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llegro ma non tanto
거의 가만히 앉아 있더라. 몸을 움직이지 않으려는 사람처럼 손등뼈의 움직임마저 최소화하더라. 그걸 보고서야 소리를 만드는 데 필요한 움직임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작다는 걸 알았다. 오히려 그의 사방을 오가는 단원들의 옆바람 같은 이야기들이 더 눈에 띄었다. 가장 중심에 있는 사람이 정작 눈에 띄지 않는 자리에서 이야기를 조립하기 시작하고, 사방을 물들이는 일은 함께하는 사람들의 몫이다.
도입부부터 소리의 몸집이 생각보다 작아 놀랐는데, 음표 하나하나를 그토록 세밀하게 다루는 줄도 미처 몰랐다. 물 흐르듯 영역을 만들어 나가는 동안 그 소리에 휩쓸려 가는 감각에만 집중하게 될 줄 알았지, 저렇게 작고 얇은 네모칸이 하나하나 눌리는 길까지 보게 될 줄은 몰랐다. 한 음을 이렇게 얇게 다루는 줄, 음마다 서로 다른 채도와 빛결이 놓이는 줄은 정말 몰랐다.
내가 상상했던 모습과 비교하면 그는 오히려 비워두는 일이 많았다. 자신의 소리가 꼭 필요한 자리가 아니면 아무것도 얹지 않고, 때로는 관객에게 거의 등을 돌린 채 단원들의 말을 듣는다. 무엇을 듣고 있는지는 표정으로도 짐작할 수 없으니, 가만히 그의 등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가 혼잣말을 할 때면 유달리 리사이틀홀에 온 기분이 든다. 라흐마니노프가 담대한 말을 더 많이 건넬 줄 알았는데, 오히려 읊조리더라. 이쪽을 바라보지 않는 정이 거기 있더라. 그가 내 기억 속 자리에 톡톡, 혹은 차분히 음을 놓아둘 때면 그 길을 따라오는 관악기의 소리도 기억에 남는다. 종이에 미처 다 담지 못한 글자까지 제 속도로 적어 내려갈 줄 알았지, 이렇게 자리를 비워두고 밑줄을 그을 줄은 몰랐다.
지휘자와 단원, 협연자의 마음이 점점 한데 모이는데, 음악은 그럴수록 높이 날아오르지 않고 나무 테이블 위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린다. 몸이 떠오를 틈을 주는 대신 내 손이 있고 발이 닿아 있는 자리에서 가장 예쁜 윤을 그려낸다. 그러니까 오늘 우리는 떠오를 필요가 없다.
익숙한 멜로디가 돌아올 때면 그의 손이 거의 움직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다시 깨닫는다. 손바닥을 하얀 건반 위에 놓아두기만 한다. 그러다 속도가 점점 타오르는 부분에 이르면, 내가 보지 못하는 사이에 언제 가속도가 붙었나 싶을 만큼 소리의 불투명도가 부드럽게 올라간다.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만큼 자연스럽다.
나는 이 부분에서 음악에 막 잡아먹히는 기분으로 안절부절못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그는 여전히 제자리에 있었다. 발을 땅에서 한 발짝도 떼지 않은 채, 목소리를 높이든 낮추든 흔들리지 않는다.
그런데도 소리가 강해져야 하는 순간이면 그는 아주 큰 원을 그리며 번뜩이고, 그 아래에는 반드시 여백이 있다. 남는 자리라고 생각했던 곳에도 소리를 받쳐주는 숨 공간이 놓여 있다. 그 사방을 오케스트라의 음결이 팽팽하게 메우니, 소리 없는 긴장감만으로도 시야가 꽉 차 버린다.
그는 두려움과 무거움을 등 뒤에 두고도, 그것을 모두 안고 태어난 사람처럼 누구보다 작디작게 말한다. 불현듯 소리가 커졌다가 사라지면, 그 자리에 잔향이 남을 공백을 둔다.
카덴차에 이르면 멈추는 시간. 두드리는 시간. 피아노의 이름이 가장 커지는 순간을 놓치지 않으니, 아, 나는 무엇을 앞둬야 하는가? 그 질문 앞에서 곤란함을 느끼고 말았으니.
우리는 그를 가만히 두었다. 어디선가 기계에서 들려오는 먼지만큼 작은 지직거림마저 방해로 여겨질 정도로 그 시간은 고요했다. 우리는 어디서 모여들어 이곳에 왔는가? 소리 안에서 질문을 되감은 자, 거기 있는가?
II. Intermezzo: Adagio
가을이 왔다. 어떻게 온 낙엽인가? 관악기는 서두르지 않으면서도 피아노의 오른쪽 소리만큼이나 선명하게 음을 내뱉는다. 현악도 그와 비슷한 속도로 걸어간다. 어디서 온 침잠인가? 그들은 놀랍도록 신중하게 산중을 메워간다.
밀도 높은 소리가 서서히 밀려들자 의문이 든다. 왜 이렇게까지 집중하는 거지? 나는 그저 즐기려고 온 공연인데, 무대 위 사람들은 어느 한 영역에 닿으려고 온전히 집중하고 있다. 분명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텐데, 왜 저렇게 표정 없이 거기 있는 걸까.
표정이 없다는 건 그들이 울지도 웃지도 못했다거나, 무섭게 어딘가를 잡아먹으려 했다는 뜻이 아니었다. 표정 자체가 사라진 것이었다. 사람과 사람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아니다. 그 시간에는 누가 그 자리에 있든 전해야 할 이야기가 있었고, 그것은 객석의 우리만을 위한 것도, 무대 위 연주자들끼리만의 일도 아니었다.
다만 그들이 어떤 나무문을 일정한 간격으로, 부담스럽지 않을 정도로 노크하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마음 닿는 곳 어디인가? 눈이 반짝이는 곳 어디인가.
그의 왼손이 조그만 쇠구슬을 떨어뜨려 놓을 때도, 소리를 휘감아 나아갈 방향을 조절할 때도, 그들은 늦가을의 너그러움이 어디서 온 것인지 찾는다. 아, 겨울바람이 오고 있다고는 하지만 여기는 무척이나 따뜻하다. 온기보다 더 많은 자연의 열감이 거기 있다.
그날의 라흐마니노프라면 가을에 잘 어울리는 곡으로, 짙은 갈색을 떠올리게 하는 곡으로 유명해지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도 했다.
내가 오래전 기대했던 반짝임은 되레 내 마음 한옆에 남아 있고, 눈길은 그를 감싸는 소리들로 향한다. 특히 관악기가 한 마디씩 꾹꾹 말을 남겨놓을 때면 나도 모르게 눈길이 가버리고 마니, 내가 사랑하는 건 단순히 한 사람이나 그 손바닥 아래에서 일어나는 일만은 아니라는 걸 알았다.
III. Finale: Alla breve
피아노는 앞으로 가는데 그는 뒤로 물러나더라. 그를 제외하고 다 반짝인다. 속도가 붙어도 한 음도 빠뜨리지 않고 흔들림 없이 연주하는데, 단원들과 합을 맞추는 절묘한 타이밍과 끝맺음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다들 엄청나게 바로 서 있다. 이쯤 되면 쌓여 있어야 할 무거운 기색도, 쫓기는 모습도 하나 없으니 할 말이 없다. 영상 속에서 보아온 그들의 라흐마니노프는 까맣고 어딘가 차가웠다. 내 기억에는 보랏빛 혹은 청색에 가까운 음악으로 남아 있었다. 그런데 11월의 한국에서 직접 듣는 소리는 달랐다. 이곳에서 그들의 라흐마니노프는 정말 위트 있었다.
왜일까? 그들의 시선 끝에는 누가 있는가? 놀랍게도 그곳에는 웃고 있는 얼굴이 있다. 아까 2악장의 차분함은 어디로 갔는지, 어느새 그들이 밝게 자리하고 있다. 때때로 우리를 기다리기도 하더라. 미처 다 긋지 못한 밑줄을 피아노와 관악기가 서로 손끝을 마주한 채 함께 긋더라.
구름 소리가 났다. 멀찍한 곳에서는 빗방울이 토독이는 소리도 들렸다. 내가 착각한 게 아니라면, 바람이 나뭇잎을 한꺼번에 스칠 때처럼 파도와도 닮은 ‘쏴아—’ 하는 울림이 있었다. 피아니스트의 목소리가 함께할 때도 있었다.
피아노가 혼자 소리를 낼 때, 그가 놓아둔 조그만 자리 하나하나를 보며 나는 눈을 깜빡일 수 없었다. 무대 위 사람들이 무엇을 바라보는지까지 다 보였기 때문이다.
속도가 가장 타오르고 그들이 가장 민첩해지는 때에도, 여유가 생길 때마다 소리는 작아진다. 무작정 밀어붙이지 않는 건, 할 수 있는 말을 끝까지 해도 미처 전하지 못하는 것이 있다는 걸 그들이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어디까지 말해야 할까? 어디부터 말을 전해야 좋을까. 그걸 하나하나 곱씹다 보니 어느덧 이 곡의 끝자락에 다다랐다. 내게 쏟아지는 이 마음은 무엇인가?
아, 어떡해… 사랑인가 봐.
그걸 알고 나니 기분이 되게 그랬다. 그냥... 되게 이상했다. 결국 그렇게 달려온 이유가 저 단어 하나였다. 그날 그들이 얼마나 다정했는지 아는가? 왜 그렇게까지 한순간도, 어느 한곳도 놓치지 않고 소리를 따뜻하게 메워놓던지.
그냥 마음 한구석이 되게 이상했다. 이상했다… 정말 먼 길을 돌아 여기까지 온 걸 다 아는데, 그냥 한 번 안아주려고 여기까지 왔단다.
III. Finale: Alla breve (Encore)
그러니까 아마 몇 년 동안은 다시 만나지 못할 줄 알았던 3악장이 앙코르로 돌아왔을 때, 객석의 대부분은 얼떨떨한 기쁨에 기운이 다 빠졌을 것이다. 박수 소리 사이로 협연자와 지휘자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동안, 우리는 갑작스레 되돌아온 과거 앞에서 반의반쯤 넋을 놓고 있었다. 우리가 이렇게 호사를 누려도 되나?
거기다 이번에는 아까 3악장에서 미처 보지 못했던, 화면 속에서만 보아왔던 그의 모습이 눈앞에 나타났다. 의자 위에서 몸을 들썩이며 아까보다 조금 더 제 뜻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닌가? 음표를 자유롭게 떨구고 받아치기도 한다. 조금은 덜 다듬어진 채로, 살아 있는 그대로 연주하는 순간도 엿보인다.
그렇다고 막 날뛰었다는 말은 아니다. 조금 전의 3악장은 1, 2악장을 이어받아 우리에게 전할 말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그 말을 모두 전한 뒤의 개운함이 남아 있다. 오늘의 연주를 모두 듣고 나서 앞으로의 무대를 기대하며 그들을 떠나보내기에도 더없이 적절한 시간이다.
관객에게는 방금 지나간 시간이 다시 눈앞에 펼쳐지는 꿈같은 순간이었다. 우리는 뭐, 말할 필요 있는가? 그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