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을 사랑하는 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게임이 가진 가장 큰 매력은 비현실성이라고 생각한다. 현실에서 경험할 수 없는 낯선 세계를 직접 탐험하고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드는 것. 그 중에서도 단연 눈에 띄는 게임은 ‘반전 매력’을 가진 어딘가 오타쿠 스러운 게임들. 귀엽고 아기자기한 그래픽 안에 숨어있는 어딘가 기괴하고 다크한 본심! 처음에는 단순히 귀여운 픽셀 그래픽에 이끌리지만, 어느새 독특한 세계관과 이야기, 그리고 이를 풀어내는 게임에 빠져들게 된다.
이런 취향을 이야기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게임사가 있다. 바로 ‘바로크 디케이(Baroque Decay)’. 스페인의 인디게임 개발사인 바로크 디케이는 잔혹 동화 모티브의 <루카노르 백작>, 블랙 기업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회사원을 그린 <여피 사이코>등 독특한 분위기와 개성 있는 세계관을 선보여 왔다. 최근에는 종교와 악마를 다룬 <카테키시스> 데모를 공개하며 또 한 번 기대를 모으고 있다. 세 작품은 서로 다른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픽셀 그래픽을 통한 현실과 환상의 공포가 뒤섞인 독특한 세계를 구현하고 있다.
잔혹동화를 좋아하세요? 루카노르 백작 (The Count Lucanor)
<루카노르 백작>은 마치 한 편의 잔혹동화를 직접 써내려가는 듯한 게임이다. 어린 소년이 아빠를 찾아 백작의 성에 들어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이 게임은, 동화적인 분위기와 섬뜩하고 잔혹한 연출이 묘하게 어우러진다. 피를 흘리는 뒤틀린 염소들과 검은 눈을 치켜뜬 붉은 시종 등 픽셀 그래픽임에도 상당히 구체적인 캐릭터와 배경, 오브젝트 등 다채로운 그래픽을 통해 작은 화면 안에서도 풍부한 세계를 느낄 수 있다.
이 게임의 매력은 동화와 픽셀에서 그치지 않는다. <루카노르 백작>은 그 속의 이야기를 단순히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경험하게 만든다. 플레이어의 선택과 행동에 따라 여러 엔딩으로 이야기가 분기되며, 성 곳곳을 탐험하고 숨겨진 단서를 발견하는 과정이 자연스럽게 비밀을 파헤치는 과정이 된다. 게임은 귀엽고 아기자기한 그래픽에 안심하고 있다가도, 예상치 못한 어두운 장면과 심리적인 공포를 마주하게 되는 경험을 제공한다.

게임은 주인공인 한스가 성을 지키는 ‘푸른 요정’의 이름을 풀어내고 진실에 가까워지는 전개를 이루고 있다. 게임의 핵심적인 과정은 푸른 요정의 이름을 찾아내는 데에 있지만, 게임의 데미를 장식하는 건 역시나 보스전이다. 탐험과 퍼즐을 통해 쌓아온 긴장감을 분출하는 단계인 보스전은, 그동안 쌓아왔던 심리적인 공포를 극대화 시키며 기괴하고 소름돋는 그래픽을 통한 ‘잔혹 동화’ 서사를 완성한다.
그런 의미에서 루카노르 백작은 굉장히 자연스러운 게임이라고 할 수 있다. 탄탄한 단계를 기반으로 엔딩으로 도달했을 때 주는 큰 만족감은 플레이어를 바로크 디케이의 다음 작품을 기다리게 한다. 어느 한 세계에 완전히 몰입하는 경험을 준다는 것은 게임으로서의 본분을 다했다는 뜻이 아닐까. 바로크 디케이 특유의 불친절한 저장 시스템은 때때로 플레이어를 좌절하게 만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세계를 만든다는 점은 누군가를 가슴뛰게 만드는 일인 것 같다.
360도 돌아버린 신입사원 여피 사이코 (yuppie Psycho)
<여피 사이코>는 바로크 디케이를 널리 알린 게임이기도 하다. 누구나 다 아는 대기업이자 블랙기업인 ‘신트라코프’를 배경으로 하는 이 게임, 콘셉트부터 오타쿠들의 심금을 울린다. ‘블랙기업에 입사한 신입사원’이라는 설정이 꽤나 독특한데, 잔뜩 비틀린 잔혹 동화를 다뤘던 전작만큼이나 빙글 돌아버린 스토리를 선사한다.
평범한 회사 생활을 기대하고 입사한 주인공 ‘브라이언 패스터낵’은 회사에 도사리는 기괴한 존재들과 마주하며 회사에 있는 ‘마녀’를 제거하라는 말도 안되는 임무를 맡는다. 회사라는 익숙한 공간을 공포와 탐험의 무대로 바꿔 놓았다는 발상과 바로크 디케이 특유의 픽셀 애니메이션은 게임을 시작하기도 전에 흥분과 기대치를 최대로 끌어올린다.
무엇보다 매력적인 것은 바로크 디케이 주인공 특유의 ‘은은한 또라이’ 기질이 아닐 수 없다. 주인공 브라이언은 묘하게 정상적이지 않은 사고방식을 통해 큰 웃음을 자아낸다. 눈 앞에 시체가 놓여 있어도 퇴사보다는 시체를 피해 가는 방법을 먼저 고민하고, 사무실을 기어다니는 프린터 괴물을 봐도 곧바로 진정하고 해결책을 탐구한다. 지극히 비현실적인 상황을 승진과 입사에 미쳐버린 현대인의 시선으로 받아들이는 태도는 곧 이 게임만의 유머를 만들어 낸다.

<여피 사이코>를 논하며 시각적인 재미 역시 빼놓을 수 없다. 네온 그린과 회색을 중심으로 통일된 미래적인 기업의 모습은 게임 전체에 기묘하고 불쾌한 분위기를 형성하면서도 독특한 미감을 만들어낸다. 특히 회사 건물의 층마다 완전히 다른 콘셉트와 이야기를 담아낸 점이 인상인데, 거대한 프린터 괴물이 돌아다니는 층부터, 창립주의 묘지가 있는 정원 공간, 기괴한 전시회가 열리는 층과 정체를 알 수 없는 창고까지. 회사라는 하나의 건물 안에 있는 공간을 다채롭고 기괴하게 구현했다는 사실 자체가 놀랍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콘셉트나 초반 시스템에 비해 아쉬워지는 결말이지 않을까 싶다. 전형적인 용두사미의 전개를 가진 게임이지만, 게임 소장을 적극적으로 추천하고 싶다. 결말에서 얻는 아쉬움보다 이 게임이 가진 독창적인 콘셉트와 세계관이 우선시 되기 때문이다. 이 독특한 세계관과 캐릭터 설정이라면 게임이라는 매체를 넘어 영상이나 애니메이션 등 다른 형태의 콘텐츠로 확장되어도 무방할 정도의 재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 말은 즉 <여피 사이코>의 세계관 자체를 하나의 IP로 기대할 만큼 게이머들을 매료시킨다는 뜻이기도 하다.
대사와 스토리를 중심으로 플레이 되는 <여피 사이코>는 출시 당시 다양한 비제이와 게임 스트리머들의 방송 소재가 되었다. 긴 플레이 타임이 부담된다면, 방송과 영상을 통해 게임을 감상하는 것도 꽤나 즐거운 경험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지극히 개인적인) 2027년 최고의 기대작, 카테키시스 (Catechesis)
지극히 개인적인 최고 기대작은 2027년 3분기 출시를 목표로 하고 있는 바로크 디케이의 차기작 <카테키시스>다. 2026년 기준 스팀에서 데모 플레이가 가능한데, 공개된 정보와 티저만으로도 벌써부터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게임이다.

바로크 디케이는 이번에도 아주 완벽한 소재를 선택했다. 주인공 다니엘은 비주류 종교의 복사로, 악마에게 사로잡힌 상태로 게임이 시작된다. 선행을 할 때마다 오히려 지옥의 문이 열린다는 기묘한 설정 아래, 낮에는 도덕적인 행동을 하고 밤에는 악마와 전투를 벌이며, 할아버지의 목숨과 세상을 구하기 위해 치열한 사투를 이어간다. ‘선행을 하면 지옥에 간다’라는 역설적인 설정부터 바로크 디케이 특유의 취향이 고스란이 느껴진다.

특히 주목해야 할 점은 픽셀 그래픽의 발전인데, 여기서 어떻게 더 완벽해질 수 있을까 싶은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수도 없이 등장한다. 더 구체적으로 구현된 미모의 주인공과 다크 판타지의 느낌을 강화하는 바로크 디케이만의 미술 스타일은 정말 언제 봐도 아름답다. 현실과 동화, 비현실적인 이미지가 미묘하게 뒤섞인 듯한 분위기는 이전 작품들에서도 드러났지만, 더욱 독특한 방향으로 발전한 <카테키시스>에 대한 기대를 멈출 수 없다. 픽셀이라는 제한적인 표현 방식 안에서도 이렇게 섬세하고 매력적인 캐릭터와 세계를 계속해서 발굴할 수 있다는 점이 놀랍기만 하다.
아직은 직접 플레이 할 수 없는 작품이지만, 지금까지 공개된 설정과 비주얼만으로도 배부른 게임이 바로 <카테키시스>다. 이전 작품에서 보여준 독특한 세계관과 이야기 전개가 이번에는 어떤 방식으로 구현될지 무척이나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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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크 디케이의 세 작품을 살펴보면, 게임의 재미가 반드시 화려한 그래픽이나 방대한 콘텐츠에서만 비롯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한정된 픽셀 안에서 얼마나 독창적인 세계를 담아내는지, 익숙한 소재를 얼마나 낯설고 흥미롭게 바꾸어 놓는지, 그리고 플레이어가 그 안에서 어떤 경험을 하게 만드는지가 또 다른 게임의 재미를 낳는다.
게임을 하면 할 수록 바로크 디케이라는 회사가 궁금하다. 우리는 사소하고 우연한 곳들에서 꿈의 방향을 찾게된다. 누군가에게는 평범한 픽셀 몇개와 작은 캐릭터일지 모르는 게임들은 나에게는 게임에 대한 원대한 꿈을 심어주는 모티브가 된다.
게임을 통해 누군가의 심장을 뛰게 만들고, 이전에는 몰랐던 취향을 발견하게 하고, 새로운 꿈까지 꾸게 만든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다. 언젠가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경험을 선물할 수 있는 게임을 만들 수 있을까. 그런 상상을 가끔씩 해보고는 한다. 누군가의 상상에서 시작된 작은 세계가 또 다른 사람의 꿈이 되는 것. 스토리와 세계관, 픽셀에 대한 예찬을 줄줄이 늘어놓았지만, 사실은 그런 단순한 이유가 내가 바로크 디케이의 게임을 사랑하는 가장 큰 이유일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