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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SS] 한 인간의 파멸을 단 하나의 악의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면 - 뮤지컬 '오셀로와 이아고' [공연]

모든 불명예가 나의 머리 위에 쏟아진다 하더라도, 내가 원하는 건

by 손현진 에디터
2026.09.30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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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판장으로 분한 공연장의 객석을 휘저으며 등장하는 이아고는 말한다. 당신들은 이미 마음속으로 판결을 냈을지도 모른다고. 사실 틀린 말도 아니다. 우리는 이 비극의 결말을 알고 있으니까. 오셀로는 사랑하는 데스데모나를 죽였고, 그 이면에는 이아고의 간계가 있었다. 그렇다면 이 정해진 비극에 대해 우리가 더 들어야 할 이야기가 남아 있을까?


      지난 9월 8일 막을 올린 뉴프로덕션 제작의 창작 뮤지컬 <오셀로와 이아고>는 바로 그 확신에서부터 이야기를 다시 쓴다. 이아고는 정말 사악한 인물 그뿐인가? 오셀로는 오직 이아고 때문에 데스데모나를 죽였나? 그의 파멸은 이아고의 흉악한 계획이 빚어낸 결과인가, 또는 스스로 내린 선택의 결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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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셰익스피어의 작품 <오셀로>를 바탕으로 창작된 뮤지컬 <오셀로와 이아고>에는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베네치아의 임시 총독으로 임명된 주인공 오셀로가 등장한다. 그는 미천한 출신과 이방인이라는 과거에서 비롯된 불안을 품고 살아가며, 이아고는 그런 오셀로의 마음속 작은 틈을 파고들어 그의 부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계략을 꾸민다. 불안에서 시작된 감정은 의심을 거쳐 질투로 번지고, 마침내 돌이킬 수 없는 비극으로 향한다. 모든 과정은 4인조 라이브 밴드의 강렬한 록 사운드 위에서 펼쳐지며, 이 작품은 록 뮤지컬이라는 형식을 통해 익숙한 고전을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한다.

       

       

       

      가장 높은 곳에서부터 시작되는 추락



       

      다 끝났어 지긋지긋한 전쟁

      들이부어 넘쳐흐르는 환희

      소리질러 위대한 영광


      이제 축제를 즐겨

       

       

      오프닝 넘버가 시작되면 극의 배경과 인물이 처한 상황이 단숨에 풀린다. 적군의 함대는 전멸했고, 베네치아의 군대를 승리로 이끈 위대한 장군 '오셀로'를 향한 찬사가 쏟아진다. 그리고 오늘 밤에는 승전 연회에 더해 데스데모나와 오셀로의 결혼 피로연까지 열릴 예정이니 마음껏 먹고, 마시고, 소리치며 축제를 즐겨라.

       

      이아고를 통해 소개되는 오셀로는 전쟁과 사랑에 승리하여 그야말로 인생의 정점에 오른 자다. 그런 오프닝에서 눈에 들어오는 것은 무대 위에 선명하게 그려지는 상승과 하강의 이미지다. 가장 높은 곳을 차지한 인물이 오셀로라면, 그에게 무릎을 꿇어 마이크를 건네는 이아고는 바닥과 가까운 곳에 머문다. 그렇게 위와 아래로 분절된 이미지 속에 넘버는 끝나고 축제를 즐기라는 장면에도 어딘가 불안한 뒷맛이 남는다. 더 상승할 곳 없는 정점에 선 인물에게 남은 일은 추락뿐이라는 불길한 예감 때문일까. 

       

      거기에 확신을 더하는 것은 넘버의 톤이다. 묵직한 킥 드럼으로 시작된 도입 뒤로 낮은 음역의 베이스가 따라붙는다. 이내 일렉 기타의 웅장하고도 어두운 연주가 시작되면 피아노가 그 사이 빈 공간을 채운다. 승리의 환희를 터뜨리는 축제라기보다 앞으로 벌어질 사건의 불길한 전조를 알리는 듯한 넘버다. 그렇게 두 인물이 목청껏 '축제를 즐기라'고 외칠수록 뒤에서 펼쳐질 비극의 그림자는 더욱 짙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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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이를 증명하듯 오셀로의 결핍이 빠르게 드러난다. 오셀로에게 손수 겉옷을 입혀주던 이아고가 임시 총독이 된 것을 축하한다고 하자, 그는 아직 원로의원에게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으니 자신을 '장군'이라 부르라고 말한다. 전쟁에서 승리하고 총독의 자리에 오른 순간조차 그는 자신이 진정으로 인정받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결핍은 분장과 소품을 통해서도 직관적으로 드러난다. 노예 출신 이방인이라는 과거의 흔적을 드러내는 왼손의 낙인을 감추기 위해 오셀로는 아대를 착용한다. 손가락마다 채워진 화려한 반지는 성공의 증표인 동시에, 그의 손을 옭아맨 수갑을 연상시킨다. 많은 이의 의심을 견뎌야 했던 오셀로에게 성공은 가장 중요한 목표였지만, 막상 그 자리에 도달하고도 그토록 바라던 인정은 따라오지 않았다. 가장 높은 곳에 올라선 뒤에도 추락할 절벽을 의식하게 되는 것. 바로 그 불안이 오셀로에게 생긴 작은 틈이었고, 영리한 이아고는 누구보다 먼저 그 틈을 발견해 비집고 들어가 의심의 씨앗을 심는다.

       

       

       

      민낯을 드러낸 삶, 증명하기 위한 삶


       

      이아고는 오셀로의 부관 자리를 욕망했고, 그 자리를 차지한 카시오를 무너뜨릴 계획을 세운다. 그는 전날 밤 카시오가 벌인 소동에 관한 이야기를 슬쩍 흘린 뒤 오셀로가 그 미끼를 물기만을 기다린다. 그리고 결국 오셀로는 카시오를 파면한다. 물론 주량이 약한 카시오에게 먼저 술을 권한 사람이 이아고였다는 사실은 알지 못한 채로. 이렇듯 이아고는 직접 결론을 내기보다는 상대가 스스로 결론에 도달하도록 상황을 설계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아고가 언제나 거짓말만을 늘어놓는 인물은 아니라는 점이다. 카시오가 술에 취해 소동을 벌인 건 사실이지만 자신이 그 상황을 유도했다는 맥락은 감춘다. 유리한 사실만을 골라 상대 앞에 내놓고,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그의 몫으로 남겨두는 것이다. 그런 이아고는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그것을 위해 어떤 일을 벌이고 있는지도 비교적 분명하게 바라본다. 카시오를 끌어내린 뒤에는 데스데모나가 그와 불륜을 저지르고 있다는 의심까지 오셀로의 마음속에 심지만, 씨앗만 뿌릴 뿐 억지로 꽃을 피우려 하지는 않는다. 오셀로 안에 이미 자리한 불안과 결핍이 스스로 의심을 키워내기를 기다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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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셀로는 그 기대에 응답하듯 점차 극단으로 향한다. 그는 만약 데스데모나와 카시오의 불륜이 사실이라면 자신에게 남은 선택지는 단 하나뿐이라고 말한다. 죽거나, 사랑하거나. 그 두 감정 사이에 중간 지대는 좀처럼 존재하지 않는다. 뮤지컬 <오셀로와 이아고>에는 이처럼 서로 반대편에 있는 관념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선과 악, 천사와 악마, 사랑과 죽음. 오셀로는 극단의 감정 사이에 머물기보다는 어느 한쪽을 선택해야 하는 사람처럼 행동한다. 그리고 바로 그 결함이 이아고가 심은 작은 의심을 돌이킬 수 없는 확신으로 키워낸다.

       

      하지만 이 세계는 그렇게 간단히 둘로 나뉘는 곳이 아니다. 수많은 욕망과 조건, 선택이 얽혀 하나의 사건을 만들어내는데도 우리는 때때로 한 사람을 악마로 지목하면서 복잡한 이야기를 손쉽게 정리하려 한다. 작품은 바로 그 선과 악 사이에 존재하는 중간 지대를 무대 위에 펼쳐놓고, 그 안에 선 인물들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를 관객에게 묻는다. 한 사람을 악마로 몰아버리면 나머지는 다 선량한 사람이 되어버린다는 이아고의 대사는 손쉽게 취할 수 있는 편리한 판결을 의심하게 만든다.

       

      그런 이아고는 오셀로의 파멸을 설계한 인물임과 동시에 그를 비추는 그림자가 된다. 자신의 욕망을 거리낌 없이 드러내는 이아고와 달리, 오셀로는 과거의 낙인을 가린 채 평생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며 살아왔다. 한 사람은 자신의 민낯을 숨기지 않았고, 또 한 사람은 인정받기 위한 얼굴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이아고가 의심이라는 거울을 들이밀자 오셀로는 애써 감춰둔 불안과 질투의 모습을 드러내고 만다.

       

       

       

      무대 위에서 완성되는 PLAY


       

      뮤지컬 <오셀로와 이아고>가 2인극이라는 조건을 풀어내는 방식은 꽤나 연극적이다. 작품은 단 두 명의 배우만으로 진행되지만 의상과 소품, 몸짓을 활용해 카시오와 데스데모나를 무대 위로 불러낸다. 총독의 외투를 걸치고 있던 오셀로가 검은 의상을 입는 순간 데스데모나가 되어 노래하고, 때로는 총독의 외투를 걸친 이아고가 오셀로가 되어 이미 벌어진 사건을 재현하기도 한다. 이렇게 역할의 경계가 끊임없이 뒤섞이면서 과거의 사건은 관객의 눈앞에서 다시 한 번 '연기'된다. 이미 벌어진 사건이 배우의 몸을 통해 재현되는 순간, 관객은 단순히 이야기를 관람하는 사람이 아닌 그들의 증언과 행동을 직접 지켜보며 판단하는 자가 된다.

       

      이러한 놀이의 감각은 소품에서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두 인물이 사용하는 스탠딩 마이크다. 배우들은 칼처럼 생긴 마이크를 손에 쥐고 노래로 맞붙다가, 어느 순간 그 안에서 실제 칼을 뽑아내며 노래와 전투의 경계를 허문다. 한정된 무대와 두 명의 배우라는 제약은 오히려 상상력을 자극하고, 무대 위라면 무엇이든 다른 걸로 변할 수 있다는 공연의 원초적인 재미를 살린다. 그리고 조명은 이러한 변화를 공간으로까지 확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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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일처럼 쏟아지는 화려한 빛줄기와 빠르고 강하게 끊어지는 전환까지, 조명은 작품을 한 편의 쇼처럼 보이게 만드는 동시에 감정을 끌어올린다. 특히 오셀로가 전쟁에 출정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스탠딩 마이크에서 칼을 뽑아 빛을 겨누는 순간, 조명은 순식간에 무대를 적진 한복판으로 바꿔놓는다. 4인조 라이브 밴드는 이러한 장면의 에너지를 한층 더 끌어올린다. 킥 드럼이 반복되기 시작하면 닥쳐올 불길한 사건을 예고하는 듯하고, 장면 사이를 파고드는 신시사이저의 날카로운 효과음은 분위기를 한순간에 고조시킨다. 그렇게 빛과 소리가 쉴 틈 없이 맞물리면서 작품은 강한 에너지를 연속적으로 밀어붙이고, 록뮤지컬 특유의 감각적인 쾌감과 카타르시스를 만들어낸다.

       

      그렇게 휘몰아친 감정은 앙코르에 이르러 풀려난다. 공연 내내 재판관의 자리에서 오셀로와 이아고의 파멸을 지켜보던 관객들은 마지막 순간 자리에서 일어나 배우들과 함께 넘버를 부른다. 극을 가득 채웠던 긴장이 걷힌 뒤, 객석과 무대는 함께 노래하며 쌓여 있던 에너지를 해소한다. 배우의 역할 전환부터 소품과 조명의 연출, 라이브 밴드의 강렬한 에너지까지, <오셀로와 이아고>는 2인극이라는 제한된 조건을 오히려 풍성한 상상력으로 확장해낸다.


       

       

      한 사람의 파멸을 단 하나의 악의만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극 중 이아고는 오셀로에게 의심만으로 결론을 내리지 말라고 경고한다. 하지만 데스데모나를 믿고 싶어 할수록 오셀로의 의심은 깊어졌고, 그렇게 질투에 눈이 먼 오셀로는 가장 낮은 곳까지 추락한다. 이 파국의 끝에 선 지금, 처음 이아고가 던졌던 질문을 다시 한 번 떠올리게 된다. 정말 한 사람의 파멸을 단 하나의 악의만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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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뮤지컬 <오셀로와 이아고>는 세상을 선과 악으로 나누는 대신, 그 사이에 얽힌 욕망과 결핍, 선택을 바라보게 한다. 어쩌면 여기까지 적어 내려간 이 글 역시 하나로 치우친 입장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누구의 말을 믿고 어떤 장면을 기억하느냐에 따라 같은 사건도 다른 모습으로 남게 되기 때문이다. 이미 내려진 판결을 믿는 일은 쉽지만, 이 작품이 끝내 관객에게 남기는 것은 하나의 정답이 아닌 스스로가 내릴 판단이다.

       

      그 판단의 여지를 열어둔 채 한 인간의 파멸을 둘러싼 악의와 선택을 되짚으며 익숙한 비극을 다시 쓴 뮤지컬 <오셀로와 이아고>는 오는 11월 22일까지 대학로 자유극장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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