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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SS] 사랑받고 있다는 감각의 가격 [도서]

사랑을 믿는 마음은 어떻게 범죄가 되는가 - 『사랑에는 돈이 들어』

by 오수민 에디터
2026.08.26 19:42

사랑에 빠졌다는 사실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


매일 연락을 주고받았다는 것, 서로의 하루를 이야기했다는 것, 상대가 나를 사랑한다고 말했다는 것. 직접 얼굴을 마주하고 손을 잡았다면 더 확실해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진을 만들고 목소리를 복제하고 영상 속 얼굴마저 만들어낼 수 있는 시대에 우리가 타인을 믿기 위해 사용해 온 증거들은 하나씩 불확실해지고 있다.


그렇다면 사랑은 무엇으로 진짜가 되는가.

 

 

사랑에는 돈이 들어_표지(평면).jpg

 

 

나비클럽에서 출간한 『사랑에는 돈이 들어』는 로맨스 스캠을 소재로 한 네 편의 미스터리 소설과 한 편의 르포르타주를 통해 이 질문을 파고든다. 하지만 이 책이 궁금해하는 것은 단순히 사기꾼의 수법이나 범죄의 결말만은 아니다. 오히려 그들이 어떻게 인간의 외로움과 신뢰, 사랑받고 싶은 마음을 발견하고 그것에 가격을 매기는지를 바라본다.


로맨스 스캠이란 낯선 사람에게 접근해 관계와 신뢰를 만든 뒤 돈을 가로채는 범죄를 일컫는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로맨스 스캠에 당하는 사람들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한 번도 만나지 않은 사람과 어떻게 그토록 깊은 감정을 쌓을 수 있는지, 무엇보다 돈을 보내달라는 말을 듣고 어떻게 정말 돈을 보낼 수 있는지 의문이었다. 범죄자의 행동이 잘못됐다는 것과 별개로 피해자의 선택 역시 어리석다고 생각했다. 뉴스에서 수천만 원을 잃었다는 피해 사례를 볼 때면 안타까움보다 ‘왜 의심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물론 『사랑에는 돈이 들어』를 읽기 전까지는 그랬다.


이 책은 첫사랑을 구하러 캄보디아까지 향하는 박하익의 「사랑에는 돈이 들어」, 어머니의 온라인 연애를 의심하는 아들의 이야기를 담은 서윤빈의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 그리고 로맨스 스캠 조직 내부를 다룬 김아직의 「봐라니 연가」, 같은 사기꾼에게 피해를 입은 70대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은 정명섭의 「할머니 수사단」 등 다양한 방식으로 이 범죄를 바라본다.


누군가는 사랑하는 사람을 구하기 위해 움직이고, 누군가는 가족이 믿는 사랑을 의심한다. 누군가는 사람의 마음을 돈으로 환산하는 범죄자가 되고, 누군가는 자신을 속인 사람을 직접 찾아 나선다. 네 작품을 읽다 보면 로맨스 스캠이라는 범죄의 모습도 조금씩 달라진다. 분명 사기에 관한 이야기인데, 이상하게도 책을 덮고 나면 범죄 수법보다 사랑에 대해 더 오래 생각하게 된다. 그 중심에는 언제나 같은 것이 놓여 있다. 누군가와 연결되고 싶다는 마음이다.


사기꾼에게 필요한 것은 피해자가 사랑에 쉽게 빠지는 사람이어서가 아니다. 그 사람에게 어떤 말이 필요한지를 알아내는 것이다. 오늘 하루가 어땠는지 묻고, 외로움을 알아채고, 당신을 이해한다고 말한다. 그렇게 쌓인 신뢰 끝에서 비로소 돈을 요구한다. 돈을 빼앗기 전에 먼저 마음을 얻어야 한다는 점에서 로맨스 스캠은 기묘한 범죄다.

 

 

 

사기였던 사랑은 모두 가짜일까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며 가장 오래 남는 질문은 범인을 어떻게 잡을 것인가가 아니다. 상대가 거짓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 내가 느꼈던 사랑까지 거짓이 되는가.


서윤빈의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를 읽으며 이 생각은 더욱 복잡해졌다. 작품 속 아들은 어머니가 온라인에서 만나는 상대를 의심한다. 독자 역시 그의 의심을 따라간다. 상대방의 목적이 돈이라면 어머니를 보호하기 위해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러나 이야기를 읽다 보면 어머니가 정말 아무것도 몰랐던 것인지 의문이 생긴다. 어쩌면 그는 상대방이 자신에게 돈을 요구하는 이유를 어느 정도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관계를 완전히 끊지 않는다. 돈을 보내는 동안 상대는 자신의 하루를 물었고, 이야기를 들어주었으며, 위로하고 사랑한다고 말했다.


그 지점에서 마음이 아팠다. 상대의 의도를 어느 정도 짐작하면서도 그 관계를 놓지 못했다면, 그것은 그 사람이 어리석어서라기보다 그 관계가 채워주고 있던 자리가 그만큼 컸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물론 상대의 외로움과 신뢰를 이용해 돈을 받아내는 행위는 사랑이라고 할 수 없다.


사기꾼이 보낸 사진이 가짜였고, 이름도 직업도 삶도 만들어낸 것이었다고 해도 그 사람의 연락을 기다렸던 시간과 메시지 한 줄에 행복했던 순간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상대의 사랑은 연기였을지 몰라도 그 사랑을 믿었던 사람의 감정만큼은 진짜였기 때문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처음 품었던 ‘그들은 어리석은 짓이라는 걸 정녕 몰랐을까?’라는 질문도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한다.


그러나 질문을 조금 바꾸어야 할지도 모른다. 나를 궁금해하고, 내 이야기를 기억하고, 매일 안부를 물으며, 오랫동안 사랑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나타났을 때 우리는 언제까지 그 사람을 의심할 수 있을까.


 

 

사랑에는 정말 돈이 든다


 

책의 제목은 그래서 묘하게 현실적이다.


사랑에는 원래 돈이 든다. 함께 밥을 먹고, 먼 곳까지 만나러 가고, 기념일에 선물을 준비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손해라고 부르지 않는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시간과 돈을 쓰는 것은 때로 그 사람을 소중히 여긴다는 표현이 되기 때문이다.


로맨스 스캠은 바로 그 익숙한 문법에 침투한다. 사랑하니까 만나러 가고, 사랑하니까 기다리고, 사랑하니까 믿는다. 그리고 어느 순간 사랑하니까 돈을 보낸다는 문장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그렇다면 어디까지가 사랑에 쓴 돈이고, 어디서부터 사랑을 사기 위해 지불한 돈일까. 그 경계를 단순히 금액으로 나누기는 어렵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돈을 쓰고 무엇을 받았느냐일지도 모른다. 사랑한다고 말해주는 것, 나의 하루를 궁금해하는 것, 외로운 순간에 곁에 있어 주는 것. 우리는 이런 것들을 받을 때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있다고 느낀다.

 

 

 

소설이 끝난 자리에서 현실이 시작된다


 

네 편의 미스터리가 끝나고 등장하는 것은 전현진 기자의 르포르타주 「사랑의 매뉴얼: 그녀와의 10일」이다.


이 구성은 『사랑에는 돈이 들어』를 단순한 장르소설 앤솔러지와 조금 다른 책으로 만든다. 소설을 읽는 동안에는 인물들의 선택을 따라가며 범죄를 경험하지만, 마지막에는 현실에서 사람의 마음을 공략하기 위한 과정이 얼마나 체계적으로 설계되어 있는지를 마주하게 된다.


허구라고 생각했던 이야기가 현실의 매뉴얼과 맞닿는 순간, 앞서 읽었던 네 편의 소설 역시 조금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다. 그래서 『사랑에는 돈이 들어』를 읽어야 하는 이유는 로맨스 스캠이라는 새로운 범죄를 공부하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사진도, 목소리도, 영상도 만들어낼 수 있는 시대다.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는 기술은 앞으로 더욱 필요해질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기술이 발전해도 사기꾼이 노리는 가장 오래된 취약점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사랑받고 싶다는 마음. 누군가에게 중요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 그리고 한번 마음을 준 사람을 믿고 싶다는 마음. 우리를 속게 만드는 것은 어쩌면 사랑을 모르는 마음이 아니라 사랑을 믿고 싶은 마음이다.

 

그렇다면 필요한 것은 사랑하지 않는 법을 배우는 일이 아니다. 누군가를 믿으면서도 나 자신을 잃지 않는 법,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요구되는 것들을 한 번 더 의심할 수 있는 법일 것이다.


사랑에는 돈이 든다.

 

하지만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지불해야 하는 돈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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