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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존재를 통해 부재를 깨닫는다는 것, 비인간을 통해 인간을 이해한다는 것. - 상자 속의 양

"보이지 않아도 곁에 있으니까."

by 신지원 에디터
2026.08.15 14:19

우리 집에는 청소부 ‘밥 Bob’이 함께 살고 있다. 언제나 바닥 청소라는 자신의 본분을 묵묵히 지키는 필수불가결의 존재. 가끔 구석에 틀어박혀 곤란하게도 하지만, 대체로 우리 집에서 가장 의젓한 로봇 청소기이다.

 

‘비인간’에게 고유의 이름을 붙여주는 건 생각보다 아주 일반적인 일이다. 그것이 유희적 ‘의인화’의 영역인지, ‘정情’이라 이름 붙일 수 있는 종류의 감정인지는 모르겠지만. 인형, ChatGPT, 하다못해 집안의 가전에도 마음을 주는 게 인간이니 말이다. 그런데 만약 인간을 완전히 닮은 휴머노이드가 우리의 삶에 나타난다면? 다시는 볼 수 없을 줄 알았던 그 모습 그대로 내게 걸어온다면. 나는 그 존재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정말 그 사람을 대체할 수 있을까.

 

정말 먼 미래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 질문에 나의 답을 찾으려 애쓰며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각본집 <상자 속의 양>을 펼쳐 들었다. 올해 6월 개봉한 동명의 영화 <상자 속의 양>의 시나리오와 콘티, 자세한 설정과 제작 과정이 수록되어 있는 작은 책. 감정선을 꼭꼭 씹으며, 장면을 눈에 그리며 읽어 내렸다. 자꾸만 눈물이 났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 나는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다. 받아들이거나 대체하기를 넘어 근본적으로 이 이야기가 전하고자 했던 메세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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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자 속의 양>(2026) 포스터,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멀지 않은 미래, 사고로 아이를 잃은 ‘오토네’와 ‘켄스케’ 부부의 앞으로 ‘리버스 RE birth Ltd’라고 적힌 상자가 배달된다. 사건이나 사고로 세상을 떠난 소중한 사람의 모습과 데이터를 본 뜬 최신형 휴머노이드를 만드는 업체로부터 온 것이었다. 슬픔을 이용하려는 상술, 허무맹랑한 이야기라며 믿지 않기도 했지만, 전차를 좋아하고 조수석에 앉아 창밖 구경하기를 좋아하던 7살 아들 ‘카케루’를 떠올리면, 그 모든 게 무슨 대수일까. 둘은 마침내 그때 그 모습 그대로 집에 돌아온 휴머노이드 카케루와 재회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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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묘한 이질감, 어쩌면 본능일 거부감 속에서도 잃었던 아이에 대한 그리움, 미안함을 투영할 수 있는 똑 닮은 존재는 상상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시나리오를 따라가다 보면 두 사람의 현실적인 감정선에 자연스레 동화된다. ‘얘는 진짜 카케루가 아니야’, ‘이 아이의 안에 정말 영혼이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이게 맞는 걸까’ 싶은 내적 갈등, 아물지 않은 죄책감의 상처, 주변의 시선 속에서 오토네와 켄스케는 각자만의 방식대로 천천히 카케루를 받아들인다. 동시에, 카케루는 두 사람이 상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변화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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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 의해 태어나 인간에 의해 버려진 휴머노이드들이 카케루를 찾아온다. 똑같이 리버스 RE birth에서 개발된 존재들. 지능을 구성하고 있는 본래 인간의 데이터, 종속된 인간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게 설치된 GPS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도록 카케루를 돕는다. 비로소 시스템에서 벗어난 카케루는 오토네와 켄스케를 떠나 버림 받은 휴머노이드들, 집에서 도망친 인간 아이들과 가족이 되어 숲 속에 집을 짓고 살 것이란 결정을 내린다.

 

‘고마웠어. 이제는 가도 돼.’

 

서로를 위해 계약을 종료하도록 하자는 카케루의 말에 오토네와 켄스케는 다시 한 번 아이와 작별한다. 미안함과 후회로 놓지 못했던 존재에 대한 미련을 마침내 떠내 보내며.

 

 

 

존재를 통해 부재를 깨닫는다는 것


 

‘생성형 AI로 죽은 사람을 되살리는 이야기’.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상자 속의 양>을 구상할 때 처음으로 적었던 아이디어라고 한다. 본 작에서는 휴머노이드라는 소재를 빌렸지만, 이야기의 본질은 변함없이 가족, 그리고 ‘그리프 워크 Grief Work (애도 작업)’에 관한 것이다. 그렇기에 감독은 세 가족의 순간을 극적으로 그려내지 않는다. 이따금 고개를 드는 낯섦과 부정, 혼란스러움을 담백하게 보여주면서 결국 카케루(휴머노이드)를 카케루(아들)와 다른 새로운 존재로 인정하고 떠나 보내주는 과정까지 담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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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이야기의 후반부, 세 가족이 함께 카케루가 태어났을 때 심었던 안뜰의 레몬 나무처럼, 새롭게 카케루(휴머노이드)의 올리브 나무를 심는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들 과거의 산물이자 일종의 대체품에 불과했던 휴머노이드가 제 나무를 가진 존재가 된 순간. 이변적 ‘성장’을 맞이한 카케루는 마치 ‘상자 속의 양’에서 ‘어린 왕자’가 된 것처럼, 그들의 곁을 떠날 준비를 마친다. 자신이 있어야 할 곳으로, 미래를 만들어 갈 수 있는 숲속으로 향하는 작별을 고한다.


오토네와 켄스케 부부는 세상을 떠난 존재의 대체재가 아닌, 한 그루의 나무처럼 성장하는 카케루(휴머노이드)의 존재로 하여금 카케루(아들)의 부재를 마침내 받아들인다. 가장 역설적으로 그들의 곁에서 카케루(아들)가 되어주어야 하는 본연의 쓸모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진 온전한 존재로서 카케루(휴머노이드)가 그들을 치유할 수 있었다. “보이지 않아도 곁에 있으니까.” 카케루(휴머노이드)와의 관계를 매듭 지으며 애도의 작업을 마치게 된 것이다. 무럭무럭 자랄 레몬 나무와 올리브 나무가 이 보이지 않는 두 존재들을 기억할 수 있는 매개로 남았다. 그것이 오토네와 켄스케가 조금 더 힘차게 삶을 살아나갈 것이라 믿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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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

 

다양한 해석이 존재하겠지만, 나는 영화가 궁극적으로 <어린 왕자>에서 따온 제목이 암시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지만 언제나 함께한다고 믿는 마음’을 이야기한다고 생각했다. 작별의 순간은 누구에게나, 때로는 상상도 못한 방식으로 찾아온다. 그것은 먼 미래에도 마찬가지이다. 어떻게 당면한 죽음을 받아들이고 애도할 수 있을지, 감독은 휴머노이드를 매개로 인간이기에 겪어야 하는 작별에 대한 근본적 고찰을 다룬다. 미래를 다루고 있지만 현재를 전하고 있고, 죽음을 말하지만 삶을 이야기하며, 비인간을 통해 인간을 돌아보고 있다는 점이 가장 와닿았다. 이러한 이분법을 허무는 또 다른 책 한 권이 떠올랐다.

 

 

 

비인간을 통해 인간을 이해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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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인사>(2022), 김영하 작가

 

 

김영하 작가의 <작별인사>에서도 근 미래, 휴머노이드이자 어린 소년인 ‘철이’가 등장한다. 아빠, 세 고양이와 함께 평화로운 일상을 살아가던 철이는 아주 우연한 계기로 자신이 휴머노이드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렇게 자신의 존재에 대한 수많은 혼란과 고뇌 속에서 모험을 떠난 철이는 많은 존재들을 마주하고, 자신에 대한 작은 퍼즐 조각들을 끼워 나간다. 나는 누구이며 인간은 무엇인가? 인간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나아가는가. 기계가 정말 인간의 미래인가. 마침내 철이는 시베리아의 어느 외딴 숲에서 ‘마지막 인간’으로서 세상과 작별한다.

 

2022년, 김영하 작가의 신작 <작별인사>를 읽고 큰 감명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이렇게 짧게 일축할 수 없을 정도로 인간과 비인간, 삶과 죽음에 대한 심도 깊은 고찰을 다룬 인생 책이다. “회자정리 거자필반” 만난 사람은 반드시 헤어진다. 그리고 헤어진 사람은 반드시 만난다는 말. <작별인사>를 읽으며 마음 속에 깊이 남았던 구절이 <상자 속의 양>을 보면서도 오버랩 되었다. 만남과 작별은 대립항이 아니라 서로 이어진 한 쌍에 가깝다는 사실을 공통적으로 전하는 두 이야기에서 빼놓을 수 없는 소재는 역시나 휴머노이드이다. 비인간을 다루는 SF 픽션들은 궁극적으로 무엇을 말하려 하는가. 두 권의 책을 통해 비로소 추측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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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모프의 로봇 3원칙은 로봇이 언제나 인간에게 복종하는 존재라는 인간의 독단적 착각을 반영하고 있다.' – <생각하는 기계>, 루크 도멜

 

인간에 의해 인간을 모방해 태어난 존재들. <상자 속의 양>과 <작별인사> 모두 휴머노이드들이 인간에 맞춘 그들의 시스템에서 벗어나 성장하는 ‘아이들’을 다룬다. 고레에다 감독은 ‘신체와 외부 환경의 상회작용 속에서 지능이 창조된다’는 생각에 입각해 시나리오를 작업했다고 밝혔다. 그렇게 인간으로부터 스스로 벗어난 휴머노이드들은 진정한 ‘자기 자신’의 주체가 되어 그들만의 가족을 꾸리게 된다. <작별인사> 역시 마찬가지이다. 김영하 작가는 작가의 말을 통해 ‘혼자이고 외롭지만 어떻게든 이 고통의 삶을 의미 있게 살아갈 이유를 찾는 존재들’의 소설이라고 밝혔다. 저자들이 비인간(휴머노이드)이 성장을 통해 시스템 밖으로 나가고, 제 삶을 살아가는 이야기를 쓴 것은 결국 인본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함 아닐까.

 

결국 우리는 비인간의 모험을 통해 우리가 인간 존재로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인간다움’이란 무엇인지, 스스로를 비추어 보게 된다. 비인간을 통해 인간을 이해하는 것. 그것이 예술의 의의라고 생각하기에 더더욱 두 권의 책이 마음 깊이 와닿았다.

 

어쩌면 진부한 이야기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히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성장을 거듭하고, 삶에 대해 자신만의 방식을 선택할 때, 우리는 비로소 자유로워진다. 그것이 <상자 속의 양>이 전하고자 했던 진실된 명제다. 오토네와 켄스케처럼 작별을 통해 마음을 짓누르던 후회와 죄책감을 덜어내고 주어진 미래를 그릴 수 있다면. 카케루처럼 어쩌면 가장 ‘인간다운’ 일일지도 모를 변화를 맞이할 수 있다면. 우리가 휴머노이드인지, 인간인지, 또는 아이인지, 어른인지는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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