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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우리의 우주는 어디쯤일까 - 낮과 밤은 서로에게 [영화]

낮과 밤이 하루를 이루듯 살아가는 저마다의 우주

by 최수경 에디터
2026.11.03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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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페에 앉아 문득 주변의 대화에 귀를 기울여본 적이 있다면 알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다양한 삶이 동시에 흘러가고 있다는 사실을.

       

      김종관 감독의 신작이자 제31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인 <낮과 밤은 서로에게>는 그렇게 저마다의 세계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카페에서 마주 앉는 순간을 담아낸다. 영화는 이곳을 찾은 네 쌍의 남녀가 나누는 네 개의 대화로 이루어진다.

       

      언뜻 아무런 관계가 없어 보이는 네 개의 대화를 따라가다 보면, 짧은 말과 침묵 사이로 저마다 품고 살아온 우주가 모습을 드러낸다.

       

       

       

      유진x현오 | 태엽처럼 맞물리는 우주의 '교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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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번째 이야기는 같은 카페를 서로 다른 시간에 찾는 유진(김민하)과 현오(주종혁)의 이야기다. 현오는 낮에, 유진은 밤에 이곳을 찾는다. 카페에서 현오는 멈춘 시계의 태엽을 다시 감고, 유진은 고장 난 시계에 얽힌 추억을 떠올린다. 시계마다 저마다의 우주가 있다고 말하는 현오의 표현처럼, 같은 공간을 오가는 두 사람 역시 서로의 존재를 알지 못한 채 각자의 시간과 세계를 살아간다.

       

      그런 두 사람의 시간이 처음으로 스치는 것은 어느 밤이다. 유진은 새벽에 문득 신발을 벗고 거리를 걸어본다. 맨발로 땅을 밟자 해가 진 뒤에도 낮 동안 달궈진 열기가 남아 있음을 느낀다. 그리고 비슷한 시각 잠에서 깨어난 현오는 창밖으로 맨발의 유진을 우연히 바라본다. 서로의 존재조차 모르던 두 사람이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 처음으로 같은 장면 안에 놓이는 순간이다.

       

      이미 지나간 낮의 온기가 밤까지 남아 있다는 말은 자연스럽게 영화의 제목을 떠올리게 한다. 낮과 밤은 서로 다른 시간이지만 완전히 단절되어 있지는 않다. 낮이 남긴 열을 밤이 품듯, 그리고 시계의 태엽이 맞물리듯. 우리의 삶도 알지 못하는 사이 누군가의 시간과 맞닿으며 서로의 세계에 작은 흔적을 남기고 있을지 모른다.

       

       

       

      상미x영민 | 내가 '나'인 우주로 살아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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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번째 이야기에서 서로 다른 우주의 존재를 들여다보았다면, 두 번째 이야기는 그 가운데 하나인 ‘나’를 어떻게 지켜낼 것인지 묻는다.

       

      상미(한선화)는 우연히 카페에 앉아 있던 중학교 동창 영민(장률)을 발견하고는 반갑게 그의 맞은편에 자리를 잡는다. 오랜만의 재회로 시작된 대화는 상미가 자신이 알아냈다는 세상의 비밀을 털어놓으면서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누군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으며, 세상에는 더 이상 온전한 자기 자신이 아닌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황당하지만 가만히 듣다 보면 묘하게 뜨끔해지는 구석이 있다. 특히 영민이 휴대전화를 지나치게 믿고 있다고 지적하는 부분이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별다른 의심 없이 작은 기계 하나에 많은 것을 맡기며 살아간다. 개인정보를 입력하고, 알고리즘이 골라주는 콘텐츠를 보며 취향과 관심사를 만들어간다.

       

      그렇게 수많은 정보에 둘러싸여 살아가는 동안, 내가 좋아하고 원한다고 믿는 것들은 과연 어디까지 온전히 나의 것일까. 화면 속 테이블에 덩그러니 남겨지게 된 채로 나 역시 의심하게 된다.

       

       

       

      혜진x동남 | 우주를 잇는 '이해'라는 통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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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 번째 테이블에는 작가 혜진(심은경)과 영화감독 동남(이희준)이 앉는다. 자신의 소설을 영화화하고 싶다는 동남을 만난 혜진은 처음부터 경계심을 드러낸다. 좀처럼 접점을 찾지 못하던 두 사람의 거리는 작품에 관한 대화가 깊어지면서 조금씩 가까워진다.

       

      계기가 되는 것은 동남이 혜진의 소설을 바라보는 방식이다. 동남은 작품을 읽으며 그 안에 담긴 혜진의 ‘마음의 구멍’을 발견했다고 말한다. 누군가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게 하는 글이 인상 깊었다는 그의 말에, 혜진 역시 자신을 깊이 이해한 동남을 조금씩 다르게 바라보기 시작한다.

       

      커피를 모두 마신 뒤에야 잔 바닥에 숨어 있던 작은 꽃을 발견하듯, 사람에게도 충분히 들여다본 뒤에야 비로소 보이는 마음이 있다. 그제서야 서로 다른 두 우주는 같은 방향을 바라보면서 하나의 이야기를 함께 만들어가기 시작한다.

       

       

       

      나경x종수 | 각자의 우주로 헤어질 '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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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테이블에는 오랫동안 함께해온 연인 나경(전소영)과 종수(김동휘)가 앉아 이별을 이야기한다. 두 사람의 대화에서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선택’과 ‘결심’이라는 단어다. 선택과 결심은 비슷해 보이지만 조금 다르다.

       

      선택에는 여러 가능성을 비교해 그중 하나를 고르는 감각이 있다. 하지만 삶에는 어느 것이 더 좋은지 판단할 수 없는 순간도 찾아온다. 하나를 고르면 하나를 포기해야 하고, 어느 쪽이 옳은지도 알 수 없다. 그럼에도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한 방향을 정해야 한다. 그럴 때 우리가 하는 것은 선택보다 결심에 가깝다.

       

      결심했다고 해서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결심이란 그 마음을 모두 품은 채로 나아가기로 하는 일에 가깝다. 한때 같은 시간을 살아온 두 사람 역시 서로를 향한 마음을 남겨둔 채, 이제는 각자의 방향으로 걸어간다.

       


       

      낮이 밤에게 남긴 온기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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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속 만남들이 앞으로 어떻게 이어질지는 알 수 없다. 영화는 네 관계의 끝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대신, 카페에서의 짧은 대화 이후에도 이어질 각자의 삶에 상상할 여백을 남겨두기 때문이다.

       

      가까워진 이들이 계속해서 같은 길을 걸을지, 스쳐간 인연이 다시 만날지, 서로 다른 방향으로 향한 이들이 언젠가 또 마주칠지는 모른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대화가 끝난 뒤에도 이들의 우주는 멈추지 않고 저마다의 방향으로 계속 흘러갈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의 우주는 어디쯤을 지나고 있을까. 저마다 다른 궤도를 따라 흘러가는 듯 보여도, 돌아보면 우리는 수많은 순간 서로의 삶과 맞물리며 여기까지 왔을 것이다. 서로 다른 낮과 밤이 이어져 하루를 이루듯이.

       

      영화가 내게 남긴 마음을 문장으로 옮겨 건네는 지금도 어쩌면 그런 작은 맞물림 가운데 하나일 수 있다. 그러니 이 글 역시 당신의 세계에 잠시 머물다 갈 수 있기를, 그리고 그곳에 작은 온기 하나를 남길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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