 무슨 소리까지 낼 수 있는지도 듣게 된다. 듣고 있다 보면 ‘아, 바이올린이 이런 소리까지 냈었나?’ 싶어진다.


      하품하듯 생각하면 된다. 아, 느리고. 빨라지고! 다시 느려지고, 또 빨라지는구나! 임동민 바이올리니스트의 버전이라면 빨라지는 순간에는 정말 굉장히! 상당히! 달려나갈 것 같다. 예상치 못한 구간에서 생각지도 못한 재미가 불쑥 튀어나올 수도 있겠다. 그 정도만 상상해두고 실제 답은 공연장에 맡겨보면 좋겠다.

       

       

       

      비에니아프스키 오리지널 주제에 의한 변주곡, Op.15



       


      나는 하나로 이어지는 이 변주곡이 시작부터 매우 의미심장하길래, 이 곡을 작곡한 바이올리니스트 비에니아프스키도 만만치 않게 스타일이 확실한 분이겠거니 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듣는 이의 몰입도를 처음부터 확! 끌어올리는 어두운 도입부와 카덴차처럼 펼쳐지는 바이올린을 먼저 꺼낸 뒤, 자신이 만든 주제를 등장시켜놓았단다. 그리고 그 주제가 세 번이나 다른 얼굴로 모습을 바꾼다.


      한창 그 변주를 따라가고 있으면 처음의 ‘어둑하고 비애 가득한’ 분위기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뭐야, 방금까지 신나던 일은 다 옛일인가? 그런데 그것으로 끝나는 것도 아니다. 음악은 또 방향을 틀어 어느 순간 왈츠처럼 화려하게 돌아서고, 마지막까지 쉴 새 없이 달려가며 바이올린을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는다.


      오로지 귀로만 듣다가 이렇게 세세하게 안쪽을 들여다보면, 음악은 내가 막연히 알고 있던 것보다 훨씬 ‘구조’적인 것 같다. 여기에 이 구간이 놓인 데에는 그만의 이유가 있고, 그다음에 이런 파트가 존재하는 데에도 또 이유가 있다는 것 아닌가? 더군다나 이 곡은 바이올리니스트이기도 했던 작곡가가 자기만의 주제를 만들어냈고, 그것을 다시 여러 얼굴로 변주시켜놓았다.


      이런 걸 보면 연주를 잘하는 것을 넘어, 악기를 가지고 놀 수 있는 상태까지 들어간 사람이 부러울 지경이다.


      그렇다면 이 안에서 ‘임동민’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까. 비에니아프스키가 써 내려간 음표 위에서 비르투오소적인 면모를 한껏 드러낼 수도 있고, 단순한 기교의 과시를 넘어 자신만의 방식으로 공간 전체를 휘감아놓을 수도 있겠다. 나는 그 지점을 제대로 기대해보려 한다.


      그가 어두운 구간을 얼마나 새카맣게 만들고, 그 사이의 ‘장난감’ 같은 구간에서는 얼마나 기분 좋게 놀아줄지를 마냥- 기다려보겠다. 혹은 내가 예상한 것과 전혀 다른 얼굴을 꺼내놓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는 종종 내 추측을 아주 자연스럽게 빗겨나가곤 하지만 말이다.


      아, 그러고 보니 처음부터 궁금했던 게 하나 있었지.


      바이올린은 대체 몇 살에 어른이 될까?


      그런데 여기까지 네 곡을 들여다보고 나니, 애초에 질문을 조금 잘못했나 싶기도 하다. 오래된 악기인데도 한껏 노래하다가, 별안간 쏘아붙이고, 또 어느 순간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뛰고 장난을 친다. 꼭 얌전히 굴어야 어른인 건 아니잖아.


      오래 연주한 사람의 손에서도 바이올린이 계속 저렇게 놀 수 있다면, 그것도 꽤 근사한 일 아닌가. 아직은 답을 내리지 말아야겠다. 9월 6일의 바이올린이 얼마나 얌전히 굴지, 아니면 내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신나게 뛰어다닐지는 헤르만아트홀에서 직접 들어보는 수밖에!

       

       


      9월 6일, 임동민 바이올린 리사이틀


       

      0906헤르만아트홀.jpg

       

       

      2026년 9월 6일 일요일 오후 7시 30분, 헤르만아트홀에서 바이올리니스트 임동민의 리사이틀이 열린다. 이번 공연에서는 모차르트와 베토벤, 프로코피예프, 비에니아프스키의 네 작품을 선보인다.


      1부에는 모차르트의 바이올린 소나타 제22번 A장조 K.305와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제7번 C단조 Op.30 No.2가 이어진다. 인터미션 이후 2부는 프로코피예프의 바이올린 소나타 제1번 F단조 Op.80으로 시작해, 비에니아프스키의 오리지널 주제에 의한 변주곡 Op.15로 마무리된다.

       

       

      [Program]


      Wolfgang Amadeus Mozart - Violin Sonata No.22 in A major, K.305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 바이올린 소나타 제22번 A장조, K.305


      Ludwig van Beethoven - Violin Sonata No.7 in C minor, Op.30 No.2

      루트비히 판 베토벤 - 바이올린 소나타 제7번 C단조, Op.30 No.2


      Intermission


      Sergei Prokofiev - Violin Sonata No.1 in F minor, Op.80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 - 바이올린 소나타 제1번 F단조, Op.80


      Henryk Wieniawski - Variations on an Original Theme, Op.15

      헨리크 비에니아프스키 - 오리지널 주제에 의한 변주곡, Op.15

       

       

      장유진이 에디터의 다른 글 보기
      클래식이랑 서서히 친해지는 중

      장유진 에디터의 인기글

      많이 읽힌 글 3편
      1. 01 [Review] 이까짓 것에 목이 메는 바람에 - 연극 '삼매경' [공연]
      2. 02 [PRESS] 음악원 334호 선생님, 피아노가 뭐예요? - 금호아트홀 아름다운 목요일 : 윤홍천 Piano [공연]
      3. 03 [Review] 너를, 가장 사랑함, 아야! - 메가필드뮤직페스티벌 2025 [공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