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만화책은 〈해변의 스토브〉라는 단편으로 시작한다. 주인공 스미오는 애인인 앳짱과 함께 살게 되었지만, 일 년이 지난 앳짱의 생일에 두 사람을 헤어진다. 집에 돌아와 케이크를 보자마자 앳짱을 울면서 스미오가 말이 부족하다면서 이렇게 말한다. ‘내가 하나고 스미오도 하나여서 두 사람을 합해 둘이나 그 이상이 되고 싶었어. 그런데 둘이 있으면 너는 제로라서 내가 점점 깎여 나가.’ 앳짱은 이별을 고하고 집을 나간다.
이렇게 평범한 연애 스토리를 전부 지켜보고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는 존재는 다름 아닌, 스미오의 ‘스토브’다. 추위를 잘 타고 울보인 스미오가 자취 시절에 샀던 난로다. 움직이지 못하는 스토브는 줄곧 스미오의 곁에서 그를 지켜봤다. 앳짱과 함께 살기 시작한 이후, 자주 울던 스미오가 자주 웃는 모습도, 앳짱이 결국 돌아오지 않아서 식음을 전폐한 모습도. 걱정이 된 스토브는 결국 스미오에게 말을 건다. “바다에 가자.” 스미오는 스토브를 안고 바다로 간다. 앳짱에게 기다리겠다는 말을 남긴 채. 늘 바다에 가고 싶어했던 앳짱을 떠올리며 스미오는 바다를 보자마자 울기 시작하고 자기를 자책한다. 그런 스미오를 보며 스토브는 이렇게 생각한다. 앳짱도 스미오를 좋아했던 순간이 반드시 있었다고. 스토브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어. 몇 번이라도 떠올려줄게.’
이 만화책은 앞으로 나올 만화 속 이야기들을 스토브의 시선으로 살필 것이다. 인물들은 모두 평범한 일상에서 어떤 불일치를 느낀다. 다른 사람들이 아는 것, 기대, 반응과 어긋난다. 그런 자기가 그래도 괜찮은 걸까? 방황한다. 만화는 그들이 방황에서 마주하면서 기억을 꺼내게 한다. 사라진 기억이 되살아나면서 분명히 안다고 생각하던 기억에서 새로운 마음을 발견한다. 그 순간이 기쁨일지, 슬픔일지는 몰라도, 그 순간은 인물들에게 ‘몇 번이라도 떠올릴’ 순간이 된다. 자, 지금부터 여러분은 스토브가 될 것이다. 평범한 인물들의 인생에서 어떠한 순간을 볼 것이다. 기꺼이 그들의 관객이 되어보자.
1. 미워하는 방법이 낯선 괴물 - 설녀의 여름
눈을 다스리는 요괴인 설녀를 조심해라. 설녀가 당신을 얼려 죽일 수 있다. 그런데 트럭 운전사인 주인공의 앞에 설녀가 나타난다. 설녀는 생각보다 귀엽게 생겼다. (이건 나의 생각이다) 설녀는 대뜸 가족이 있느냐고 묻더니 트럭에 올라탄다. ‘유키코’라고 자기를 소개하는 설녀는 오늘 이중에서 누군가를 골라 얼려 죽이려고 한다고 말한다. 왜 얼려 죽이냐는 질문에 유키코는 이렇게 대답한다. 설녀 종족은 인간의 상상력에 의해 창조되었고 인간들의 기억에서 사라지면 존재할 수 없게 되기 때문에 몇 년에 한 번씩 내려와 잊을 수 없게 이렇게 죽인다고. 올해 처음으로 누군가를 죽이러 온 유키코. 그러나 유키코는 창밖에서 눈을 떼지 못하다가 말한다. 나는 사실 죽이고 싶지 않다고. 인간이 싫지 않다고. 유키코의 고백을 들은 주인공은 유키코를 데리고 집으로 가서 컵라면을 차갑게 만들어주기도 하고 영화도 함께 본다. 설녀 유키코는 이제 궁금해진다. 영화 속에 나오는 여름은 어떤 느낌일까. 설녀인 자기가 녹아서 아무 생각도 못 하는 계절이자 아무도 자기를 기억해 주지 않아서 영원히 사라질 것만 같은 계절이 궁금하다. 주인공은 유키코에게 여름을 보여주기로 한다.

유키코는 설녀 종족의 규칙을 따라야 한다. 그 규칙이란 유키코의 생존과 관련되어 있다. 잊히면 사라져버리는 존재이기에, 사라지지 않기 위해서 겁을 줘야 한다. 하지만 유키코는 ‘다르게’ 살고 싶다고 생각한다. 다름이란, 내가 살던 공간과 방식을 벗어나고 싶다는 욕망이다. 무서운 존재로, 겁을 줘야 하는 존재로 살아가야 했던 유키코의 마음의 저편에는 자기가 사랑받지 못할 존재라는 생각이 있었을지 모른다. (생각해보면 얼려 죽이는 종족이니 당연하다) 다르게 살고 싶다는 욕심은 어쩌면 사람을 살리고 싶다는 욕심보다는 사람을 죽이는 존재로 살고 싶지 않다는 마음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시간이 흐른 뒤, 유키코는 주인공을 따라서 한여름의 불꽃놀이 축제에 참여한다. 녹을 위기를 간신히 넘기면서 불꽃놀이 축제에 온 유키코. 기모노도 입고 사람들도 지켜보고 시원한 빙수도 먹는 그 순간, 유키코의 기쁨 때문에 한여름에 눈이 내린다. 유키코는 사람들이 무서워할 거라고 생각하는데 사람들은 눈을 보면서 즐겁게 웃는다. 그렇게 마주한 불꽃놀이. 유키코는 설녀로 태어나길 잘했다고 생각했다고 고백하며 눈물을 흘린다.
태어났을 때부터 무서운 존재로, 겁을 줘야 하는 존재로 살아가야 했던 유키코의 마음 저편에는 자기가 평생 사랑받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있었으리라. 유키코가 처음에 가졌던 다르게 살고 싶다는 욕심은 그들에게 겁을 주지 않고 싶다는 마음인 동시에 미움받고 싶지 않다는 마음일지도 모르겠다. 주인공을 따라 나선 유키코에게 사람이 되거나 그런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다만, 유키코는 자기가 사랑받을 가능성을 발견한다. 어쩌면 미움받을 존재라는 생각이 본인을 싫어하는 마음으로 이어졌던 건 아닐까. 유키코는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서 자기를 다시 바라보고 다시 정의내린다. 사랑받을 수 있는 존재라는 정의 말이다. 불꽃놀이가 터지는 그 순간, 유키코의 눈물을 본 우리도 주인공처럼 생각하게 된다. 이 불꽃놀이를, 유키코의 여름을 잊지 못하겠다고.
2. 몸을 독점하고 싶은 임산부 : 눈을 껴안다
임신을 한 와카바는 폭설로 인해서 모든 열차가 중단되었다. 남편은 ‘홀몸’이 아닌 만큼 조심하라고 한다. 와카바는 24시간 카페에서 빈방을 잡아보려 하지만 실패한다. 카페에는 남자만 있고 어쩐지 묘한 불안감이 들던 순간, 아주 멋진 ‘고코’라는 여자가 그 안으로 들어온다. 와카바의 옆자리에 여자가 앉자마자, 와카바는 자기도 모르게 멋지다고 말해버린다. 24시 카페는 청소로 인해서 임시 폐점을 하고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게 된 와카바. 목욕탕의 위치를 묻는 고코에게 와카바는 함께 가도 되냐고 묻는다. 두 사람은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면서 목욕탕으로 향한다.
목욕탕에 간 와카바는 ‘스쳐 지나가는 인연’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속내의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와카바는 임신이 달갑지 않다. 어쩐지 마음속의 눈덩이가 점점 커지는 기분이다. 임신 소식을 모르는 엄마는 철분을 챙겨 먹어야 임신이 잘 된다고 영양제를 보냈다. 임신 소식을 알게 된 남편은 고맙다면서 ‘어머니’를 상징하는 카네이션을 선물한다. 홀몸이 아니니 조심하라는 걱정은 덤이다. 와카바는 태어나서부터 줄곧 사람들이 당연한 얼굴로 내 몸에 간섭해왔고 이런 것이 다른 사람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 같다고 말하면서 이게 너무 싫다고 말한다. 여자로서 ‘일반적’인 상황인 와카바는 자기가 일반적인 반응을 하지 못한다고 느낀다. 분명 기뻐야 할 상황이고 모두가 기다리고 기대하던 상황인데도 자기는 기쁘지가 않다. 와카바는 정확히 말한다.
나는 내 몸을 독점하고 싶어요. (…)
아이를 낳으면 내 몸이 아이 것이 되어서 두 번 다시 내게로 돌아오지 않을 것 같아요.
그런 와카바에게 고코는 자기의 기억을 들려준다. 자기가 치한에게 끊임없이 노출되어왔던 일을 말하면서 거리를 다닐 때면 미사일이 쏟아지는 기분이었다고 말한다. 그런 고코는 처음으로 목욕탕에 갔을 때 “간섭하지도, 간섭당하지도 않고 유유자적하고 있어서…” 이곳이 “해방구”라고 느꼈다.

만화가 두 사람을 목욕탕에 데려간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몸’을 통해서 존재하기 때문에 내가 어떤 사람이든 가장 먼저 몸으로 보여진다. 그렇기에 들어온 간섭들은 여러 가지다. 뚱뚱하다고, 날씬하다고, 건강하지 않아 보인다고, 건강해 보인다고 슬쩍슬쩍 건네오는 압력들은 우리의 일상이다. 몸은 늘 시선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목욕탕은 어떠한가. 내 몸을 구석구석 씻으러 왔을 뿐이다. 그곳에서 제일의 관심사는 내 몸이다. 그뿐일까, 그곳에서야말로 미디어에서 만들어진 대상화된 몸이 아닌, 진짜 몸을 알 수 있다. 몸을 드러내놓고 다니지만, 몸이 어떻든 상관없는 곳이다. 누구의 시선도 아닌, 내 시선으로 온전히 몸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서로의 기억을 나눈 와카바와 고코는 목욕탕에서 나오고 설원을 달린다. 그리고 차가운 눈 위에 뛰어든다. 자기의 몸을 독점하고 싶다는 욕망을 꺼내놓은 와카바는 자기의 몸을 시리도록 차갑게 감각하면서 내 몸이 내 것이라고 확인한다. 이제 몸은 멀어지지 않는다. 몸은 계속 내 안에 있다. 이 순간을 기억하는 한.
3. 투명인간이 된 남편이 조금 달가운 아내 : 당신이 투명해지기 전에
한순간 사고로 인해서 자기의 남편이 투명인간이 되었다. 몇 주간 입원했던 남편은 집으로 돌아오고 아내와 남편은 일상을 다시 살아간다. 여자 목욕탕에 가고 싶지 않으냐는 짓궂은 아내의 질문에 남들에게 상처 주는 짓을 하고 싶지 않다는 남편의 진지한 대답. 아내는 이런 면 때문에 남편을 좋아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렇게 일상을 보내던 아내는 남편이 일하며 집중하다가 자기의 말을 못 들었을 때, 남편의 표정을 떠올려보다가 도망치듯 친구를 만나러 간다.
남편이 투명인간으로 변해서 걱정하는 친구에게 아내는 놀랄 만큼 예전과 똑같다고 말한다. 그러다 조심스럽게 고백한다. 사실 오히려 좋은 부분도 있다고. 일이 바쁘면 미간을 찌푸리거나 일을 꽉 다문 채 밥을 먹을 때, 이런 표정이 싫다고 십 년 넘게 줄곧 생각해왔다고. 자기가 사랑하는 건 그 사람 자체 ‘몸’이 아니라, 그 사람의 생활 방식이나 사고방식을 사랑하는 거였던 게 아니었을까.
그 사람 얼굴이 안 보여서 마음이 좀 편하기도 해.
그렇게 아내가 친구와 대화하는 사이, 남편은 눈이 오는 창밖을 바라보고 옷을 전부 벗는다. 그러고는 몰래 바깥으로 나간다. 집으로 돌아온 아내는 남편을 찾는다. 남편을 어디에도 찾을 수 없다. 그때 구석에서 울음소리가 들린다. 울음소리로 겨우 찾은 남편의 몸. 아내는 남편의 몸이 차갑다는 걸 알고 어서 씻자고 한다. 남편은 울면서 말한다. 나를 발견해 주어 고맙다고 말이다. 목욕탕에 겨우 남편을 들여보내고 아내는 생각한다. 내가 없는 사이 남편이 잠들었거나 정신을 잃었더라면 발견할 수 있었을까? 그 생각은 아내를 주저앉게 만든다. 그때 남편이 비누를 달라면서 목욕탕의 문이 열리고 샤워기의 물에 남편의 실루엣이 그대로 드러난다. 아내는 그 실루엣에 과거의 기억을 꺼낸다. 자기가 남편의 몸을 예뻐했고 보고 싶어 했던 기억과 언짢은 표정을 지을 때 사랑했던 마음을 말이다. 그렇게 이 사람 자체를 사랑했다고.
남편의 몸이 투명해지면서 아내는 끊임없이 남편의 몸을 상상한다. 정확히는 과거의 기억에서 남편을 찾아 지금에 대입한다. 그러면서 자기가 남편에게 가졌던 여러 감정을 떠올린다. 내가 그를 사랑하는 이유와 그에게서 싫어했던 모습을 말이다. 그러면서 결론을 내린다. 자기가 싫어하는 모습을 보지 않아도 되어서 좋다. 자기가 좋아하는 생활 방식 같은 건 그대로이기 때문에 아내로서는 투명인간이 되어도 슬플 게 없다. 남편의 몸이 사라진 상황을 감히 상상해 볼 수 없지만, 어쩐지 안타깝고 슬픈 상황에서 아내는 남편의 좋지 않은 모습을 보지 않아도 되어서 오히려 좋다고 말하는 부분은 분명 어긋나 있다.

하지만 남편의 몸을 찾을 수 없다고 생각했을 때, 남편의 실루엣이 다시 드러났을 때, 아내는 과거의 기억에서 자기가 놓쳤던 마음을 다시 발견한다. 몸과 생활 방식을 분리해서 그를 사랑하고 아니고 따질 수 없었다는 걸. 그 자체로 존재하는 남편을 사랑한 기억과 마음을 말이다. 남편은 아내에게 자기가 나갔을 때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남편은 아무도 자기가 있는 걸 몰라서 신났지만, 맨발로 눈 위를 걷다 보니 감각이 사라져서 정말로 여기에 존재하는지 모르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언젠가 너도 나도 내 몸이 어떻게 생겼었는지 잊어버리고 내 마음이 어떤지, 무엇을 느끼는지 신경조차 쓰지 않게 될지 몰라. 그런 날이 오지 않을까? 자꾸 그런 생각만 들어.
이제 남편의 몸은 아내의 기억 속에만 있다. 아내는 손으로 남편의 몸을 그려본다. 잊지 않으려는 듯이 말이다. 몸과 남편을 분리할 수 없다는 생각에, 그 모든 사랑에 아내는 함께 눈물을 흘린다. 두 사람은 서로 너무너무 큰 무서움을 느낀다. 아내는 남편이 싫은 기억이든, 좋은 기억이든 자꾸만 남편을 기억할 것이다. 남편을 사랑할수록 더 큰 무서움을 느끼면서 자주 기억을 꺼낼 것이다. 그 모든 순간을 떠올리는 것이 사랑의 방식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