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PRESS] "We choose to go to the moon" : 뮤지컬 '렛미플라이' [공연]

서로의 손을 꼭 잡고 ‘오늘’을 선택한 남원과 선희의 이야기

by 이유빈 에디터
2026.10.30 14:10
이 브라우저에서 최근 읽은 글입니다.
      이전에 읽던 글입니다.

      ※

      본 글은

      뮤지컬 <렛미플라이>의 주요 서사와 결말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관극 전에 읽으신다면 극을 바라보는 한 시선을,

      관극 후에 읽으신다면 지나간 공연의 온기를 다시금 떠올리는 계기가 되어주기도 할 것입니다.

       

       

      1969년 어느 시골 동네에 19살의 두 청춘이 살고 있다. 한 명은 동네 최고의 수선장이면서 미래엔 멋진 패션 디자이너가 되고 싶은 추남원이고, 다른 한 명은 우주 비행사가 되는 게 꿈인 박정분이다. “We choose to go to the moon.” 이 문장은 1962년 우주 탐사 주도권을 둘러싼 냉전 시대의 경쟁이 치열하던 시절,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이 연설 중에 했던 말이다. 라디오에서 우연히 이 연설을 듣고 깊이 감명받았던 정분이는 자신의 꿈 그리고 함께할 남원과의 미래를 그릴 때마다 그에게 이 문장을 둘만의 주문처럼 읊조리곤 했다.

       

       

      131.jpg



      쉽지 않지만 그래도 도전할 것이며, 언젠간 그 꿈에 닿을 거라는 열망이 담긴 이 문장은 이 두 사람과 동시에 뮤지컬 <렛미플라이>를 엮어주는 핵심 프레이즈다. “우리는 달에 가기로 선택했다.” 여기서 중요한 건 당연히 ‘달’이지만, 마찬가지로 ‘선택하다’라는 동사 역시 중요하다. 선택한다는 말에는 이미 자신에게 주어진 옵션들 모두를 가질 수는 없다는 사실이 담겨있다. 하다못해 오늘의 점심 메뉴부터 나의 직업과 직장 그리고 내가 그리는 미래의 내 모습까지도, 여럿 중에서 하나를 고르고 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남원과 정분은 함께하는 미래를 꿈꿨건만, 국제복장학원 입학 통지서를 우편으로 받은 남원은 하늘에 떠 있는 달이 점점 커지자 놀라 정신을 잃고 만다. 그런데 다시 눈을 뜨니 주위는 방금 전까지의 세상과 많이 달라진 것 같았고, 남원은 근처에 있는 어느 할머니에게 자초지종을 묻는다. 그러자 지금은 2020년이라고 한다. 심지어 그 할머니는 자신이 당신의 부인이며, 당신은 지금 칠순이나 됐다고 말한다. 게다가 당신은 2020년에 동네의 작디작고 오래된 수선집을 운영하고 있다는 할머니의 말에 남원은 충격을 받는다.

       

       

      news-p.v1.20261021.1598990951d34ef58e8e18b25b4e1b06_P1.jpg

       

       

      할머니가 칠순이라 농이 지나치다 생각하며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봤는데, 거울 앞에 머리가 희끗하고 주름이 진 노인이 서 있다. “할아버진 누구세요?”라며 말을 걸었는데, 그 할아버지는 남원이 하는 동작과 표정을 똑같이 따라 하고 있다. 할아버지가 하지 않을 법한 동작을 해보지만, 소름 끼치게도 그 노인은 자신과 정확히 대칭을 이룬다.


      그렇다면 이걸 다 받아들인다 치더라도, 그에겐 가장 이해되지 않는 것이 있다. ‘왜 현재의 내 곁에 정분이가 없는 것이며, 왜 다른 할머니가 내 부인이라 하는 거지?’ 남원은 지금의 자신이 분명 19살의 청년이며 자신은 정분이만을 사랑했다고 확신했기에, 정분이가 평소 얘기해줬던 라디오 주파수 얘기를 떠올리며 자신은 지금 미래로 시간여행을 왔다고 결론 내린다. 그리고 결심한다. 다시 과거로 돌아가 정분이와 결혼한 뒤, 이 말도 안 되는 미래의 결말을 바꿀 것이라면서 말이다.


      남원은 이제 과거로, 아니 자신의 입장에서는 현재로 돌아가기 프로젝트에 착수한다. 주파수를 조정할 수 있는 기계를 찾아 어떻게든 돌아갈 생각을 하는데, 여기 이 시대에선 그런 기계를 찾기가 어려웠다. 게다가 이 할머니에게 남원은 할머니는 자신의 정분이가 아니니 자신과 거리를 두라고 엄포를 놓았는데도, 이 할머니 집 창고엔 이상하게 자신이 모아둔 물건들이 쌓여 있다. 그 물건은 자신이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이었고 얼마 전까지 봤을 때도 반짝반짝한 새것이었는데, 상자 속 그것은 너무나 낡고 해져 있었다.


      오래된 옷감, 손때 묻은 재봉틀, 낡은 수선 도구들을 보자마자 그것들은 남원의 감각을 건드리기 시작한다. 자신에게 차갑게 구는 남원이 미울 법도 한데, 이 할머니는 내가 과거로 돌아간다는 걸 말리지도 않고 도와준다. 할머니와 함께하는 나날들이 쌓여갈수록 남원은 점차 자신이 무언가를 잊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건 바로 ‘50년의 충실한 세월’이었다. 할머니 집 창고에서 찾은 정분이의 사진, 그리고 정분이와 둘만 공유하던 이야기들. 그리고 마침내 선희의 눈빛 속에서 정분이의 모습을 발견할 때, 남원은 소란스러웠던 시간여행에 마침표를 찍는다.

       


      news-p.v1.20261021.39374cb02d65472e98028b79a8cbe24b_P1.jpg


       

      19살의 두 사람은 함께하는 미래를 꿈꿨으나 정분은 남원이 기차를 타기 전날 밤 그에게 갑작스런 이별을 고한다. 자신에게 닥친 문제로 인해 남원이 꿈을 포기할까 두려웠기에 그녀는 그렇게 말했지만, 상황을 알 리 없는 남원은 괴로웠다. 기차를 타고 서울로 떠나는 걸 선택하면 정분과는 함께 살 수 없고, 기차를 타지 않는 걸 선택하면 자신이 바라던 꿈을 포기해야 한다. 온통 정분이 생각뿐인 남원이는 결국 기차에 오르지 않고 정분이와 함께 사는 삶을 택한다.


      이 이야기를 어떻게 조금 다른 시선에서 바라볼 수 있을까? 이 극은 포기한 선택에 의해 파편화된 기억 상태에 있던 남원이 정분과의 추억이 담긴 물건을 통해 통합적인 자기이해(Self-Integration)에 이르는 과정을 다룬 것으로도 볼 수 있다. 19살의 두 사람은 아직 오지 않은 내일인 미래를 꿈꾸고 기대했다. 그런데 이 뮤지컬에서 미래는 ‘아직 오지 않은 오늘’이자, 결국 ‘아직 마주하지 못한 순간’을 의미하기도 한다.


      청년 남원은 원하던 학교 입학을 포기하고 그녀와 함께하는 삶을 선택했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패션 디자이너’라는 꿈에 대한 미련이 짙게 남아 있었을 테다. 50년 전 그날 밤 포기해야 했던 꿈의 잔상이 너무나 강렬했기에, 그의 의식은 노인이 되어서도 19살 꿈을 꾸던 청춘의 한가운데 고스란히 멈춰 선 셈이다. 인생이 뿌리째 흔들리기 직전의 순수한 꿈을 안고 있던 청년에게, 동네 수선집을 운영하고 있는 2020년 모습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news-p.v1.20261021.2f4073c4c1de4795b1b0572a3c1bd236_P1.jpg


       

      남원은 현재에서 미래로 왔다. 하지만 선희의 입장에서 그는 현재에서 과거로 돌아갔다. 하지만 선희는 과거에 머물고 있는 남원에게 뭐라 할 수 없었다. 자신과 함께 살기 위해 그 자신의 꿈을 포기했다는 것을 세상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청년 남원으로서 자신에게 옷을 만들어주며 행복해하는 그를 보며 그녀는 “추남원, 지금 행복하다면 돌아올 필요 없어. 당신은 이랬어야 했던 모양이야. 그래서 하필 그때로 돌아갔는지도 몰라.”라며 묵묵히 그 옆에 있어줄 뿐이다.


      정분은 우주 비행사가 되고 싶었지만 꿈을 내려놓았고, 남원도 패션 디자이너의 꿈을 내려놓았다. 하지만 그들은 전부를 잃지 않았으며, 그로 인해 얻은 것이 있다. 그건 바로 ‘서로 함께하는 오늘’이다. 남원이 기차에 오르지 않고 자신을 택했던 날의 정분은, 그리고 지금의 선희는 그와 손잡고 바라본 그들의 집이 자신이 그토록 착륙하고 싶었던 달이었음을 깨닫는다. 그녀는 그날부터 자신을 선희(善喜)라 부르기로 한다. 그와 함께하는 앞으로의 날들이 ‘기쁘고 좋은 삶’으로 쌓아져갈 것이기 때문이다.

       

       

      news-p.v1.20261021.7608e9153b914329b365cbf529e54dd6_P1.jpg


       

      다른 하나를 포기함으로써 하나를 선택했을 때엔 그로 인해 얻는 것이 분명히 있다는 사실은, 내가 뮤지컬 <렛미플라이>를 보러 객석에 막 입장했던 그 순간에서도 존재했다. 수면 드림렌즈를 사용하는 나는 안경 없이도 풍경을 잘 볼 수 있지만, 그것의 효력은 어두운 곳에서는 힘을 다한다. 보조안경도 놔두고 온 상황에서 오페라글라스를 대여해 선명하게 볼 생각도 했다. 그런데 문득 내 앞에 있는 무대가 아름답다고 느꼈고, 이내 나는 오늘 무대와 배우 간의 전체적 조화를 ‘선택’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결론적으로 그 선택은 만족스러웠다. 세부적인 표정은 덜 보였지만, 조화를 선택함으로써 나는 온전한 공간감을 경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 역시 어쩌면 이 무대와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선명한 부분 하나에 집착할 때는 그로 인해 포기해야 했던 다른 기회와 미련이 또렷한 잔상으로 남아 우리를 괴롭히곤 한다. 그러나 내려놓은 시선 너머로 눈을 돌릴 때, 비로소 내가 선택해 온 일상이라는 거대한 전체가 눈앞에 펼쳐지기도 한다. 포기한 꿈의 선명함 대신 서로의 손을 꼭 잡고 ‘오늘’을 선택한 남원과 선희처럼 말이다.

       

       

       

      20260422170707_gmsreolz.jpg

       

       

      이 이야기는 어떠셨나요?

      이유빈 에디터의 인기글

      많이 읽힌 글 3편
      1. 01 [PRESS] 상징화된 가치의 창의적 재현 - 판타지는 어떻게 현실을 바꾸는가 [도서]
      2. 02 [PRESS] '완전한 삶 그리고 완전한 나' 옆 어딘가 - 도실 [도서]
      3. 03 [PRESS] 최초의 배타적 유일신교를 믿어온 유대인에 대한 이야기 – 유대인은 언제 유대인이 되었는가 [도서]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