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변명
언젠가 이 글을 완성해야겠다고 막연하게 생각했지만, 게으른 성정 탓에 계속해서 미뤄왔다. 그렇게 미루던 와중에 엔시티 위시는 첫 번째로 정규 앨범을 발매했다. 엔시티 위시는 ‘2.0’을 선언했고 내가 감히 시도한, 그들에 관한 분석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글이 영원히 미뤄지겠다고 생각하자, 조금 슬퍼지기도 했다. 내가 이제 가요대전에서 걸그룹을 커버하지 않는 위시에 관해서 무엇을 말할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오히려 지금은 유효하지 않기 때문에, 그 시기를 지나왔기 때문에 이제는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엔시티 위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아쉬움, 그들이 위시를 좋아했던 이유, 그 모든 마음에 관해서.
그러니까 이 글은 정확히 말해서 엔시티 위시에 관한 글이 아니라, 엔시티 위시를 좋아하는 사람의 마음에 관한 글이다. 더불어 이 글에서 언급하는 엔시티 위시는 멤버들을 지칭하는 것이 아닌 그들이 앨범과 콘텐츠로 수행하는 콘셉트와 팬들이 그들을 보고 해석하는 캐릭터를 말한다. 엔시티 위시가 아닌, 엔시티 위시를 둘러싸고 있는 것들에 관해서 말할 것이다. 자, 가장 중요한 말을 덧붙이자면 이제부터 모든 이야기는 개인적인 체감에 관한 이야기고 그냥 내 생각이다. 이 정도의 쿠션이라면 충분하다고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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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아이돌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그런 걸 느낄 때가 있을 것이다. 내 주변에 걔네 얘기밖에 안 한다, 요즘 걔네 언급이 늘어난 것 같다… X(구 트위터)에 올라온 글을 일일이 세어본 것도 아니고 사람들을 붙잡고 설문조사를 해본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느낄 때가 있다. 엔시티 위시를 좋아하는 사람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은 건 작년부터 올해 초반까지, 이후 엔시티 위시는 얼마간 ‘탑 돌’이 된 것 같다. 이는 콘서트 티켓팅으로 아주 확실하게 체감했다. 나는 아이유, 세븐틴, 투애니원 등 소위 ‘빡센’ 가수의 티켓팅을 시도한 경험이 여럿 있지만, 곤란하다고 느껴본 적이 없다. 근데 엔시티 위시의 콘서트는 정말 곤란하다고 느꼈다. ‘아니 위시 좋아하는 사람이 이렇게 많다고?’ 네, 매우 많아요.
그런데 여기서 흥미로웠던 포인트는, 덕질을 좀 해본 사람들이 엔시티 위시를 좋아하는 것 같다는 사실이다. 물론 나 역시 아이돌팬이란 돌고 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엔시티 위시를 좋아하는 팬들은 뭐랄까, 이미 아이돌 판에서 겪을 일들을 다 겪은 사람들인 것 같았다. 아이돌을 처음 좋아해본 사람들보다 아이돌을 좀 좋아해본 사람들이 엔시티 위시의 컨셉에 더 반응하는 것처럼 느꼈다. 이것이 나의 체감일지라도, 이 모든 분석의 중요한 전제다.
나는 엔시티 위시의 콘셉트가 성공할 수 있던 가장 큰 이유는 ‘남성성’의 실패에 있다고 생각한다. 조금 더 과장을 보태면, 엔시티 위시의 콘셉트가 ‘남성성’의 실패를 전략으로 삼고 있다고 생각한다.
엔시티 위시의 콘셉트를 살펴보자. 그들은 얼마간 걸그룹에서 본 듯한 ‘귀엽고 예쁜’ 컨셉을 지향한다. (그러나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에서 이는 조금 바뀌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큰 지향점이 바뀌지 않았다는 전제하에 글을 썼다) 엔시티 위시가 데뷔했을 무렵, 봤던 댓글이 기억난다. 정확하지 않지만, 이런 맥락이었다. ‘에스엠(엔터테인먼트)에서 걸그룹 콘셉트를 엔시티 위시에게, 보이그룹 콘셉트를 에스파에게 시키는구나.’ 크게 동의하기 힘들지만, 이 댓글이 말하고자 하는 요점은 바로 ‘귀엽고 예쁜’ 콘셉트를 엔시티 위시가 수행하고 있다는 것이고 이러한 콘셉트가 보통은 걸그룹이 수행해 온 것이라는 의미일 테다. 이런 콘셉트를 향해서 멤버들의 나이를 묻는 반응도 들어봤다. 너무 ‘유아틱’해서 그들이 미성년자가 아니면 소화하기도, 보는 사람이 감당하기도 힘들다는 것이다.
요약해 보자면, 엔시티 위시의 콘셉트에 붙은 키워드를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1. ‘걸그룹’스러움
2. ‘유아틱’
내 관심은 이들의 귀엽고 예쁜 콘셉트 그 자체가 아니다. 이 콘셉트가 왜 아이돌 팬들의 반응을 불러왔느냐는 것이다. 이런 콘셉트를 한 그룹이 처음이라서 반응이 온 것일까? (물론 그럴 수도 있다. 그렇다면 왜 다른 그룹은 이런 콘셉트를 수행할 생각을 못 했을까? 과연 못한 것일까? 만약 아예 하지 않았던 것이라면 왜 하지 않은 것일까? 이에 관한 이야기는 이번 글에서 밝히지 않았지만, 언젠가 기회가 되면 쓰고 싶다)
이 모든 걸 설명할 단어가 바로 ‘남자병’이다. 남자병의 정의란 아마 읽는 여러분의 머릿속에서 다양하게 말해지고 있을 것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좁은 의미에서 남자병이란, 애교를 하지 않기 위해서 빼는 것이다. 넓은 의미에서는 마초적인 남성성에 의존하여 ‘여자같이’ 보이는 것을 하지 않는 것이다. ‘남성스러운’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 체면을 차리고 절대 고개 숙이지 않는 것이다. 중요한 건 이 모든 게 팬서비스 요구를 거부하는 차원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앨범 컨셉 차원의 이야기도 아니다. 이건 아이돌 판을 오랫동안 지켜본 팬들의 기억에 관한 이야기다. 누군가의 남자병은 해당 아이돌의 문제가 아니라, 과거 어떤 아이돌의 특정 행동과 언행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니까 남자병이란 일종의 맥락(남자 아이돌이 저질러온 수많은 시간) 안에서 구성되고 정의된다. 결국은 팬을 통해서 정의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아이돌 팬에 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아이돌이라는 개념이 탄생하고 팬들이 그들을 좋아하며 쫓아다니기 시작했을 때, 실제 성별과 무관하게 팬들은 늘 여성으로 개념화되었다. 아이돌 팬을 여자로만 개념화하는 것에 질색하지만, 나는 실제로 10대에서 30대, 넓게는 40대, 50대 여성들이 덕질을 한다고 생각한다. 세상 사람들은 아이돌 팬이 현실을 살지 않고, 자기에게 아무런 이득도 가져다주지 않는 남성들만 쫓아다닌다고 생각한다. (이때 왜 사람들은 팬이 좋아하는 아이돌을 꼭 남자라고만 생각할까?) 그렇게 세상 사람들은 팬들을 멍청하거나 집착하거나 기괴하거나 라는 식으로 말해왔다. (물론 이런 모든 부분이 존재한다는 걸 팬들 역시 알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팬들이 뭘 몰라서 덕질하는 거라고 생각하고 계속 가르치려 하지만, 사실 문화의 한 가운데 있는 팬들 만큼 또렷하게 덕질의 모든 걸 들여다보는 사람은 없다. 아이돌 팬들은 현실과 환상 사이에서 늘 충돌하고, 그 충돌을 사유하느라 끊임없이 갈등하고 모순을 껴안는 쪽에 가깝다. 거기에 그들이 ‘여성’이라는 정체성은 깊게 관여한다. 내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아이돌이 ‘남성’이기 때문에 저지르는 말과 행동에 실망하면서도 그들을 사랑한다. 이때 아이돌 팬은 그들을 좋아하는 나 자신과 그 사랑까지 자조하고 비하하면서 그 사랑을 이어간다. (어쩌면 우리가 흔히 말하는 ‘까질’이란 자신과 사랑을 넘어 아이돌까지 비하하면서 이어가는 사랑일지 모른다. 그렇다고 옹호해 주고 싶진 않고)
하지만 아이돌 팬들은 목격했다. 자조하고 비하하면서도, 못 품어줄 아이돌들이 있다는 것을. 내가 이 문장을 썼을 때, 떠오르는 몇몇 아이돌이 있다. (아이돌뿐 아니라, 본인을 아티스트로 올려치기 하면서 팬들 때문에 먹고 사는 사람들도 몇 떠오른다) 그들의 몇은 감방을 갔고 그들의 몇은 자숙을 했고 그들의 몇은 자숙했다가 돌아와서 활동을 이어 나가고 있다. 지금 이 모든 아이돌의 이름을 불러와서 그들을 패고자 함이 아니다. 모든 이름을 쓰기에 지면이 너무 좁고 패고 싶기엔 내 언어가 너무 거칠다. 내가 이렇게 그들을 소환한 이유는 그들의 죄가 대부분 ‘남성성’에서 출발했다는 점을 짚기 위해서다.
하, 이런 쿠션어는 깔고 싶지 않았지만 여기서 ‘남성성’은 실제 한국에서 살고 있는 남성을 개별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경험한 ‘남성성’을 말한다. 여성을 대상화하고 몸으로만 보는 것, 트로피로, 장신구로 보는 것, 계속해서 가르치려고 지적질하는 것, 여자들이 뭣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 여자의 미래는 주부밖에 없다고 발언하는 것, 이런 여성 혐오가 똘똘 뭉쳐서 범죄를 저지르는 것. 이런 남성성을 탐구하는 것도 하나의 즐거움이겠으나, 내 요점은 그 남성성이 정확히 어떤 모양인지보다, 아이돌 팬들은 남성 아이돌들이 보여준 '남성적인' 모습에 끊임없이 실망했다는 점이다. 아이돌 팬들은 이제 남성에 기대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남성성이란 실망스럽고, 기피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자기에게 위험한 ‘해로운’ 것이다.
여기서 엔시티 위시의 콘셉트가 빛을 발한다. 엔시티 위시의 콘셉트는 남성성을 정면으로 피해 간다. 즉 남성과 아주 먼 거리에 위치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들의 콘셉트는 '걸그룹'스러울수록 더 유효하다. 그러면서 형성되는 남성성이란, 무해하고 다정한 것이다. 유아틱한 컨셉 역시 마찬가지다. 아이가 성장하여 남자 어른이 된다는 것이, 한국의 대중 문화에서 어떤 것으로 말해졌는가. 차라리 아무것도 모르는 쪽이 더 낫다. 엔시티 위시의 콘셉트는 아이돌로서 혹은 같은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실패한 ‘남성성’을 똑바로 마주하고 그것을 향해서 있는 힘껏 도망치면서 형성되고 그렇기 때문에 여성들에게 성공할 수 있던 것이다.
'유아틱'하다는 비판에 관해서 덧붙이고 싶다. 남성의 애교와 귀여운 장신구는 정신연령, 신체 나이가 낮을 때만 가능한 것일까? 그렇다면 정신연령과 신체 나이가 크고 나서 우리가 기대하는 남성의 모습은 어떠한가? 이것이 또 다시 마초적인 남성, 권위 있는 남성의 이미지로 환원되는 것은 아닌가?
다시 엔시티 위시의 이야기로 돌아와 보자. 엔시티 위시의 콘셉트는 그렇기 때문에 세계관과 가사 안에서 자기가 남성 임을 분명히 드러낸다. 그들의 콘셉트는 남성이면서 귀엽고 예쁘고 유아틱해야만 의미를 가지기 때문이다. 엔시티 위시 이전의 아이돌 노래 가사에서 성별이란 무화되어야만 하는 것처럼 보였다. 내가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가사를 쓰지만, 그 대상이 여자인지, 남자인지 밝히지 않거나 아니면 노래를 부르는 나의 성별을 밝히지 않았다. 이는 사랑의 폭을 넓히자는 정치적 의도였다기보다는, 남성성을 기피하는 아이돌 팬들에게 굳이 성별을 특정함으로써 부스럼을 만들 필요가 없던 전략에 가깝다. (아이돌 팬으로 상정되는 2030여성들이 퀴어친화적이라는 해석 역시 영향을 미쳤으리라) 그러나 엔시티 위시는 가사에서 분명히 성별을 드러내고 있다.
It could've been fast 조금은 서툴 수 있는 고백
쉬는 시간에 너랑 수다 떠는 그 남자애 계속 거슬리네
- 엔시티위시 <1000>
엔시티 위시의 콘셉트로 드러나는 ‘무해하고 다정한’ 남성성은 얼마간 남자 아이돌 사이에서 하나의 트렌드가 된다고 느껴진다. 밝혀두자면, 이는 엔시티 위시가 아주 인기가 있어서 유행하기 시작한 트렌드라기 보다는, 팬들이 어떤 것을 싫어하는지 분석한 A&R팀들에 의해서 생긴 콘셉트일 것이다. 요즘 남자 아이돌은 여성에게 위험하지 않는 착한 남자가 되기 위해서 애쓰거나, 애교를 빼지 않아야 한다. 인성과 성품의 의미가 아니라, 고분고분하고 무해하다는 의미의 ‘착함’은 아이돌 팬들이 즉 아이돌을 좋아하는 수많은 여성이 원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말해준다. 엔시티 위시의 컨셉 변화에 아쉬워하는 팬들의 마음엔 두려움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것들이 혹여나 열심히 도망쳐온 곳에서 조금이라도 가까워져 있을까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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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글을 쓰기 위해서 주의했던 점에 관해서 말하면서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이 글은 엔시티 위시와 이들을 만든 소속사를 올려치기 위해서 쓴 글은 아니다. 그들이 올려쳐진 다면, 그들을 그 자리에 올려놓은 팬들에게 전부 감사를 전해야 하고 내가 관심이 있는 건 팬들의 마음이다. 더불어서 아이돌을 사랑하는 여성들의 마음이 옳다고 방어하는 것 역시 아니다. 이런 마음을 가지게 된 맥락을 밝히는 데에 정확한 방점이 있고, 이런 마음이 옳고 그르냐에 관해서는 다른 문제라고 생각한다.
위에서 밝혔지만, 엔시티 위시는 이제 콘셉트 변화를 위해서 준비 중이다. 그들을 비롯한 많은 아이돌이 또 어떤 남성성을 표방하고 형성해갈지 기대가 된다. 그 콘셉트가 어떨지 기대되는 건, 엔시티 위시를 좋아하는 마음을 넘어서 그들을 통해서 지금의 여성들은 어떤 남성성을 기대하고 사랑하고 싶어하는지를 들여다보고 싶기 때문이다. 모든 팬들아, 진짜 사랑하기 힘들지 않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