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하지 않은 인생은 실패인거나 다름없다는 극단적이었던 엄마와 억만장자가 되기 위해 정작 가족과 주변은 신경쓰지 않았던 아빠와 함께 미국에서 살아온 한 여자아이가 있다. 그녀는 그 삶이 답답하다고 느꼈고, 그래서 그들에게서 벗어나길 원했다. 좋은 대학교에 가길 원했던 엄마의 강요 아닌 강요에 따라 좋은 대학에 입학하게 된 그녀는 부모님과 물리적으로는 분리될 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정신적 분리까지 이루어지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이 책은 어린 시절 미국에 이민을 간 이후 겪었던 삶의 궤적들에 대해 저자 송혜승이 현재의 시점에서 역으로 복기한 것이지만, 이때 그녀는 이민 이후 현재까지의 삶을 주제어를 가지고 선형적으로 시각화해내는 방식을 통해 그 기록을 서술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그녀의 글을 따라 읽어가다보면, 자연스레 독자가 자신이 살아온 삶에 대해 반추하게끔 만든다.
나는 저자만큼이나 머나먼 이민 생활을 겪지는 않았지만, 우리 가족 역시 이사를 많이 다녔던 경험에 비추어 그녀의 글을 이해해볼 수 있었다. 예를 들어 그녀의 가족이 미국 내에서도 한 번 더 이사를 가게 된 이후로 이전에 살던 곳에서 같이 놀던 친구들과도, 대학에 입학한 후로 동네 친구들과도 연락이 서서히 끊기게 된 경험을 언급한다. 나 역시 익숙한 환경을 벗어나 내가 오롯이 혼자라는 것에서 오는 헛헛한 감정을 느껴본 적이 있고 또한 숱한 이사로 인해 나의 고향은 대체 어디인지 혼란스러워 할 때가 있었기에, 불편할 정도로 그때의 상황에 대한 감정이 불현듯 강렬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녀는 대학에 입학한 이후 부모님에게서 벗어나긴 했지만, 그녀의 표현에 따르면 자신은 엄마가 만든 소위 '진흙 인형'이었기에, 엄마의 말은 자신에게 여전히 영향력을 끼치고 있었다. 그녀는 이후 밝히기를, 이 모든 것들을 받아들이고 수용할 수 있기 전까진 삶을 의무와 강박 속에서 살아왔다고 표현하고 있다. 그녀는 미국 명문대 입학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쥐고 나서도 그 기쁨은 잠시일 뿐 자신의 마음은 먹구름이 낀 것처럼 공허했다는 것이다.
성취와 그를 통한 사회적 인정을 받고자 계속 추구했지만, 그 결과 뒤따라온 것은 '협소해진 삶'이었다. 협소해진 삶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인생이 하나의 목적으로만 수렴되면서, 삶이 일종의 '맹목성'을 띄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에 대해, 그녀가 풀어가는 자신의 삶에 대한 정리는 현실적이면서도 열린 결말이다. 그녀가 자신의 삶이 강박과 의무로만 채워져 있었다는 걸 조금씩 알게 되면서부터는 진정한 자아를 찾으려는 시도를 하기도 하지만, 그 이후로도 부모님의 희생에 보답해야 한다는 '좋은 딸' 프레임과 '길들여지고 싶지 않은 딸' 사이에서 여전히 갈등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숱한 성찰과 자아 탐색 끝에, 예술을 통해(특히 그림을 그리는 작업을 통해) 자신이 겪은 많은 것들을 수용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그녀는 예술이 삶의 고민을 전부 해결해주는 '정답'이라고는 말하지 않는다. 다만, 그녀는 자기 삶의 궤적을 풀어나갈 수 있는 한 가지 방법 혹은 매체를 발견했다고 표현할 뿐이다.
여기서, 좋은 책이 가진 요건 중 하나는 저자 자신 혹은 저자에 의해 만들어진 이야기가 그 책을 읽는 독자들이 자신에 대해 돌이켜볼 수 있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을 대략 다 읽어갈 즈음엔, 그렇다면 '나는 과연 이 책의 수많은 챕터 중 어디에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나를 되돌아본다면, 요즘의 나는 이 책에 따르면 챕터의 중후반 부에 와 있는 것 같았다. 세상에는 사람 수만큼 다양한 부모와 자식들이 있지 않을까? 저자의 엄마만큼은 아니더라도 나 역시 아빠에게 수학을 배운 적이 있는데, 잘 풀지 못할 때마다 크게 혼났던 경험이 있다.
그 경험만으로 그 이후 내가 행한 행동 패턴들을 모두 설명할 순 없지만, 내 마음에는 어느샌가 '잘해야 한다'라는 강박 혹은 의무감이 생겨났던 것 같다. 꽤 어릴 때 생겼던 그 마음은 대학교에 가서도 학점이 잘 나오지 않을 때면 이젠 나 스스로가 나를 혼내는 존재가 되기도 했다. 만성화된 강박은 참 무섭다. 이젠 그 누구도 자신의 주위에서 강요하는 사람이 없더라도 자기가 자신을 스스로 가만히 두지 않기 때문이다. 적당한 강박은 자기 삶을 파괴하지 않고 발전시켜나갈 수 있는 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너무 과하면 자기를 옥죄게 만들기 마련이다.
나는 강박이 가진 이중성에 대한 인식을 최근에 들어 이해해가기 시작했고, 그 딜레마를 잘 극복해나가고자 마음먹으며 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이 책의 제목이 다시 눈에 들어왔다. 사실 나는 책 이름을 처음 보았을 땐 제목이 한자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원제는 '온순한' 혹은 '다루기 쉬운'이라는 뜻의 영어 단어인 'docile'이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도실'이라는 단어가 의미를 가진 한자어 같다는 생각에 검색을 해보았다. 그러자 놀랍게도 그것의 양면적인 두 의미를 발견할 수 있었다. '도실'은 복숭아나무의 열매라는 의미인 '桃實'과 칼집이라는 의미의 '刀室'를 가지고 있었다. 여기서 '강박 혹은 의무감은 달콤한 복숭아 열매 같으면서도 날카로운 칼과 같지 않은가' 하는 나만의 주관적인 이중적 의미를 떠올리기도 했다.
이 책에 대한 나의 생각을 마무리하면서 언급하고픈 한 뮤지컬이 있다. 그것은 바로 '넥스트 투 노멀(next to normal)'이다. 이 뮤지컬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평범해 보이는 가족의 구성원들은 각각 서로에게 상처를 가지고 있고 그 상처가 그리 가볍지도 않은, 평범(혹은 정상)과는 거리가 먼 소위 '비정상적(abnormal)'인 가족이다. 하지만 그들은 결국 서로의 상처를 진심으로 이해함으로써 평범하지 않아도 평범 언저리에 있는 자신들의 상태 자체를 받아들이고 다가올 희망을 기대한다.
저자 송혜승 역시, 자신에게 고통을 주기도 했지만 동시에 위험을 감수하는 도전 정신, 외골수로 꿈을 추구하는 열정과 같은 정신적 자산을 물려주기도 했던 자신의 부모님에 대해 다층적으로 그들을 받아들이고 인정한다. 그리고 덧붙인다. 행복은 주어지는 게 아니라 추구하는 것이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