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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SS] 수십 개로 쪼개진 인격, 괴물이라 불리던 남자 - 연극 '알테르 에고' [공연]

스탠리는 창살 안에 갇힌 새고, 그건 당신도 마찬가지잖아

by 손현진 에디터
2026.09.25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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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군가는 뾰족한 것에 찔린 후로 샤프처럼 날카로운 물건을 보기 어려워졌다고 말한다. 다른 누군가는 한 음식을 먹고 크게 체한 뒤로는 그 음식을 먹지 않게 되었으며, 또 어떤 꼬마는 그림을 그릴 때면 바다만 그린다고 말한다. 그에게 땅은 아주 끔찍한 장소였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힐 만큼 커다란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은 고통스러운 기억으로부터 간절히 벗어나고자 한다. 때로 인간의 정신은 견디기 힘든 압도적인 경험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인격을 분리하는 방식으로 반응하기도 한다.

       

      설명할 수 없는 기억의 공백 속에서 살아가는 주인공 '스탠리'는 어느 날 낯선 공간에서 눈을 뜬다. 두 손에는 차가운 수갑을 찬 채로. 이제 스탠리는 분명 자신이 저질렀으나, 자신이 저지르지 않은 사건에 대해 설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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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빌리 밀리건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연극 <알테르 에고>가 지난 9월 6일 한국 초연의 막을 올렸다. 작품은 1977년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학교 캠퍼스 일대에서 학생 3명을 대상으로 한 납치, 강도, 성폭행 사건의 용의자로 체포된 빌리 밀리건이 이후 정신감정을 통해 해리성 정체감 장애 진단을 받은 사건에서 영감을 받아 창작되었다.

       

      제목인 <알테르 에고(Alter Ego)>는 '또 다른 자아'를 뜻하는 라틴어로, 연극은 서로 다른 연령과 성별, 출신, 생각과 재능을 지닌 여러 인격과 함께 살아가는 해리성 정체감 장애 당사자 '스탠리'의 이야기를 그린다.

       

       

       

      엉망이 된 스탠리의 머릿속을 구현한 무대의 미학


       

      통제할 수 없는 트라우마적 사건을 겪은 주인공 스탠리의 인격은 수십 개의 조각으로 쪼개졌다. 하루에도 몇 번씩 인격이 뒤바뀌는 그는 분명 방금 전까지 동네에서 자전거를 타고 놀았지만, 눈을 뜨면 엄마에게 혼이 나고 있기도 했다. 쪼개진 조각들과 함께 살아가는 일은 너무 괴롭다던 스탠리는 의자 위에 위태롭게 서 있다. 

       

      그를 향해 쏟아지는 노란 조명은 네모낳게 조각나 커다란 창문을 연상시키고, 그 앞에 선 스탠리는 멍하니 밖을 쳐다본다. 그리고 알 수 없는 목소리들이 극장 곳곳의 스피커를 타고 울려 퍼지며 그를 힐난하고 윽박지르는 순간, 금세 깨닫게 된다. 이곳, 극장 안은 스탠리의 머릿속을 들여다보기 위한 공간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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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대는 어느 하나의 장소를 지정하지 않는다. 말하자면 무대는 어떤 '장소'보다 하나의 '상태'를 구현하는 데 가깝기 때문이다. 그리고 연극 <알테르 에고>는 복잡하게 얽힌 스탠리의 머릿속 상태를 무대 위에 구현한다.

       

      무대에는 사각의 오브제, 즉 또 하나의 무대가 얹혀 있고, 양옆에는 암흑 속으로 이어지는 듯한 검은 벽체가 세워져 있다. 이는 까만 의식 속으로 침잠하는 인격들의 모습을 상상하게 만든다. 업스테이지에는 스무여 개의 흰색 오브제가 반복적으로 배열된 격자형 벽이 있는데, 이건 마치 스탠리 내면에 살아 있는 여러 인격을 형상화한 듯하다. 뒤에서 다시 언급하겠지만, 이 무대는 그 자체로 하나의 '조명기' 역할을 수행한다.

       

      전체적으로 스탠리의 머릿속을 보여주는 듯한 무대 위로는 흰 가운을 입은 누군가가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도 한다. 그리고 이 존재는 스탠리의 내면을 끊임없이 부유하고 헤매는 또 다른 인격들의 모습을 상징한다. 그렇게 파편화된 이미지들이 겹쳐지는 가운데, 결국 스탠리가 의자에서 뛰어내리려는 장면으로 연극은 강렬한 막을 올린다.

       


       

       범죄자이자 피해자인 스탠리의 모순


       

      암흑 속에서 눈을 뜬 스탠리는 낯선 공간에서 수갑을 차고 있는 자신의 모습에 혼란을 느낀다. 그 뒤로 '윌버' 박사가 그의 정신감정을 위해 등장한다. 스탠리는 창문에서 뛰어내리려다 눈을 뜨니 25년이 흘러 있었고, 심지어 자신이 세 명의 대학생을 성폭행한 혐의로 갇혀 있다는 사실까지 총체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 모든 증거는 그를 가리키지만,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는 스탠리는 '나는 미친 게 아니'라고 항변한다. 이때부터 그는 관객에게 신뢰할 수 없는 화자로 자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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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반적으로 관객은 주인공의 시선을 따라가며 이야기를 이해한다. 그러나 그 인물 자체를 신뢰하기 어려워지는 순간, 무엇이 사실이고 거짓인지 혼란을 겪게 된다. 스탠리가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모습을 보일 때마다 관객은 그의 말에 의심을 품는다. 그리고 그 의심에 방점을 찍는 장면은 발을 헛디뎌 넘어진 그가 다시 몸을 일으키는 순간에 시작된다. 방금 전까지 '스탠리'였던 그는 어느새 전혀 다른 인격인 '앨런'이 되어 있다.


      앨런은 자신이 마흔 살이라는 걸 인지하고 있으며, 담배를 피운다. 무엇보다 그는 스탠리와 달리 자신의 내면에 수많은 인격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앨런의 등장과 함께 스탠리의 증상이 본격적으로 드러나자 윌버는 스탠리의 공간, 즉 무대 위에 놓인 또 하나의 무대 안으로 몸을 들인다. 그때부터 스탠리와 윌버 사이의 수수께끼 같은 대화가 시작된다.

       

      연극 <알테르 에고>의 작가 세드릭 샤퓌와 마고 무트는 범죄자인 동시에 피해자인 주인공의 이중적인 지위가 관객에게 끊임없이 모순된 감정을 불러일으키도록 의도했다고 밝힌다. 이때 신뢰할 수 없는 화자인 스탠리의 말과 행동은 이러한 모순을 더욱 선명하게 만든다. 자신은 괴물이 아니라고 절규하는 스탠리의 모습에 관객은 쉽사리 이입할 수 없다. 그는 정말 괴물이 아닌가? 그렇다면 그가 저지른 범죄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관객은 그의 말을 의심하는 동시에, 범죄자이자 피해자인 그가 놓인 모순적인 위치를 계속해서 고민하게 된다. 

       

       

       

      조명기 위의 일곱 가지 인격, 객석으로 넘어가는 빛



      앨런 뒤로 등장하는 세 번째 인격, '레이건'은 유려한 말솜씨를 지닌 앨런과 달리 고요하고 정적인 인물이다. 특유의 말투를 구사하는 레이건은 스탠리의 머릿속에서 살아가는 '주민'들과 '조명기'에 대한 단서를 본격적으로 드러낸다. 수십 개의 조각으로 쪼개진 스탠리의 인격은 저마다 고유한 역사와 생각을 지닌 하나의 사람이며, 그들이 모여 사는 머릿속에는 하나의 조명기가 존재한다. 그리고 누군가 그 조명 아래에 서는 순간, 그 인격이 의식을 차지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누가 의식을 차지했는지는 배우의 연기와 조명, 음악이 맞물리면서 드러난다. 연극 <알테르 에고>에서 스탠리 역의 배우는 일곱 개의 인격을 무대 위에서 실시간으로 연기해야 한다. 그는 한 사람 안에 여러 인격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설득력 있게 보여줘야 하며, 인격이 전환되는 과정에서도 어색함이 없어야 한다. 스탠리를 연기하는 배우는 각 인격마다 다른 몸짓과 말투를 구사하며 그 간극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여기에 조명과 음악의 타이밍까지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는 점이 이 작품의 큰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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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격이 바뀔 때는 조명이 전환되며 마치 장면의 컷을 바꾸듯 새로운 인격의 등장을 알린다. 그보다 더욱 명확한 단서는 전환마다 짧게 흐르는 음악이다. 각 인격의 특성에 맞춰 배치된 음악은 다른 인격의 등장을 예고하고, 관객이 변화를 인지하도록 돕는다. 그렇게 조명과 음악, 배우의 연기가 톱니바퀴처럼 맞물리며 한 배우의 몸을 통해 등장하고 사라지는 일곱 인격을 선명하게 구현한다.


      특히 음향의 활용은 오프닝에서부터 두드러진다. 음향은 과거의 기억을 불러오는 목소리가 되기도 하고, 인격의 전환을 알리거나 감정을 고조시키기도 한다. 이를 통해 관객은 스탠리의 머릿속을 들여다보는 극장 안에서 그의 혼란스러운 내면을 함께 경험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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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명은 무대와 함께 살펴봐야 한다. 애초에 무대 자체가 하나의 '조명기' 역할을 하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하얀 무대 구조물 위에 선 스탠리는 그 조명기 위에서 일곱 개의 인격을 꺼내 보인다. 주로 차가운 백색광이 사용되며, 업스테이지의 격자형 벽 사이로 쏟아지는 빛은 무대 너머에 존재하는 스탠리의 내면을 상상하게 한다. 그러나 이 조명기는 스탠리의 머릿속에만 머물지 않는다. 무대 위에 선 레이건이 인격을 전환시키는 조명기에 대해 언급할 때, 무대를 비추던 하얀 빛은 서서히 관객석으로 이동한다. 

       

      그리고 스탠리 안의 인격들을 비추던 빛이 객석을 향하는 순간, 관객은 자신 역시 여러 얼굴을 지닌 존재임을 자각한다. 우리는 관계와 집단에 따라 행동과 말투, 때로는 성격의 일부까지 달라지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을 스탠리가 겪는 해리성 정체감 장애와 동일하게 볼 수는 없겠지만, <알테르 에고>는 그의 분열된 자아에서 출발한 질문을 관객의 삶으로 확장하며 묻는다. 이렇게 다양한 얼굴을 가진 나의 어떤 모습을 진짜 '나'라고 부를 수 있을까. 

       

       

       

      스탠리를 스탠리에게 돌려주는 일


       

      그렇게 스탠리의 다양한 인격을 만난 윌버 박사는 그의 인격이 쪼개지게 된 결정적인 계기에 다가간다. 윌버는 '스탠리를 스탠리에게 돌려'주고자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결국 그에게 가장 깊은 트라우마를 안겨준 공간을 떠올리게 해야 한다. 연극이 지나온 모든 순간은 바로 그 공간에 닿기 위한 여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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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이 연극은 그 여정 속에서 ‘도대체 나한테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거냐’고 소리치는 스탠리의 질문을 끝까지 붙잡고 탐구한다. 그 질문을 좇는 동안 작품은 관객에게 어딘가 불편한 감각을 남긴다. 범죄자이자 피해자인 주인공의 모순적인 지위와 그가 겪은 고통스러운 과거 때문이다. <알테르 에고>는 불편함을 무대 위에 펼쳐 놓고, 그것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볼 것인지 묻는다. 이때 중요한 것은 '창작진은 그 인물을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고 있는가?'이다. 관객들은 그 관점에 동의하기도, 반박하기도 할 것이다. 바로 그때 극장은 하나의 공론장이 되고, 무대 위에서 시작된 질문은 극장을 나선 뒤에도 계속 이어진다.

       

      <알테르 에고>의 주제는 스탠리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만 머물지 않는다. 창살 안에 갇힌 어린 새와 다름 없는 스탠리처럼, 우리 모두는 저마다의 창살 안에 갇혀 살아가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창살 안에 갇혀 있으며, 수많은 '나' 가운데 끝까지 놓치지 말아야 할 진짜 모습은 무엇일까. 


      산산이 조각난 한 인간의 내면을 따라가며 타인을 판단하는 우리의 시선을 돌아보게 하고, 그 끝에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남기는 연극 <알테르 에고>는 오는 11월 22일까지 예스24스테이지 3관에서 공연된다.

       

       

      Your head will collapse

      But there's nothing in it

      And you'll ask yourself

       

      Where is my mind?

       

      Pixies - Where Is My Mi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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