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클린 나인나인』은 미국 뉴욕 브루클린 99 경찰서를 배경으로 한 코미디 드라마다. 뛰어난 직감과 유쾌한 성격을 가진 형사 제이크 페랄타와, 원칙주의 경찰서장 레이먼드 홀트를 비롯한 개성 강한 형사들이 사건을 해결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얼핏 보면 엉뚱한 형사들의 좌충우돌을 그린 가벼운 시트콤처럼 보이지만, 몇 편만 보다 보면 이 드라마의 진짜 주인공은 사건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서로 다른 성격과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일하고, 다투고, 성장하며 하나의 팀이 되어 가는 이야기. 『브루클린 나인나인』은 웃음 속에서 인종차별, 성소수자, 여성 경찰의 현실 등 미국 사회의 다양한 문제도 자연스럽게 다룬다. 그러나 무엇보다 오래 기억에 남는 것은 그 모든 이야기를 관통하는 동료들의 관계다. 서로를 놀리고, 때로는 부딪히지만, 결국 누구보다 서로를 믿는 사람들. 그래서 이 드라마는 경찰 이야기이면서도,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브루클린 나인나인에는 완벽한 사람이 없다. 대신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너무 잘 알고도, 그 사실 때문에 떠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브루클린 나인나인을 대표하는 관계를 하나만 꼽으라면 단연 홀트와 제이크다.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원칙주의 경찰서장과, 뛰어난 실력을 가졌지만 충동적이고 철없는 형사. 처음에는 사사건건 부딪히던 두 사람은 시즌이 거듭될수록 서로에게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사람이 된다.
그 관계를 가장 잘 보여 주는 에피소드가 시즌 4의 'Coral Palms'다. 범죄 조직의 보복을 피해 증인보호 프로그램으로 플로리다에 숨어 지내던 두 사람은 '그렉'과 '래리'라는 가명으로 게임 랜드에 취직하며 무료한 일상을 견딘다. 형사 일을 하지 못하는 현실에 답답해하던 제이크는 몰래 범인을 유인하려다 일을 키우고, 원칙을 중시하는 홀트와 크게 충돌한다. 하지만 결국 두 사람은 서로의 방식을 이해하고, 팀원들까지 플로리다로 내려와 함께 지미 피기스를 체포한다(홀트의 허벅지에 구멍이 뚫리고 제이크가 총을 맞기는 하지만). 웃음으로 가득한 에피소드지만, 동시에 브루클린 나인나인이 말하는 '좋은 동료'가 무엇인지를 가장 잘 보여 주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제이크는 어린 시절 자신을 떠난 아버지 때문에 늘 인정받고 싶어 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홀트에게 칭찬받기 위해 무리하기도 하고, 실수하면 누구보다 크게 좌절한다. 하지만 시즌이 이어질수록 홀트는 상사가 아니라 아버지 같은 존재가 된다. 드라마 속에서도 제이크와 에이미가 홀트를 농담처럼 'Captain Dad'라고 부르는 장면이 반복되고, 제이크 역시 무의식적으로 홀트를 'Dad'라고 부르기도 한다. 팬들이 두 사람의 관계를 단순한 상하관계가 아니라 가족처럼 받아들이는 이유다.
흥미로운 건 홀트가 제이크를 변화시키는 것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제이크 역시 홀트를 바꾼다. 규칙과 원칙만을 중시하던 홀트는 점점 팀원들의 장난에 웃고, 할로윈 하이스트를 진심으로 즐기고, 브루클린 나인나인을 '직장'이 아니라 자신의 팀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브루클린 나인나인이 오래 사랑받는 이유는 완벽한 리더와 완벽한 부하의 이야기가 아니라, 서로를 조금씩 더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 가는 두 사람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다른 형사들 역시 각자의 방식으로 '좋은 동료'가 무엇인지 보여 준다. 찰스 보일은 언제나 제이크를 가장 먼저 믿고 응원하는 사람이다. 친구의 성공을 자신의 일처럼 기뻐하고, 실적보다 사람 사이의 신뢰를 더 소중히 여긴다. 사랑에 실패하고 아들 니콜라이를 입양해 아버지가 되어 가는 과정 속에서 그는 유쾌한 조력자를 넘어 책임감과 배려를 갖춘 어른으로 성장한다.
로사는 누구보다 강인한 형사지만 성폭력 피해 사건에서는 누구보다 피해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인다. 또한 자신의 성 정체성이 양성애자임을 가족과 팀원들에게 밝히는 과정을 통해 두려움을 극복하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게 된다. 테리는 흑인 경찰로서 인종차별을 직접 경험하며 경찰이라는 권력이 가진 책임을 고민하고, 후배들을 보호하는 더 좋은 리더로 성장한다.
홀트는 흑인 게이 경찰서장으로서 오랜 차별을 견뎌 왔지만, 그 경험을 바탕으로 누구보다 공정한 리더가 된다. 에이미는 완벽한 성과보다 동료와의 협력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배우며 사람을 이끄는 리더로 성장하고, 지나는 누구의 기준에도 자신을 맞추지 않은 채 자신만의 길을 선택한다. 이 시리즈는 서로 다른 사람들이 서로를 바꾸려 하기보다 있는 그대로 존중하며 함께 성장하는 과정을 유쾌하고도 따뜻하게 그려 낸다.
물론 브루클린 나인나인이 사랑받는 이유는 진지한 메시지만은 아니다. 이 드라마를 대표하는 '할로윈 하이스트' 에피소드는 매년 경찰서 전체가 참여하는 거대한 장난이다. 홀트의 훈장부터 왕관, 챔피언 벨트까지 해마다 목표물은 달라지지만, 모두가 '최고의 형사'라는 타이틀 하나를 위해 치밀한 계략을 펼친다. 천장 환풍구를 기어 다니고, 분장과 도플갱어까지 동원하는 황당한 작전이 이어진다. 그렇게 평소에는 서로를 놀리고 유치한 장난을 치다가도 시민의 안전이 걸린 순간에는 누구보다 빠르게 하나의 팀이 된다. 브루클린 나인나인은 긴장과 웃음, 경쟁과 신뢰가 가장 자연스럽게 공존하는 드라마다.
하루의 대부분을 함께 보내는 곳이 직장이라면, 결국 그 공간을 좋은 곳으로 만드는 것도 사람일지도 모른다. 연봉이나 복지보다 오래 기억에 남는 것은 함께 웃고, 함께 버티며, 서로를 믿어 주었던 순간들이다.
나 역시 좋은 동료를 만난 적이 있다. 완벽하게 잘 맞는 사람들도 아니었고, 모두가 일을 잘하는 사람들도 아니었다. 하지만 힘든 순간마다 서로를 챙기려는 마음이 존재했다. 시간이 지나도 가장 먼저 떠오르는 기억은 성과보다 그런 순간들이다. 폐수가 흐르던 제조공장 뒤에서 쓰레기를 버리러 가다가 토끼풀로 꽃반지를 만들며 웃었던 일. 운전이 서툴던 나 대신 주차를 해 주겠다며 얼른 나오라고 하는 손짓. 회사에서 엉엉 울고 일하던 나에게, 말 없이 밖에서 사온 따뜻한 유자차를 건네 주던 손. 지금 돌이켜보면 특별한 사건은 아니었지만, 그때 나는 좋은 동료란 무엇인지 조금은 배웠던 것 같다.
브루클린 나인나인은 마지막 시즌에 이르러 경찰 조직이 가진 한계와 미국 사회의 현실을 피하지 않는다. 어떤 이는 승진하고, 어떤 이는 새로운 길을 선택하며, 제이크는 결국 가장 사랑했던 경찰이라는 일을 내려놓는다. 하지만 흩어진 사람들이 실패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브루클린 99에서 함께 웃고, 다투고, 서로를 믿으며 보냈던 시간 덕분에 더 나은 사람이 되어 각자의 삶으로 나아간다.
우리가 브루클린 나인나인을 사랑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함께 일한다는 것은 같은 사람이 되는 일이 아니라, 서로 다른 사람들이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일이라는 것. 언젠가 직장을 떠나더라도 그런 사람들과 함께했던 시간은 오래 남는다. 그리고 그 시간은 우리가 다음 관계를 맺는 방식과 누군가를 대하는 태도까지 조금씩 바꾸어 놓는다.
나는 오늘도 일한다. 회사에서 울고, 웃고, 땀 흘린다. 언젠가 직장을 떠나더라도, 함께했던 사람들과 나누었던 웃음과 배려는 오래 기억하게 될 것 같다. 우리가 오래 간직하는 것은 직장이 아니라, 그곳에서 서로의 곁을 지켜 주었던 사람들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