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됐다. 이제 됐다.”
그 말을 한 게 아마도 30일 오후 서너 시 무렵, 성수에 있는 어떤 전시 하나를 보고 난 뒤였을 것이다. 나는 내가 준비되었다는 사실을 문득 알았다.
그 전날 한성대입구역 근방에서 관람했던 연극이 도움이 됐을 수도, 30일에 있었던 작은 실내악 공연이 닫힌 문을 열어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나를 제자리로 돌아오게 도와준 것은 성수역에서 보낸 시간이기도 했고, 유난히 어두컴컴하면서도 유달리 유리알빛이 가득했던, 진동으로 가득한 그 전시이기도 했다.
어디에서 도움을 받았던 걸까?
쿠당탕탕. 지하철이 나를 성수역에 내려주고, 오가는 사람이 많은 도로 위를 걸을 때에도 나는 무선 이어폰을 끼고 있었다. 무엇을 들었는지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그러니까 굳이 손에 꼽아야 하나 싶을 만큼 매일 듣곤 했던 외국어 노래 한 곡이었던 것 같다. 그냥- 그 노래를 계속 귀 언저리에 놓아둔 채 지도 앱이 가리키는 길을 따라 걸었다.
그러다 보니 지하로 이어지는 길에 들어섰는데, 그 안에서는 특이한 향이 났다. 뭔가 오묘한데 무겁지는 않고, 코 주위를 진득하게 맴도는 짙은 향이었다.
웅웅. 막혀 있던 귀 너머로 웅웅대는 소리가 들려 이어폰을 빼보니, 여러 가구에서 서로 다른 진동 소리가 뻗어 나와 바닥과 내 사방을 울리고 있었다. 예상하지 못한 순간마다 빛이 깜빡이기도 했다.
가장 안쪽 방에 들어가서는 실수로 바닥에 놓인, 아주 작은 놋으로 만든 것만 같은 종 하나를 발로 건드렸다. ‘쨍그랑’ 하는 소리가 연기와 함께 자라났다. 여기에 내가 왜 와 있는가? 싶은 생각도 잠시, 나는 유난히 어두컴컴하면서도 유달리 유리알빛이 가득한 장면을 카메라에 꼭꼭 담기 시작했다.
바닥 위에 놓인 의자와 그릴, 스노보드의 바인딩과 데크, 이름 모를 구조물과 선풍기까지. 그냥 반짝이는 것이 좋아서 아마 20분 정도를 그곳에 혼자 머물렀다. 그러다 문득 이제는 다 보지 않았나 싶어 밖으로 나왔고, 원래 걷던 길을 조금 더 걸었다.
그 순간, 내 왼편 뒤쪽에서 자동차 경적 소리가 났다. 왼편 위쪽에서는 공장에서 일하는 소리가 들렸고, 오른편에서는 잘 차려입은 외국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오른편 앞쪽에서는 바람을 타고 담배 냄새가 전해졌다. 이제는 노란색으로 넘어가고 있는 연두색 나뭇잎이 바람에 쏴아- 하고 부딪치는 소리도 들렸다.
내가 걷고 있는 사이, 온갖 세상이 내게 자취를 보였다.
아, 나는 그때 내가 제자리로 돌아왔음을 알아차렸다. 이제 다시 뒤돌아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글을 쓰다 보니, 그러니까 누군가의 예술을, 내 눈 안에 쏟아진 누군가의 하루를 글에 담으려면 생각보다 많은 것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 사람의 눈과 손을 온전히 바라보고, 그 안의 마음까지 헤아리려면 내가 먼저 바로 서 있어야 했다. 그저 ‘체력적으로 소진되었다. 할 수 있는 말이 없다.’는 말만 반복할 때에는 어떤 것에도 감히 말을 얹을 수가 없는 것이다. 내 몽땅연필이 너무도 닳아 있었다.
계획을 세우면 뭐든 괜찮을 줄 알았는데, 역시 운동도 하지 않는 나에게는 체력을 회복할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내가 한동안 잊고 있던, 누군가에게는 매우 소중했을 어떤 ‘기회’나 ‘계기’가 내게도 꽤 절실했다. 그런 생각 끝에, 31일 첫 독주회를 열었던 신민규 피아니스트를 다시 떠올렸다.
그는 바흐를 시작하기 전이나 쇼팽을 연주하기 직전에 피아노 앞에 놓인 가죽 의자를 꾹- 한 번 잡았다. 다음 곡으로 넘어갈 때마다 잠깐씩 머물렀던 기다림과 짧게 지나간 웃음,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눈을 감을 줄도 모르는 듯 음악 안에 머물렀다.
나무 의자에 삼삼오오 모여 앉아 사랑하는 친구나 가족의 연주를 기다리던 사람들의 소리 없는 집중력도, 그를 눈 안에, 휴대전화 안에 담아 가려는 마음 한 겹 한 겹도 되새기고 또 되새겼다.
무엇보다 짙은 피로감 속에 놓여 있던 내가 다시 일어나 제자리에서 콩콩- 워밍업을 뛰고 있는데, 내 발끝마저 그의 조그만 구두처럼 반짝- 반짝- 빛나는 것 같아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이제는 쓸 수 있겠다.’ 그렇게 마음먹게 해준 것이다.
그의 하루는 어땠을까. 그의 첫 독주회에는 어떤 말소리가 오갔더라. 천천히 떠올려보기로 했다.
바흐, 평균율 클라비어곡집 제2권 제20번, 전주곡과 푸가 A단조 BWV 889
내가 생각한 것보다, 그러니까 미리 머릿속에 그려두었던 속도보다 조금 이르게 움직였다. 빠른 기색으로 부지런히 길을 걷는 것 같기도 했다. 왼손 안에 든 음표를 하나씩 독- 독- 일정한 간격으로 떨어뜨리니, 거기서부터 오늘은 꽤 의외적인 일들 안에서 흥미로움을 느끼게 되겠구나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처음이 그렇게 느껴졌으니, 가장 처음 들었던 선율이 되돌아왔을 때에는 괜히 더 여유롭게 느껴지는 것 같다. 잘 정돈된 메마른 흙바닥을 괜스레 발에 힘을 주어 툭- 툭- 걸어가고 있지만, 때때로 고개를 아예 푹 숙일지언정 훌쩍 고개를 들어 올린다. 괜히 반항심이 생겨서인지, 아니면 그냥 목 끝까지 늘려보고 싶은 마음에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한껏 머리를 들어 올리는 것이다.
그러니까 가장 처음의 것에는 약간의 오기도 있었고, 두 번째 이후부터는 서서히 원래 자신이 있던 자리로, 의도하지 않아도 자연히 돌아오는 듯했다.
처음의 기세가 저물어들 때에는 지루하게 느껴질 만큼 이제는 익숙하게 여기는 것들에 작은 연민을 덧붙일 수도 있다.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도 모를 만큼 자연스럽게, 거의 주문을 외우듯 하던 일을 마저 이어가기도 한다. 별일 없어도 평온함이 늘- 내 곁에 있으리라는 오만은, 그렇게 익숙해진 순간에 피어났겠지.
그러다 발의 박자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을 때에는 반쯤 거만한 상태로 건반 위를 굴러가는 소리를 바라보게 되었다. 동글동글하게, 그리 높지 않게 튀어 오른 음표 방울을 잘 살펴보면 그 밑바탕에 너무 부드럽지도, 반질거리지도 않는 무언가가 꼭 붙어 그 곁을 지키고 있다.
그래, 그 소리에는 어리숙함을 애써 감추는 어른보다 삐딱할지언정 거짓말할 줄 모르는 소년이 있었다. 툭툭 내딛는 발걸음에 약간의 오기가 남아 있지만, 그 기세를 억지로 꾸미거나 감추지는 않는 소년 말이다.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제9번 D장조 K.311
1악장
쿠왕! 하고 시작한 모차르트. 시작 가까운 곳에서부터 지체되지 않는 속도감이 있었고, 지나치게 유들거리지도 않았다. 그러니까 손이 움직이는 건반 위에 내가 바라지 않은 장난기나 휘날림이 없어서 좋았다.
그는 소리로 ‘무게를 살짝 덜어도 이렇게 아름다운 소리가 날 수 있어요.’ 하고 은근히 비춰주는 것이 아니라, ‘피아노 위에 심지가 자라나면 이만큼 분명해질 수 있어요!’ 라고 말했다. 깨끗하고 꼿꼿하게 자라나는 소리가 새하얀 도화지 위를 뚜렷하게 장식하고 있는 게 한눈에 다 보이니, 나는 그가 1악장을 연주하는 어느 순간부터 소리 없는 만족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내가 좋아하는 ‘성질머리’가 그의 음표 안에도 엿보이니 나의 한결같은 취향에 웃음이 났다. 내가 말하는 ‘성질머리’, 그러니까 건반 위에서의 성질머리를 정의하면 이렇다.
음을 눌러주는 힘이 분명하고, 쉽게 휘날리는 말씨가 없으며, 소리 안에는 그 사람의 성격이 남아 있지만 정작 자신을 뽐내려는 기색은 없는 것. 조금이라도 멋져 보이려 애쓰기보다 음악 안에서 가장 솔직하게 다 털어놓을 줄 아는, 그런 ‘성질머리’가 그에게도 있었다.
2악장
그러니까 내가 좋아하는, 마냥 다정하지 않고 부러 연약해지려 하지 않는 소리가 2악장의 가장 처음에도 엿보였으니, 나는 마음 편히 그가 타격하면 타격하는 대로 받아들였다.
불필요한 잔향으로 음표의 뒷길을 멋있게 포장하여 거추장스럽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소리 하나하나가 가져야 할 자리에 집중했다. 그러니까 외피를 가꾸는 것이 아니라, 손가락 끝의 지문이 건반에 닿는 가장 조그만 원에 마음을 모은다. 그 작은 자리를 기억하고 있는 발걸음이 내게 닿아왔다.
아, 나는 그가 정말 ‘내실’을 깊게 다스리는 연주자이구나 싶었다. 그의 스승에게서도 네모나고, 정말 가지런한 배움을 얻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 마디 한 마디가 어여쁘게 들렸지만, 그렇다고 진심을 꾸며내는 듯한 기색은 한순간도 없었다.
3악장
또각, 반짝. 몇 번이고 반복한 후에는 새카만 골목길을 가지고 놀 줄도, 고개를 빼꼼 내밀어 이곳저곳을 누벼볼 줄도 아는 생동감을 보여주었다. 고개를 좌우로 가볍게 까딱까딱- 할 수 있는 기분 좋음이 거기에 있었다.
가만히 있는 자리에도 생글- 생글- 일직선으로 올곧게 피어난 새싹 몇 개가 자라났다. 텃밭에 꽃이 자라지 않아도 괜찮고, 들푸른 것 몇 가지를 피워내는 일에도 마음 넓게 기뻐할 수 있음을 알게 된다.
쇼팽, 스케르초 제1번 B단조 Op.20
무대와 가까운 2열 오른편에 앉은 탓도 있고, 안방과도 같은 피오레움에 앉아 있으니 음원으로는 온전히 체감할 수 없는 맹렬하고 매서운 파열음이 바로 앞에서 터져 나왔다. 나도 모르게 정신을 번쩍- 차리고 마는 것이다.
울컥울컥, 울렁울렁, 뱅글뱅글. 한껏 내달리기도 하고, 급경사를 앞에 두고 내 손톱보다 작은 크기로 몸집을 줄이기도 한다. 머릿속에서는 서로 다른 높이로 나열된 네모들이 올라섰다 내려섰다, 크고 작게 오르락내리락한다. 그 움직임을 가만… 바라보고 있다 보면 어느새 잔물결 하나 없는 평평한 수면 위로 자리를 옮긴 듯했다.
피아노 소리가 어디가 끝인지 모를 만큼 넓은 도화지 위에 하나의 분위기를 만들어낼 수 있구나. 그걸 눈앞에서, 그것도 이만큼이나 가까운 곳에서 목격하고 나니 나는 내 안에 호숫가 하나를 그릴 수 있구나, 그 사실을 알았다.
그러니까 소리가 만들어내는 그림은 내게 불현듯 찾아오는 게 아니라, 갑자기 둥- 하고 떠오르는 것도 아니라, 그냥 건반이 있는 곳으로부터 물안개가 양옆으로 둥글게 솟구치며 내게 오는 것이다. 조금 전까지 맹렬하게 내달리던 소리가 이렇게 넓고 고요한 풍경을 만들 수도 있다는 것. 그걸 알았다.
라헨만, 슈베르트 주제에 의한 다섯 개의 변주곡
아마 나는 이 곡에서 그에게도 스승이 있음을 다시금 떠올리게 되었다. 아니, 그냥 소리의 모양새나 연주하는 옆모습, 움직이는 모습을 바라보다 보니 뭔가 얼핏얼핏 윤홍천 교수님이 보였다.
그냥 그 특유의 결이라는 게 있지 않은가? 정돈되고 깔끔한데 대범하기보다는 의연하고, 대놓고 으르렁거리기보다 안쪽으로 힘을 모아다 놓고, 가장 핵심적인 곳에 결정적인 한 수를 둘 줄 아는 고요한 승부사의 기질이 그에게 엿보였다.
연주하기 직전에는 꼭 한 번씩 피아노든 관객을 향해서든 싱긋 웃어주기도 하지만, 막상 노래할 때에는 얼굴에서 표정을 읽기 어려울 만큼 음악에 집중하고 있었다. 생각해 보면 그는 그렇게 깊게 치면서도 땀방울을 흘리지 않았다. 집중하는 동안 입이 흔들리지도 않았고, 상체도 팔을 제외하면 거의 일직선으로 앉아 있었다.
유일하게 그가 달라졌던 순간을 생각해 보면 한 번씩 평소의 시선보다 조금 높은 곳에 눈을 둔다든가, 뚫어져라 제 손가락이 내리치고 있는 곳을 바라볼 때였다. 연주회니까 당연한 게 아닌가 싶겠지만, 조금도 흔들림이 없어서 대단히 신기했다.
그냥- 뭔가 나였다면 첫 독주회인 만큼 작은 것에도 다 한들- 한들- 흔들렸을 것 같다. 조금 더 이만큼 해보면 좋을까 하는 생각에 뭐든 빛내기 바빴을 텐데, 그는 오히려 덜어내려는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먹빛을 겹겹이 칠해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을 만큼 검게 만들어가는 그 광경을 따라가느라, 나는 이 곡 안의 다섯 변주가 어떻게 흘러갔는지도 모른 채 길을 잃고 말았다. 그만큼 내 눈에는 소리의 변화보다 그 소리를 다루는 사람의 모습이 오래 남았다.
리스트, 파가니니 대연습곡 S.141
하나
가장 맨 처음에 시작되는 밑바닥의 종소리에는 긴 여운이 담길 수 있도록 깊게 타격하더니, 그다음 것들에는 아주 약간의 연보랏빛 한가로움을 주더라.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을 들을 때 떠올리곤 했던 라벤더의 향수가 느껴지기도 했다. 이런 일이 있었던가 싶은 날들이 광풍의 전조와 행복의 일면 사이를 위태롭게, 때로는 한가롭게 노니는 것 같았다.
네가 가는 길을 내가 감히 함부로 추측할 수 없어 그냥 그 채로 바라보고 앉아 있었다. 포기를 모르고 바닥을 끊임없이 다져 나가는 일과 사람 사이에서 일렁이는 마음을 동시에 느끼고 있자니, 아, 그가 들려주는 이 첫 무대에는 가볍게 형용할 수 없는 심중의 고민들이 몇 가지 형태로 휘감겨 있겠구나 싶었다.
그걸 알았다기보다, 그만큼 그의 첫 독주회가 내게는 여러 마음이 겹쳐 있는 날로 느껴졌다.
둘
청명한 기다림. 한없이 맑고 밝은 마음을 지닌 그 모습 그대로, 내 본연을 잃지 않으면서 기꺼이 휩쓸려가는 느낌. 그 기운을 따라가며 개구쟁이처럼 싱글- 싱글- 거리다가, 반가운 마음이 앞서 나가는 탓에 나도 모르게 속도가 붙는 움직임을 따라간다.
행복을 낚아채는 새의 웃음소리를 따라!
셋
외로운 그 상태 그대로! 그러니까 음표와 음표 사이가 서로 닿으면 큰일 날 사람처럼 하나하나 떼어 놓으면서도, 앞서 간 음의 그림자가 뒤따라오는 소리에 은근히 비치니 오히려 이게 내가 익히 아는 그 라 캄파넬라가 맞나 싶었다.
행방이 늘 묘연해 더욱 궁금해지는 의연한 말솜씨와 영롱한 음색이 단번에 눈길을 사로잡았다. 어찌하다 여기까지 오셨나, 어찌하면 이곳까지 와주실까. 나도 모르게 손을 가만히 두지 못하고 안달복달하게 되는 것이니.
오묘한 웃음소리 하나에도 흩날리는 내 심중을 누가 알아줄까? 하는 수 없이 건반 안에 광광 담아놓는 수밖에.
넷
가지각색의 ‘홋챠홋챠’를 구경해 볼 수 있는 순간. 경쾌한 타격음과 함께 팽팽한 고무줄 놀이를 이어가니 흥겨움과 절묘함이 자연스럽게 엮여 들어간다.
다섯
아이야. 누굴 따라 어디를 가니?
그 질문이 꼬리처럼 이어지고, 꼬마의 반가운 답장이 돌아온다. 가방 속에 고이 숨겨 놓았던 그림책 한 권을 꺼내 들고는 천진난만한 웃음소리를 따라간다.
동화책 한가운데 놓인 여정도 무섭지가 않으니, 다정한 엄마가 되었다가 위협적인 늑대가 되기도 하는 재미난 역할극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어간다.
책의 결말부로 달려갈 즈음에는? 왕! 하고 놀려주는 것도 잊지 않는다.
여섯
세 번째 곡을 들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오히려 내 귀에 익숙하고 유명세가 있는 곡일수록 막 휘날리거나 재빠르게 속도를 붙이기보다 밑바닥에 몸을 제대로 붙이고 똑바로 서 있기에 집중하는 모습에서 그의 과단성을 엿볼 수 있었다.
정말 무섭도록 뚜벅뚜벅 걷는구나!
30일에는 다시 쓸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31일에는 이렇게 적어두고 싶은 소리가 많아졌다. 그의 새파란 집중에, 잃지 않는 평정심에 나는 웃음이 났다.
신민규 피아니스트
너무 보기 좋아서!