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가리옌은 <왕좌의 게임> 세계관에서 용을 타고 웨스테로스를 정복해 오랜 세월 철왕좌를 지배했던 왕가다. 드라마가 한창 인기를 끌던 그 시절, '용의 어머니'로 큰 사랑을 받았던 캐릭터가 바로 대너리스 타가리옌이다.
<왕좌의 게임>에서 처음 만난 타가리옌 가문은 이미 몰락한 왕조였다. 비세리스와 대너리스 남매는 한때 웨스테로스를 지배했던 가문의 마지막 후예처럼 등장했고, 과거 타가리옌이 얼마나 강대한 가문이었는지는 전설처럼 전해질 뿐이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약 200년 전, 수많은 타가리옌이 살아 있었고 여러 용이 하늘을 날던 이 가문의 전성기를 다룬 작품이 있다.
바로 <하우스 오브 드래곤>이다.
힘이 가족을 파괴할 때, <하우스 오브 드래곤>
시리즈는 '후계자' 문제에서 시작된다. 남성 후계자가 없었던 비세리스 1세는 딸 라에니라를 공식 후계자로 지명한다. 하지만 이후 두 번째 아내 알리센트 하이타워와의 사이에서 아들이 태어나면서 왕가에는 서서히 균열이 생긴다.
라에니라를 지지하는 세력과 알리센트의 아들을 지지하는 세력이 갈리고, 그들의 자식들까지 갈등에 휘말리면서 비세리스가 죽은 뒤 왕가는 결국 내전으로 치닫는다.
<왕좌의 게임>에서는 '이 캐릭터가 마음에 드는데' 싶으면 그 인물이 죽을까 봐 걱정해야 했다면 <하우스 오브 드래곤>에서는 애정을 갖고 마음 편히 응원할 만한 인물 자체가 드물다.
라에니라, 알리센트, 다에몬, 아에곤 등 누구 하나 완전히 정의로운 인물로 남지 않고, 권력 앞에서 모두가 조금씩 도덕성을 잃어간다.
이는 작품의 장점이자 단점이기도 하다. 특정 인물에게 서사가 집중되지 않아 이른바 '주인공 버프' 없이 여러 인물이 비교적 동등하게 그려진다는 점은 흥미롭다. 반면 뚜렷한 중심인물이 없는 만큼 각 인물의 심리가 더욱 세밀하게 전달되어야 하는데, 때로는 그들의 행동이 지나치게 극적으로 흐르면서 충분히 설득되지 않는 순간도 있다.
그래서 <하우스 오브 드래곤>은 '누가 왕좌에 앉아야 하는가'보다 '권력 앞에서 어떻게 한 가족이 서로를 파멸시키게 되었는가'를 지켜보게 만드는 작품에 가깝다.
어쩌면 이 가문의 인물들은 모두 압도적인 '힘'을 가지고 있었기에, 비상식적인 행동마저 거리낌 없이 저지를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 비극을 가장 거대한 방식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용들의 춤'이다.
당시 여러 타가리옌 왕족과 그 혈족들은 각자의 용을 거느리고 있었다. 그리고 결국 같은 가문의 사람들이 용을 타고 서로를 죽이기 위한 전쟁을 벌인다.
타가리옌을 누구도 쉽게 넘볼 수 없는 최강의 가문으로 만들어준 힘이, 역설적으로 서로를 가장 처참하게 파괴할 수 있는 힘이 된 셈이다.
용과 내전, 왕가의 갈등으로 작품의 스케일은 거대하다. 하지만 끊임없는 권력 투쟁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다 보니, 오히려 웨스테로스라는 세계가 왕좌 주변에 한정되어 보이는 순간도 있다.
그리고 '용들의 춤'에서 수많은 용이 죽고, 살아남은 용들마저 점차 자취를 감추면서 타가리옌의 시대 역시 이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변해간다.
용들의 춤 이후, <세븐 킹덤의 기사>
<세븐 킹덤의 기사>는 '용들의 춤'이 끝나고 몇 세대가 지난 뒤 대너리스가 태어나기 한참 전을 배경으로 한다. 타가리옌 가문은 여전히 철왕좌를 차지하고 있지만, 그들을 절대적인 존재로 만들어주었던 용은 이미 사라진 시대다.
이 시리즈는 파국과 비극이 끊이지 않았던 <하우스 오브 드래곤>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보여준다.
무엇보다 시청자가 주인공에게 자연스럽게 애정을 갖고 그들의 여정을 응원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오히려 <왕좌의 게임>에 더 가까운 인상을 준다.
이야기의 중심에는 떠돌이 기사 던칸과 그의 종자 에그가 있다. 권력과 욕망에 잠식되어 가던 앞선 작품의 인물들과 달리, 두 사람은 자신만의 도덕성과 선의를 지닌 인물로 그려진다. 그만큼 이야기를 따라가는 부담도 적고, 두 사람이 어떤 선택을 하고 어디로 향하게 될지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된다.
대신 작품의 규모는 <하우스 오브 드래곤>에 비해 훨씬 작다.
왕위를 둘러싼 대규모 전쟁이나 용들의 전투 대신 한 떠돌이 기사의 여정과 토너먼트,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중심을 이룬다.
하지만 오히려 그 작은 규모 덕분에 이전 작품에서 잘 보이지 않았던 웨스테로스의 모습이 드러난다.
<왕좌의 게임>과 <하우스 오브 드래곤>이 주로 왕족과 대귀족의 시선으로 웨스테로스를 바라봤다면, <세븐 킹덤의 기사>는 그보다 낮은 곳으로 시선을 옮긴다. 왕과 영주들이 만들어가는 거대한 역사보다, 그 역사 속에서 살아가는 기사와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가까이 들여다본다.
그렇다고 타가리옌 가문의 폭력성과 광기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달라진 것은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하우스 오브 드래곤>에서는 왕족들의 갈등과 권력 다툼 자체가 이야기의 중심이었다면, <세븐 킹덤의 기사>에서는 그들의 횡포가 아래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다가오는지를 던칸과 에그의 시선을 통해 보여준다.
'용들의 춤'으로부터 오랜 시간이 흘렀으나, 불과 10여 년 전 첫 블랙파이어 반란이라는 또 다른 내전이 있었다. 작품에서는 그 반란이 남긴 흔적과 함께 반복되는 왕가의 권력 다툼에 지친 평범한 사람들의 반감과 피로감도 엿볼 수 있다.
왕족에게는 왕위와 혈통을 둘러싼 역사였겠지만, 그 아래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삶을 뒤흔드는 큰 전쟁의 반복이었던 셈이다.
두 주인공 역시 <왕좌의 게임>과 연결되어 있다. 던칸은 훗날 웨스테로스에 이름을 남기는 '키 큰 던칸 경'이며, 그의 종자 에그 역시 <왕좌의 게임>에서 마에스터 아에몬이 죽음을 앞두고 떠올렸던 인물이다.
<왕좌의 게임>에서는 이미 전설과 기억 속 존재로만 언급되었던 두 사람을, <세븐 킹덤의 기사>는 이야기의 중심으로 불러낸다. 특히 에그가 훗날 어떤 위치에 서게 되는지를 알고 이 이야기를 바라보면, 평범한 종자로 시작한 그의 여정이 지닌 의미도 더욱 크게 다가온다.
물론 웨스테로스를 배경으로 한 작품인 만큼 <세븐 킹덤의 기사>에도 비극과 잔혹한 장면은 존재한다. 전반적인 분위기는 <하우스 오브 드래곤>보다 훨씬 가볍고 부담도 적다.
그런 점에서 스토리와 직접 연결되지 않는 노출·선정적 장면들은 개인적으로 아쉬움으로 남았다. 잔혹한 장면이 서사와 맞물려 있는 것과 달리, 이런 장면들은 작품이 가진 비교적 가벼운 분위기와 오히려 어긋나 보였다.
그럼에도 <세븐 킹덤의 기사>는 탄탄한 이야기와 던칸, 에그라는 두 인물의 매력 덕분에 다음 여정을 계속 지켜보고 싶게 만드는 시리즈였다.
용이 사라진 뒤에야 보인 것들
<하우스 오브 드래곤>이 한 가문이 권력 앞에서 어떻게 스스로 파국으로 치닫는지를 거대한 스케일로 보여준다면 <세븐 킹덤의 기사>는 그 거대한 역사 아래에서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작은 인물들을 바라본다.
아이러니하게도 용과 전쟁이 사라지고 이야기의 규모가 작아졌을 때, 웨스테로스라는 세계는 오히려 더 넓게 보이기 시작한다.
'용'이라는 압도적인 힘을 가진 타가리옌은 자신들의 욕망을 제어해야 할 이유마저 잊어버린 것은 아니었을까.
이 세계에 필요했던 것은 더 거대한 전쟁이나 더 많은 용이 아니라, 왕좌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웨스테로스를 바라보는 또 다른 시선이었는지도 모른다.
이야기가 흥미로운 이유는 그것이 비단 판타지 속 왕가의 비극으로만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힘을 손에 쥔 사람이 자신의 욕망을 통제하지 못하는 모습은 현실에서도 낯설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타가리옌의 '용'은 단순한 판타지적 상징이 아닐지도 모른다. 더 큰 힘을 가졌다는 이유로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믿게 되는 순간, 그 힘은 사람을 지켜주는 무기가 아니라 욕망을 키우고 정당화하는 수단이 된다.
어쩌면 힘을 쥔 순간,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용'이 생겨나는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