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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나의 슈만, 당신의 클라라 - 포핸즈 [드라마]

당신은 내 삶의 음이고, 은밀히 귀 기울이는 사람입니다.

by 권혜선 에디터
2026.10.31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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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본적으로 클래식 음악에는 가사가 없다. 그러나 그것이 서사가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클래식에는 삶을 기반으로 인간 내면을 정면으로 마주한, 아주 극적인 서사가 담겨 있다. 그것이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흥분하게 되는 이유고, 위로받게 되는 이유고, 공감하게 되는 이유다. 드라마 <포핸즈> 역시 클래식 음악 속 흐르는 인간 서사를 포착하며 본연의 매력을 살렸다.


      <포핸즈>의 기획 의도는 가능하면 전문을 읽어보라고 추천할 정도로 좋다. 특히 이 부분에 깊이 공감했다. ‘이 작품은 단지 뜨거운 예술혼에 관한 이야기만이 아니라, 한 사람의 존재가 다른 한 사람의 삶과 음악을 얼마나 깊이 뒤흔들고, 끝내 변화시킬 수 있는가에 관한 이야기다.’ 예술로 말미암은 아름다움은 누군가를 변화시키는 데 있다.

       

      ‘예술’은 아름답고 위험한 것, 그래서 누군가에게는 포기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포핸즈> 속 인물들도 자신만의 이유로 음악을 포기할 수 없다. 클래식 소재의 드라마가 흥미로운 이유는 음악을 대하는 이들의 내면을 엿볼 수 있고, 음악과 삶이 얽히는 관계성이 폭발적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오늘은 해당 드라마의 주인공인 동갑내기의 라이벌 최정요와 강비오를 중심으로, 두 사람을 의미하는 클래식 음악 및 음악가와 그 의미를 살펴보고자 한다.

       

       


      라흐마니노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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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오는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다. 사생아라는 이유로, 껍데기뿐인 연주라는 이유로 자신을 인정해 주지 않는 할아버지 강승운 지휘자에게 계속해서 인정을 갈구한다. 그러던 차에 정요가 등장한다. 정요의 압도적 재능 앞에서 비오는 이인자 취급을 받는다. 비오 역시 인정받기 위해 미친 듯이 연습하지만, “너와는 다르다”라는 말을 들을 뿐이다.


      본격적인 문제의 시작은 체코 프라하 하르모니에 콩쿠르에서 생긴다. 정요가 연주를 하러 차를 타고 이동하다가 그대로 실종된 것. 생사조차 알 수 없는 상황에 비오는 죄책감에 시달리며 슬럼프를 맞이한다. 그래서 비오는 ‘기억상실’이 되었다고 말하는 정요가 다시 등장했을 땐 정요의 사고에 자신의 책임이 있다고 여기며 솔리스트 독소조항, 손에 피가 나도록 몰아붙이는 혹독한 연습, 말하지 못하는 부모의 죄까지 감수해 낸다.


      사실 전반부의 학창 시절도 그렇지만, 특히 후반부에 이르면 알 수 있다. 비오에게 정요는 결코 열등감을 유발하는 존재만으로 머무르지 않는다. 그의 어머니 강지혜가 간과했던 점은 바로 그것이리라. 그의 내면에서 더욱 인간적인 음악성을 끌어내는 것이 바로 정요이기 때문이다. 비오가 악보에 적힌 음표와 글자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진심을 연주할 수 있게 된 것은 ‘자유롭게’ 연주하는 법을 배우고 나서다. 그렇게 자신만의 음악을 하며 이인자가 아닌 그저 ‘강비오’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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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끊임없이 자조하고 자신을 의심했던 ‘강비오’의 삶은 라흐마니노프, 그리고 그가 작곡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를 떠올리게 한다. 삶은 끝없는 상승곡선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한 사람이자 피아니스트로 사는 삶도 마찬가지이다. 음악가 라흐마니노프는 교향곡 1번이 초연에서 혹평을 받으며 상처를 입고 슬럼프에 빠졌다. 신경 쇠약과 우울증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던 것은 그 시기에 만난 ‘니콜라이 달’ 박사와의 상담 치료 덕분이었다. “당신은 훌륭한 협주곡을 쓰게 될 것이며, 이 협주곡은 성공할 것이다.”라는 확신과 암시를 심어준 끝에 탄생한 명작이 바로 피아노 협주곡 2번이다.


      고등학생이던 17세, 성공한 피아니스트로 산 27세, 그리고 성당에서 다시 만나는 30세까지의 시간 동안 비오는 바닥을 찍는 깊은 절망과 실패를 마주한다. 그리고 기어코 자신의 음악을 연주하는 피아니스트로 성장한다. 정요는 니콜라이 달이 그랬듯, 비오에게 그 확신을 심어주고 응원해 주었다. 그리고 음악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기를 기다렸다. “부디, 절대 포기하지 말고 좋은 음악가로 성장하길 바란다.”라는 말에는 그의 음악을 마음 깊이 인정하고 그만두지 않기를 바라는 사랑이 담겨있다. 나를 믿어주는 굳건한 마음을 만나 긴 어둠을 지나 빛을 마주하게 되는 서사를, 우리는 음악을 통해 말하지 않아도 느끼게 된다.


      안 될 것 같으면 자멸을 택해버리는 성향 같은 것이 자신과 닮아 두려웠다고 강승운은 말한다. 어쩌면 그는 비오가 넘을 수 없는 벽 앞에서 자신을 해치지 않기를 바랐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예술을 좇는다는 것은 실체 없는 대상을 잡기 위한 이유 모를 좌절을 마주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비오는 정요라는 원동력으로, 그리고 무엇보다도 스스로의 노력으로 ‘음악’을 완성해 낸다. 그는 자멸하지도, 포기하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포기하기 싫을 만큼 피아노가 너무 좋았어. 음악이 너무 좋았어. 그래서 어떻게든 그 아름다운 곡들을 내 두 손으로 연주하고 싶었어. 욕심인 걸 알면서도 포기가 안 됐어.”라고 말하는 비오를 보고, 마음이 가지 않을 수가 없었던 이유다.

       

       


      죽음의 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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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요 역시 고통 속에 살았다. 정요는 공연장에서 어머니가 자신의 연주 도중 죽음을 맞이한 이후 무대에 서는 것이 두려워졌다. 다시는 피아노를 치지 않겠다고 다짐했건만, 그럼에도 음악의 세계는 그에게로 성큼 다가오고야 만다. 재능을 발견한 선생들은 장학금이라는 특혜를 주어서라도 예술고등학교로 정요를 데리고 온다.


      비오와 정요는 레슨을 위해 함께 ‘포핸즈’를 연습하게 되고, 그때부터 둘만의 음악 세계가 만들어진다. 아이러니하게도, 비오는 열등감에 휩싸인 이인자일 때조차 정요가 음악을 할 수 있도록 구했다. 슬럼프를 이겨낼 수 있도록 광장으로 데려가 직면하게 했고, 무대에선 눈을 가려주었으며, 누구보다도 그의 음악적 가치를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프라하에서 총에 맞아 피아노를 연주할 수 없게 된 이후로, 비오는 정요에게 복수의 대상이 된다. 자신을 납치하라고 사주한 것이 ‘1등을 하지 못할까 두려웠던 비오’라고 오해한 탓이다.


      드라마 <포핸즈>의 오프닝에 삽입된 곡이기도 한 카미유 생상스의 ‘죽음의 무도’는, ‘죽음’을 생생하게 그려낸 작품으로 유명하다. 이 곡의 바탕이 된 오래된 설화인 ‘죽음의 춤’은 14세기 흑사병으로 유럽 인구가 반 이상 줄어든 뒤, 죽음을 막연한 공포가 아닌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기 위한 시도였다. 정요의 삶도 죽음에 대한 공포를 제외하곤 설명할 수 없다. 그는 어머니의 죽음으로 오랜 시간 무대에 대한 트라우마에 시달렸고, 납치 사건으로 총구가 겨눠지는 죽음의 공포를 느끼며 총을 맞아 자신의 전부였던 피아노를 떠나보내야만 했다.


      ‘루카 도미니코’로 돌아온 정요는 한국 심포니 객원 지휘자로 들어와 비오에게 ‘네메시스’ 초연 연주를 부탁한다. ‘네메시스’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천벌과 복수의 여신을 의미한다. 정요는 네메시스의 초연을 통해 증오와 배신감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정요는 자신의 감정을 비오가 느끼도록, 그를 혹독하게 밀어붙인다. 녹음 당일이 되어서도 연주에 작곡가의 의도가 담기지 않았다며 판을 엎어버릴 정도로 말이다. 안타까운 것은 그 증오가 잠시간 ‘심판’으로 과잉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모두를 위한 음악’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비오를 연주자라는 ‘도구’이자 심판의 대상으로 취급하며, 음악성의 한계에 봉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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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편, 예술가의 죄에 관해 묻는 정요에게 강승운 지휘자가 묻는다. “자네는 심판자가 되고 싶은 거야, 음악가가 되고 싶은 거야?” 내내 비오에게만 박하게 구는 그가 미웠음에도 그 일련의 대사가 인상 깊었기에 이곳에도 적어보려 한다. 예술을 좋아하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 “예술과 예술가는 따로 보아야 할까?”라는 질문을 마주한다. 이에 <포핸즈>는 예술은 그 자체로 아름다움을 줄 수 있지만, 예술가의 죄와 분리될 수도 없다고 답한다. 필자에게는 이 대답이 현답 같다. 또한 이 대사가 ‘네메시스’가 오래 살아남으려면 분노 이상의 감정으로 나아가야 함을 일깨워주었다고 생각한다.


      “자네는 심판자가 되고 싶은 거야, 음악가가 되고 싶은 거야? 나는 예술가의 죄가 그 음악을 오염시킨다고 생각하지 않네. 오히려 흠결이 있어야 예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지. 우리가 경계해야 하는 건 예술을 핑계로 악행을 죄의식 없이 저지르는 것일 뿐. 흠결 있는 예술가를 심판하는 건 우리 몫이 아니야. 어차피 씻지 못할 죄를 저지른 예술가는 그 음악이 오래 살아남을수록 오래 심판받게 되어 있어. 그게 축복이라고 생각하나, 저주라고 생각하나?”

       

       


      슈만과 클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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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에는 비오의 한계를 정요가 뚫어주었다면, 이번에는 그 반대였다. 녹음이 엎어진 이후, 비오는 그동안 회피해오던 네메시스의 감정을 온전히 마주하며 180도 달라진 연주를 보여준다. 그는 정요에게 확신에 차 말한다. “이제 그만 인정하지, 이 곡을 제대로 칠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는 거.”라고. 네메시스를 작곡하고 완성한 본래의 이유에서 벗어난 것은 정작 작곡가 본인이었다.


      두 사람의 엇갈린 궤도는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하나가 된다. 네메시스 초연 발표가 성공적으로 끝나고, 비오의 고백을 시작으로 모든 진실이 밝혀진다. 그리고 마침내, 내면의 음악과 서로를 다시 온전히 응시하게 된 두 사람은“그날처럼, 자유롭게”연주한다. 포핸즈(Four Hands)는 두 사람이 한 대의 피아노 앞에 나란히 앉아 네 개의 손으로 하나의 곡을 함께 연주하는 음악 기법이다. 각자의 피아노로 함께 연주하는 투 피아노(Two-Piano)와 달리, 손과 팔의 움직임이 겹치기에 더욱 긴밀한 호흡을 요한다. ‘음악’이라는 하나의 세계에서 정요와 비오는 어린 시절부터 공존했다. 정반대의 성향을 지닌 두 천재는 끊임없이 불협하는 과정에서 서로의 결핍을 채워 나가며 구원받고, 구원했다.


      ‘네메시스’에는 작곡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증오 이상의 감정이 들어가 있다. 강하게 몰아붙이는 ‘네메시스’ 안에는 다소 상반된 분위기의 녹턴 주제부가 존재한다. 해당 부분은 네메시스가 만들어지기 전에 만들어졌으며, 당시의 제목은 ‘Nocturne for piano four hands’였다. 연필을 사각거리며 쓴 악보에는’ 프리모 - 비오, 세콘도 - 정요’라 적혀있다. 이때부터 정요는 녹턴을 편곡해 함께 연주할 생각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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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요와 비오의 관계는 ‘로베르트 슈만과 클라라 슈만’의 관계와 닮아있다. 로베르트 슈만은 젊은 시절 무리한 연습 탓에 오른손을 다쳐 피아노 연주를 포기해야 했다. 이후 슈만은 작곡가로 전향하여 낭만주의 음악의 거장으로 자리 잡는다. 역경을 딛고 다시 일어날 수 있었던 동력에는 클라라가 있었다. 당시 이미 피아니스트로 명성을 떨치던 클라라 슈만은 “당신의 오른손이 되어주겠다”라고 하며 그의 음악을 세상에 연주하고 알리는 역할을 했다.


      피아노를 사랑하는 피아니스트로 사는 삶이 좌절되는 것은, “음악가에게서 음악을 뺏으면 지옥만이 남죠.”라는 정요의 대사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참으로 가혹한 일이다. 단순히 피아노에서 지휘로 전향한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나의 모든 세계가 뒤바뀌었을 때, 음악 앞에 좌절할 때, 비오는 정요의 ‘클라라 슈만’이 되어주었다. 포핸즈 1화 속 첫 만남을 보면, 비오는 ‘슈만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하고 있다. 이는 슈만이 작곡하고 아내 클라라가 연주한 곡으로, 1악장의 주제 선율이 'C-H-A(C-B-A)(클라라의 이니셜)'다. 슈만이 이때 쓴 편지에 ‘당신은 내 삶의 음이고, 은밀히 귀 기울이는 사람입니다’라고 적혀있는 것은, 정요의 ‘뮤즈’인 비오를 떠올리게 한다.


      결국 음악이 위대한 이유는 음악을 만들어가는 과정에 있다. 삶이란 나만의 음악, 나만의 의미를 찾아 사랑하는 이와 포핸즈로 살아가는 과정이다. 끝끝내 '음악'이 되었고, '음악'을 포기할 수 없었던 두 사람이 서로를 구원하는 이야기에, 오늘 귀를 기울여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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