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과 갤러리에 전시를 보러 가면 간혹 하는 생각이 있다. 이 작품은 어쩌다 여기, 이 벽에 걸리게 됐을까. 돌이켜보면 작가가 붓을 내려놓은 순간과 그 손끝에서 탄생한 작품이 지금 우리 눈앞에 걸려 있는 순간 사이에는 생각보다 훨씬 많은 일들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대개 그 과정을 생략하고 완성된 결과물을 음미하는 것에 익숙하다. 물론 작품을 감상하는 방식은 다양하고, 작품에 온전히 몰입하기 위해 그것을 가장 미적이고 감각적인 층위에서 탐닉하는 것도 결코 틀린 길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한 번도 유심히 들여다보지 못한 비밀스런 속사정을 각각의 작품이 품고 있다고 생각하면, 이런 비밀을 알아가는 것 또한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것만큼 즐거운 일일 것이다. 『세상에 순수한 미술은 없다』는 바로 그 비밀스러운 부분들을 다시 채워 넣는 책이다. 우리가 그동안 알지 못했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던, 작품이 벽에 걸리기까지의 여정과 전시장을 벗어난 뒤의 방황을 현직 전문가의 시점에서 솔깃하게 풀어낸다.
순수한 미술이 없다는 말은 꽤나 파격적으로 들린다. 우리는 흔히 예술을 인간의 가장 순수한 표현 방식 중 하나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순수예술' fine arts라는 용어가 버젓이 존재하는 이유도 이와 멀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순수하다'라는 표현이 내포하는 의미에 의문을 가져볼 수 있다. 책을 읽으며 나 나름대로는 이 표현이 가장 '개인적이고' '오롯이' 존재하는 것들과 가장 닮아 있는 것은 아닐지 생각해 보았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넌 참 순수해'라고 말할 때, 그 대상은 대부분 외부적인 요소에 거의 영향을 받지 않고 섞이지 않은, 가장 깨끗한 내면의 소유자이지 않을까. 결국 우리가 정의해 온 순수함은 그 태초의 본질이 퇴색되지 않고 가장 온전히 이상적으로 보이는 형상을 유지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결국 '순수한 미술이 없다'는 말은 홀로 오롯이 외딴 섬에 서 있는 작품은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가 일상에서 수없이 보고 이야기하고 지나치는 작품들은 모두 제도 안에 진입한 인간의 산물이다. 울타리 안에 들어온 순간부터 법과 체제, 사회문화, 그리고 이데올로기와 대중적 인식으로부터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이다.
책은 작품 하나가 세상에 나올 때 세 번의 탄생을 거친다고 말한다. 아이디어가 작품이라는 결과물로 처음 형태를 갖췄을 때, 그것이 시장에서 가치와 경쟁력을 평가받으며 상품으로 거래될 때, 그리고 어느 미술관이나 컬렉터의 소장품이 되어 새로운 운명을 부여받을 때다. 이렇게 세 번 태어나며, 어쩌면 더 복잡하고 빈번한 격변을 겪은 작품들도 다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작품을 감상하는 순간의 대략적인 시간적 위치를 추정해 보면, 이미 이 일련의 흐름을 거치고 어딘가에 소장되어 대중의 시선에 오르내리는 시점일 것이다. 그러니 작품의 길고 긴 생에 비하면, 우리가 그들과 마주치는 순간은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짧다고 말할 수 있겠다. 전시 후에도 수차례 경매와 기관 이전을 거치는 경우가 수없이 존재하니, 우리의 눈을 스쳐 간 작품들은 소실되거나 파괴되지 않는 한 영겁의 여정 속에서 긴 세월을 보낼 것이다. 작품에도 인간의 생과 같이 일대기가 존재한다고 생각하면, 왠지 모르게 더욱 친근하게 느껴지고 그 안부를 묻고 싶은 궁금증도 생긴다.
흥미로운 지점은 미술시장이 어떤 메커니즘으로 운영되고, 이 모든 활동의 경제적 여파가 다른 부문에도 연쇄적으로 영향을 미치며 은밀한 상호작용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시장'이라 하면 가장 세속적이고 치열한 삶과 돈의 흔적이 묻어 있는 공간이라 여겨지기 마련인데, 흔히 예술과 돈을 같이 말하면 뭔가 불편해하는 분위기가 있지 않은가. 기회주의적이고 이기적인 예술은 금기시되어야 하는 것일까, 돈 얘기를 하는 순간 격이 떨어진다는 식의 은근한 편견 말이다. 재미있는 것은 우리가 미술관에서 으레 감탄하며 보는 작품들에도 모두 '가격'이라는 것이 존재하고, 그 가격이 수요와 공급이 맞아떨어지는 지점에서 치밀하게 형성된다는 것이다.
보기 좋고 많은 사람이 갖고 싶어 하는 작품일수록 값이 오르고, 대중의 취향과 거리가 먼 작품은 상대적으로 조용히 묻힌다는 서술은 냉정하다 못해 서늘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작품이 하나의 표현의 장으로 기능함과 동시에 세계적인 규모의 자본을 옮기는 상품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절대 흘려들을 말은 아니다. 결국 우리가 찬양하는 작품의 권위도 제도 속에서 산정된 경제·사회·문화적 가치에 의해 형성되었기에, 우리는 눈앞의 작품이 남긴 현상만으로 그 작품을 다 안다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우리가 작품을 감상하는 순간 또한 일종의 '소비'라는 경제적 패턴이라 생각해 볼 수 있다. 우리는 '관람자'이자 '소비자'로서 일상적으로 수많은 작품을 후원하는 동시에 그것을 등지는 선택적 행동을 통해 예술 자본시장에 작은 한 획을 긋는 셈이다. 이 사실을 알고 나면, 우리가 주말마다 보는 미술관의 작품들도 다르게 보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 메커니즘은 꽤 오래전부터 반복되어 왔다. 책에서 찾아볼 수 있듯, 서양 르네상스 이후 미술이 '브랜딩'되고 아티스트의 '명성'이 생겨나던 시기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유구한 사례들이 존재해 왔다. 이를 통해 우리는 미술 시장의 번영과 예술 자본화가 그저 산업화와 현대화의 결과만은 아니라는 것을 엿볼 수 있다. 오래전의 미술품과 유물이 기관과 컬렉터에 의해 보존되고 소장되어 현재까지 그 권위를 굳건히 하는 것을 보면, 이러한 역사는 아주 오래전부터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작품의 가치를 형성해왔을 뿐만 아니라, 예술품을 경제적·사회적 맥락 속에서 하나의 요소로 기능하게 했던 배경을 대물림해왔다. 이 세대가 누리는 예술에 대한 환희와 즐거움 또한, 선조들이 이를 유통하고 홍보한 영민한 방식을 후대가 계승한 결과임을 알 수 있다.
이 책이 다루는 이야기는 미술이 개인의 재능에서 시작해 국가 단위의 산업으로 확장되는 과정, 그리고 서울이 홍콩과 함께 아시아 미술 허브로 떠오르는 현재까지 시대적 범위를 넓혀간다. 글로벌라이제이션 시대에 더 이상 미술은 한 국가만의 전유물이나 국보처럼 취급되지 않는다. 수많은 컬렉션과 전시 프로젝트가 대양을 건너고 대륙을 넘나든다. 이러한 시류를 어떠한 시선과 태도로 받아들이고 적절히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는 한국에서도 수없이 이뤄져 왔고, 앞으로도 쉴 틈 없이 이어질 것이다. 예술을 통해 국가 간의 경계를 허물고 시공간을 넘어 소통하는 것은 단지 이상적인 교류의 형태로 보일 뿐만 아니라, 국가 산업의 측면에서 굉장한 수출 시장이 생기는 것과도 마찬가지다. 위에서 서술했듯 미술이 꽤 오래전부터 자본과 얽혀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한 국가의 작가와 작품이 어떠한 범국가적 이윤을 창출하고 마케팅과 홍보 효과에 기여하는지는 이제 매우 중요한 일이 되었다.
또한 AI와 알고리즘의 시대에 예술은 많은 변화의 풍파를 맞았다. 그림을 그리는 도구가 손이 아닌 데이터가 되고, 인간이 아닌 작가가 탄생해 그 저작권을 논하는 시대에 이르기까지, 눈부신 기술 혁신과 함께 미술 또한 그 궤적을 같이 해왔다. 급진적인 성장 가도 속에서 향후 전망에 대한 두려움과 씁쓸함을 느끼는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책에 서술되어 있듯,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 아직 가장 강력한 '합의의 몫'이 남아 있다는 사실이다. 도구가 무엇으로 변모하든, 탄생한 예술적 산물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에 대해 합의하고 논의하는 일만큼은 결국 우리의 몫으로 남는다는 것이다. 무언가를 아름답다고 느끼고 그 감각을 서로 이야기하는 일은 여전히 우리 손에 있다는 뜻이다. 이 사실에 조금이나마 안심이 되는 동시에, 인간에게 맡겨진 과업에 은연중 책임감이 느껴지는 것은 이 책이 알려주고자 한 바람직한 사유의 미래일 것이다.
결국 순수한 미술 같은 건 처음부터 없었다는 것. 대신 그 자리에는 매 시대마다 사람들이 함께 만들어 온 여러 합의가 있었다는 것. 그리고 다음 세대는 지금보다 더 넓은 문으로 그 합의의 자리에 들어설 수 있을 거라는 것. 이 책을 덮은 우리가 함께 탁자에 둘러앉아 이야기해 볼 수 있는 '합의의 몫'은 여전히 남아 우리를 설레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