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은 원화전 〈오늘의 정원〉
장소: 그라운드시소 이스트
기간: 2026.07.17.(금) ~ 2026.11.29.(일)
전시장 첫 벽에 나뭇가지 그림자가 드리워 있다. 조명으로 만든 그림자이고, 공간에는 햇살 드는 정원을 떠올리게 하는 배경음이 들려온다. 그라운드시소 이스트에서 열리고 있는 조은 원화전 〈오늘의 정원〉은 그림을 보여주기 전에 관객의 몸부터 정원 안에 들여놓는다. 첫 방에 들어서며 든 감정은 단순했다. 아름답다, 그리고 편하다.
전시는 '보물찾기', '숲의 미로', '공중산책', '나의 정원', '묵분오색' 다섯 개의 방으로 이어진다. 방마다 풍경도 시점도 달라지지만, 그 안에서 하게 되는 일은 하나였다.
직선을 덮는 화분
첫 섹션 '보물찾기(日常探寶)'는 도시의 건물을 그린다. 붉은 벽돌 건물, 분홍빛 외벽의 상가, 발코니가 층층이 이어진 아파트. 창틀과 층의 구획은 자로 잰 듯 반듯하다. 그런데 그 직선 위로 화분이 놓이면서 직선을 덮어 나간다. 집집마다 창가와 발코니, 옥상에 사람들이 기르는 식물이 넘쳐 나온다.


같은 규격으로 찍어낸 창문들이 저마다 다른 얼굴을 갖게 되는 건 건물 때문이 아니라,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이 기르는 것들 때문이다. 직선은 도시의 모양이고, 화분은 거기 사는 사람의 모양이다. 흔히 이런 초록을 '도시의 외벽을 뚫고 피어난 생명력'이라 생각하겠지만, 그림 속 식물은 콘크리트를 부수지 않는다. 그 위에 조용히 얹혀 직선을 조금씩 가릴 뿐이다. 거창한 저항이 아니라 매일 물을 주는 손길로 만들어진 초록이다.
그래서 이 섹션 앞에 서 있는 일은 정말로 보물찾기에 가까웠다. 직선으로 빼곡한 도심의 화면에서 창틀 틈, 발코니 난간 사이로 삐져나온 잎사귀를 하나씩 찾아내는 일. 일상 속에 숨겨진 희망의 단서를 찾는다는 섹션 이름의 의미는, 그림 속 초록을 직접 찾아낼 때 비로소 실감이 난다. 그리고 그 찾기를 반복하다 보면 생각이 그림 밖으로 이어진다. 삶이라는 것도 결국 반듯하고 단단한 일상 속에서 작은 행복이라는 보물을 하나씩 찾아 나가는 일이 아닐까.
번지듯 흐르는 풍경

두 번째 섹션 '숲의 미로(墨林迷路)'에 들어서면 직선이 사라진다. 빽빽한 수목 사이로 길이 굽이치고, 여러 폭의 화면이 나란히 걸려 풍경이 끊기지 않고 이어진다. 야자수와 침엽수처럼 한 장소에 함께 자라기 어려운 식물들이 한 화면에 공존하는 이 숲은, 실재하는 어딘가가 아니라 작가가 상상으로 엮은 정원이다. 전통 수묵화라면 여백으로 남겨 두었을 자리를 조은은 잎과 나무로 채운다.
그런데 그 밀도가 답답하지 않다. 먹이 한지에 스며들며 만든 경계는 단단하게 끊기지 않고 부드럽게 풀어지고, 그 사이로 짙은 초록과 옅은 초록이 겹쳐 싱그러운 결을 만든다. 숲을 헤매기보다 흐름에 몸을 맡기게 되는 쪽에 가까웠다.
세 번째 섹션 '공중산책(空中散策)'에서는 시점이 하늘로 올라간다. 위에서 내려다본 해변과 강, 숲으로 둘러싸인 수영장에 사람들이 점처럼 흩어져 쉬고 있다. 물빛은 번지듯 풀어져 있고, 그 안의 사람들은 누구도 서두르지 않는다. 그림 속 사람들의 여유가 보는 사람에게도 옮겨 온다.

집으로 가는 길
네 번째 섹션 '나의 정원(我心庭園)'은 멀리 올라갔던 시선을 다시 땅으로 내려놓는다. 그 끝에 놓인 것은 결국 익숙한 일상이다. 〈집으로 가는 길(Way Back Home)〉 두 점에는 오리와 백로가 떠 있는 강변 산책로, 가로등이 켜진 숲길을 나란히 걷는 두 사람이 그려져 있다. 제목의 방점은 'Way'와 'Back'에 찍혀 있다. 편안한 곳으로 되돌아가는 여정이다. 숲과 하늘을 지나온 보물찾기는 결국 집으로 돌아가는 길 위에서 끝난다.

색을 덜어내자 보이는 것들
그리고 전시는 한 번 더, 마지막 방을 남겨 둔다. '묵분오색(墨分五色)'. 먹 하나에 세상의 모든 색이 담겨 있다는 뜻이다. 앞선 방들을 채우던 초록과 물빛이 이곳에서는 모두 빠지고, 흑백만 남는다.

이 섹션의 대표작 〈my lovely fairy tale〉은 산 아래 자리한 작은 마을을 그린다. 그런데 흑백의 화면을 오래 들여다볼수록 이상한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뾰족하게 솟은 산봉우리 사이로 고양이들이 얼굴을 내밀고 있고, 마을 한가운데를 가르는 길은 어느새 강이 되어 물고기와 헤엄치는 사람들이 그 위를 떠다닌다. 카페 테라스에는 사람들이 둘러앉아 있고, 창문마다 누군가의 하루가 들어 있다. 사랑스러운 흑백 동화라는 말이 꼭 어울리는 화면이다.
색이 사라졌는데 오히려 볼 것은 늘어난다. 색이 시선을 이끌어 주지 않으니, 관객은 화면 구석구석을 스스로 뒤지게 된다. 첫 섹션에서 직선 사이의 초록을 찾던 보물찾기가, 마지막 방에서는 흑백 화면 속 숨은 고양이와 물고기를 찾는 놀이로 되돌아온다. 먹 한 가지로 그렸는데도 산봉우리는 단단하고, 길은 물처럼 흐른다. 덜어낸 화면이 오히려 가장 풍성하다는 것, 묵분오색은 이 전시가 아껴 둔 마지막 보물이다.
다섯 개의 방, 하나의 시선
돌아보면 다섯 섹션은 시선의 거리를 바꿔 가며 같은 일을 반복한다. 창가를 가까이 들여다보고, 숲속을 걷고, 하늘에서 내려다보고, 집으로 돌아오고, 마지막에는 색을 덜어낸 화면 앞에 선다. 거리와 색은 매번 달라지지만, 그 안에서 작고 소중한 것을 찾아내는 일은 그대로다. 직선 사이의 잎사귀, 수영장에 누운 사람, 집으로 가는 두 사람, 산봉우리 사이의 고양이.
그 보물은 멀리 있지 않다. 어제와 같은 오늘의 창가에 이미 놓여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