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희는 맞는다. 사랑에 맞고, 세상에 맞는다.
흥수는 도망치다가 맞는다. 사랑해서. 세상으로부터.
그리고 둘은 함께 맞는다.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은 대학에서 만난 재희와 흥수의 이야기다.
재희는 남들의 시선을 별로 두려워하지 않는다. 술을 좋아하고, 클럽에서 춤을 추고, 마음에 드는 남자가 생기면 사랑한다. 그런 재희를 두고 사람들은 쉽게 말한다. 소문은 재희보다 빠르게 학교를 돌아다닌다.
흥수는 정반대다.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자신의 비밀을 숨기며 살아간다. 남자를 사랑하지만 그것을 누구에게도 쉽게 말하지 못한다. 그러던 어느 날 재희가 흥수의 비밀을 우연히 알게 되고, 흥수 역시 재희가 감추고 싶었던 순간을 목격한다.
서로의 비밀을 하나씩 손에 쥔 두 사람은 뜻밖에도 서로를 폭로하는 대신 친구가 된다. 그리고 함께 살기 시작한다. 남자를 좋아하는 남자와, 남자를 너무 열심히 좋아하는 여자.
둘은 한집에서 각자의 사랑을 한다. 누군가를 데려오고, 헤어지고, 울고, 술을 마신다. 서로의 연애를 구경하고 때로는 수습하면서 그렇게 청춘의 한 시기를 함께 통과한다. 그런데 이 영화의 사랑은 좀 아프다. 재희는 사랑 앞에서 좀처럼 몸을 사리지 않는다. 좋아하면 좋아하고, 상처받으면 상처받는다. 세상이 자신을 어떻게 볼지 계산하기 전에 먼저 뛰어든다.
그래서 자주 맞는다.
사랑에 정통으로.
흥수는 반대다. 그는 들키지 않는 법을 배웠다. 좋아해도 아닌 척하고, 상처받아도 괜찮은 척한다. 사랑으로부터 도망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가 도망치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사랑하는 자신을 쉽게 용납하지 않는 세상이다.
한 사람은 너무 솔직해서 맞고, 한 사람은 솔직할 수 없어서 맞는다.
그래서 둘은 함께 산다.
서로를 고치려고 하지 않고, 구해내겠다고 약속하지도 않는다. 대신 술을 마시고, 밥을 먹고, 시답잖은 말을 하고, 각자의 연애를 망치고, 망친 연애 때문에 울고, 다음 날이면 또 살아간다.
나는 이 영화에서 그게 좋았다.
사랑이 반드시 누군가를 구원하지 않는다는 것.
친구라고 해서 서로의 상처를 대신 짊어질 수도 없다는 것. 그럼에도 누군가의 옆에 있을 수는 있다는 것. 재희의 사랑을 흥수가 대신 살아줄 수 없고, 흥수의 두려움을 재희가 없애줄 수도 없다. 각자가 맞아야 하는 몫은 결국 각자의 것이다.
다만 혼자 맞지 않을 수는 있다.
세상은 끊임없이 정상적인 사랑과 정상적인 삶의 모양을 요구한다. 누구를 사랑해야 하는지,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어느 나이가 되면 어떤 사람이 되어 있어야 하는지. 그 선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사람들은 이상하다는 듯 바라본다.
재희와 흥수는 그 선 밖에서 만난다.
그리고 처음에는 도망친다. 사랑으로 도망치고, 술로 도망치고, 농담으로 도망치고, 서로의 집으로 도망친다.
그런데 오래 도망치다 보면 이상한 일이 생긴다. 도망친 곳에서 삶이 시작된다. 둘이 함께 먹었던 밥과 술, 망쳐버린 연애와 엉망인 밤들, 서로에게만 털어놓을 수 있었던 이야기들이 쌓이면서 그곳은 더 이상 피난처가 아니다. 그들의 생활이 된다. 그래서 결국 둘은 도망치지 않는다.
여전히 세상은 완벽하게 다정하지 않고, 사랑은 사람을 아프게 한다. 앞으로도 몇 번쯤 더 얻어맞을 것이다. 어쩌면 아주 많이. 그런데 영화의 끝에서 중요한 것은 더 이상 맞느냐, 맞지 않느냐가 아니다. 누구와 함께 그 자리에 서 있느냐는 것이다.
재희와 흥수는 서로를 구원하지 않았다.
서로를 정상으로 만들어주지도 않았다.
그저 서로가 이상하지 않다고 말해주었다.
너는 그렇게 사랑해도 된다고.
그렇게 살아도 된다고.
그리고 마침내,
둘은 함께 춤을 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