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칼럼·에세이

 

 

공연이 시작되기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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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손잡이를 잡아당기니 끼익- 하는 경첩 소리가 뒤따랐다. 고개를 살짝- 내밀어 보니 새하얀 공간 한가운데 둥근 목재 테이블 하나와, 그를 둘러싼 같은 재질의 의자 네 개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내가 제일 먼저 왔구나. 아무도 없다는 사실에 나도 모르게 안심한 채 문을 조금 더 열고 안으로 들어가 의자 하나에 앉았다. 물론 문 닫는 것도 잊지 않았다.


양손을 허벅지 아래에 숨겨놓고 멀뚱- 하니 앉아, 입을 삐죽—삐진 게 아니라 그냥 심심해서—내민 채 가만-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뒤편의 문이 또다시 열렸고 대화를 나누던 세 사람이 차례로 안으로 들어왔다.


얼핏 살펴보니 그들 중 한 명은 16일의 연주자였고, 또 하나는 피아노였으며, 마지막으로 나타난 이는 브람스 같았다. 그들은 무언가를 골똘히 논하고 있었는지, 테이블 쪽으로 다가와 나머지 의자에 자리할 때까지도 서로를 향한 시선을 놓지 않은 채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주제의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크게 화기애애하지도, 친근한 분위기도 아니었지만 다들 눈이 반짝거리는 걸 보면 필시 그 안에 음악이 있으리라. 그들을 한참 구경하다 보니 턱끝으로 모락거리는 기운이 느껴졌다. 살짝 시선을 내려보니 테이블 위에 머그컵 하나가 놓여 있었다. 그 안에는 김이 모락거리는 블랙커피가 담겨 있었다.


목이 말랐는데 마침 잘됐다 싶어 홀짝- 입술을 축이고는 내 왼편에 앉아 있는 한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의 이름은, 윤홍천이었다. 내가 그라는 피아노를 처음 알게 된 게 언제였더라. 아마 2025년에 SNS에 올라왔던 게시물 덕분이었을 것이다.


그는 2025년 한국예술종합학교의 신임 교수로 임명된 뒤, 첫 입시 심사를 마치고 이런 말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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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학생들에게 바라는 게 있다면, 피아노 연주는 예술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예술은 마음에서 시작되고, 마음으로 표현될 때 비로소 빛이납니다.


결국 사람들의 기억에 남는 것은 음악을 들으며 마음이 움직였던 감동의 순간들입니다. 개성과 능력을 떠나서 사랑에서 시작하는 헌신이 담긴 음악은 잊혀지지 않습니다.


아직 어린 학생들이지만 모두가 스스로에게 한 번 물어보셨으면 합니다.


“나는 왜 음악을 하는가?”

 

“나는 왜 피아노를 치는가?”

 

 

이 문단을 읽자마자, 관객으로서 내가 늘 바라왔던 것이 어쩌면 이런 태도였는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우연히 만난 글 하나로, 나는 연주보다 먼저 문장으로 그를 기억하게 되었다.


두 번째는 그의 클래스 학생들을 소개하는 계정에서였다. 음악원 334호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일상을 이야기하겠단다. 그들의 소식이 궁금하지 않을 클래식 애호가가 있겠는가. 당장 팔로우를 했고, ‘오늘 소개해드릴 윤클래스 학생은...’으로 시작하는 소식들이 간간이 내 일상에 찾아들었다.


반갑기도 했고, 조금 이상하기도 했다. 내 앞에 처음 나타난 피아노가 자기 연주를 이야기하는 대신 아이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의 시선은 이곳이 아니라, 자기만의 건반을 바라보고 있는 또 다른 누군가의 옆얼굴을 향하고 있었다. 그 장면을 멀찍이서 지켜보기만 했던 나는, 바라보는 이에 관해 조용히 상상했다.


윤홍천 피아니스트는 어떤 음악을 하는 사람일까?

아마 소리가 가로선으로 일렁이는, 만개한 온화함 아닐까?

그의 손안에 피어나는 브람스는 어떤 사람일까?


피아노와 브람스 사이에서 가만히 미소를 짓기도 하고, 이런저런 말을 건네기도 하는 그의 옆모습을 한참 바라보다, 나는 잔을 내려놓았다. 공연이, 곧 시작될 예정이었다.

 

 

 

4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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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를 위한 인터메초 E-flat장조, Op.117/1


시작부터 상상과 달랐다. 내 시선보다 낮은 곳에 위치한 의자에 머리를 기댄 채, 그러니까 눈을 감고 보이지 않는 베개를 베고 있었는데, 예상치 못한 토박한 목소리에 그를 향해 고개를 들었다. 

 

이쪽을 바라보지 않는, 오른쪽 얼굴만 보여주고 있는 그는 내가 상상하던 만큼의 부드러움만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건반 하나가 눌릴 때마다 다음 음으로 미끄러져 가기보다, 각각의 음이 제자리에 또렷이 서 있었다. 

 

오늘 하루가 어땠는지 끊임없이 관심을 보여주기보다도, 예쁘게 웃지 못하는 날에도 조용히 등을 내어주는 사람 같았다. 그의 등선 위에 놓인 옷주름에 시선이 가만- 따랐다.


피아노를 위한 슈만 주제에 의한 변주곡 f-sharp단조, Op.9


첫 번째 인터메초를 통해 그의 손아래에 있는 피아노는 마냥 다정한 사람은 아니었네. 조금 더 흥미롭다. 그 생각을 하면서 변주곡과 인사를 했다. 

 

내가 하나하나 잘 걸어갈 수 있을까, 하는 염려도 들었다. 언제 다음 변주로 넘어가게 될지 눈치챌 수 있을까 싶기도 했다. 그 순간 내 앞에 있는, 두 개의 좌석 사이에 놓인 팔걸이의 겉선에 새겨진 조그마한 청록빛이 눈에 담겼다. 무대 벽면의 비상등이 그곳에 비쳐 있었고, 그 선 옆에는 무대 조명의 하얀빛도 함께 놓여 있었다. 그저 그것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문득, 그 길을 하나하나 셈하며 따라가기보다 이 곡을 하루처럼 지나가 보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이틀째가 되었다. 어제는 꽤 가라앉아 있었더니, 이튿날에는 나름 발랄하게 시작은 했나 보다. 다만, 어딘가 찌뿌둥한 모양새가 일찍 일어난 것처럼은 보이지 않는다. 오늘은 조금 더 부지런히 살기로 어제 약속했으니, 억지로 책상 앞에 앉아 있기는 하지만 의자에 붙어 있는 모양새가 어쩐지 엉거주춤하다.


그런데도 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내가 같은 자리에서 새벽을 미끄러뜨리는 동안에도, 변주는 다음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정말 하나씩 내려놓아 두시는구나 싶었다. 데려다주시네. 이를테면 저곳에서 이곳으로. 조금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딱 한 발자국만 가까운 곳으로. 지금 당장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숨기고만 싶은 내 모난 것들에는 시선을 두지 않고, 손 하나만을 이쪽에 가만- 뻗고 있었다. 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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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를 위한 인터메초 b-flat단조, Op.117/2


이 악장에서야 완전히 알아챘다. 그는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심지가 곧은 사람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소리가 단정할 수 없고, 관객에게 이만큼 고요한 확신을 선사할 수 없다. 

 

음과 음 사이를 괜히 흐리거나 감정으로 덮어두지 않은 채, 매번 다음을 같은 무게로 건네고 있었다. 건반 하나가 눌린 뒤 나타나는 안개만 같은 잔향은 길게 음미해도 좋을 만큼 은은한데, 음표 중앙은 빈틈없이 새카맣다. 이러니 따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


피아노를 위한 주제와 변주 d단조


그 까만 것들이 이 곡에 모여드니 보다 확신을 얻었다. 그는 똑바로 걷는다. 지나치게 유약해지지도, 과도하게 강해지지도 않는다. 이야기를 덧붙여야 한다는 강박 자체를 일찌감치 지나온 사람의 말소리이니 이상하게 듣는 이가 부담이 하나도 없다.


힘든 일은 다 본인 쪽에 가져다 놓고 감정적 폭풍이나 휘몰아침 하나도 없이 길을 나아가니, 강박적으로 뭔가를 떠올려야 한다는 걱정을 떠올릴 겨를도 없다. 

 

건반을 강하게 타격하지 않았는데도 뎅- 하고 울리는 종소리가 스쳤고, 손이 건반의 오른편에 많이 앉아 있을 적에는 높이 도약하지 않았음에도 소리가 은하에 닿아 있었다.


그러니 나는 끊임없이 추측했다. 그는 하얀 곳에 서 있을까. 까만 곳에 서 있을까. 흰 바탕 위에서 까만 밤을 바라보고 있는 걸까. 까만 음표 위에서 빛을 바라보고 있는 걸까? 아직 고민을 다 끝내지 못한 때에 그의 궤적이 숨자락을 따라 내게 왔다.


피아노를 위한 인터메초 c-sharp단조, Op.117/3


어떻게 시간이 지났는지도 모를, 벌써 1시간이나 흘러버렸나 싶었던 1부를 지나 찾아온 세 번째 인터메초에서는 그의 따뜻한 명료함을 그 자체로 즐길 수 있어 좋았다. 

 

보다 왼편 혹은 중앙 쪽에 머물다 손 하나가 아주 작은 종이 되러 오른편으로 잠시잠깐 떠난 사이의 그 멀찍임이, 잠깐의 포물선 아래 공백처럼 느껴져 좋았다.


피아니스트가 이렇게까지 작곡가와 소리 앞에 객관적인 분명함을 지니고 있으면, 듣는 이는 정확한 이유도 모른 채 기분이 좋아진다.


피아노 소나타 제2번 f-sharp단조, Op.2


아마 이날의 여러 곡 중에서도 이 소나타가 가장 본게임이 아니었을까? 피아노 자체에서 나는 소리도 가장 길게 탐닉할 수 있는 악장이기도 했다. 

 

노트북 키보드를 타닥이면 나는 소리처럼, 유리컵에 물을 따르는 소리처럼, 그리고 피아니스트가 건반을 강하게 타건하며 나타나는 경쾌한 탭핑!


그제서야 보였다. 오늘의 피아니스트의 별은 저기 숨어 있었구나. 연주자는 절대 볼 수 없고 피아노도 눈에 담을 수 없는, 오로지 그들보다 살짝 아래, 멀찍이 떨어져 있는 이들에게만 눈에 담기는. 

 

건반 하나가 눌리면 그 옆 건반 빈틈에 어려 있는 삼각형 별이 피아니스트의 손 아래, 건반의 그림자 가운데 시시각각 자리를 옮겼다. 그 바쁜 춤을 구경하다 악장이 다 가버렸다.


별다른 동요 없이, 음표 뒤의 이야기를 이렇게 길게 넓혀둘 수 있구나 싶었다. 신기루처럼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길을 잃을 수 없게 여유 시간을 충분히 마련해준다. 그러니- 아, 이곳에도 머물 수 있는 자리가 있구나. 그걸 눈치채지 않을 수 없다.


사라짐 자체가 아쉽지 않다. 대놓고 온화하려나 싶었는데, 소리의 강건함은 새카만 밤이었고 그의 다정함은 하얀 달무리만 같았다. 막힘이 없는 길을 걸으면 이런 표정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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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 전해야 할까. 그의 연주를 어떻게 전해야 할까. 담백한데도 가볍지 않고, 담대한데도 우아했다.

 

색으로 말하자면 보라빛에 가까웠는데, 전혀 탁하거나 과하지 않았다. 진한데도 부담스럽지 않고, 끝내 흐트러지지 않는 결이 있었다. 그래서 듣는 사람은 그 색을 따라가다가도 결국엔 단정한 중심으로 돌아오게 된다.

 

물러날 때에도, 작은 물결을 일으켜야 할 때에도, 단 한마디의 메시지를 전해야 하는 순간에도, 떠오른 채 다음을 기다리는 때에도 피아노가 언제든 오랜 그리움에 놓일 수 있도록.

 

순백으로 작아지다가도, 옥처럼 고아했다. 아, 이제야 알았다. 그는 하얀 곳에 놓인 청보랏빛 옥반지 같았다.

 

 

 

공연이 끝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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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이 끝나고 나면 감정이 출렁- 출렁, 마음이 일렁- 일렁, 그것도 다 한때의 일이 되어버리는 탓에 어찌해야 될지 모를 허탈감과 무력감 위에 올라타 있는 기쁨이 내 안에 가득하다. 그런데 16일의 밤에는 그런 것이 없었다. 

 

어깨 위에도, 머릿속에도 어떠한 복잡함이 하나도 없었다. 그냥- 순리대로 건너와 버린 탓에, 마지막까지 즐겁게 지나온 탓에 ‘부담감’과 인사할 계기를 완전히 놓쳐버렸다.


그러니 한밤의 산책길도 발걸음이 가벼웠고, 벚꽃잎이 저물어들었는지도 모른 채 푸른잎 사이를 사람들 틈에 걸었다. 봄과 여름이 피었다.


이런 생각도 했다. 아예 만져보지도 못했고, 지금까지도 어떻게 연주되는지 잘 모르는 현악기와는 달리, 이 악기에는 어릴 적 남들 하길래 어쩌다 건반 위에 두 손을 올려본 적이 있었다. 

 

아주 조금은 나와 가깝다고 여겼던 이 악기가 저렇게 멀게만 느껴지는 소리를 낸다. 손을 올려본 적 있다는 사실만으로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세계가 그 안에 있었다.

 

피아노란 뭘까? 너는 누구일까?


미처 다 마시지 못한 머그컵을 손가락으로 만지작거리며 고민했다. 그러다 그냥, 이제는 다 식어버린 커피를 홀짝- 마셔버렸다.


아잇, 모르겠다.

이럴 땐 그냥 선생님께 여쭤보자.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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